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15
#1514.
밝혀내다 (4)
“서종구 씨.”
“……네?”
고개를 돌린 서종구는 그의 뒤에 서 있는, 건장한 체격의 두 사람을 보며 몸을 흠칫 떨었다.
“……죄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
무슨 죄라는 부분과 뒤에 고지되는 미란다 원칙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낯선 단어라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 부분을 흘려 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서종구는 자신이 제대로 듣지 못한 부분을 되물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달려든 자들이 그를 바닥에 강제로 엎드리게 만들고는 손목에 수갑을 채웠기 때문이다.
“아, 아니! 이게!”
“조용히 해!”
뒷목을 솥뚜껑 같은 손이 짓누른다. 감히 반항을 생각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우악스러움이었다.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자세한 건 서에 가서 이야기합시다. 순순히 따라오세요.”
서종구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설마 그거 때문에?’
잘은 몰라도 지금 자신에게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 * *
“누구 사주를 받으신거예요?”
“…….”
“똑바로 말씀하세요.”
“저기요.”
책상 앞에 앉은 형사를 보며 서종구가 살짝 떨리는 눈으로 말했다.
“저는 지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진짜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하, 이 사람 보게?”
그의 앞에 앉은 형사가 피식 웃더니 모니터를 그쪽으로 돌렸다.
“여기. 이거 서종구 씨 아닙니까?”
“…….”
CCTV 안에서는 그가 점원에서 뜨거운 커피를 던지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저…….”
“발뺌해 봐야 소용없어요. 이미 동선 파악 끝났고, 서종구 씨가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까지 다 확보했으니까요. 얼굴도 너무 선명하게 나와서 누가 봐도 서종구 씨 맞거든요?”
서종구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예. 저 맞습니다.”
“인정하시네. 그럼 여기서 커피 사람한테 던진 것도 인정하시죠?”
“아니, 그건 저쪽이 너무 사람을 화나게 해서…….”
“서종구 씨.”
형사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이거 상해죄라는 건 알고 계시죠? 뜨거운 물은 흉기로 취급됩니다. 사람 머리 쪽에 이걸 집어 던졌다는 건, 타인에게 상해를 입힐 마음이 있었다는 뜻이죠. 쉽게 끝날 일 같아요?”
“…….”
서종구가 입을 꾹 다물었다.
형사가 그 기색을 살짝 살피더니 가만히 입을 열었다.
“누가 시켰어요?”
“시, 시키긴 누가 시켜요?”
“서종구 씨, 통장에 최근 거액이 입금되었던데, 서종구 씨가 직접 현금으로 넣은 거죠?”
“…….”
“그 돈 어디서 났어요?”
“아, 아니! 제가 벌어 넣은 돈까지 어떻게 벌었는지 다 밝혀야 합니까?”
형사가 고개를 내저었다.
“자꾸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서종구 씨도 좋을 게 없습니다. 요즘은 이런 식으로는 못 빠져나가요. 범죄 사실을 부인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에 형량 차이가 얼마나 나는 줄 알아요?”
형사가 목소리를 점점 고조시켰다.
“잡혔을 경우 어떻게 하라는 지시까지 다 받은 것 같은데, 그거 서종구 씨한테 진짜 유리한 일 같습니까? 저 돈이라도 챙기면 이득이죠. 그런데 그 돈, 과연 남아 있을까요?”
“……네?”
서종구의 눈이 흔들렸다.
“저 현금이 위법한 행위로 벌어들인 돈이라는 게 확인되면, 서종구 씨 통장에서 회수됩니다. 그럼 서종구 씨는 돈 한 푼 못 벌고 징역만 사는 거예요.”
“지, 징역이요?”
서종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아, 앉으세요.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이게 징역까지 갈 일인지는 제가 판단할 일이 아니죠. 그건 검사님이나 판사님이 판단하실 일이고, 저는 그냥 경험상 그렇게 보인다는 거죠, 경험상.”
“혀, 형사님, 이게 징역까지 살 일인가요?”
“아니, 이 사람이 장난하나!”
형사가 목소리를 확 키웠다. 그 기세에 서종구가 움찔했다.
“사람 얼굴에 뜨거운 커피 퍼붓고, 그것도 모자라서 나온 사람 주먹으로 후려 패놓고! 그럼 뭐, 벌금이나 받고 끝날 줄 알았어요?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징역이라니.
서종구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벌금이나 내고 끝난다고 들었는데.
“지금이라도 다 인정하고, 누가 시켰는지 이야기하면 정상참작됩니다. 그런데 서종구 씨, 그거 아세요?”
“예?”
“정상참작도 선착순이라는 거. 다른 조사받는 사람이 먼저 이야기해 버리면 서종구 씨가 말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이미 밝혀진 사실이거든요. 그럼 서종구 씨는 죄 고스란히 다 받는 거예요. 아마 범죄 사실 부인으로 가중처벌도 들어갈 수 있을걸요? 어디 보자, 이게 가중되면 대체 몇 년이지?”
“가중이요?”
서종구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자, 잠시만요. 저 말고도 조사받는 사람이 또 있다는 뜻인가요?”
“이 사람, 진짜 아무것도 모르나.”
형사가 피식 웃었다.
“이봐요, 서종구 씨. 서종구 씨랑 정확하게 같은 짓을 하다가 잡혀온 사람이 여섯 명이에요. 이것들은 사람을 쓸 거면 레퍼토리라도 좀 바꾸든가. 커피 던지고 사람 때리는 걸 여섯 명이나 똑같이 하는 건 너무 식상하지 않아요?”
“…….”
“됐어요. 긴말할 것 없고…….”
형사가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책상 위에 던졌다.
“그러니까 서종구 씨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시비가 붙어서 싸웠다, 이거죠?”
“……예.”
“그럼 뭐, 긴말할 것 없네. 일단 유치장에 들어가 있으면 됩니다. 더 조사할 것도 없는 사항이니까. 가족들한테 연락은 하셨죠? 이마 못해도 조사 끝날 때까진 구치소 신세 져야 할 테니까, 미리미리 연락하세요.”
“저, 저 집에 못 돌아가나요?”
“이 사람이 장난하나.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
형사가 고개를 내저었다.
“됐습니다. 나중에 또 조사할 테니까, 그때 뵙죠. 이쪽으로 오세요.”
자신의 팔을 움켜잡고 경찰서 한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유치장으로 끌고 가는 경찰을 보며 서종구가 넋을 놓았다.
‘이게 왜 이렇게 됐지?’
사람에게 커피를 던졌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통과된다는 말은 생전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이 일이 서종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럼 정말 징역이라도 사는 건가?’
징역까지야 그렇다 치자.
그 돈까지 모조리 회수가 된다면?
그럼 서종구는 말 그대로 돈 한 푼 벌지 못하고 징역만 사는 것이다.
“자, 잠깐만요, 형사님!”
“시간 끌지 마세요. 나 바쁜 사람이에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형사가 슬쩍 고개를 돌린다. 서종구의 팔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서 힘이 살짝 풀렸다.
“제, 제가 다 말하면 징역은 안 살 수 있나요?”
“그거야…….”
형사가 피식 웃는다.
“서종구 씨가 얼마나 협조적인가에 따라서 다르겠죠.”
서종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더 고민해 볼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와 같이 조사를 받고 있는 이가 정말 그렇게 많다면, 그 고민의 시간이 되레 서종구의 목을 조일 것이다.
“……말하겠습니다.”
“그래요?”
형사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다시 가서 앉읍시다. 배고프지 않아요? 설렁탕이라도 하나 시켜 드릴까?”
그 설렁탕을 코로 먹어야 되냐는 농담은 차마 하지 못한 서종구였다.
* * *
“……다 불었다구요?”
“여섯 명 다.”
“하루 만에?”
“말했잖아.”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대한민국 경찰들이 무능한 게 아니라니까. 제대로 뭐가 걸렸다 싶으면 못하는 게 없는 사람들이야.”
“아니, 그럼 진즉에 그렇게 좀 일하지.”
“거참, 그게 경찰 잘못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현수가 피식 웃고 말았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그냥 경찰의 나태함을 지적하고 끝내도 된다. 하지만 이현수나 이현주처럼 특정한 집단을 경영하는 이들은 절대 거기에서 파악을 끝내서는 안 된다.
“폭력범 만나서 뱃대지에 칼 들어올 거 각오하고 뺑이 치는 사람이랑 음주 단속하는 사람이 같은 월급 받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고 싶겠어. 그러다 몸 상하면 다 자기 잘못인데. 그렇게 퇴임하면 누가 챙겨주기라도 하냐고.”
“그런데 이건 그냥 열심히만 해도…….”
“그게 안 그렇다니까.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 뭐 해. SNS에 홍보 자료 잘 올린 애가 특진하는 세상인데.”
이현주가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정당한 평가와 보상이 없으면 사람은 안 움직여. 이 많은 사람들을 제대로 평가할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
그리 단순했다면 총회는 이미 홍왕계를 넘어선 최고의 세력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세상 일이 다 마음 같지 않아서 그렇지.
“여하튼 그럼 그놈들이 다 불었대요?”
“한 놈도 빠짐없이 다 불었단다.”
“범인이 누구래요?”
“아직 안 나왔어.”
“네?”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 새끼들도 보통 놈들이 아냐. 그놈들한테 이 일을 의뢰한 놈들이 전부 다 달라.”
“……진짜요?”
이건 이현주도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다.
“보아하니 한두 다리 정도 걸쳐서 심부름센터 같은 데 의뢰를 한 모양이야. 두어 계단은 더 파고들어야 어느 놈한테서 자금이 나왔고, 누가 본원인지가 나오겠지.”
“그러다 꼬이면요?”
“대한민국 경찰은 유능하다니까.”
이현수가 미소를 지었다.
‘절대 못 도망가지.’
신분은 감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돈은 감출 수 없다. 결국 자금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우리 쪽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고.”
“……개입하지 말라면서요?”
“저런 애들은 못 건드리지. 쟤들은 정말 핫바리거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애들. 돈으로 꼬드겨서 일시킨 거에 불과해. 알고 보면 쟤들도 불쌍해. 노량진에서 4수 하던 애가 생활비 떨어져서 고액 알바 찾다가 덥석 물었단다. 쟤들이 뭔 죄가 있어.”
“나쁜 놈이긴 한데…….”
“그래. 그리 치를 떨 놈은 아니지. 문제는 쟤들한테 저걸 시킨 놈들이지.”
이현수가 싱긋 웃었다.
심부름센터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합법적인 일만 해야 하는 곳이지만, 개중에는 이런 더러운 일을 도맡아서 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어둠에 반쯤 발을 들이고 사는 이들을 가장 잘 처리하는 곳이 바로 총회다.
“일단은 저쪽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 마뜩찮다 싶으면 애들 몇 명 풀어야지. 도베르만이 따로 없을걸?”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그럼 시킨 놈을 밝히면 되는 건가?”
“아, 거기까지 안 기다릴 겁니다.”
“음?”
“매출이 지금도 떨어지고 있는 중인데, 그리 느긋할 수는 없죠. 이 사건 자체는 내일부터 언론에서 때릴 겁니다. 조직적으로 영업을 방해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그 범인을 추적하는 중이라고요.”
“그래도 돼?”
“원래 한 번에 빵 터지는 것도 좋지만, 하나하나 풀어 나가는 맛도 있는 법이죠. 그리고…….”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그 새끼들도 쫄깃함 좀 느껴봐야죠. 언론에서 터지고 경찰이랑 검찰이 눈이 뻘게서 자길 추적하는 기분은 웬만한 놈들은 감히 느껴보지도 못할 감각일 테니까요.”
“…….”
“어떤 새낀지 몰라도 잠은 못 잘 겁니다. 빨리 잡아서 유치장에서 발 뻗고 자게 해줘야죠. 크, 제가 이렇게 자비롭습니다.”
“…….”
부처님이 들었으면 쌍욕을 퍼부었을 말을 태연하게 하는 이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