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95
#1494.
개업하다 (4)
“아으, 긴장돼 죽겠네.”
조성호가 달달거리는 얼굴로 자신의 가게를 바라보았다.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다.
인테리어는 더없이 깔끔하게 되었고, 주방의 구성도 완벽하다. 온갖 종류의 메뉴를 완벽하게 만들어낼 수 있도록 교육을 수료했고, 이틀간에 걸쳐 시뮬레이션도 마쳤다.
유니폼도 갖춰 입었고, 가게는 파리가 미끌어질 정도로 완벽하게 청소가 되어 있다.
당연하지.
조성호는 이래 봬도 무인 출신이다. 가진바 체력과 집요함은 평범한 이들을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그런 이가 마음먹고 청소를 하면 헌집도 새집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준비됐어요?”
“예, 점장님!”
그리고 본사와 동시에 고르고 뽑은 알바생들도 교육을 끝내고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후우우우우.”
그럼에도 조성호의 마음에서는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그 양반은 왜 괜히 그런 이야기를 해서는.’
며칠 전, 이현수에게서 들은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이 업소에서 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총회를 은퇴하는 이들의 삶을 어떻게 지원할지가 결정된다는 말.
조성호는 그 말이 단순히 방식을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총회는 은퇴자나 탈퇴자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건 안 되지.’
절대로 안 된다.
단순히 총회에서 지원을 받고 싶은 게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총회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게 두려운 것이다.
조성호는 이미 그런 삶을 잠시 살아보지 않았던가.
평생을 총회에서 살아오던 이가 총회를 떠났을 때 느끼는 그 무력감, 세상 어디와도 연결되어 있지 못한 것 같은 소외감, 그 무엇보다 이제는 낯선 세상에서 홀로 서야 한다는 두려움.
그 어느 것 하나 느끼고 싶지 않고,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그 말인즉슨, 조성호를 비롯한 가맹점주들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작합시다!”
“예!”
알바생들이 앞쪽으로 나가 가게 문을 열었다.
‘존댓말, 존댓말.’
조성호가 낮게 중얼거렸다.
알바생들은 그보다 한참 어린 나이지만, 카페에서는 알바생들을 존중하는 의미로 존댓말을 권장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이에 관계없이 사람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아주 좋은 취지로 보이겠지만…….
“존댓말 써, 이 새끼들아! 니들은 반말하는 순간 사람 아래로 보고 이상한 아재 드립이나 치고, 장난친다고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들이잖아! 알바생을 윗사람처럼 생각하고 모시란 말이야! 가게 망하는 꼴 보기 싫으면!”
사실은 총회에 깊이 박혀 있는 상명하복의 꼰대 문화를 강제로 뽑아내기 위한 조치에 가까웠다.
의외로 이 조치는 별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자기 자신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점주들 모두가 자신이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소, 미소!’
“매장에 CCTV 설치했다. 그거 본사에서 체킹할 거다. 인상 쓰는 새끼, 짜증 내는 새끼는 5분 대기조가 출동해서 뒷골목으로 끌려갈 줄 알아라!”
인권 침해가 아니냐는 항의가 있긴 했지만, 이현수는 ‘너희한테 인권이 어딨어? 뭔 개소리야?’라는 말로 모두의 불만은 찍어 눌렀다.
하기야.
인권도 먹고살 만해야 챙기는 거지.
‘인권 없어도 되니까 장사나 좀 잘됐으면 좋겠다.’
회주님이 그들을 위해서 많은 것을 해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카페에 번 돈 전부를 투자한 건 점주들도 마찬가지다.
총회에 자산 관리라는 개념이 생기고, 번 돈을 저축할 수 있게 된 건 강진호가 총회의 전권을 잡은 이후부터다. 아무리 받는 돈이 많았다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돈을 모아봐야 얼마나 모았겠는가.
이 가게가 망하면 조성호는 빈털터리가 된다.
절대 그것만은 사양이었다.
그런데…….
“손님이 왜 안 오지? 오픈했는데……. 오픈 마크 제대로 걸었어요?”
“예. 바꿔놨어요.”
“그런데 왜 손님이 안 오시지?”
까득.
조성호가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점장님, 오픈한 지 1분도 안 됐어요.”
“1분이면 한참 지났잖아요. 그런데 왜 손님이 안 오시죠? 저 앞에 저리 많이 지나가시는데? 나가서 판촉이라도 해야 하나?”
“…….”
알바생들이 답도 없다는 얼굴로 조성호를 바라봤다.
물론 오픈하는 사람의 심정이야 왜 짐작이 안 가겠냐마는, 그래도 정도가 있지 않은가.
“문을 열어놔 볼까? 오픈 마크만 보고는 열었는지 모를 수도 있잖아요.”
“……다 알아요.”
“아니면 커피 좀 내려볼까? 커피향이 풍기면 사람이 들어올 것도 같은데.”
“점장님, 일단 침착하고 좀 앉으세요.”
“끄으으응.”
조성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예전에 총회에서 진급을 위해서 심사를 받을 때도 이리 긴장되지는 않았다. 그때는 다음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음이 없다.
‘CF는 며칠 더 있어야 방영된다고 했는데…….’
그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짤랑!
차임벨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조성호가 힘차게 인사를 했다.
손님이 부담스러워할 수 있으니 인사는 너무 크지 않게 정확하고 선명한 발음으로 하라고 교육을 받았지만, 손님이 오자 너무 반가워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두 명의 남자였다.
둘 중 덩치가 큰 남자가 인상을 쓰며 말한다.
“아니, 인마. 아침 댓바람부터 사람 끌고 나오더니, 하자는 게 겨우 커피 먹는 거냐? 기껏 기름 써서 픽업했더니.”
“커피 좋잖아.”
“너, 커피도 별로 안 좋아하잖아.”
“왜? 나 커피 좋아해.”
“별…….”
덩치가 큰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서 카운터로 온다.
“여기 아아 하나 주시구요, 너는 뭐 먹을 건데?”
“음…….”
조금 덩치가 작은 남자가 살짝 웃으며 말한다.
“사장님, 블루베리 요거트 스무디 주세요. 너도 스무디 먹어.”
“스무디는 뭔 스무디야? 나 아아 먹는다니까.”
“그럼 아아 먹고, 스무디도 먹어.”
“……이게 정신이 나갔나? 너, 아침 댓바람부터 왜 그래?”
“먹어, 먹어. 내가 살게. 그리고 사장님, 여기 혹시 단체 주문되나요?”
조성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단체요? 예. 물론 가능하죠.”
“그럼 한 20잔도 포장될까요?”
“네.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럼 저희가 이따 갈 때쯤 말씀드릴 테니까, 블루베리 요거트 스무디로 20잔 포장해 주세요.”
“……야, 너희 집 언제부터 블루베리 농사 지었냐?”
“농사는 무슨. 사장님, 되죠?”
“예! 그러겠습니다, 손님!”
조성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뭐지? 천사인가?
남자의 등에서 새하얀 날개가 보이는 것 같다. 세상에 오픈 첫 손님이 이런 천사님이라…… 어?
조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제가 낯이 익은 것 같아서 그러는데, 혹시 박유민 선수 아니세요?”
“아…….”
사내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맞아요. 얘가 박유민이에요.”
“아, 역시 그러시네요! 그럼 제가 한 잔은 서비스로 드릴 테니까 사인 한 장 받을 수 있을까요?”
“네. 사인은 당연히 해드릴게요. 그런데 서비스는 안 주셔도 돼요. 돈 내고 먹을게요.”
“아닙니다. 제가 드리고 싶어서 드리는 건데요.”
“진짜 안 돼요. 나중에 들키면 혼나거든요. 그냥 돈 내고 먹을게요. 그게 제가 마음이 편해요.”
“아, 그러시면…….”
조성호가 박유민이 내민 카드를 받아 결제를 했다.
“진동벨 여기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진동벨을 챙긴 박유민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테리어 예쁘다.”
“이게 안 하던 짓을 하네?”
박유민의 건너편에 앉은 주영기가 피식 웃었다.
“예쁘긴 뭐가 예쁘냐? 자고로 인테리어라는 건 좀 올드한 맛으로 살짝 컨트리 삘이 나게.”
“영기야.”
“응?”
“확장하는 지점은 절대로 네가 인테리어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이건 친구로서 하는 충고야. 진지하게 들어.”
“……나쁜 새끼.”
주영기가 억울하다는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냥 허옇고 꺼멓구만, 뭐가 이쁘다는 건지.
“어?”
주영기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박유민을 돌아본다.
“야, 여기가 혹시 진호가 한다는 그 카페냐?”
쨍그랑!
주영기와 박유민이 동시에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얼음장처럼 굳어버린 조성호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아…… 아! 죄송합니다. 제가…… 아…… 죄송…….”
조성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한다.
‘방금 뭐라 그런 거지? 진호?’
에이, 잘못 들었겠지.
조성호에게서 시선을 뗀 두 사람이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이 새끼, 왜 안 하던 짓을 하나 했더니…… 여기가 진호 카페 지점 중에 하나구나.”
“여기가 제일 가깝더라고.”
“야, 매상 올려주는 것도 좋은데, 그걸 꼭 아침 댓바람부터 해야 하냐? 아침에 올려주나 저녁에 올려주나 그게 뭐가 다르다고.”
“기분이 다르지. 내가 이 가게 첫손님이다 생각하면 기분 좋잖아.”
주영기가 피식 웃었다.
여하튼 이놈은 사람이 너무 좋아 문제다. 혹시라도 장사가 안 될까 봐 이날만 기다렸을 게 빤하다.
“어차피 이리된 거, 강진호 그 새끼 불러봐.”
쨍그랑!
두 사람의 고개가 다시 주방 쪽으로 돌아갔다.
“점장님, 혹시 컵에 뭔 문제라도 있어요?”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컵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군대도 아니고, 시정은 왜 붙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주영기와 박유민이 조금 이상하다는 눈으로 조성호를 바라본다.
하지만 조성호는 지금 미칠 노릇이었다.
그 새끼?
지금 강진호, 그 새끼라고 한 건가?
너무 충격적인 말이라 머릿 속에서도 재생을 거부하고 있었다.
세상에, 강진호와 그 단어가 함께 조합될 수 있는 단어였다니.
‘천사가 온 줄 알았더니, 악마가 왔어.’
그러고 보니 예전에 회주님의 친구가 프로게이머라는 말을 들어본 것도 같다. 그런데 설마 그 프로게이머가 박유민이었을 줄이야.
‘꼬투리 잡히면 죽는다!’
저분들은 높으신 분들이다.
사회적 지위고 나발이고, 회주님이랑 친하면 높으신 분들이지.
그 이현수 실장도 결국은 회주님의 권위 하나로 자기보다 몇 십 배는 센 애들 다 후드려 까고 다니는데, 부하 직원도 아니고, 친구란다.
조성호는 중세 시대 노예가 황제의 친인척을 배알하는 심정으로 영혼을 다해 스무디를 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짤랑.
“아이고오, 여기 새로 오픈했다는데에에에에.”
문이 열리며 일련의 남자들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건들건들거리는 자세가 조폭이 따로 없다.
조성호의 눈이 흔들린다.
물론 조폭이 들어와서는 아니다. 아무리 조성호가 내공을 못 쓰는 입장이라지만, 태생이 무인. 조폭 같은 것들은 트럭으로 몰려와도 발가락 하나로 상대할 수 있다.
조성호가 놀란 이유는 지금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조폭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이, 조 사장님. 장사는 좀 되시나?”
건들건들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그가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총회의 회원, 예전 그의 동료들이다.
그는 저 건들거림을 이해했다. 충분히 이해한다. 저것들은 원래 저러니까.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면 우선 반가움부터 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그 건들거림을 영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이가 있었다.
“뭐야? 왜 카페에 아침부터 깡패 새끼들이 기어 들어와? 뒈질라고.”
“뭐?”
자리에 앉아 있던 주영기가 일어나 인상을 쓰자, 안으로 들어오던 총회의 회원들이 일제히 주영기를 노려봤다.
“아니, 저 새끼가?”
“뭐야, 저건? 정작 지가 깡패처럼 생겨 가지고?”
“너, 처맞고 싶냐?”
히이이이이익!
“하하하하하하!”
조성호가 커다랗게 웃으면서 카운터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오는 총회 회원들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아, 아야! 너 미쳤냐? 왜 이래?”
“하하하하하! 손님들, 나가서 말씀하시죠.”
“아니, 미쳤냐고! 왜 이러냐고!”
“제발 아무 말 하지 말고 따라 나와라. 제발.”
이 미친놈들아, 내가 너희 살리려고 이러는 거야!
아니, 왜 오픈부터 이 지랄이냐! 오픈부터!
조성호의 소리 없는 절규가 가게를 가득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