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98
#1497.
이어지다 (2)
놀란 것은 공혁준뿐만이 아니었다.
안쪽에 앉아 있던 이들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곳이 카페가 아니라 총회였다면 엉거주춤이 아니라 즉시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해겠지만, 남의 눈이 있는 곳이다 보니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애매한 것이다.
강진호가 살짝 눈짓으로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일어났던 이들이 재빨리 자리에 다시 앉고, 공혁준도 입을 꾹 다물었다.
“흠, 인테리어는 예쁘네.”
안으로 들어온 최연하가 주변을 슬쩍 둘러본다.
CF를 찍은 지점에서 이미 전체적인 카페의 컨셉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각 지점마다 그 컨셉을 잘 살렸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이 정도면 뭐.”
하지만 다행히도 각 지점마다 컨셉을 잘 살려 인테리어를 한 모양이다.
‘이현주 실장이 했으니, 어련히 잘 알아서 했겠어.’
최연하는 나름 이현주를 신뢰한다.
이현주를 사람으로서 신뢰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깐깐함을 신뢰했다. 적어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라면 밤을 새서라도 완벽하게 처리하려 애쓸 사람이니까.
매장을 한 번 둘러본 최연하가 슬쩍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고는 강진호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강진호가 살짝 곤란한 얼굴을 했지만, 이내 최연하의 재촉에 한숨을 쉬고는 한쪽을 향해 걸어갔다.
‘뭐야? 왜 여기야?’
공혁준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강진호를 보며 기겁을 했다.
‘아, 제발.’
강진호가 싫은 건 아니다.
총회 사람들 중 강진호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인간적으로 강진호와 그리 맞지 않는 사람도 총회의 회주로서의 강진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고 따른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과 이런 곳에서 강진호와 직접 대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아무도 암행 감찰을 나온 임금과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듯이.
“부탁을 하나 해야겠는데.”
“예? 물론입니다, 회주…… 아니…… 그, 어…… 어.”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자리 좀 양보해 줄 수 있을까?”
“당연하죠!”
공혁준은 아무 불만이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강진호가 휴대폰을 놓고 왔다며 총회에 다녀오라고 해도 왕복 200㎞를 전력으로 뛰어 다녀올 수 있는 공혁준이다.
그런데 그가 겨우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요구를 거절할 이유가 있겠는가.
“여기, 여기 앉으십시오! 당장 나와, 이년아!”
“……어?”
그의 여동생도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였다면 ‘우리가 왜 비켜야 하냐?’부터 시작해서 온갖 불만을 늘어놓았을 그의 동생이지만, 지금은 홀린 듯이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강진호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강진호가 그 시선에 살짝 어색해하는 표정을 보이자, 공혁준이 발끈해서 낮게 소리쳤다.
“그만 봐! 얼굴 닳아!”
“…….”
“일단 비켜! 빨리.”
“아, 알았어.”
공혁준과 공혁준의 동생이 음료 잔을 들고 옆자리로 옮겨 앉자, 강진호와 최연하가 조금 민망한 얼굴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조금 불편한데…….”
“어쩔 수 없어요. 놀러 온 게 아니니까요.”
최연하도 남의 자리를 당당하게 뺐을 만큼 양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짓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오늘 그들이 이곳에 온 게 단순한 시찰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MK 카페의 강남 지점.
유동량이 가장 많고, 보여지는 것이 가장 많은 곳이다. 그런 만큼 작정하고 그들에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온 것이다.
SNS에 사진이라도 찍혀 올라가면 광고 효과가 있을 테니까.
최연하가 말끔하게 차려입은 강진호를 보며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만큼만 해도 어디야.’
광고를 찍을 때처럼 미칠 듯이 힘을 준 복장은 아니지만, 적당히 차려입은 강진호도 빛나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이렇게 좀 입고 다니면 좀 좋아.’
하기야 그러면 벌레가 꼬일 테니까.
지금도 딱히 강진호가 후줄근해서 여자가 꼬이지 않는 건 아니다. 강진호에게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게 말해서 애초에 여자와 접점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진호의 일과는 집, MK, 그리고 총회에서 마무리된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취미를 즐긴다거나 바깥에 나가 뭔가를 하는 일 자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마주치는 여자도 없고, 그렇기에 접근하는 여자도 없다.
다시 말하자면, 강진호에게 이런저런 활동이 많아질수록 꼬이는 여자는 늘어날 거란 뜻이다.
지금도 보라.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한 일행 중 여자 쪽이 강진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 시선에서 은근한 즐거움과 짜증을 동시에 느낀 최연하가 살짝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위해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도 참 주책이지.’
이제는 웬만큼 달관하고도 남을 텐데, 저런 시선에 짜증이라니.
하기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도 이게 첫 연애라고.’
뭘 겪어봤어야 달관을 하지!
남들 앞에서 달달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지, 최연하도 최연하 나름대로 이 연애에 고충이 많았다.
“주문해야죠.”
“제가 다녀올게요.”
최연하가 웬일로 자기가 주문을 하겠다고 했다.
물론 오늘따라 최연하의 마음이 온화해진 것은 아니었다. 쉬러 온 게 아니라 일을 하러 왔기 때문일 뿐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최연하가 카운터로 갔다.
“주, 주문받겠습니다.”
“여기 뭐가 맛있나요?”
최연하는 등 뒤에 꽂히는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는 총회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꽤 들어와 있다. 그런 이들이 다들 최연하를 보며 수군거리고 있는 것이다.
“진짜 최연하야.”
“웬일이니. 나 실물로 처음 본다.”
“얼굴 진짜 조막만 한데? 인형이 걸어 다니는 것 같아.”
최연하가 자꾸만 푸들거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짓눌렀다.
뭐? 듣다 보니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아?
‘개소리하고 있네.’
그런 말 하는 것들은 입을 잡아 째버려야 한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예쁘다는 칭찬과 몸매 좋다는 소리다.
물론 최연하도 남들 앞에서는 어색한 척하지만, 솔직히 기분이 좋은 건 좋은 거니까.
‘똑똑히 봐둬, 이것들아. 내가…….’
“이상하다. 저 남자랑 같이 있을 때는 그렇게 예뻐 보이지 않았는데?”
저년이?
최연하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홱 돌릴 뻔했다.
‘그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이상한 거라고!’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인 법.
아무리 눈부신 보석이라도 바로 옆에 LED가 빛을 뿜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칙칙해 보일 수밖에 없다. 저 얼굴에 LED 박고 다니는 놈 옆에 서면 최연하조차 그냥 평범한 미인으로 보이는 법이다.
“저희는 다 괜찮다고 자신합니다. 하지만 저희 매장…… 아니, 저희 카페에서는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질 좋은 원두를 사용하고 있으니, 커피류를 드셔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래요? 그럼…… 아메리카노. 따뜻한 걸로 주세요.”
“네. 한 잔이신가요?”
“아뇨.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한 잔.”
“네.”
주문을 받은 점장이 계산을 하고는 긴장된 얼굴로 슬쩍 창가를 바라본다.
고오오오오오오.
‘히이이익!’
왜 하필이면 여기인가.
커피를 만드는 연습이야 수도 없이 했다. 그가 연습하며 뽑아 버린 커피만 모아도 웬만한 물탱크 하나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낭비한 원두도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이제 전문 바리스타급은 안 돼도 이 동네에 있는 수많은 카페들 중에서는 최상급의 커피를 뽑아낼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좋은 원두와 좋은 실력이 합쳐지면 당연히 좋은 커피가 나오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 저기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그것만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는 사람이다.
음식이라면 총회에서 주는 짬밥급 식사도 불평 없이 흡입하는 강진호다. 오죽하면 다른 간부들을 모조리 밖으로 외식을 나갈 때도 혼자 꿋꿋하게 식당에서 밥을 먹던 사람 아닌가.
총회 사람들이 강진호를 급양 개혁의 최대 숙적이라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당장 회주가 맛있다고 잘 처먹는데, 그걸 누가 잘못되었다 지적하고 질을 높이려 들겠는가.
각설하고.
그런 강진호가 커피만큼은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가려 댄다. 총회 본관 1층에 카페를 만들고, 직접 아버지 가게에서 원두를 공수한 뒤, 카페 주인을 조련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뽑게 만든 것은 이미 전설적인 일화가 아니던가.
그런 이가 먹을 커피를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이 달달 떨린다.
‘설마 커피가 맛없다고 거꾸로 매달아 버리지는 않으시겠지?’
진인사 대천명이라.
그동안 최선을 다했으니 남은 것은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여기 진동벨입니다. 음료 나오면 벨이 울리니, 카운터로 찾으러 와주세요.”
“네.”
최연하가 자리로 돌아가자, 점장이 긴장된 손으로 커피를 뽑기 시작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뿜어내는 기세를 보아하니 죽이는 게 아니라 정말 껍질을 벗겨 버리기라도 할 기세지만, 강진호가 최소한의 상식을 가지고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흡!”
최선을 다해 커피를 내린―실제로는 기계가 내리는 걸 최선을 다해 노려본―점장이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만들어내고는 트레이 위에 조심스레 커피를 올렸다.
‘이젠 나도 몰라.’
진동벨을 호출한 점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최연하와 와서 진동벨을 내밀고는 커피를 받아 갔다. 점장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최대한 곁눈질을 해 강진호의 상황을 살폈다.
“음.”
강진호가 커피를 잡더니 입가로 가져가 향을 맡는다. 살짝 눈을 감은 강진호의 미간이 조금 좁아진다.
‘아, 살 떨려서 진짜.’
강진호가 가만히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는다. 그러고는 가만히 입안의 커피 향을 음미하고는 느긋하게 커피를 삼킨다.
“으음.”
최연하가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소믈리에세요?”
“…….”
“뭔 커피를 그렇게 검사하듯이 먹어요, 카페에 와서? 대충 맛있으면 됐지.”
크으으으으으으!
이사니임!
핵사이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점장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세상에 저 회주님을 상대로 돌직구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총회였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이현수조차 두들겨 맞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고 에둘러 지적하는 곳이 총회인데!
가슴 안에서 무언가 뻥 뚫려 내려가는 느낌에 점장이 말없이 환호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강진호의 시선이 향하자 점장은 카운터 아래에서 불끈 쥔 주먹을 슬며시 풀 수밖에 없었다.
“크흠.”
강진호가 낮게 헛기침을 했다.
“음, 이 정도면 뭐…….”
꼭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웬만한 곳에서는 커피를 먹지 못하는 강진호도 무리 없이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진호 씨 입맛에 맞으면 된 거죠. 쓸데없이 이런 입만 고급인데.”
크으, 사이…….
아, 왜 미리 보십니까? 아직 좋은 티도 안 냈는데.
최대 위기는 넘겼지만, 아직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