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01
#1500.
이어지다 (5)
“대박 났습니다, 사장님!”
“그렇지? 이거, 매출 엄청 나오는 것 맞지?”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이 정도면 초기 투자금은 일 년도 안 돼서 다 회수할 수 있을 겁니다!”
“지, 진정하자고.”
황민수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이 기세가 계속 이어질 리가 없잖아. 오픈발이 있겠지!”
“그걸 감안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음 달쯤에 매출이 반으로 떨어지고, 그다음 달에는 20% 더 깎인 금액이 일 년 정도 유지된다는 가정하에요.”
“……진짜?”
황민수의 머릿속에서 잭팟이 터졌다.
황금 동전이 우르르 쏟아지는 상상을 하던 황민수가 재빨리 고개를 내저었다.
“진정하라니까!”
자신에게 외치는 말인지, 이사들에게 외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황민수였다.
“들뜨지 마! 이제 개업한 지 일주일도 안 됐어! 지금 우리가 이럴 때야? 이 순간에도 분명 문제점들이 생기고 있을 거라고! 그걸 빨리 해결하고 매출을 안정화시켜도 모자랄 판에 돈에 눈이 돌아서 될 일이야?”
“……아!”
이사들이 반성한다는 듯 들썩이던 엉덩이를 진정시켰다.
‘역시 사장님이시다.’
‘이 매출을 보고도 침착할 수 있으시구나. 그릇이 다르네.’
‘하기야 예전에 만지던 돈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별것 아니시겠지.’
새삼 황민수의 그릇에 감탄하는 모두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강진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황민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대박입니다, 회장님! 우린 이제 부잡니다!”
“…….”
“…….”
그릇은 개뿔이.
“보고드립니다.”
한차레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회의실이 미묘한 긴장으로 가득 찼다.
이현주가 살짝 안경을 밀어 올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매출은 예상 목표치의 여덟 배를 달성했습니다. 700% 초과 달성입니다.”
“여덟 배. 세상에, 여덟 배. 이게 꿈이냐, 생시냐.”
황민수가 거의 넋이 나가서 중얼거렸다.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자본금이 남달랐으니까.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든 가맹금을 올리고 최대한 절약을 해서 인테리어든 뭐든 가성비를 따지지만, 이놈의 회사는 현금이 넘쳐 나다 못해 썩어나는 수준이라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맛까지 확보를 했으니, 경쟁력은 확실하다.
하지만 사업이란 원래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변수들이 함께하는 것. 무조건 성공할 거라 예상한 사업이 엎어진 경우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잖은가.
그러니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내려놓기 힘들었다.
그런데 여덟 배라니, 세상에.
“회사에 재신이 있는 거지, 재신이.”
“스타트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회장님과 이사님이 직접 마케팅을 해주신 것과 CF 파급력이 좋았던 부분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오, 그거 난리더라구요.”
“회장님 실검에 이름 올라가셨던데, 보셨습니까?”
강진호가 헛기침을 했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는 건 그리 반길 만한 일은 아니다.
“회장님.”
“음.”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저희는 양지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총회의 이름으로 어둠 속에서 살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지.”
이현주가 단호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본다.
“MK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장님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회장님의 얼굴이 TV에 나오고, 그 이름이 자연히 회자될 때, 총회의 회원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가려진 채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자각하게 될 테니까요.”
“알긴 아는데, 좀 어색해서.”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사실 회장님은 그동안 가진 힘에 비해서 너무 편히 사셨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어? 나 그거 영화에서 봤는데?”
생각 없이 구정범이 끼어들자 노태광이 이를 갈았다.
“주둥아리 관리해라. 회장님 앞에서 쪽팔리게 만들지 말고.”
“……아니, 그냥 봤다고.”
최병찬도 빙그레 웃는다.
“구 이사.”
“예?”
“입 다물어.”
“……예.”
이현주가 살짝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어갔다.
“여하튼 출발은 쾌조라고 해도 좋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원두 공급량이 부족합니다. 미리 만들어둔 원두 재고량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그, 그야 그렇겠지.”
황민수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매출을 감안해서 500% 정도는 준비해 뒀지만, 설마 이런 기세로 팔려 나갈 줄은 몰랐다.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최대한 빠르게 생산량을 늘려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보름쯤 뒤에는 원두가 없어서 가게 문을 닫아야 할 판입니다.”
강진호가 황민수를 바라보았다.
“대책은?”
“일단은 강 공장장님께 최대한 부탁을 드리고는 있지만, 이게 인력의 부족이라 채근한다고 딱히 달라질 게…….”
“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유환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한계를 의지로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강진호가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인력 충원하겠습니다. 지난번 지원자 중 탈락한 이들을 추가로 고용하면 됩니다.”
“훈련 시간이 있잖아.”
“사실 기술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사람이 할 수 없을 정도의 노동 강도를 버티는 게 문제라서…… 교육만 받으면 하루 만에도 투입할 수 있습니다.”
황민수들의 얼굴이 노래졌다.
‘아니, 사람이 못 버틸 정도의 노동 강도라면, 그걸 투입하면 안 되지.’
‘그럼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뭐지? 사람이 아닌가?’
무인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것도 며칠은 걸릴 텐데?”
“안 재우면 됩니다. 지금 여덟 시간 체재로 돌아가는 애들을 열두 시간 맞교대로 잠시 돌리겠습니다. 추가 작업에 임금을 300% 책정하고, 성과급도 따로 지급하면 불만은 없을 겁니다.”
“음, 그러면 해결되나?”
“정 안 되면 저라도 가서 저어야죠.”
“…….”
저거, 농담이 아닌 것 같은데.
강진호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 일은 이 실장이 전권 가지고 해결해 봐. 지원은 모두 해주지. 내 이름 팔아도 상관없어.”
“회장님 이름 팔 수 있으면 열두 시간 맞교대가 아니라 열여섯 시간 체제로 돌려보고 싶은데요.”
“……내 이름 팔아도 된다는 건 일단 취소하지.”
“그렇습니까?”
이현주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얘는 갈수록 이현수 닮아가네.’
부부는 닮는다더니.
아니, 아직 부부는 아닌가.
사실 이건 두 사람이 비슷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기보다는 총회와 무인들 특유의 ‘무인은 사람이 아니다’의 개념과 ‘굴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주의의 합작품에 가까웠다.
감정을 모두 배재하고 이성적으로만 생각해 보면, 지금 공장에 투입되어 있는 무인들은 한 일주일 정도는 잠 안 재우고 일 시켜도 고장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지.’
일단 회사의 탈을 쓰고 있는 이상에는 최대한 노동법을 존중하고 복지를 신경 써야 한다. 수련이라면 말이 다르겠지만, 사람을 갈아 넣어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열두 시간도 조금 껄끄러운데…….”
“회장님, 그건 회장님이 꼭 옳으신 게 아닙니다.”
“응?”
“휴식 시간과 개인 정비 시간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 건 지급되는 보수가 애매할 때의 이야깁니다. 300% 추가 지급이면 저놈들이 먼저 일을 하겠다고 달려들 겁니다.”
“…….”
“장기간 그 체제를 유지하는 건 무리겠지만, 일주일 정도라면 얼마든지 할 겁니다. 충분하고 합당한 보수만 있다면, 사람은 불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
그게 총회의 사고방식이지. 어, 그렇지.
확실히 이현주는 이중걸의 손녀였다.
“여하튼 노동법에 저촉되지 않게 해줘.”
“완전히는 무리겠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일단 하나의 문제는 해결 방안을 찾았다.
“그럼 다음?”
“인력 부족 문제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손님이 많아서 지금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추가로 고용해야 하는데, 지금 알바를 뽑아서 교육을 할 여력이 없습니다.”
사람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바빠 죽을 것 같은데 초보자를 가르치는 일까지 같이 하다 보면 일이 두 배로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점주들이야 체력적으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한정된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해결책은?”
“아르바이트생들도 본사에서 교육을 받는 체제를 만든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시적으로는 매장 내 자체 교육을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본사로 불러 교육을 마치면 될 테니까요.”
“응? 시간이 없잖아.”
“폐점 시간 뒤에도 교육은 할 수 있고, 기계는 쓸 수 있습니다.”
“…….”
“아르바이트생들이야 퇴근해야겠지만, 점주들이야 남아서 교육할 수 있으니까요. 지침은 전달해 뒀고, 이력서는 이쪽에서 선별하는 중입니다.”
어…….
근본적으로 공장의 해결책과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강진호는 새삼 이놈의 MK라는 기업이 차별화된 기술 같은 건 하나도 없고, 오로지 차별화된 인력을 갈아 넣어 돌아가는 회사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생산량을 늘리거나 매출을 늘리려면 인력을 갈아 넣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MK의 주축을 이루는 이들은 거의가 무인 출신이라, 이현주가 사람을 갈아 넣는 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음, 점주들이 힘들겠군.”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봅니까?”
“아니. 힘들겠다고.”
“…….”
강진호가 ‘다른 방법을 왜 찾아?’라는 눈으로 이현주를 바라본다.
이현주에게는 잔소리를 해 대지만, 사실 사람은 굴릴수록 강해진다의 원조는 강진호나 다름없다.
이중걸 시대의 무인들은 더러운 일을 해 대기는 했지만 나름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면, 강진호가 회주가 된 이후의 총회는 말 그대로 폭주기관차처럼 달리고 있지 않은가.
사람을 갈아 넣는 데 조금이라도 죄책감이 있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예, 회장님.”
“지금 이런 방식이 가능한 건 무인들이 점주로 있고, 노동자로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MK가 언제까지 무인들만으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
“물론입니다.”
“장기적으로는 평범한 사람들도 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줘.”
“유념하겠습니다, 회장님.”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문제는 없나?”
황민수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마케팅 쪽에서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고 싶답니다. 그와 관련해서 회장님의 추가적인 승인이 몇 가지 필요합니다.”
“응? 승인?”
“별건 아닙니다. 그냥 구매자들에게 몇 가지 사은품을 주는 정도죠.”
“그게 굳이 승인까지 필요한가?”
“하하하, 그러니까 말입니다. 여기, 여기에 사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어쨌든 회장님의 재가가 필요한 부분이니까요.”
강진호가 대수롭지 않게 사인을 했다.
그리고 황민수는 강진호가 서류의 내용을 보기 전에 슬그머니 서류를 아래로 내려 버렸다.
‘됐다!’
‘잘하셨습니다, 사장님!’
‘매출! 매출이 나온다! 이걸로 매출이 또 나온다!’
의미심장한 이사진들의 눈빛에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현주의 보고에 강진호는 금세 이 사실을 넘겨 버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강진호는 알게 되었다.
사인이라는 건 절대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