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96
#1495.
개업하다 (5)
“저…….”
“아, 예…….”
“조금 전에는 저희가 실수를…….”
“아닙니다. 저도 실수를…….”
주영기와 성주찬들이 서로를 어색한 얼굴로 마주 보았다.
‘아니, 여기서 회주님 친구분들이 왜 나오냐고!’
‘아니, 진호 회사 직원들은 뭐가 이리 하나같이 험상궂게 생겼어?’
서로가 서로를 보며 식은땀을 흘리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총회의 회원들은 감히 강진호의 친구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사실이 반쯤 패닉에 빠져 버렸다. 아무리 강진호가 사적으로 권력을 쓰는 사람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건 전대미문 아닌가.’
이런 일에도 과연 그리 온화하게 반응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막말로 회주의 친구에게 쌍욕을 퍼부은 전례가 있어야지.
강진호가 가족과 지인을 남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은 총회 내에서도 유명한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이 사태가 강진호의 귀에 들어갔을 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 새끼야, 말렸어야지!’
‘말렸잖아, 인마!’
‘말리긴 개뿔을 말려! 진즉에 말렸어야지! 일 다 터지고 말리면 뭐 하냐고!’
성주찬은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쏟아지는 칼날 같은 시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고통받는 만큼 주영기도 나름 고통을 받는 중이었다.
‘아, 어색해 미치겠네.’
새로 오픈하는 가게에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오는 깡패 새끼들이 강진호의 회사 사람들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니, 왜 저렇게 생겼냐고!’
그리고 단순히 생긴 것의 문제도 아니다.
나름 그쪽 생활(?)을 해본 주영기는 알 수 있다. 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반쯤 벗어나 있는 이들은 그들만이 가진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법이다.
저들에게서 바로 그런 냄새가 났다.
그래서 그리 발끈한 것이다. 오픈 날 가게를 찾아 들어와 깽판을 놓고 이리저리 트집을 잡아 돈을 뜯어내는 건, 그쪽 양아치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었으니까.
그런데…….
“……커피 드시러 오셨다구요?”
“예…… 그렇습니다.”
커피 먹으러 왔단다.
환장할 노릇이다.
더 환장할 노릇인 것은, 저 맨입으로 소도 잡아먹게 생긴 것들이 그의 앞에서 쭈뼛대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강진호, 이 새끼는…….”
“히이이이이익!”
“오, 하느님. 맙소사.”
“저는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
금방이라도 고해성사를 시작할 것 같은 분위기에 주영기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뭔 말을 못하겠네.’
주영기가 어물쩍거리고 있자, 박유민이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영기야.”
“응?”
“넌 일단 조용히 하고 있는 게 좋겠다.”
“……어.”
평소라면 발끈했을 주영기지만, 지금은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일이 더 꼬이는 느낌이다 보니 조용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오해해서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모두가 송구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 과도하게 예의 바른 모습에 박유민이 살짝 당황했다.
“말씀 낮추세요. 나이도 저보다 많아 보이시는데.”
“저, 저희 쪽에서는 나이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여기 계신 분들이 회주님의 친구분들이라는 거죠!”
“…….”
평소라면 그래도 말을 놓아달라고 간곡히 말을 할 박유민이겠지만…….
‘이 이야기로 30분은 더 끌겠네.’
때로는 자신을 굽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럼 그건 넘어가구요.”
박유민이 머리를 긁었다.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연장자에게 존대를 받는 상황이 영 껄끄럽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매상 올려주러 오신 거예요?”
“예, 그렇습니다.”
“진호 회사, 여기서 멀지 않아요? 평일 아침부터 이렇게 오실 수 있어요?”
“아, 오해는 말아주십시오.”
전석진이 손사레를 치며 대답을 했다.
“저희는 땡땡이를 치거나, 업무 시간에 빠져나온 게 아닙니다. 사실은 위에서 지령이 떨어져서.”
“지령이요?”
“지령이라고 하니까 무슨 간첩 같네요. 정확하게 말하면, 지시가 온 건데…… 몇 명씩 짝지어서 매상 좀 올리라고.”
“네?”
박유민이 영 이상하다는 투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몇 명 들어오는 걸로 매상이 오르나요?”
“아, 그게…….”
전석진이 고개를 슬쩍 돌렸다. 때맞춰 가게 문이 열리더니, 일련의 어깨(?)들이 또 안으로 들어온다.
“어? 뭐 해?”
“저렇습니다.”
“아!”
박유민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에 우르르 몰려가지 않게 조절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굳이 업무 시간에?”
“이 실장님께서…… 아, 이 실장님 아시죠?”
“네, 알죠.”
“이 실장님께서 오픈할 때 사람이 꽉꽉 차 있어야 매상에 도움이 된다고…… 가서 자리 잡고 버티고 있으라고 하셨어요.”
“매상에 도움이요?”
박유민의 볼이 살짝 경련을 일으켰다. 주영기가 머리를 움켜잡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박유민이 ‘설마 아니겠지’라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이게 다른 매장에도 똑같이 하는 건가요?”
“네. 전국 100개 점에서 동시에 할 겁니다.”
박유민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주찬을 바라보았다.
성주찬의 얼굴이 썩어 있다.
“……괜찮을까요?”
“괜찮겠습니까?”
“…….”
박유민이 결국에는 한숨을 푹 내쉰다.
“영기야.”
“어.”
“가서 진호한테 전화 좀 해.”
“……네가 안 하고?”
“아무래도 이건 나보다는 네가 하는 게 낫겠다.”
“오냐. 알았다.”
주영기가 콧김을 뿜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 밖으로 나가는 주영기를 보며 박유민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 * *
“끄으으으응.”
“엄살 부리지 마라.”
“아, 아니, 엄살이 아니고…….”
“엄살 부리지 말라고 했다.”
“끄으으응.”
총회 회주실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강진호.
강진호는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게 뿔테 안경이 씌워져 있다.
이런 건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노안은 인간이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며 최연하가 꿋꿋이 그에게 내민 청광 차단 안경이다.
뭔가 ‘노안’이라는 말에서 진득한 악의가 느껴지는 것 같지만, 어쨌든 생각해서 사 준 물건이니 업무를 볼 때는 최대한 사용해 보기로 했다.
그런 강진호의 눈에 이현수가 올린 보고서가 들어온다.
화면에 띄워진 보고서를 한참 바라보던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탓이지.’
최근에 그가 이현수를 워낙 신뢰하다 보니 보고서가 올라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제를 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이런 사단이 벌어지는 것이다.
강진호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의 책상 옆에서 이현수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낑낑대고 있다.
“기상.”
“끄읍!”
이현수가 재빨리 몸을 일으켜 부동자세를 취한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니, 저 인간은 군대는 왜 갔다 와서.’
빼려면 뺄 수 있는 양반이 곧이곧대로 군대를 가서 이상한 것만 배워오네.
원래대로라면 이현수가 원산폭격 좀 했다고 대미지를 입을 리가 없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도 일단은 무인. 육체의 강건함에 있어서는 일반인과는 비교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상대가 강진호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강진호라면 업무를 보면서도 기운을 이용해 이현수를 짓누르는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탈모 오는 것 아냐?’
정수리에 느껴지는 극렬한 통증에 이현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강진호가 살짝 빡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시커먼 것들을 그대로 업장에 밀어 넣었다고?”
“…….”
이건 이현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다.
오픈 날 자리를 채워 넣는 계획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업장을 채운 놈들이 하나같이 총회 놈들이라는 점이다.
총회가 어떤 곳인가.
어릴 적부터 속세와 반쯤 인연을 끊은 사내새끼들이 집단으로 우글거리는 곳이다. 이곳보다 남성 비율이 높은 곳은 대한민국 사회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극남초라 불리는 체육대학이나 공사 현장도 여기보다는 여성 비율이 높을 것이다. 비교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군대밖에는 없다.
다시 말하자면, 안 그래도 우락부락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 최악의 패션 센스를 자랑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총회의 남자들에게 있어서 패션이란 강해 보이기 위한 치장에 불과했다.
당연히 이제는 찾아볼 수도 없는 쫄티라든가, 바닥을 다 쓸고 다닐 것처럼 통 넓은 바지, 금 목걸이, 선글라스, 이발사도 기겁할 깍두기 머리 등이 총동원된, 그야말로 파멸적인 패션이 유행하고 있다.
그런 인간들이 단체로 개업하는 업장에 들어갔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겠는가.
지나가던 동네 깡패들이 기겁을 하여 도망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강진호도 패션에 대해서는 남을 지적할 자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강진호의 패션은 타인을 위협하거나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는 않는다.
‘저거, 얼굴 아깝게 옷 더럽게 못 입네’ 정도가 강진호가 받는 평가다. 하지만 총회의 회원들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야, 약간의 착오가 있었습니다.”
“약간?”
강진호의 이마에 핏대가 서자, 이현수가 재빨리 말을 바꿨다.
“물론 약간이라고 해도 착오는 착오!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계속해 봐.”
이현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실수다.’
이건 정말 말 그대로 실수였다.
이런 부분은 당연히 고려를 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현수가 이 부분을 놓친 이유가 있다.
‘우리 애들 귀여운데…….’
나름 동글동글한 것이 가만 보면 귀엽다. 그 큰 덩치로 쩔쩔매는 꼴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지 않는가.
하지만 이현수는 이런 시선이 이현수의 입장이니 나오는 것이라는 걸 빠르게 인정했다. 이현수가 무인이 아닌…… 아니, 무인이더라도 총회의 실장이 아닌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본다면?
‘오줌 지리겠지.’
차라리 입마개 없는 맹견이 덜 무서울 지경이다.
“크, 큰 착오가 있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래서 지금 재빠르게 수정했습니다. 문제없이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문제없이?”
“…….”
이현수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직은 오전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만 빨리 해결하면 괜찮을 겁니다. 점심시간이 중점이라…….”
강진호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본다. 하지만 이현수는 필사적으로 무표정을 유지했다.
“이현수.”
“예, 회주님!”
“본인은 실장에게 실망했다.”
“…….”
강진호가 눈을 부라렸다.
“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고!”
“…….”
아니, 저 양반이 왜 또 갑자기 군대에 빙의하지? 다시 입대하고 싶으신가?
눈을 찌푸린 강진호가 살짝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잘하자.”
“시정하겠습니다.”
“빨리 처리해.”
“예!”
이현수가 부리나케 회주실 밖으로 튀어 나가자,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전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어, 영기야.”
[말했냐?]“어. 일단은 해결하라고 해놨다. 고맙다.”
[고맙고 나발이고,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인마! 나, 니 사원들 들어올 때 카페에서 지릴 뻔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강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