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97
#1496.
이어지다 (1)
“여하튼 고맙다.”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영기들이 빨리 연락을 해준 덕분에 문제가 더 커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이 안 간다.
‘내가 사업을 말아먹을 뻔했네.’
강진호 역시 첫인상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이번에 개업한 카페의 첫인상이 그런 덩치들만 우글우글하는 곳으로 잡힌다면, 정말 끔찍한 꼴이 났을 것이다.
만회할 기회야 왜 없겠냐마는, 애초에 만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거긴 왜 갔어?”
[내가 갔냐? 아오! 박유민, 그 새끼가 아침부터 할 일 있다고 사람을 불러내서……. 야, 내가 노냐? 놀아? 어제도 밤 10시까지 장사하고 좀 쉬어보려고 했더니. 내가 내 가게 팽개쳐 놓고 남의 가게 매상 올려주고 있어야 하냐?]왜 나한테 화를 내니.
박유민이 그런 건데.
[여하튼 그 새끼 오지랖은 알아줘야 돼. 내가 아는 인간 중에 오지랖으로는 두 번째다.]“첫 번째는 누군데?”
[몰라서 묻냐, 새끼야?]강진호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 내가 물으면 안 되지.
[여하튼 간에 처리 잘해. 우리는 이제 갈 거니까. 나도 장사 준비해야 돼.]“고맙다.”
[별소리 다 하네, 새끼.]전화가 끊기자 강진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상한 기분이네.’
간만에 욕을 바가지로 처먹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이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조심스레 대하는 것이 너무 당연해져 가는 와중에 주영기와 대화를 하니 이상하게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마 이게 친구라는 거겠지.
친구는 가족과도 다르고, 직장 동료와도 다르다. 피로 이어진 사이도 아니고, 서로의 배경을 보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이 맞는다는 것만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이다.
강진호는 새삼 자신이 최근 친구들에게 꽤 무심했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미국으로 가 박유민의 경기를 보고 오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박유민을 실제로 마주한 순간은 채 30분이 되지 않는다. 바쁘다는 핑계로 면피될 일이 아니다.
‘얼굴 한 번 봐야겠네.’
박유민이 새 시즌에 들어가기 전에 자리를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강진호였다.
“그건 그렇고…….”
강진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실장이 잘하려나 모르겠네.”
역시 이건 이현수가 아니라 이현주와 상의해야 했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RRRRR.
그때, 강진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뭐 해요?]“회사에 있어요.”
[어느 회사.]“총회요.”
[정신이 있어요? 없어요?]“네?”
휴대폰 너머로 최연하의 살짝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이 어떤 날인데 거기서 그러고 있어요? 빨리 서울로 올라와요.]“…….”
오늘이 어떤 날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거부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회사로 가면 되나요?”
[아뇨. 강남으로 오세요.]“네?”
강진호의 얼굴이 멍해졌다.
* * *
“네, 안녕히 가세요!”
이연실이 살짝 고개를 들고는 매장에서 나가는 손님을 바라보았다.
“오늘 무슨 날인가?”
아까 전부터 자꾸 이상한 손님들이 방문하고 있다.
그리고…….
“저…….”
지금도 매장 안으로 험상궂게 생긴 덩치 하나가 슬금슬금 들어온다.
하지만 이연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오늘 처음이라면 당황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만 이런 손님이 다섯 명째다.
“예. 혹시 어색하지 않게 카페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옷을 원하시나요?”
“헐, 어떻게?”
“어떻게라…….”
그것참, 저도 궁금하네요. 제가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을까요?
“비슷한 분들이 벌써 몇 번 다녀가서요.”
“어, 그럼 안 되는데. 나도 늦으면 안 되는데…….”
이연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제가 혹시 몰라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네?”
“가시는 곳이 다들 비슷한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비슷한 옷을 입어도 괜찮나요?”
덩치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잠시만요.”
덩치가 휴대폰을 빼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그러고는 한참 통화를 하더니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비슷하면 안 된답니다.”
“……그렇겠죠.”
이연실의 고뇌가 깊어졌다.
‘이건 뭐, 미션 임파서블도 아니고.’
아무리 여기가 옷가게라 널린 게 옷이라지만…….
‘비슷비슷한 덩치를 가지고 비슷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들의 코디를 모두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서로 다르게 해야 한단 말이지.’
문제는 이 양반들이 덩치가 워낙 우락부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힐 수 있는 옷도 굉장히 한정된다는 점이다.
이건 새로운 도전이었다.
“후우, 손님.”
“예?”
“일단은 몇 벌 입어보시죠. 저도 손님이 입으신 것을 봐야 감이 설 것 같거든요.”
“많이 갈아입어야 하나요?”
“……일단은 탈의실로!”
“네.”
탈의실로 향하는 덩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상부가 원망스럽다.
* * *
“너 미쳤어?”
“…….”
“나야 뭐 돈 준다니까 상관없지만…… 기껏 돈 줘서 동생 불러내더니, 오는 곳이 카페야?”
“……한 가지 부탁해도 되냐?”
“뭐?”
“입 좀 열지 마라. 짜증 나거든.”
“나도 너랑 마주 앉아 있기 싫거든?”
공혁준이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죽을 것 같다.’
지금 그가 앉아 있는 곳은 이번에 새로 개업한 MK 카페의 지점이었다. 원래는 총회의 회원들과 자리를 채울 생각이었지만, 오전에 긴급 명령이 떨어졌다.
― 시커먼 것들끼리 같이 앉지 말고, 멀쩡하게 차려입고 여자를 데려가라! 가족, 친지, 친구, 아르바이트! 뭐든 좋다. 일단 여자를 데려가!
심지어 엄마도 괜찮단다.
그 외에 ‘멀쩡하게 차려입고’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느라 한바탕 소란이 있었지만, 그건 어찌어찌 해결이 됐다. 문제는 바로 ‘여자’라는 부분이었다.
공혁준도 이해한다.
시커먼…… 아니, 남자가 시커멓다는 게 아니라 총회의 남자들은 정말 시커맸으니까.
여하튼 딱 보기에도 위압적인 총회의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어봐야 좋은 그림은 안 나오겠지.
커플인 척 위장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총회의 남자들은 대한민국의 혼인률을 극도로 떨어뜨리는 주범이자, 여자 인간과의 관계가 극도로 경색되어 있는 인간관계 파멸자들이라는 점이었다.
여자 친구?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그건 환상 속의 동물이다. 공혁준은 결혼이라든가 여자 친구라는 개념이 사회가 만들어낸 환상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쨌거나 일단 어떻게든 여자 사람을 건너편에 앉혀야 하는데. 딱히 아는 여자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덕분에 공혁준은 자신의 집에 서식하는 XX 염색체의 생물이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당히 가서 말했다.
“같이 카페 좀 가자.”
그러고 나서 돌아온 말은 너무도 빤한 것이었다.
“처 돌았어? 꺼져!”
아, 그렇지. 그럴 수밖에.
덕분에 공혁준은 저 망할 생명체에게 카페를 같이 가주는 대가로 거금 20만 원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돈을 바닥에 버리는 게 낫지.’
저런 것(?)한테 돈까지 바치면서 같이 카페에 와야 하다니, 이게 무슨 벌칙 게임도 아니고.
“그런데 여기 괜찮다.”
“……그러냐?”
“칙칙한 너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데?”
“부탁이 있다니까.”
“뭐? 입 좀 다물라고?”
“어. 제발.”
“나 데리고 온 게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 아냐? 입 다물고 폰 해도 돼?”
“끄으으으으응.”
공혁준이 머리를 벅벅 긁는다. 그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아수라장이네.’
겉에서 보기에는 멀쩡할 것이다. 카페 전면 유리창을 통해 안쪽을 보면 두런두런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일 테니까.
하지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막상 안쪽에서 바라본 광경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데면데면하던 여동생이나 누나와 앉아서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는 총회의 회원들…….
아니, 차라리 재들은 낫지.
‘진짜 엄마랑 온 애들이 있네.’
저건 지옥불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다.
애초에 총회의 회원이라는 놈들은 무력을 위해서 인생을 포기한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 제대로 된 인간일 수 없다.
생각해 보라.
이 카페 사업 역시 강진호 회주님이 멀쩡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 놈들을 어떻게든 사람 구실하면서 먹고살게 만들어보겠다고 시작한 것 아니던가.
무공을 못 쓰면 손에 몇 억을 들고 있어도 순식간에 까먹고 인생 나락으로 빠지는 한심한 것들이 총회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부모와 관계가 좋을 수 있겠는가.
공혁준의 눈에 잔소리가 기관총처럼 틀어박히는 것이 보인다. 평소라면 적당히 둘러대고 자리를 빠져나갔을 것들이 오늘은 어찌할 도리 없이 있는 그대로 잔소리를 얻어맞고 있다.
‘힘내라.’
그도 처지가 딱히 좋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엄마랑 같이 온 쟤들보다는 낫겠지.
“오빠 친구들 많이 왔네.”
“…….”
“근데 안 어울리게 무슨 강남이야?”
“내가 오고 싶어 온 거 아냐.”
집이 성남인데 왜 강남으로 배정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덕분에 오랜만에 강남 땅 구경할 일이 생겼다.
“여기 잘될 것 같냐?”
“모르지. 커피는 맛있는데, 어디 카페가 커피 맛으로 되나. 인테리어도 좋아야 하고, 입소문도 좀 나야 하고……. 그런데 내 기준으로는 괜찮은데? 집이나 회사 근처에 있으면 자주 올 것 같아.”
“그래?”
공혁준이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MK에서 한다기에 혹여나 말아먹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합격점은 받는 모양이다. 그의 눈이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지만, 여동생이 저리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손님들이 꽤 들어오고 있다. 아무래도 안쪽을 채워 넣는 전략이 웬만큼은 성공한 모양이다.
‘가공할 동원력 같으니.’
오늘 공혁준은 카페 다섯 곳을 돌아야 한다.
이현수는 그들에게 시간별로 코스를 일일이 짜주는 기염을 토했다. 적어도 오늘 하루 동안은 총회의 회원들이 이 카페 자리의 절반은 채울 것이다.
“자리 꽉 찼다 싶으면 어설프게 버티고 있지 말고 빨리 기어 나가. 그리고 눈치 보다가 손님 빠지면 다시 들어가란 말이야!”
‘악마가 따로 없지.’
하지만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이게 총회가 돈 벌자고 하는 짓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다.
총회의 힘겨운 수련을 버티지 못하고 총회를 그만둬도 어떻게든 그들의 살길을 마련해 주려 애쓴다는 뜻이니까. 눈으로 이런 걸 보게 되면 충성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현수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때였다.
짤랑.
카페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온다.
“…….”
공혁준의 눈이 개구리처럼 툭 튀어 나왔다.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카페에 연인이 들어오는 게 뭐 특별할 게 있겠냐마는, 문제는 지금 들어온 사람들이 평범한 연인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회, 회…… 회주…… 회주님?”
아니, 형이 여기서 왜 나와?
카페 안으로 들어온 강진호와 최연하를 본 공혁준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