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17
#1516.
특정하다 (1)
[지난 목요일 경기도의 한 카페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카운터로 다가간 남성이 점원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점원에게 뜨거운 커피를 끼얹습니다.]CCTV 화면이 확대되며 손에 든 커피를 집어 던지는 모습이 선명하게 재생된다.
[화가 난 점원이 카운터 밖으로 나오자, 이번에는 점원을 다짜고짜 폭행하기 시작합니다. 점원이 남성을 제압하고 매장 밖으로 끌어냅니다.]화면 안에서 CCTV의 영상이 반복 재생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커피를 사람에게 끼얹는 자극적인 모습이 몇 번이고 다시 나온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갑질 영상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러한 갑질 행위가 동일한 프렌차이즈 매장에서 동시에 벌어졌습니다.]화면이 다른 CCTV로 전환된다. 이번에도 매장에서 손님이 난동을 부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송출되었다. 커피를 끼얹는 모습 역시 비슷하게 연출되었다.
[경찰은 이 일련의 행위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파악해 조사를 벌였고, 그에 따라 이 일련의 행위를 사주한 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화면이 전환되며 경찰서 안에서 웃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이가 나온다. 그에게 들이밀어진 여러 개의 마이크가 많은 기자들이 그곳에 모여들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을 벌였습니까?]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해서…….] [이런 일을 사주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저는 그냥 인터넷으로…….]화면이 다시 전환되며 경찰서를 배경으로 기자가 서 있는 모습이 나오기 시작한다.
마이크를 든 기자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경찰에 체포된 용의자들은 인터넷 고액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일들을 지시받았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에 경찰은 이들에게 이러한 일을 의뢰한 이들의 행적을 뒤쫓는 중이며, 빠른 시간 내에 교사범들을 잡아들이겠다는 입장입니다. 한편, 이 사건을 접한 재계 인사들은 새로이 화제가 되는 프렌차이즈 업종의 기세를 꺾기 위해서 누군가 의도적으로…….]“빌어먹을!”
콰아앙!
명패가 날아가 TV를 후려쳤다. TV 상단에 금이 쩌적 가면서 화면의 색이 변하고 소리가 사라졌다.
“일 처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죄송합니다, 사장님!”
사내가 소리를 치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몸을 낮췄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사내가 손에 잡히는 걸 모조리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뭐 하나 똑바로 하는 게 없어! 이 개 같은! 이러니 내가 너희를 믿고 일할 수 있겠냔 소리야! 어?”
“죄, 죄송합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 멍청한 새끼들아! 어떻게 일을 벌인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이런 사태가 터져! 얼마나 일을 멍청하게 진행했으면 이런 일이 터지냐고!”
정명철.
지금 화를 내고 있는 이의 이름이다.
평소에도 성격이 포악하기로 유명한 그가 진심으로 화를 내자, 주변을 채우고 있던 이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고개를 아래로 처박았다.
옆쪽에 서 있던 이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기 송구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해도 회사에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을 겁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정말입니다. 아무리 조사를 해도 뒤쪽에 우리가 있다는 건 절대 밝힐 수 없을 겁니다. 그만큼 신중을 기했습니다.”
정명철의 안색이 조금 평온해졌다.
“진짜야?”
“예. 그 점에 가장 중점을 뒀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도, 어떤 일이 벌어져도 우리 쪽에서 손을 썼다는 걸 알지 못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디테일함이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흠…….”
정명철이 턱을 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잘했어.”
“예, 사장님.”
“그럼 경찰 놈들이 우리 쪽을 들쑤실 일은 없다는 거지? 확신할 수 있어?”
“물론입니다. 조사를 해도 알아낼 수 없을뿐더러, 설사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그럴 일은 없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먹여둔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니까요.”
그제야 정명철이 안색을 완전히 풀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저 새끼들 영업에 재 뿌리겠다는 계획은 완전히 나가리된 거 아냐?”
“…….”
다들 입을 닫았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되면 쟤들 이미지만 좋아지는 거 아냐? 우리 돈 들여서 남 좋은 일만 시킨 거 아니냐고?”
분위기가 다시 살짝 험악해지자, 다들 슬슬 정명철의 눈치를 보았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일을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정명철이었으니까.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경쟁 업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것도, 하필이면 그들의 사옥 바로 앞에 입점한 카페 루오고 지점에 손님이 줄을 서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이도 바로 정명철이다.
일을 주안하고 시킨 것은 정명철이지만, 책임은 아래로 내려왔다. 억울한 일이지만, 또한 당연한 일이다.
사태를 주시하던 김상호 전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장님, 방법은 많습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
정명철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왜 저게 기사가 되게 내버려 둔 거야! 씨발, 우리가 기자 새끼들한테 푼 돈이 얼만데? 그 새끼들은 그걸 받아 처먹고도 저걸 기사로 내고 있어?”
“……기사를 막으려다 보면 이 일을 우리가 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그저 관망하는 게…….”
“머저리 같은 것들이 할 줄 아는 건 없고 매번 관망만 하지! 너희 같은 놈들한테 월급 주느니, 내가 한강에 돈을 뿌리고 말지!”
정명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하튼 이번 일로 회사에 피해 오면 너희는 다 모가지야, 모가지! 그리고 모가지 잘리는 걸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 아주 그냥 인천 앞바다에 던져 버릴 테니까!”
사내가 책상을 쾅, 걷어차고는 몸을 돌려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자 회의실에 남아 있던 이들이 일제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이들이 수군대기 시작한다.
“지금 이게 내버려 두면 된다고 할 상황이 아니잖습니까?”
“기자 놈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들고 있습니다. 아니, 애초에 이 일이 이렇게 언론을 탈 정도로 대단한 일이 아닌데…….”
“심부름센터 놈들이 벌써 쫓기고 있답니다. 몇 놈은 벌써 체포된 것 같던데.”
“그럼 이쪽도 걸려드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일을 허술하게 처리하지는 않았어요. 아무리 파도 안 나올 겁니다.”
“아니, 그건 일반적인 상황이고…….”
모두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지금의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모를 이들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딱히 조사도 없을 사건이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고, 그 느려 터진 경찰들이 이리 전격적으로 움직이는 일은 웬만해서는 벌어지지 않는다.
뒤에서 컨트롤하는 이가 있다는 뜻이다.
“대체 저 새끼들은 뭐 하는 새끼들인데…….”
웅성거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뚫고 김상호가 묵직하게 입을 연다.
“위쪽에 연락은 해봤나?”
“긁어 부스럼이라고,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연락을 합니까? 내가 죄인이요, 자인하는 꼴인데.”
“거참…….”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다음에 나와야 할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는 말을 꺼내야 한다.
하지만 서로 눈치를 볼 뿐,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그 꼴을 지켜보던 김상호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악역은 내가 다 하라는 거지?’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이럴 때마다 짜증이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윗놈이 벌이는 패악질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살아남기 급급한 아랫놈들의 압박마저 버텨야 한다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총대 맬 사람을 정해둡시다.”
김상호가 먼저 입을 열자, 다른 이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어느 선에서…….”
“뭐, 이사진들까지 갈 것 있겠습니까?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영업부에서 자체적으로 움직인 걸로 합시다. 거기 지금 부장 중 제일 나이 많은 이가 누굽니까?”
“나이보다는 영업 3팀이 영 실적이 안 좋습니다.”
“그럼 영업 3팀장이 총대 메라고 하세요.”
“먹히겠습니까?”
“아, 먹히게 해야지요. 우리가 지시한 정황이 없는데 어쩌겠습니까. 개인의 일탈로 몰고 가면 한동안은 욕을 먹겠지만, 결국에는 조용해질 겁니다. 어디 그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그럼 한 번 접선해 보겠습니다.”
김상호가 살짝 눈을 감았다.
접선을 하는 이상 상대에게는 다른 도리가 없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앞으로 승진은 물 건너갈 것이고, 한직으로만 떠돌다가 강제로 퇴사하게 될 것이다.
결국은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이 서로에게 이득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서로에게 이득이라는 부분은 착각이겠지만.
“보상은 확실히 한다고 해주세요. 적당히 살고 나오면 챙겨줄 만큼은 챙겨주고.”
“얼마나 부릅니까?”
“그거야 알아서 부르시면 될 일이지요. 진짜 줄 것도 아닌데.”
“……선금은 좀 필요합니다.”
“그건 고민을 좀 해봅시다. 저쪽 하는 것 봐서.”
“예, 알겠습니다.”
김상호가 손을 들어 눈두덩을 문질렀다.
‘빌어먹을.’
이 별것 아닌 일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어떻게든 이 끔찍한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저 망종 놈이 입만 처닫고 있어도 회사가 두 배는 더 잘 굴러갈 텐데.’
능력도 없고, 인성도 없는 놈이 회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장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온갖 패악을 부려 댄다. 몇 년 전부터 저 빌어먹을 놈이 말아먹은 일이 수도 없다.
김상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우는소리하지 마라.’
김상호가 받고 있는 높은 연봉은 이런 사건들을 수습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일단은 숨을 좀 죽이고 있어봅시다. 그런데 영 상황이 좋지 않게 흐른다면, 힘을 쓸 건 좀 써야지요. 어디 저런 잡것들 때문에 회사가 피해를 보는 게 말이나 됩니까?”
“맞습니다, 전무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요.”
열심히 맞장구를 치는 이사들을 보며 김상호가 눈을 찌푸렸다.
‘밥버러지 같은 것들.’
한때는 영민하고 똑똑했을 이들이다. 그러니 여기까지 올라왔겠지. 하지만 물은 고이면 썩고, 청정수도 오물 더미에 들어오면 오물이 되는 법.
오로지 보신에만 급급한 사내의 분위기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고 말았다. 보신을 마다하고 회사를 위해 목소리를 내던 이들은 사내 정치에 밀려 모두 퇴사한 뒤다.
‘나라고 뭐가 다른가.’
김상호가 피식 웃었다.
저들을 비판할 일이 아니다. 김상호가 바로 그 오물 덩어리의 수장이었으니까. 누구보다 열심히 정치질을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비벼 댄 덕분에 이 자리에 오른 게 아닌가.
“MK라…….”
김상호가 이를 갈았다.
‘이 업계가 얼마나 더러운지 보여주지.’
하지만 그렇게 결심하면서도 김상호는 밀려드는 불안함을 못내 지울 수가 없었다.
등 뒤에 누군가가 서 있는 듯한 느낌.
김상호는 연신 고개를 내저으며 그 불안함을 떨쳐 버리려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 불안함은 오히려 더 커지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