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
#14.
강림하다 (1)
“노래방 갔었냐?”
“그래.”
“날 빼놓고?”
“음…….”
“니가 친구냐?”
“학원 간다며?”
“그럼 다른 날에 갔어야지! 어떻게 날 빼놓고 노래방을 가냐!”
“그렇군.”
강진호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정인규는 나쁜 놈은 아니지만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았다. 유용성은 뛰어나지만 소음이 많은 기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학교에 적응하기에는 떠벌이인 정인규처럼 좋은 정보원이 없지만, 반대로 그 덕분에 피곤하기도 했다.
지금 단계에서 소음을 반쯤만 줄여준다면 히트 상품으로 팔아먹을 수 있을 만큼 유용한 존재건만.
“다음에 같이 가자.”
“내가 너랑 왜 가!”
“그럼?”
“여자애들이랑 갔었다며!”
“그래.”
“아, 진짜 더럽다. 니가 친구냐? 친구야?”
강진호는 쫑알대는 정인규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는 책을 꺼내 들었다.
깨끗한 교과서가 보이자 마음이 무거워진다.
공부를 해야 한다.
다음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한 달 보름.
그사이 고등학생 수준의 지식을 쌓아야 했다.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기억을 되돌리는 수준으로 어떻게든 해봐야 한다.
‘불가능할지도.’
강진호는 자신의 앞에 놓인 영어책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걸 과연 한 달 만에 수습할 수 있을까?
알파벳이 뭔지는 알겠는데, 단어가 무엇인지 모른다. 훈민정음은 아는데,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고등학교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한 달이 아니라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너 공부하냐?”
“그래.”
“진짜 미쳤네.”
“그래.”
강진호는 이 시끄러운 모기를 쫓아내기 위해 손을 휘휘 저었다.
얼마나 사람을 귀찮게 하는지 아혈을 짚어버릴까 고민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일단 이 교과서로 공부를 한다는 건 어렵다. 초등학교 과정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콰다당!
한참 공부 계획을 세우고 있는 강진호의 등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강진호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한 아이가 교실 구석에 웅크리고 있고, 그 주변을 세 아이가 둘러싸고 있었다.
“뭐야?”
정인규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박유민이네.”
“박유민?”
“뭘 모르는 척하고 있어? 절름발이 박유민.”
강진호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절름발이라는 말이 마음을 찔러온다.
‘절름발이?’
생각해 보니 그런 아이가 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기억이 맞다면 그 녀석은 아마…….
“뭐? 안 가져와?”
“미안…….”
“나참, 진짜 어이가 없어서. 야, 이 씨발 새끼야! 안 가져오면 끝나? 내가 가져오라고 안 했어?”
“미안. 진짜 없어서.”
“그럼 도둑질을 하든지,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알아서 가져와야 될 것 아냐, 이 새끼야!”
기억대로라면 앞에서 소리치고 있는 사람은 분명 최영수였다.
친구 외에는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 강진호가 기억하고 있을 만큼 최영수는 인상이 강렬한 녀석이었다.
성격도 거칠고, 싸움도 전교에서 건드리는 사람이 없을 만큼 잘했다. 무엇보다 최영수는 학교 이사장의 손자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교육 재단인 동명 재단 이사장의 손자였다.
겉으로 보기에 최영수는 꽤나 잘난 놈이었다.
얼굴도 잘생겼고, 키도 시원시원하게 컸다. 게다가 집안에 돈도 많고, 운동신경도 탁월했다.
그러니 인기가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럼 돈 나올 때까지 맞아보든가.”
“진짜…… 없다니까.”
“그럼 계속 맞으면 되지.”
최영수는 낄낄거리며 박유민을 걷어찼다.
“아! 아악!”
“이 새끼가 비명 지르네? 너 선생님 부르는 거냐? 그래, 비명 질러봐. 한 번 지를 때마다 열 대씩 맞아보자.”
“…….”
그러자 거짓말처럼 박유민이 입을 꾹 닫았다.
박유민은 바닥에 웅크린 채 최영수의 발길질을 감내했다.
“씨발 새끼가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오면 되지, 말이 많아.”
강진호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왕따라고 했나?’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학생들이 변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강진호가 보기에는 웃기는 소리였다.
과거에도 왕따는 있었다.
심지어 예전 강호에도 왕따는 있었다.
약해 보이는 존재를 핍박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인간뿐 아니라 짐승에게서도 볼 수 있는 행동이다.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늘따라 영수가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
평소에도 박유민을 장난감 취급하기는 했지만, 저런 식으로 과격하지는 않았다. 평소에도 저렇게 과하게 애를 대했다면 문제가 되어도 벌써 되었을 것이다.
태호의 말에 소식통 정인규가 작게 속삭였다.
“한세연한테 놀러 가자 그랬다가 거절당했대.”
“데이트 까인 건가?”
“그렇다니까.”
최영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누가 처 씨부리고 있냐?”
“아냐, 아냐. 관계없는 이야기야. 신경 쓰지 마.”
정인규가 화들짝 놀라 손을 저었다.
강진호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점심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교실에 그들을 포함해 스물 가까운 학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최영수를 말리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재밌다는 듯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고, 어떤 애들은 눈살을 찌푸리지만 자기에게 화가 미칠까 말리지는 않고 있었다.
재미있는 광경이다.
이런 이들이 위협이 없는 곳에서는 정의의 사도가 된다. 하지만 막상 자신에게 튈지 모르는 불똥을 굳이 감내할 사람은 흔치 않았다.
이게 사회였다.
강진호는 실망하거나 환멸을 느끼지는 않았다.
알고 있음에도 이 사회가 그리웠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눈에 보이는 위협이 없고, 구토가 쏠릴 듯한 악의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니까.
누군가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강진호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에 일일이 신경을 쓰기에는 강진호가 겪은 것이 너무 많고, 감내해야 했던 것들이 너무 끔찍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교실에 있는 누군가가 눈 깜짝할 사이 죽어 나간다고 해도 강진호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강진호가 귀찮음을 감수하고 지켜야만 할 사람이 이곳에는 없으니까.
“이 절름발이 새끼가!”
최영수의 고함에 강진호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절름발이.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과거 하반신 마비의 경험이 있던 강진호에게는 더더욱.
“야, 영수야. 그만해라. 애 죽겠다.”
“낄낄, 죽기야 하겠어?”
최영수의 옆에 있는 둘이 웃으며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힘이 있는 자의 주변에는 그 힘을 빨아 먹으려고 하는 이들이 들러붙기 마련이다.
강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뭔가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별다른 감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수업 시작 전에 화장실에라도 다녀올 생각이었다.
“아, 진짜. 이 장애인 새끼가 사람 짜증나게 하네.”
“…….”
강진호의 발이 멈춰 섰다.
그리고 강진호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분명 지금 저 말이 거슬린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거슬린 건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병신 새끼가 알아서 길 것이지, 병신 주제에 왜 이렇게 고개가 뻣뻣해? 병신이면 병신답게 장애인 학교나 갈 것이지, 여기서 니가 그러고 있는다고 정상인 되냐?”
‘음…….’
강진호는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입술이 터져 피투성이가 된 박유민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야, 이거 어때?”
최영수의 오른쪽에 서 있던 놈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구석에서 양동이를 들고 왔다.
“이거 뭐냐?”
“걸레 빤 물 같은데?”
창틀 청소를 한다고 걸레를 빨던 물을 버리지 않고 놔둔 모양이었다.
“이거 재밌겠네?”
최영수가 미소를 지었다.
“야, 절름발이.”
“……응?”
최영수가 부드럽게 웃으며 양동이를 내밀었다.
“마셔.”
“…….”
“마셔봐. 그럼 이제 너 안 건드릴게.”
박유민은 대답 없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안 마시면 죽는다?”
박유민이 떨리는 손으로 양동이를 움켜잡았다.
“고민하지? 미쳤지? 더 맞아봐야 행동이 빠릿빠릿해지겠냐?”
박유민이 양동이와 최영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먼지가 둥둥 떠 있는 시커먼 물이 보인다.
“마시라니까!”
박유민이 바닥에 엎드린 채 양동이에 입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천천히 양동이를 기울였다.
하지만 차마 입까지 기울이지는 못했다.
입 앞에서 양동이를 힘겹게 들고 망설이는 박유민을 본 최영수가 인상을 확 찌푸리더니 소리를 질렀다.
“아, 이 씨발 놈이!”
최영수가 양동이를 걷어찼다.
양동이가 넘어가면서 박유민의 얼굴에 시커먼 구정물이 쏟아졌다.
“콜록! 커헉!”
얼결에 구정물을 삼킨 박유민이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해 댔다.
하지만 그것도 최영수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진짜 뒈질라고!”
최영수가 엎드려 기침하는 박유민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옆에 놓인 의자를 들어 박유민의 등을 내려쳤다.
퍼억!
“병신 새끼가 말을 안 듣네? 한쪽 다리만 이상해서 그런가? 응? 그럼 씨발, 다른 쪽 다리도 병신 되면 정상인 되겠네. 균형은 맞을 거 아냐.”
“그럼 양쪽 다리 다 병신이지.”
“그게 하반신 마비 아냐? 장애인 오브 장애인?”
낄낄대는 최영수 일행이 박유민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너 이 씨발 새꺄, 죽을래?”
“미, 미안.”
“안 마실 거야?”
“……엎었는데.”
최영수가 히죽 웃으며 박유민을 보고는 말한다.
“바닥에 흘렸으니 못 마신다고 하는 거야?”
최영수가 바닥에 흘린 물을 발로 철퍽철퍽 밝더니 낄낄댔다.
“못 마셔?”
“아, 아니.”
“그럼 핥아 먹어.”
“…….”
“못 들었어? 바닥에 엎어진 물 다 핥아 처먹으라고!”
최영수의 말에 박유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 이 새끼 우는데?”
“진짜 쪽팔린다.”
“야, 이러니까 우리가 꼭 나쁜 놈 같다?”
최영수 일행은 낄낄대더니 박유민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퍽, 퍽!
뒤통수를 내려치는 소리가 교실로 퍼져 나가자 아이들이 조금은 심각해진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좀 심해지는 것 같은데?
박유민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경련하자 최영수가 귀에 대고 이죽거렸다.
“처우냐?”
“아냐.”
“그럼 뭐해? 핥아 처먹어.”
박유민은 바닥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이런 짓을 한다고 앞으로 그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일을 멈출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박유민이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찰박.
시커먼 물이 고인 바닥이 보인다.
박유민은 손을 들어 눈물을 훔쳐 내고는 바닥에 고인 물로 입을 가져갔다.
그 광경을 보며 최영수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자 새끼는 애자 새끼답게 굴어야지.”
박유민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정말 해야 하는 건가…….
이걸?
누구라도 말려주지 않는 건가…….
하지만 그런 기대가 부질없다는 것은 박유민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박유민을 돕기 위해서 최영수와 척을 질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까.
이 학교 안에서 박유민과 최영수는 그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존재였다.
기대는 하지도 않는 게 마음이 편하니까.
그때, 박유민의 시야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발.
새하얀 신발이 시커먼 물을 밟고 박유민의 얼굴 앞에 나타났다.
“…….”
박유민이 고개를 들었다.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