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90
#1489.
기여하다 (4)
“다시.”
“…….”
임여진의 얼굴이 살짝 하얗게 떴다.
“어, 언니, 충분히 잘된 것 같은데요?”
“다시.”
“…….”
임여진은 거울에 비치는 최연하의 얼굴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하라고!’
거울에는 여신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최연하는 굳이 화장을 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하지만 카메라에 노출될 때는 화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예뻐 보이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촬영의 특성 때문이다. CF나 영화를 찍는 배우들, 그리고 무대에 서는 가수들은 필연적으로 조명에 노출된다.
강렬하기 짝이 없는 조명을 정면으로 받으면 색감이 살아나고 조금 더 아름다워 보이는 효과가 있지만, 윤곽선이 희미해지는 단점도 있다.
그 윤곽을 잡아주는 게 바로 메이크업이다.
평소 최연하는 메이크업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사실 딱히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윤곽만 잡아주면 얼굴이 알아서 일하니까.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거울에 비친 얼굴에 영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여기 보여?”
“네?”
“여기.”
최연하가 자신의 오른쪽 눈 아래를 가리켰다.
“여기 자글자글한 거 안 보여?”
언니, 자글자글의 뜻이 뭔지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그건 매끈매끈이라고 불러야 되는 곳이에요. 국어를 아프리카에서 배우셨나…….
“여기가 매끈하지 않잖아! 나이가 보여, 나이가!”
“……언니, 그…… 제가 보기엔 괜찮아 보이는데요.”
설사 괜찮지 않아도 그렇다.
주름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소관이 아니다. 그건 대한민국의 훌륭하신 피부과 의사와 성형외과 의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시술의 문제를 커버로 해결하라고 하다니, 이게 무슨 횡포란 말인가.
“언니, 충분히 어려 보여요. 지금 언니를 보고 서른 다 된 여자라고 누가 생각하겠어요?”
“뭐?”
“…….”
아, 실수.
“동안이란 말이죠, 동안! 언니 같은 동안이 또 있겠어요?”
임여진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리터칭했다. 하지만 최연하의 반응은 영 좋지 않았다.
“동안은 얼어 죽을. 진짜 안 늙은 것들도 있는데.”
“예?”
최연하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니, 그놈들은 무슨 불로초라도 처먹고 다니나.’
총회를 보고 한 가지 느낀 건, 그 사람들이 도무지 제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강진호?
강진호야 이해한다. 강진호는 실제로 어리니까. 머릿속에 뭐가 들어가 있든 간에 몸은 창창한 20대 중반이니 당연히 어려 보이겠지.
하지만 이현수는 최연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데도 또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겨우 50대 초입으로…… 아니, 솔직히 그 수염과 헤어스타일이 아니면 40대 초입으로도 보일 만한 위긴스의 실제 나이를 듣고는 얼마나 놀랐던가.
‘밥에 방부제를 타서 먹나?’
최연하도 나름 동안으로는 자신이 있는 사람이고, 그런 평가를 듣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쨌든 최연하는 세월과 함께 늙어가는 사람에 불과하다. 저들처럼 세월을 역행하는 건 최연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비법을 알려 달라고 해야지.’
성형을 하면 시간을 어느 정도 잡을 수는 있겠지만, 최연하는 성형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공미를 거부한다든가, 지금 얼굴에 자신이 있다든가 하는 속 편한 소리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이뻐질 수만 있다면 그게 별건가.
문제는 최연하는 얼굴에 칼이 닿는 걸 버틸 용기가 없다는 점이다.
‘무서워서 주사도 못 맞는데…….’
그리고 몸은 늙어가는데도 얼굴만 붙들고 있는 것과 노화 자체를 늦추는 게 같을 수는 없다. 어떻게든 강진호를 닦달해 비법을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최연하가 거울을 노려보았다.
“더 안 된다, 이거지?”
“네, 언니. 그냥 기분 탓인 것 같은데…….”
눈 아래를 대패로 밀어도 이보다 더 반듯해지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임여진이 최연하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최근 들어서 갑자기 성격이 좋아진 최연하라고는 하지만,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특히나 사람의 본성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최연하도 언제 어떤 이유로 폭발해서 이곳을 뒤집어놓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임여진이 식은땀을 흘리며 최연하의 표정을 주시했다. 그때, 최연하의 입이 살짝 열렸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임여진의 몸에서 힘이 쪽 빠져나갔다.
“수고했어.”
최연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임여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수고는요! 언니, 오늘 메이크업이 정말 잘돼서 저도 기분 좋아요.”
“그래. 너, 퇴근해?”
“아뇨. 촬영 중간중간 리터칭해야 하니까 남아야죠.”
“아, 그렇구나. 그래, 알았어.”
최연하가 임여진을 향해 싱긋 웃어주고는 촬영장으로 향했다. 컨테이너에서 나오자 밝은 햇살이 최연하를 내리쬐었다.
“후우.”
그녀의 눈에 깔끔하게 인테리어된 카페가 들어온다. 카페 안에는 이미 촬영진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새로 개업하는 카페에 대한 광고인 만큼, 매장에서 촬영하기로 한 것이다.
콩닥대는 가슴을 느낀 최연하가 살짝 당황한 얼굴을 했다.
물론 촬영을 할 때마다 긴장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촬영에 익숙한 이라고 해도 촬영이 편해서는 안 된다.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지 않는 연기자는 연기를 할 자격이 없다.
언제나 신인 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촬영에 임하는 최연하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긴장감은 그런 류의 긴장감과는 조금 달랐다.
최연하가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 최연하 씨, 오늘 최고시네요!”
“정말 예쁘세요.”
최연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칭찬에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진심인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살짝 심호흡을 한 최연하가 몸을 돌려 한쪽 테이블로 향했다. 그녀의 눈에 그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들어온다.
“아…….”
최연하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검은 슬렉스에 하얀 셔츠.
말 그대로 베이직 중에 베이직이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남자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메이크업한 얼굴과 깔끔하게 정리해 올린 머리, 거기에 탄탄한 몸은 정석이 왜 정석인지 알게 해주었다.
‘170㎞짜리 돌직구라는 느낌이네.’
변화구도, 완급 조절도, 심지어 컨트롤도 딱히 필요 없다.
지옥에서 온 좌완 파이어볼러가 한가운데에 직구를 쑤셔 박는 다. 하지만 그 직구가 너무 빨라서 손도 댈 수 없다.
지금의 강진호는 그런 느낌이었다.
최연하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살짝 찌푸렸다.
‘파운데이션 좀 두껍게 발라 달라고 할 걸 그랬나?’
얼굴이 좀 빨개졌을 것 같다. 하기야 아무리 파운데이션을 바른다고 해도 빨개진 귀를 감출 수는 없겠지.
“여, 여기 시원한 물 있을까요?”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네. 감사해요.”
냉수 먹고 속 차려야지, 냉수 먹고.
“크흠! 흠!”
최연하가 크게 헛기침을 하고는 슬며시 강진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자 강진호가 최연하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왔어요?”
“오, 오지, 그럼 가요?”
“네?”
“아…… 아니에요.”
뭘 되는대로 지껄이는 거야!
최연하가 당황하여 손부채질을 했다.
‘미쳤지, 미쳤어. 이쯤 됐으면 콩깍지가 벗겨질 만도 한데…….’
옷이 날개라더니.
아니, 메이크업…… 아니, 헤어스타일인가?
여하튼!
평소처럼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에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다니던 강진호가 아니었다. 이전에도 몇 번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 나름 익숙해졌을 거라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이 모습에는 아직 면역이 생기지 않은 모양이다.
최연하가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슬쩍 밖을 바라보았다.
“몸이 안 좋아요?”
“네? 왜요?”
“얼굴이 빨간데.”
이 새끼는 언제쯤 눈치가 생기려나?
어떻게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렇게 초지일관하게 눈치가 없을 수가 있지?
뭔가 한숨이 막 새어 나오는 최연하였지만…… 그 와중에도 잘생겼다. 미친.
“오, 오늘 좀 멋있네요.”
“그래요? 저는 어색해서.”
강진호가 손을 들어 목의 단추를 하나 풀었다.
‘헐~ 뭐야, 이 인간?’
유혹하나?
아니, 이게 그럴 리가 없는데.
자신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파급력을 가지는지 모르는 강진호라 저럴 수 있는 것이다.
보라.
‘아주 눈이 하트 모양이 될 기세네.’
촬영장의 여자 스탭들이 아까부터 강진호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이해한다, 이해해.
최연하나 여기 있는 스탭들이나 잘생긴 남자는 원 없이 보는 사람들이다. 특히나 CF는 연기력이고 나발이고 일단 비주얼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 세상 아닌가.
당연히 눈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강진호는 그렇게 눈이 높아진 스텝들마저 반쯤 홀려놓고 있었다.
‘묘하단 말이야.’
얼굴로만 따지면 강진호에 필적할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최연하가 아는 연기자들 중에서도 강진호와 비슷한 급이 몇은 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강진호에게서는 눈을 뗄 수가 없다.
‘이걸 야성미라고 하나?’
표현이 좀 맞아떨어지지 않는 느낌인데…….
여하튼 강진호에게는 뭔가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 있다. 업계에서 만나는 잘생긴 미남들이 온실 속에서 온갖 영양제를 맞고 큰 화초라면, 강진호는 길바닥에서 자란 들풀이다.
그 묘한 매력이 사람을 끌어…….
‘개뿔이! 그냥 잘생겼구만.’
눈독 들이지 마, 이년들아. 내 거야.
최연하가 살짝 사나운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자,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챈 이들이 가만히 시선을 내리깐다.
최연하가 대놓고 공개 연애를 선언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이곳에 있는 스탭들은 그 공개 연애의 대상이 강진호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러니 대놓고 성질을 부려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잘할 수 있겠어요?”
“……모르겠습니다.”
강진호가 습관적으로 머리를 긁으려 했다.
“손! 손!”
“아…….”
머리를 리젠트로 고정했다는 걸 떠올린 강진호가 입맛을 다시며 손을 내렸다.
“옷도 불편하고, 머리도 불편하고.”
“다들 그렇게 살아요.”
“영 안 맞는 짓을 하는 것 같아서.”
“강진호 씨.”
“네?”
“남들은 그렇게라도 해서 이미지 좋게 만들려고 애써요. 부모가 주신 좋은 얼굴로 편하게 산 거니까, 불평불만하지 말아요. 다른 남자들이 들으면 욕해요.”
“……네.”
강진호가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부모가 주신 건 아닌데.’
강진호는 원래 그렇게 잘생긴 편은 아니었다. 다만, 무공이란 것은 경지가 높아질수록 육체의 밸런스를 맞추기 마련이고, 강진호는 워낙 어린 나이에 상승에 경지에 오르다 보니 얼굴마저 과도하게 밸런스가 맞아떨어진 것뿐이다.
뭐,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크으,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
감독이 너스레를 떨며 다가온다.
“준비되셨으면 이제 디렉팅 한 번 하고 시작해 볼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네. 저는 괜찮아요.”
“아, 저도.”
“아……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럼 제가 간단하게 연기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연신 굽실대며 최대한 낮은 자세를 취하는 감독이었다. 최연하의 촬영장에서야 흔하게 벌어지는 모습이지만, 문제는 그 굽실의 방향이 최연하가 아니라 강진호라는 점이었다.
스탭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감독님 왜 저러시니? 신인 남자 배우는 거의 쥐 잡듯이 하는 분인데, 최연하 씨 남친이라 그러나?”
“에이, 감독님이 그런 것 신경 쓰는 것 봤어?”
“못 봤지. 그러니 이상하다고 하잖아.”
“이상할 것 없어. 저 사람, 광고주래.”
“응? 누구?”
“저 사람.”
모여 있던 이들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향했다.
어?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