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9
#148.
몰아넣다 (3)
“너, 너 몰골이 이게 뭐냐?”
노수봉의 아버지, 노영덕이 노수봉을 보고는 기겁을 하여 소리를 질렀다.
노수봉은 멍하니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왜 이렇게 됐어! 왜?”
노영덕은 후다닥 달려와 노수봉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이, 이게 대체! 이게!”
차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아들이 불과 몇 달 사이에 해골이나 다름없는 몰골이 되어 왔다. 얼마 전 휴가를 나왔을 때만 해도 사회에서보다 더 살이 올라 보기 좋은 모습이었는데, 단 몇 달 만에 몰골이 완전히 망가진 것이다.
죽을 것 같다고, 당장 여기서 빼내라고 난리를 칠 때는 또 쓸데없이 엄살을 부린다 싶었건만, 지금 모습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병으로 몸이 이리되었다면 휴가를 보내 달라고 할 게 아니라, 병원으로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병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괴롭힘으로 이런 꼴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누구냐!”
노영덕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수봉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의 아들을 이런 꼴로 만든 놈을 당장 박살 내놓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
“그래! 말해라! 누구냐? 누가 너를 이런 꼴로 만들었니!”
노수봉은 흥분하는 노영덕을 보며 씁쓸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다.
보통은 자식이 이런 꼴이 되어 돌아오면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일단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상태가 아니라 자신에게 소속된 것이 다른 이에게 침범을 받았다는 것에 가장 먼저 분노하고 있었다.
말을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아닐 것이다.
그런 기대는 애초에 접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아들이라도 가차 없이 버릴 사람이다. 부정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이리 방치되지는 않았겠지.
“……수, 숨을 곳이 필요해요.”
“숨다니! 네가 왜 숨는단 말이냐?”
노수봉의 손이 덜덜 떨렸다.
“오……니까.”
노영덕의 눈이 가라앉았다.
손을 덜덜 떨며 입에서 침이 흘러내리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분노보다 참담함이 느껴졌다. 하나뿐인 아들놈이 이 꼴이 되도록 대체 군에서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누가 너를 이리 괴롭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걱정할 것 없다. 여기는 군대가 아니라 네 집이다. 세상에 누가 감히 네 집으로 너를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냐.”
노영덕의 말에 노수봉이 힘겹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막아요.”
“으음?”
“못 막아. 그 새끼는…… 그 새끼는 악마니까. 악마는 사람이 못 막아. 못 막는다고.”
노수봉의 전신이 간질이라도 온 듯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뜯어내듯 뽑기 시작했다.
“수봉아!”
“못 막는다고! 못 막아! 그놈은 날 찾아올 거란 말이야! 못 막아! 아버지! 아버지! 나 무서워요! 사, 살려줘요.”
“수봉아! 이놈아, 정신 차려라!”
노수봉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기 시작했다. 얼마나 물어뜯어 댔는지 엄지손가락 끝에서 피가 질질 흐르고 있지만, 노수봉은 그것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눈치였다.
“오, 올 거야. 올 거야. 여, 여기도 안전하지 않아. 달아나야 해. 도망쳐야…….”
으드득.
노수봉의 상태를 본 노영덕이 이를 갈아붙였다.
“어떤 새끼가 감히!”
자신이 누구인가.
3선 국회의원이다.
늦게 낳은 자식이라 군대 따위는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에 검증이 판을 치는 시대라 좀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자식들이라 해도 병적부가 깨끗해야 한다.
미국으로 보내 영주권을 따게 해서 군 복무를 회피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문제가 될 거리는 애당초 제거한다는 생각에 반강제적으로 입대를 시켰다.
그런데 그게 이런 결과로 돌아올 줄이야.
“의사! 의사부터 불러!”
노수봉이 커다랗게 고함을 치자 집 안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심신미약입니다.”
“박 선생.”
“예, 의원님.”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시오.”
“……예.”
왕진을 온 주치의가 침대에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노수봉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자세한 건 검사를 해보아야겠지만, 몸에는 큰 이상이 없습니다. 급격한 영양실조가 있기는 하지만, 잘 먹으면 금방 회복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정신인데…….”
노영덕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정신적인 충격이 큰 모양입니다. 트라우마가 크게 작용하고 있어 보입니다. 입원을 고려해야 합니다.”
“내 자식이 정신병자가 되었다는 소리요?”
의사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현대인에게 정신병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감기와도 같았다. 가벼운 우울증 등은 누구나 앓고 있는 수준이 되었건만, 나이 든 이들은 정신병을 극단적으로 배척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나 노영덕은 그런 면이 심했다.
그 스스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정신과적 치료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 이에게 당신의 아들이 지금 정신병에 걸렸다는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재 상황으로는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해 보입니다.”
“……확실하오?”
“예.”
노영덕이 이를 갈았다.
그도 눈이 있으니 아들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치료는 어떻게?”
“상태가 워낙 심각해 보이니, 일단은 입원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입원?”
“예.”
노영덕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 될 말.”
“의원님.”
노영덕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치료를 하는 것은 좋소.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지원해 주지. 당신이 아는 최고의 정신과 전문의를 불러서 내 아들을 정상으로 되돌리면 됩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정신과 병력이 남는 것은 안 됩니다.”
“의원님, 집에서 치료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걸 되게 해주겠다는 것 아니오!”
주치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말이 통할 상대도 아니었다.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적당한 전문의를 자주 왕래시킨다면 치료가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향정신성 의약품은 진단이 없이는 반출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노영덕이 가볍게 웃었다.
“이보시오, 박 선생.”
“예, 의원님.”
“여기는 대한민국이오.”
“…….”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약품이 있다면 노영덕이 알아서 할 것이다. 그의 말대로 이곳은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에서 3선 의원이 가지고 있는 힘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크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일단 집에서 안정을 취하는 것으로 하시지요. 빠르게 전문의를 수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발작을 일으킬 위험이 있으니 눈을 떼시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알겠소.”
“젊은 청년이 발작을 일으키면 제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건장한 장정들로 하여금 방을 지키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혹시 자해를 할지도 모르니 날붙이는 다 치우시구요.”
“알았다고 하지 않소이까!”
주치의는 아연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이 상황이 되어서까지 이 사람은 자신의 아들이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것이 마뜩찮다는 얼굴이었다. 아들을 걱정하는 것인지, 자신의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주치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노영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한 걸음으로 그가 방을 빠져나가자 노영덕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노수봉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는 노수봉의 모습을 보니 새삼 분노가 치밀었다.
‘싸그리 다 가만두지 않겠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노수봉이 있던 포대로 쳐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벌였다가는 안 그래도 그의 당과 적대적인 언론들이 좋다고 벌 떼처럼 몰려들 것이다.
노영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면서 비서를 불렀다.
“주치의한테 말 들었겠지?”
“예.”
“문제없이 처리해. 될 수 있으면 비서진들로 감시하도록. 말이 흘러나가면 좋을 게 없어.”
“걱정 마십시오.”
“난 잠시 나갔다 오겠다.”
“예.”
비서는 굳이 노영덕이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벌써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디를 가는지는 빤했다.
“내일 돌아올 테니, 애 잘 감시해.”
“예. 그리고 총수님이 시간을 내달라는 연락을 하셨습니다.”
“그래?”
“예.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어 하시는 모양입니다.”
“영감님이 몸이 달았구만.”
노영덕이 혀를 끌끌 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이 왔다고 바로 받으면 값이 떨어지기 마련이지.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내버려 둬.”
“알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노영덕은 밖으로 나가 버렸다. 비서는 낮게 한숨을 쉬고는 굳게 닫힌 노수봉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어쩌다가…….’
권력도, 재력도, 그 어떤 힘도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는 없다. 낮이 다하면 밤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군대에서든 사회에서든.
노수봉은 창밖으로 어둠이 찾아오는 것을 보며 이불을 움켜잡았다.
‘아니야.’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도망쳐 나오지 않았는가.
아무리 그놈이 인간 같지 않은 괴물이라고 해도 이곳까지 자신을 따라오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가 온다면?
노수봉의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일주일.
그는 노수봉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그 사실이 너무도 두렵고 무서워서 노수봉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악마 같은 놈은 결코 노수봉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지금까지처럼 설렁설렁 그를 가지고 놀지 않을 것이 빤했다. 아마 오늘 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
김학철이 그랬듯이.
그래도 일주일 동안 잘 버티던 김학철은 일주일이 되는 날 목을 맸다.
‘나, 나도 다르지 않아.’
지금 그의 몰골은 어찌 보면 김학철보다 몇 배는 더 심했다. 적어도 김학철은 사람 같은 꼴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그 스스로도 거울이 보기 두려울 만큼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그럼…….
만약 오늘 그가 자신을 찾아온다면…….
오늘 밤을 버틸 수 있을까?
“……흐흐흐흐.”
동공이 확장되고 입에서 침이 흘러내린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노수봉은 눈을 감았다.
자신에게 당한 사람들도 다들 이런 기분이었을까?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될 만큼?
그랬겠지.
그러니까 자살을 시도했겠지.
사람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아갈 수 있는 것인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방 안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노수봉은 기이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었다.
극도로 치달아 버린 공포.
손끝이 짓물러 사라지듯 육신의 감각이 없어져 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
미묘한 감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체념에 가까운 감정.
그는 알고 있었다.
“벗어날 수 없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하지만 그 악마는 결코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결코.
시간이 흐른다, 아주 오랜 시간이.
노수봉은 뜬눈으로 어둠을 마주하고 있었다.
어둠.
결코 밀어낼 수 없는 검은 물처럼 어둠이 밀려 들어와 그를 감싼다.
억겁 같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기다렸어?”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