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03
#1502.
이어가다 (2)
사람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파업을 한다.
지금까지 강진호는 사람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가 과도한 노동 조건이 현실과 맞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강진호는 사람이라는 건 그냥 지쳤다는 이유만으로도 일을 제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고?
지금 강진호가 그러고 있으니까.
강진호는 드러누운 채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충전이 되지 않은 휴대폰은 절로 꺼져 버렸다. 평소의 강진호라면 재빨리 충전기를 찾아 자신과 세상을 이어주는 저 문명의 이기에 활력을 불어넣었겠지만…….
‘귀찮다.’
오늘은 그럴 마음이 쥐꼬리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강진호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굉장히 당황하는 중이었다.
강진호가 누구던가.
그 험난한 마교에서 끝도 없는 전투를 치르면서도 수련을 빼먹지 않은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서 육체의 고통과 피로는 변명이 되지 못한다. 무인이 피곤해서 죽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강진호는 정말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그러니까 이 기분이, 어, 그러니까…….
“출근하기 싫다.”
그의 옆에 드러누워 있던 박유민이 고개를 홱 돌렸다.
“뭐?”
“…….”
“너, 지금 뭐라고 했어?”
“…….”
박유민이 눈을 비비더니 강진호의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세상에.
출근하기 싫다라든가, 학교 가기 싫다라든가…… 다른 이들에게는 일상적으로 나오는 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말이 강진호의 입에서 나오는 걸 들으니, 박유민이 아는 세상의 일부가 붕괴하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오래 살고 볼 일이라더니, 내가 진호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보는구나.”
박유민이 안쓰럽다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심지어 태풍이 오던 날에도 자전거를 타고 아무도 나오지 않은 학교에 홀로 등교하던 이가 강진호 아니던가.
그런 학교 다니는 기계 같던 강진호의 입에서 출근하기 싫다는 말이 나오다니,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험난하면 강진호마저 무너뜨리는 건지 정말 통탄할 노릇이었다.
“너 괜찮아?”
“박유민.”
“응?”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뭘?”
“사람은 적성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
차라리 천 명을 상대로 싸우는 게 훨씬 더 편하다.
‘미안하다, 청마.’
눈가가 시큰해진다.
강진호가 온갖 깽판을 치고 다니는 동안 청마가 이런 일들을 처리하고 다녔을 걸 생각하니, 청마가 쑤신 옆구리의 반대쪽도 내밀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진호야, 이건 내 생각인데…… 네가 좀 지친 것 같아.”
“응?”
“사람이라는 게 좀 쉴 때도 있어야 하는 거잖아.”
“……밤에 쉬잖아.”
“그것만으로는 안 되지. 그런데 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너, 원래 오늘 출근해?”
“응.”
“……일요일인데?”
“…….”
강진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박유민은 그저 그런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어, 음…….”
강진호가 머리를 긁는다.
“너, 언제부터 일요일에도 출근했는데?”
“음, 언제부터?”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언제, 언제부터라니? 그게…….
“처음 출근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처음 출근한 게 언젠데?”
“군대 전역한 뒤.”
“…….”
박유민의 눈이 흔들린다.
“진호야…… 그러다 죽어.”
저게 농담이 아닌 것 같아 무섭다.
생각해 보면 강진호는 군대를 전역한 이후로 주말 개념을 가져 본 적이 거의 없다. 눈을 뜨면 총회로든 MK로든 일단 출근을 했고, 출근을 하면 일을 하거나 수련을 했다.
‘과했나?’
지금까진 딱히 과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일단 피곤하지 않았으니까.
“좀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쉬어도 별로 할 게 없었거든. 내가 딱히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TV를 보는 것도 아니고, 여행 같은 것도 관심이 없고, 책도 안 보니까.”
“그, 그럼 너는 집에서 쉴 때 뭐 하는데?”
“보통 명상을 하거나, 음…….”
박유민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 얼마나 척박한 삶이란 말인가.
“진호야, 사람은 쉬어야 돼. 너 그러다가 진짜 난리나.”
“지금까진 괜찮았어.”
“이젠 안 괜찮잖아.”
“으음.”
확실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내가 볼 때 너는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는 걸 못 참는 타입이야.”
어, 그렇다.
“그런데 딱히 취미가 없다 보니 휴일을 버티지 못하는 거지.”
“으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진호야, 취미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
“취미?”
“응.”
강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말은 쉽지만, 취미라는 게 어디 가지고 싶다고 가져지는 것이던가. 즐기지 못하는 취미는 그저 또 하나의 노동이 될 뿐이다.
“내가 딱히 즐겨하는 게 없어서.”
“잘 생각해 봐. 그래도 네가 나름 좋아했던 게 있을 거야. 사람들은 보통 취미를 새롭고 거창한 것에서 찾으려고 하거든. 그런데 차라리 평소에 자기가 어디서 재미를 느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게 훨씬 나아.”
“그래?”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그럼 박유민, 너는 취미가 있어?”
“당연히 있지.”
박유민이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취미가 요리야.”
“…….”
강진호의 얼굴이 일순 썩어 들어갔다.
“너, 카레밖에 못하잖아?”
“아냐. 나 요리 잘해. 애들이 자꾸 카레를 해달라고 해서 그걸 자주 하는 거지.”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의 친구, 박유민의 머릿속에서는 왜 아이들이 주구장창 카레만 해달라고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는 모양이다.
‘뭐, 나쁘지 않겠지.’
취미와 특기는 다른 거니까.
특기는 잘하는 걸 지칭하는 말이지만, 취미는 자신이 즐기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결과가 파멸적인 것 따위가 뭐 중요하겠는가.
그리고 자신의 취미가 요리라고 당당히 말하는 박유민의 자세는 강진호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다.
“즐거웠던 거라…….”
전투?
아, 이건 안 되겠지.
딱히 싸울 만한 상대도 없을뿐더러, 강진호가 전투로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나서면 총회의 모두가 지옥을 겪을 게 분명하다.
취미가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지.
그럼…….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좋은, 좋은이라…….’
딱히 뭔가를 하면서 즐겁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다. 물론 사는 게 재미없다는 게 아니라, 취미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만한 부분에서는 딱히 즐거움이 없었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강진호가 기쁨을 느낀 부분은 거의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왔으니까.
혼자서도 즐거웠던 건…….
“어?”
강진호가 눈을 크게 떴다.
확연한 즐거움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상쾌함을 느끼게 해주던 게 있다.
“자전거.”
“오, 맞다. 진호, 너 옛날에는 자전거만 타고 다녔잖아. 요즘이야 차 타고 다니지만.”
“그랬지.”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일전에도 몇 번이나 자전거를 다시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자전거를 타는 감각은 차를 타는 감각과는 분명 다르니까.
차가 훨씬 쉽고 간편하게 속도감을 즐길 수 있는 탈것임은 분명하지만, 자전거는 내 힘으로 속도를 낸다는 일체감과 바람을 직접 맞을 수 있는 상쾌함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이현수에게 새 자전거를 주문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어디라더라? 이탈리아에서 직접 가지고 온다고 했나?
“가자, 진호야.”
“응? 어딜?”
“자전거 타러 가야지.”
강진호가 멍한 눈으로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너, 어차피 몸이 피곤해서 그러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이제는 강진호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높아서 대충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박유민이었다.
“그럼 차라리 빨리 가자. 자전거 타고 가볍게 서울 한 바퀴 돌면 기분이 좀 상쾌해지지 않을까?”
자전거 타고 가볍게 서울 한 바퀴라는 말은 분명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말이지만, 말을 하는 박유민이나 듣는 강진호도 잘못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강진호에게는 ‘정말 가볍게’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이었으니까.
“가자. 옷 갈아입…… 아니다. 그대로 가자. 어쨌든 운동이니까.”
“으응?”
강진호가 박유민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섰다.
* * *
“제일 튼튼한 걸로 주세요.”
“여기 있는 자전거는 다 튼튼합니다.”
“아뇨. 그 정도가 아니라 정말 튼튼한 거요.”
“……정말 튼튼한 거요?”
주인아저씨의 미간이 좁아졌다.
정말 튼튼한 물건이라는 말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하나는 어떤 충격에서도 버틸 수 있는 단단한 프레임을 가진 자전거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잘 만들어져 잔 고장이 없는 제품이라는 뜻이다.
‘보아하니…….’
박유민과 강진호의 차림새를 슬쩍 살핀 주인아저씨가 그 의미를 짐작해 냈다.
‘돈이 많아 보이지는 않으니, 잔 고장 없이 오래 탈 수 있는 물건을 달라는 뜻이군. 여기서 제일 튼튼한 제품이면 천만 원은 넘는데, 자전거에 그만한 돈을 쓸 사람들로는 안 보이고.’
계산을 끝낸 주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런 제품을 찾으신다면 이쪽이 좋습니다. 이쪽 제품군들이 다들 튼튼하게 나왔거든요.”
“진호야, 어때?”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이렇게 봐서는 모르겠는데?”
“살짝 굴려봐도 되나요?”
“음, 과격하게만 타지 않으신다면 승차 정도는 가능합니다. 이쪽에서 타보시면 될 것 같네요.”
“그렇데 진호야.”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개중 가장 두껍고 튼튼해 보이는 자전거를 골라 옆으로 끌고 나왔다.
‘가볍게, 가볍게.’
과격하게 타지 말라고 했으니, 아주 가볍게.
강진호가 자전거 위에 올라타 페달에 발을 올렸다. 그러고는 아주 가볍게 페달을 내리밟았다.
뚝.
“…….”
강진호가 뚱한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반듯하게 부러진 페달이 바닥에 떨어져 팽그르르 구르고 있었다.
“……튼튼한 걸로 주세요.”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주인아저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량품인가?’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가볍게 굴렸는데 페달이 부러진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하하하, 죄송합니다. 가끔, 아주 가아아~끔 이렇게 불량인 페달이 나오거든요. 자, 이거. 이거 한 번 타보시죠!”
주인아저씨가 재빨리 새 자전거를 꺼내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강진호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새 자전거에 몸을 올린다.
그러더니…….
뚝.
“…….”
주인아저씨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저, 이해가 어려우신 모양인데…… 튼튼한 걸로 주세요, 튼튼한 걸로.”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당황한 주인아저씨가 고개를 홱 돌렸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이렇게 된 이상 가격은 신경 쓰지 않는다. 뒤쪽으로 가 선수용 자전거를 번쩍 들어 강진호의 앞에 내려놓았다.
“자, 이게 우리 가게에서 제일 튼튼한…….”
뚝!
“…….”
강진호가 한숨을 쉬고 자전거에서 내렸다.
“가자, 유민아. 여긴 안 되겠다.”
“뭔 자전거다 다 이렇게 약해 빠졌지? 정말 자전거 한 번 타기 힘드네.”
“이현수에게 전화를 해봐야겠어.”
홀로 남은 주인이 투덜대며 매장을 나가는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페, 페달 값은 주고 가야죠. 손님? 소,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