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00
#1499.
이어지다 (4)
“헐, 저게 뭐야?”
찹찹찹찹.
강은영이 과자를 흡입하며 홀린 듯이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TV 안에서 익숙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낯선 얼굴이 보였다.
“헐, 오라비.”
강은영이 몸을 부르르 떤다.
매일 보는 강진호의 얼굴이 뭐 특별할 게 있겠냐마는, 지금 보이는 강진호의 얼굴은 평소에 그녀가 알던 것과는 무척이나 달랐다.
관리가 전혀 안 돼서 후줄근하던 강진호가 슬림한 검은 슈트를 입고 깔끔한 리젠트를 하니까, 사람이 완전 달라 보인다.
게다가 촬영용으로 메이크업까지 마치니, 이게 정말 내가 아는 동네 노는 형 강진호가 맞는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내가 동생이니까 얼굴이라도 알아보는 거지.’
적당히 아는 사람이라면, 저 얼굴만 보고 강진호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와, 진짜 어이없다.”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강진호를 보니, ‘비율이 좋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사실 강진호의 키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인데도 화면에 나오는 강진호는 굉장히 크고 늘씬해 보였다.
‘하기야 160 겨우 되는 애들도 카메라만 잘 잡으면 커 보이니까.’
이미 남자 아이돌 중에 자신보다도 작은 이들이 많다는 걸 아는 강은영인지라 저 광경이 그리 놀랍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놀라운 건 별다른 촬영 테크닉도 없이 그저 살짝 멀리서 카페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광고가 사람을 빨아들인다는 점이다.
“언니도 쩌네.”
강진호도 강진호지만, 건너편에 앉아 있는 최연하도 굉장하긴 마찬가지였다.
살짝 수수한 듯 과하지 않게 코디한 최연하가 눈웃음을 치며 다정하게 강진호와 대화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절로 설레게 만들었다.
그나마 강은영은 여자고 강진호의 동생이다 보니 이 광고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지, 남자라면 최연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고, 여자라면 강진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무책이 상책이라고, 굳이 이런저런 테크닉을 넣어 화면을 전환하지 않은 게 오히려 좋아 보였다. 그저 저 모습을 비춰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흡입력이 있다.
더구나…….
‘연하 언니, 저런 얼굴은 처음 보네.’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소비된 최연하의 마스크다. 사실 워낙 많은 광고에 나오다 보니 최연하가 가진 이미지는 이미 웬만큼 대중들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는 최연하의 마스크는 무척이나 신선했다.
‘아마 저 언니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라 그렇겠지.’
최연하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드라마에서 남주와 마주할 때의 최연하도 충분히 사랑스럽고, 충분히 아름다웠으니까.
하지만 뭐랄까…….
자연스러움의 차이랄까?
지금 TV 속에 나오는 최연하는 배우 최연하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인 최연하 같아 보인다. 굳이 꾸미지 않고 편안하게,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웃고 대화하는…….
그래서인지 최연하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딱히 대단할 건 없다.
두 사람이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대화하고, 살짝 웃고,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뿐이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일상적인 모습이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한다. 마치 같은 카페에 앉아서 옆자리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천천히 줌아웃.
두 사람을 찍던 카메라가 점점 멀어지면서 카페의 전체적인 모습과 다른 자리에 앉은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카페의 로고를 잡아주며 광고가 끝났다.
“헐…….”
강은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와, 이거 정말 쩔게 뽑혔네.”
뭐가 대단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강은영은 이쪽으로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하지만 확실히 이 광고는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재빨리 동영상 사이트에 들어간 강은영은 조회 수를 확인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와, 30만?”
오늘 올라온 게 분명할 텐데 벌써 30만이라니, 어마어마한 기세였다. 댓글창도 거의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댓글은 거의 두 갈래로 나뉘었다.
광고가 잘 뽑혔다, 몇 회째 반복 중이다, 하루 종일 틀어놓고 있다, 최연하 너무 예쁘다 등의 일상적인 반응과…….
― 남자 배우 누구예요? 뭐 저렇게 생겼어?
― 신인 아닌가, 신인? 대형 신인 나온 것 같은데.
― 최연하 남자 친구랍니다. 그 난리 났던 사건의.
― 다들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저분 신인 아닙니다. 예전에 최연하랑 같이 드라마 출현한 적 있었어요. 그때도 난리 났는데, 이번에는 대박 나겠네.
강진호에 대한 궁금증이 태반이었다.
“남의 오라비를 궁금해하기는.”
강은영이 피식 웃었다.
강진호가 저 카페 프렌차이즈의 소유주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새삼 궁금해졌다.
― 이 사람들아, 나는 실제로 봤어요. 카페 직접 돌고 있던데요?
― SNS에서는 벌써 유명해요. 요즘은 지방 쪽에 전국 투어 하던데.
― 그거 바이럴 아님?
― 바이럴이면 어떰? 이럴 때 아니면 최연하 실물은 언제 보는데. 이런 바이럴이면 백번이라도 환영이지.
― 최연하 실물 어때요?
― 제가 봤는데, 쩝니다. 근데 건너편 남자가 더 쩝니다. 저 사람은 진짜 빛이 나요. 화면발이 안 받는 사람임.
― 에이, 말도 안 돼.
강은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 뒤에도 댓글은 수도 없이 이어졌다.
“대박 났네.”
강은영이 씨익 웃으면서 휴대폰을 내렸다.
이 마케팅을 누가 기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아마 이 정도면 매출에도 큰 영향이 있을 것이다.
신생 카페는 인지도를 높이고 자신들이 미는 이미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 커피 맛이라든가 음료만으로 신생 카페가 고객을 확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가능하다 해도 매출이 고정적으로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엄청나게 걸릴 게 분명하다.
‘그게 다 적자지.’
일단 그 단계는 넘어섰다는 게 중요했다. 이제부터 또 해야 할 일이 있겠지만, 그건 그때의 문제고.
디리리릭.
그때,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났다. 강은영이 쪼르르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오라비! 어서…… 헐~ 오라비, 전쟁터 갔다 왔어?”
“…….”
강진호가 좀비 같은 얼굴로 비척비척 걸어 들어왔다.
화면 속 뽀송뽀송한 강진호의 얼굴을 보다가 시커멓게 죽어 있는 안색을 직접 보니, 위화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누가 때렸어?”
“…….”
강진호가 그 와중에도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저런 말은 정말 몇 십 년 내로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세상에 자신을 팰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진호 왔니?”
아, 저기 있네.
백현정이 안쪽에서 나와 강진호의 안색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너, 누구한테 맞았니?”
“…….”
“…….”
소파에 걸터앉은 강진호가 냉수를 쭉 들이켰다. 강은영이 웬일로 냉커피를 타서 바치겠다고 했지만, 지금 강진호는 커피라면 신물이 난다.
“오늘만 20잔 마셨어…….”
“헐? 미련스럽게 그걸 다 마심?”
“커피 남기면 맛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그냥 입 다물고 쪽쪽 빨아먹으래.”
“누가? 연하 언니가?”
“어.”
“와, 그 언니, 진짜 똑 부러진다. 사람이 괜히 성공하는 게 아니구나.”
강은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커피 스무 잔이라니.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 정도면 고문이다.
“자, 잠깐만? 그럼 연하 언니도 스무 잔 마신 거야?”
“비슷하게는 먹었을걸?”
“오늘 잠은 잘 수 있대? 카페인 중독 걸리겠는데?”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강은영이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일이라지만, 카페를 옮겨 다니면서 커피를 두세 잔씩 비운다?
강은영은 돈을 줘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최연하는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자기가 알아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강진호까지 끌고 다니면서 말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일하면서 데이트도 하는 거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있는 대로 끌면서 데이트가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최연하 씨, 진짜 대단하네.”
“그지, 엄마? 언니 대단하지. 진짜 똑똑한 것 같아.”
“아니. 그런 것 말고.”
“응?”
백현정이 눈짓으로 강진호를 가리켰다.
“얘를 삼 일 동안 끌고 다니잖아. 제 엄마랑 백화점 가는 것도 싫어 죽으려고 하는 앤데.”
“…….”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사업이지. 그래, 일이지. 그런데 여자 친구랑은 삼 일씩 돌아다니면서 제 엄마랑은 하루를 안 놀아주네. 이래서 아들자식 낳아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지.”
딸자식 아닙니까?
그게 아들이었나?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그래그래, 우리 은영이는 나중에 시집가도 엄마 버리면 안 된다? 저건 제 마누라 치마폭에 싸여서 집 쪽으로는 시선도 안 줄 놈이야.”
“제가 언제…….”
“됐어.”
칼바람처럼 냉랭한 백현정의 목소리에 강진호가 움찔했다.
사실 딱히 틀린 말이 없었다.
최근 백현정과 뭔가를 한 기억은 없다. 어쨌거나 강진호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가고 있지만, 덕분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가, 갈게요, 백화점.”
“됐어! 내가 그래도 엄만데, 시체 되어 있는 자식을 끌고 쇼핑을 하겠니?”
“…….”
“건강이나 잘 챙겨. 아무리 돈이 좋고 사업이 좋다지만, 몸 상하면 아무 의미도 없는 거야.”
“명심할게요.”
물론 강진호는 몸이 상할 일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 그를 괴롭히는 것은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수백, 수천 명의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야 하는 정신적인 피로였다.
“그래서…… 이제 끝난 거야?”
“……일단 예정한 건 다 끝났어.”
“오늘 몇 군데 돌았는데?”
“여덟 군데. 경상도 쪽 돌았거든.”
강진호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강진호와 최연하가 직접 카페를 방문해 주는 게 매출의 상승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소문이 퍼지자, 점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두 사람의 유치에 나섰다.
이럴 때는 저들 사이의 끈끈한 네트워크가 끔찍한 네트워크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여하튼 ‘왜 서울이나 광역시에 잘나가는 매장만 돌아주냐!’는 항의는 강진호에게 변명의 여지를 앗아갔고, 결국 발에 닿는 매장은 모조리 돌 수밖에 없었다.
“그걸 어떻게 다 돌아?”
“헬기 탔어.”
“헐, 오라비 회사에 헬기도 있어?”
“항공사에서 빌렸대.”
덕분에 강진호는 이현주의 추진력도 이현수에 못지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말았다.
세상에, 사람을 한시라도 빨리 굴리겠답시고 헬기를 대여하다니. 물론 헬기 하루 빌리는 값보다 매출 상승분이 훨씬 크니 합리적인 투자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여하튼 두 번은 못하겠다.”
강진호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그래. 이제 CF도 나가고 하니까, 매출 더 늘겠지. 좀 쉬어, 오라비. 그러다 진짜 몸 상하겠다.”
“끙.”
강진호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사업도 보통 일이 아니구나.’
세상에 무학을 갈고닦는 것만큼 어려운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강진호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가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열심히 해야지.”
강진호도 지지 않도록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몰랐다.
그에게 닥쳐올 고난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