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28
#1527.
교육하다 (2)
성주찬은 간만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게 얼마 만이지?’
총회를 벗어난 이들이 다들 재능이 없어 그 삶을 포기한 게 아니다.
철들기도 전부터 무학을 익히던 이들이 그 투쟁의 삶이 자신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손을 턴 경우도 꽤 있었다. 바로 성주찬이 그런 경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성주찬은 어쩌면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이리 사람을 패 죽여 버리고 싶다고 느낄 리가 없으니까.’
으드득.
이가 절로 갈린다.
물론 그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 성주찬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 새끼야?”
“하~ 씨발, 내가 어이가 없네. 새파란 새끼가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와, 저거 진짜 감정 실어서 패버릴 수도 없고.”
점주들이 저마다의 분노를 담아 한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온건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다. 총회를 나오기 전이었다면 만나는 순간 일단 주둥아리에 주먹부터 박아 넣고 시작했겠지만, 지금은 나름 법과 질서가 무엇인지 알게 된 이들 아닌가.
이현주가 보았다면 동네 양아치 될 놈을 가맹점주 시켜놨더니 사람 되었다고 흐뭇해할 광경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막상 당하는 이는 전혀 그런 부분을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 아아…….”
정명철은 거의 정신이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생각해 보라.
대낮에 납치되어 어딘지도 모를 곳에 끌려온 것도 충분히 공포스러운 일인데, 이제는 그의 주위를 누가 봐도 사람 몇은 죽이고도 남았을 인상을 가진 놈들이 둘러싸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정명철이 아니라 웬만큼 담이 큰 사람도 이런 상황에서는 오줌을 지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혼자 버티느라 쇠약해진 정명철은 오죽하겠는가.
“사, 살려주세요!”
“살려줘?”
점주 중 하나가 어디서 챙겨 온 것인지 모를 칼을 혀로 핥았다.
“이 새끼가 배때기에 구멍 뚫어서 모가지에 창자를 둘둘 감아버릴라. 지가 한 짓은 생각 안 하고, 살려줘?”
“야, 이 새끼야! 너를 살려주느니, 차라리 모기를 살려주는 쪽이 세상에 더 이롭겠다.”
“진짜 죽이면 안 돼? 아니면 대가리 깨버려서 다시는 말 못하게 만들거나.”
뭘 들어도 살벌한 말뿐이다.
하지만 정명철을 둘러싸고 있는 점주들을 바라보는 이현수는 그저 피식피식 웃기만 했다.
“저 새끼가 든 칼, 저거 빵 자르는 칼 아냐? 저걸 왜 가지고 왔어?”
“내일 아침에 팔 거 자르다가 소식 듣고 바로 왔다는 것 같은데요.”
“내일 쓸 빵을 지금 잘랐다고? 저 새끼 재교육.”
“예.”
이종욱이 가차 없이 휴대폰에 이현수의 지시를 써넣었다.
괜히 빵칼을 들고 왔다가 참혹한 결과를 맞이한 이가 생겼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점주들이 하는 양상을 둘러보던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야, 쟤들 많이 착해졌다. 보자마자 목 따버리겠다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그래도 좀 참네.”
당장에라도 앞으로 달려 나갈 듯이 몸을 들썩이는 이들은 있지만, 그런 이들은 주변에서 알아서 막아주었다.
“성주찬이 오라고 해.”
“예.”
이종욱이 앞으로 달려 나가 성주찬을 불러왔다.
“부르셨습니까, 실장님.”
“음.”
이현수가 성주찬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잡아왔다.”
“감사합니다.”
성주찬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니. 근데 진짜로 잡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듣자하니 쟤 재벌 3세라면서요?”
“재벌 3세가 뭐 대단한 건가. 대한민국에 재벌 3세만 해도 몇 백 명은 될 텐데.”
물론 태광 그룹이라면 재벌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지만, 이현수는 딱히 뒷감당을 걱정하지 않았다.
뒷감당.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지금의 총회는 뒷감당을 걱정할 만한 곳이 아니다. 총회가 작정하고 뒤집으려 하면 오히려 태광 그룹이 그 뒷감당을 걱정해야 한다.
“정말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죽이면 안 돼.”
“에이,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그게 뭐 죽을죄라고.”
“불구도 안 된다.”
“어, 그건 좀 아쉬운데…….”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감정은 알겠는데, 적당히 해라. 저 새끼가 엿 같은 건 사실이지만, 조금 냉정하게 보면 그렇게 큰 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패는 것도 괜찮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 대신에 후유증은 남기지 마. 이 기회에 사람 하나 만들어본다 생각하고 적당히 조져.”
“명심하겠습니다.”
성주찬이 희희낙락하며 웃었다.
“그래, 말귀를 잘 알아들은…….”
“제가 또 후유증 안 남게 사람 패는 건 끝내주거든요.”
“…….”
아니, 전혀 이해 못한 것 같은데?
‘뭐, 상관없겠지.’
후유증만 안 남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현수는 저놈을 땅에 묻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저놈이 저지른 일에 화가 나서가 아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저 조금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남을 제멋대로 짓밟으려 드는 저 마인드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자격은 없겠지만.’
타인을 짓밟으며 살아온 것은 이현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약자들을 철저히 밟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현수와 정명철의 다른 점이 있다면, 이현수는 결코 재미를 위해서, 그리고 조금의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서 사람을 짓밟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현수는 저런 타입들을 경멸했다.
‘김석일 같거든.’
트라우마처럼 그의 안에 박혀 있는 김석일의 얼굴이 떠오른다. 옛 생각에 기분이 더러워진 이현수가 바닥에 침을 뱉고는 다시 점주들을 바라보았다.
흥분해 뛰쳐나간 점주 중 하나가 정명철의 멱살을 움켜잡고 있었다.
“어때? 그 잘난 재벌 간판 떼고 나니 현실이 좀 보이나?”
“어어…….”
“넌 몸 성히 돌아갈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내가 너 때문에 앓은 속을 생각하면 당장 패 죽여도 성이 안 풀린다. 넌 여하튼 뒈졌어.”
멱살을 잡은 이가 정명철을 그대로 내팽개쳤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정명철이 초점 없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헤, 벌어진 그의 입에서 그가 지금 얼마나 공포에 질려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공포에 대항하는 방법은 사람들마다 다른 법이다.
“이, 이 개새끼들아!”
“오?”
이현수가 흥미를 되찾았다는 눈으로 정명철을 바라보았다. 그걸로도 모자라다는 듯이 쪼르르 달려가 점주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정명철이 악에 받친 눈으로 발악하고 있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이 개새끼들아!”
“하? 이 새끼 보소?”
“이거, 조금 전까지 겁먹은 표정 짓고 있더니, 그게 다 연기였던 모양이네? 와,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잘못한 게 없다는데요?”
정명철이 이를 갈았다.
얼마나 세게 갈아붙였는지 입안에서 뭔가 부러지는 듯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런 건 누구나 다 하는 거라고! 내가 안 했으면 손대는 사람이 없었을 것 같아? 이 씨발, 이 동네는 원래 이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왜 괜히 나한테 지랄이야!”
이현수가 발악하는 정명철을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이래야지.’
이래야 교육하는 맛이 있는 법이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너무 순순히 따라와서 맥이 빠지던 찰나였다.
“너희 개새끼들, 니들이 무사할 것 같아? 죽여, 이 개새끼들아! 내가 너희 얼굴 똑똑히 봐놨어. 내가 여기서 나가면 너희가 살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누군지 알아? 내 태광 그룹 손자야!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어휴, 무서워라.”
점주들이 실실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정명철은 그의 신분이나 배경이 이들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하기야 알 리가 없겠지.
점주들이 정명철 같은 인간을 잘 보지 못한 것처럼, 정명철 역시 자신의 배경을 무시하는 이들은 거의 처음 만나봤을 테니까.
“억울해? 억울하다고? 개 같은 소리 하지 마! 억울하면 힘이 있든가! 이 개 같은 새끼들아, 너희랑 나랑은 인종이 달라.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는 말이야! 그런데 왜 내가 너희 생각을 해줘야 돼? 왜 내가? 웃기는 소리 하지 마!”
흥분하여 소리친 게 힘겨웠는지, 정명철이 컥컥대며 바닥을 짚었다. 한참을 기침하던 정명철이 바닥에 가래를 뱉어내고는 이를 악물고 모두를 노려보았다.
“개보다 못한 평민 새끼들이 주제도 모르고! 내가 이렇게 당할 사람 같아?”
점주들이 정명철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숫제 말이 통하지 않는 수준이다.
“일단 저 새끼 반쯤 죽여놓고 시작하자.”
“저건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 일을 벌여도 크게 벌일 놈이야.”
그때였다.
“그리 틀린 말도 아니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점주들이 허리를 쭉 펴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열어! 빨리 길 열어, 새끼들아!”
누군가의 외침에 뒤를 돌아본 점주들이 좌우로 물러나 정명철에게 가는 길을 열었다. 그러자 그 길로 한 사람이 태연하게 걸어왔다.
이현수가 몰려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와 걸어오는 강진호에게 빠짝 붙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이현수가 강진호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는 재빨리 불을 붙였다.
‘아오, 저 간신배.’
‘저 양반은 왜 지금 태어났냐.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내시가 딱인데.’
점주들의 불만 어린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한 이현수가 한 걸음 물러나 강진호의 뒤를 따랐다.
느긋하게 걸어간 강진호가 정명철의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마주 댔다.
“아니. 맞는 말이지.”
“…….”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입에 물린 담배를 손으로 옮기고는 가볍게 웃었다.
“나는 동의해. 억울하면 힘이 있어야지. 힘이 없는 이가 말하는 억울함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지. 세상이 그런 걸 뭐 어쩌겠어.”
정명철이 핏발 선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내가 뭘 잘못…….”
“착각하지 마.”
“…….”
강진호가 정명철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는 네가 뭘 잘못했다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
무거운 살기가 정명철을 내리눌렀다.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건 네 권리지. 그런데 말이야…….”
강진호가 담배를 물고는 깊게 빨아들였다. 다시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널 어떻게 하든 그건 내 권리란 말이지.”
“……뭐?”
“억울해?”
“…….”
“억울하면 힘이 있든가.”
정명철의 몸이 덜덜 떨렸다. 강진호가 갈 곳을 몰라 어지러이 움직이는 정명철의 눈동자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나는 네 말에 동의해. 힘이 있는 자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그게 지금까지 네가 살아온 방식이지. 그런데…….”
강진호가 검지를 펴 정명철의 이마를 꾹꾹 눌렀다.
“너보다 더 강한 사람을 만날 경우는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군.”
“…….”
“상대를 죽이려는 자는 자기가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지. 마찬가지야. 상대를 짓밟으려는 자는 자기가 짓밟힐 각오를 해야 돼. 세상은 그런 거니까.”
“나, 나는…….”
“그러니까 이제 한 번 느껴봐. 너보다 더 강한 자에게 짓밟히는 게 어떤 기분인지. 나는 그냥 너를 짓밟고 싶을 뿐이니까. 어설픈 이유 같은 건 가져다 대지 말자고.”
강진호가 정명철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럼 수고해.”
강진호가 몸을 일으켜 돌아서자, 점주들이 다시 정명철을 둘러쌌다.
강진호가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던지며 건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