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14
#1513.
밝혀내다 (3)
“이제 알아서 할 겁니다.”
이현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보고했다.
또한 강진호는 그런 이현수를 보며 영 떨떠름한 눈을 감추지 못했다.
“이걸로 된다고?”
“예.”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영 불안한데…….”
“불안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국정원에 이 일을 전달한 게 아니니까요.”
“그건 또 뭔 소리지?”
“체계라는 게 그런 거죠. 국정원 차장이 들은 일은 국정원장에게 들어가고, 국정원장이 들은 내용은 총리에게 들어가고, 총리가 들은 내용은 그 윗선으로 가기 마련입니다. 물론 거기에서 총리라는 단계가 빠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슷합니다.”
“으음.”
“결국 이건 정부가 정할 일이라는 거죠. 그쪽에서 다시 우리와 함께 뭘 해볼 생각이 있다면 사력을 다해서 때릴 겁니다. 아주 피를 말려 버릴 기세로 말이죠.”
“…….”
강진호와 이현주가 멍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 황민수가 없는 게 다행이었다.
“이런 일에는 전문가를 써야 하는 겁니다.”
“이 실장처럼?”
“쯧.”
이현수가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였다.
“저는 이런 일에는 전문가 측에도 못 낍니다. 사람 하나 잡아서 조사한 다음에 뒤에 있는 놈들 줄줄이 다 캐내서 싸그리 조져 버리는 건 예로부터 검경이 제일 잘하는 일이죠.”
“…….”
이현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검찰이랑 경찰이 그런 일을 잘한다구요?”
“뭘 모르네. 검경이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마. 우리나라 검찰이랑 경찰이면 엄청 유능하지. 단지 일을 안 하는 것뿐이야. 걔들이 특진이나 인센 걸렸을 때 일하는 거 보면, 세상에 이런 독한 새끼들이 또 있나 싶을걸?”
“……그게 더 나쁜 것 아닌가요?”
“열심히 해봐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월급도 똑같은데 누가 열심히 일하겠어. 사람이 다 그런 거지. 여하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한다.
“지켜보십시오. 이걸로 저놈들이 다 알아서 할 거니까요. 아마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싸그리 다 털어버릴 테니까요. 일단 통장 내역이랑 통화 내역만 털어도 다 나올걸요?”
이현주가 눈을 찌푸렸다.
“요즘은 미국쪽 메신저를 많이 써서 그런 식으로는 못 잡아요.”
“그럼 미국에다 달라고 하면 되잖아.”
“……어?”
그러네?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다들 생각이 잘못되었다니까. 권력이라는 건 정말 무서운 거야. 작동하지 않을 때는 사람들이 권력을 쉽게 보지만, 막상 권력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실감하게 되지. 왜 돈이 썩어나는 놈들이 정치를 하겠답시고 시장 바닥을 쏘다니고, 세상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한 표 더 받겠답시고 길바닥에서 절을 하는지 말이야.”
권력은 때때로 재력과 폭력마저 압도한다.
돈과 주먹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낼 수 있는 게 바로 권력이다. 그렇기에 예로부터 재벌가나 전국구 주먹이라 불리는 이들이 하나같이 정계로 진출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했던 게 아닌가.
“여하튼 저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됩니다.”
“…….”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알아서 하겠지.’
이현수가 직접 나선 일이다. 아무리 이상해 보여도 강진호가 직접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그런 강진호를 보며 이현수가 고소를 머금었다.
‘여하튼 독특하다니까.’
강진호는 권력이라는 게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실감하지 못한다. 왜냐면 스스로 권력을 휘둘러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강진호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권력을 생각하면, 이건 정말 특이한 일이다.
‘본인은 자신이 강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각도 없는 것 같지만 말이야.’
어쩌겠는가, 저게 천성인데.
강진호라는 사람은 애초에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이현주가 조금은 날카로운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건 월권 아닌가요?”
“응?”
“국정원 쪽이나 정부 쪽과 관계를 완화하는 걸 실장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어.”
날카로운데?
이현수의 등으로 식은땀이 송골송골 배어났다.
강진호가 뚱한 얼굴로 이현수를 돌아본다.
“아니, 어, 그런 게 아니라…….”
이현수가 얼굴을 굳혔다.
“사실…… 저는 정부와의 관계를 이대로 지속하는 것도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음?”
이현수가 뒷머리를 긁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 아닙니까. 아무리 우리가 단독으로 타국과의 관계를 정립한다고는 하지만, 보호막이 되어줄 국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될 수 있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죠.”
“흐음.”
강진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효용은 너무 많아서 문젭니다. 사실 그래서 저희도 예전에는 정부 쪽의 편의를 봐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애쓰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
김명찬이 미친짓을 하며 다 날려 먹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 부분은 이해를 해주십시오. 이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동시에 두 가지를 노리겠다는 뜻이다.
이번 일을 해결하면서 정부와의 경색된 관계도 풀고, 가만히 앉아서 모든 일을 다 해결해 버리겠다는 뜻이지만…….
“그런데 그게 대답이 되나요?”
“응?”
이현주가 피식 웃었다.
“그건 이 일을 추진한 이유에 대한 대답이잖아요. 왜 보고도 없이 월권을 저질렀느냐에 대한 대답은 아닌데요?”
“…….”
아니, 저게 지금 복수하나?
이현수가 재빨리 뭔가 말을 만들어내려는 찰나, 이현주가 몸을 강진호 쪽으로 홱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회주님,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최근 이현수 실장의 월권이 도를 넘었습니다.”
“…….”
“다들 잊고 계신 것 같은데, 이현수 실장님은 이사도 아니고, 사장도 아닙니다. 일개 실장이죠. 그런데 최근 이 실장님이 회주님께 보고를 하고 허락을 맡아서 하는 일이 몇 개나 됩니까?”
“아, 아니, 그건 회주님께서…….”
이현주는 이현수의 변명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저는 지금 원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
“설사 회주님께서 실장님께 자율권을 줬다 하더라도, 그 자율권을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건 아니죠. 그건 말 그대로 바쁘거나 위급한 상황에 보고하지 않고 선 처리를 할 수 있는 권한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이 그렇게 위급한 상황이에요?”
“…….”
이현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현주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회주님.”
“음?”
“고인 물은 썩는 법이고, 과도하게 총애를 받는 이는 반드시 월권을 저지르는 법입니다.”
“…….”
“한 치의 사심도 없이 오로지 총회에 대한 걱정과 회주님에 대한 충성으로 말씀드립니다만, 이현수 실장은 이번 월권에 대해 나름 책임을 질 필요가 있습니다.”
강진호가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박아.”
이현수가 재빨리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강진호가 원산폭격을 한 이현수를 보며 뚱하게 물었다.
“그렇다는데?”
아니.
그렇게 물을 거면 머리 박기를 시키기 전에 물어야지!
“어떻게 생각하지?”
“저, 저는…….”
이현수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이현주 실장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알면 알아서 잘해야지.”
“시정하겠습니다!”
“일어서.”
“옙!”
이현수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강진호가 그런 이현수를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혼자 다 할 수 없다는 건 알아.”
“…….”
“나는 이미 예전에 한 번 그걸 겪었어.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냐. 나에게는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지.”
“……예.”
“그런데 그건 이 실장도 마찬가지겠지.”
이현수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한때,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수수깡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어. 손대면 부러질 것 같았으니까. 나약하고, 의지력도 부족하고, 독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지.”
‘아니, 그건 사실인 것 같은데요.’
강진호를 기준으로 삼으면 수수깡이라는 말도 과분하다. 이현수의 정확한 위치는 녹말 이쑤시개쯤 될 것이다.
“타인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만이 옳다고 믿기 마련이지. 그러니 의견을 구하지 않고, 고민을 털어놓지 않아. 그러다가는 폭주해 달리다가 무너지지.”
이전 삶에서 강진호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 너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현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씩 강진호가 가진 삶에 대한 통찰은 이현수가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깊었다.
이럴 때면 강진호가 이현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삶을 살아온 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심려는 무슨.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으면 그만이지. 석 달 동안 감봉이야.”
“…….”
아니! 회주님!
언제부터 그런 자본주의에 찌든 벌을 내리실 수 있게 되었습니까!
예전에는 잘못하면 패더니! 이제는 돈을 깎으시네!
차라리 패라! 차라리!
강진호가 울상이 된 이현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여하튼 그러면 저들이 알아서 한다는 거로군?”
“예! 국가 권력을 부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 기회에 목줄을 채워서…….”
“이현수.”
“예!”
“적당히 해라, 적당히.”
“…….”
이현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 얼굴을 보며 강진호는 한 가지 고민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현수가 무에 재능이 있었다면 대체 어떤 놈이 되었을까?’
확실한 것은 한 가지.
감히 강진호 따위는 마왕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저것보다 더 사악한 인간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으니까.
“그리고…….”
이현수의 얼굴이 살짝 진지해졌다.
“회주님께 허락을 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음?”
“검찰과 경찰이 나서고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해도 이 일을 직접 지시한 이를 처벌할 수는 없을 겁니다. 법적으로는 완벽한 세탁을 마쳤을 테니까요.”
“…….”
“저들의 일처리가 그렇습니다. 아마 윗선이 지시한 내용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아마 적당한 선에서 자체적으로 한 일이라고 둘러대겠죠.”
“자금은?”
“그 정도야 뭐 어렵겠습니까. 알아서 사비를 썼다고 하겠죠.”
“음.”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현수의 눈이 빛난다.
“카페의 누명을 벗는 정도는 이걸로도 가능합니다. 매출을 더 늘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거기서 멈출 것인지, 아니면 저들의 수뇌에게…….”
“빤한 소리를 하는군.”
“…….”
강진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건드린 놈을 그냥 둔 적 없어.”
이건 강진호의 첫 번째 행동 원칙이다.
결코 바뀔 수 없고, 결코 변하지도 않는.
“법으로 안 되는 거라면, 법이 아닌 걸로 해결을 해야겠지.”
이현수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단호해진 이현수의 표정을 보며 강진호가 살짝 눈을 감았다.
‘다른 게 없군.’
결국 무인계든 이곳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정글이다.
새삼 그 사실을 가슴에 새기는 강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