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3
#152.
전역하다 (2)
찰칵.
강진호는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잘못하면 맞는 건가.”
그동안 수많은 선임들이 모포 말이를 당하는 꼴을 지켜봐 왔다. 강진호는 딱히 참여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그를 모포 말이 하러 달려든다고 정색할 생각은 없었다.
돌이켜 보면 군대는 참 이상한 곳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어느 곳보다 경직되어 있지만, 그 어느 것보다 동질감으로 엮여 있는 곳이기도 했다.
시간이 너무 안 간다는 단점만 뺀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곳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강진호는 얻은 것도 있었고.
몸 안에 흐르는 기를 점검한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삼 할인가.’
중원에서 이룬 경지의 삼 할 정도는 복구한 것 같았다. 이 세계로 돌아온 지도 벌써 오 년은 지난 것 같은데, 이제 겨우 삼 할을 회복한 것이다.
언제 원래의 경지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중원에서 그가 이룬 경지가 그만큼이나 높아서이기도 하지만, 이 세계에서 모을 수 있는 기가 중원의 그것보다 많지 않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었다.
세계의 한계라고 할까?
이 깊은 산골로 들어와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무학에 전념할 시간을 얻지 못했다면,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르는 것도 요원했을 것이다.
‘딱히 전부 회복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이 세계에서 과거 적천마존의 경지는 과했다.
과한 것은 언제나 화를 부르는 법.
숨길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주머니 속에 꼭꼭 숨겨둔 그의 무위가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런 것을 감안한다면 무위를 더 높이는 것도 신중해야겠지만…….
문득 강진호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들.
이 세계에는 그들이 있다.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른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딱히 그를 건드리지 않았지만, 이제 사회로 돌아간다면 본격적으로 그에게 접촉해 올 확률이 높았다.
그들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의 경지에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다.
끼익.
문이 열리더니 주영기가 허리를 부여잡으며 밖으로 나왔다.
“끄응.”
“…….”
강진호는 그 꼴을 보며 웃고 말았다.
‘당했네.’
보나마나 지금 제대로 밟히고 나오는 것이리라.
“아오, 새끼들.”
“그러게 평소에 좀 적당히 하지.”
“내가 뭘 어쨌다고!”
주영기는 억울하다는 투였다.
강진호는 딱히 1생활관의 인원들에게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주영기의 일을 알고도 묵인한 것은 분명히 죄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강진호가 나서서 처리할 만큼 큰 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그 죄를 징치한 것은 강진호가 아닌 주영기였다.
강진호는 그저 간부들을 움직여 주영기를 분대장으로 임명하고, 은근히 주영기에게 힘을 실어주었을 뿐이다. 간부들과 강진호를 등에 업은 주영기는 말 그대로 칼춤을 추었다.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주영기가 후유증 없이 복귀한 것이 다행이지만, 1생활관 인원들의 입장에서는 절대 다행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업자득이지.”
“끄응.”
주영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이상엽이 그 새끼… 눈에 독기 들어찬 거 봤냐?”
“봤다.”
“썩을 놈,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강진호는 웃고 말았다.
물론 잘해줬다는 것이야 주관적인 관점이니까 생각하는 것은 다 다를 수 있겠지만, 보편적인 관점으로 맞춰봤을 때 이상엽이 패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주영기는 감사해야 한다.
자신이 당한 것이 있기 때문인지 정신적으로 몰아가거나 과한 일을 시키지는 않았다.
그저 깐죽거렸을 뿐.
싫어서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열 받아서 패 죽이고 싶게 만드는 것이 주영기의 특기였다.
“다사다난했네.”
“그래, 다사다난했지.”
“사회 나가면 뭐할 거냐?”
주영기의 물음에 강진호는 살짝 고민하는 듯하다가 대답했다.
“일단은…….”
“음…….”
“복학해야지.”
주영기가 인상을 확 썼다.
“뭐 그리 빤한 말을 그렇게 고민하는 듯이 말하냐? 별것도 아니구만.”
“너는?”
이번에는 주영기가 고민하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아직 잘 모르겠다. 나야 뭐, 학교 다니다 온 것도 아니고…….”
“고향으로 갈 거냐?”
“원래라면 그랬어야 하는데, 민기도 지금 서울에 있고 할머니도 서울에 계시니까 다시 내려가기보다는 내가 서울에 자리 잡는 게 낫지 않겠냐?”
“그렇지.”
“아무래도 민기가 학교를 옮기는 것보다는 내가 서울에서 직장을 잡는 게 나을 것 같다. 서울에 회사가 그렇게 많은데, 내가 일할 곳 하나 정도야 없겠냐.”
강진호도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조규민이 이미 손을 써두었기에 주영기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서 격리되었다. 그리고 조규민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 주영기의 동생인 주민기는 성심 보육원에 들어와 있고, 할머니는 치료에 전념하고 있었다.
집에서 생활해도 무리는 없지만, 여기저기 좋지 않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기 위해서 주영기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재활 병원에서 생활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주영기도 그들의 생활권에 맞춰주는 것이 옳았다.
“야.”
“응?”
“씨발, 너 전화 받아라.”
“응?”
“군대에서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굴던 새끼들도 전역하고 나면 연락 안 된다는데, 너처럼 데면데면한 놈이야 빤하지. 연락 안 받기만 해봐라. 찾아가서 죽여 버릴 테니까.”
“하…….”
강진호는 헛웃음을 머금었다.
정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큰일이다. 나중에 애인이라도 생겨서 결혼 안 해주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할까 봐 걱정이었다.
물론 그 정도로 정신없는 놈은 아니겠지만.
“알았다.”
“전화 안 받아봐, 진짜. 내가 너 사는 곳이랑 학교도 다 알고 있다. 제대로 진상이 뭔지 보여줄 테니까.”
“…알았다고.”
솔직히 이 협박은 좀 무서웠다.
그의 어머니가 주영기가 작정하고 난동을 부리는 꼴을 보시면 무슨 말을 하실지가 걱정이었다.
― 진호야, 너 군대 가서 조폭 사귀었니?
그런 상황만은 무조건 막아야 했다.
“그리고 진호야.”
“응.”
“하나 묻고 싶은 건데…….”
“어.”
주영기가 강진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 말하려는 듯 달싹이던 그의 입술이 끝내 열리지 않았다.
“아니다. 됐다.”
“싱겁기는.”
“어차피 물어봐야 대답 안 해줄 게 빤한데, 시간 낭비해 봐야 뭐하겠냐. 아고, 들어간다. 이 새끼들이 그래도 냉동이라도 사서 돌리는 모양인데, 계속 밖에 있다가 한 대 더 맞겠다. 들어간다.”
“그래.”
강진호는 주영기의 뒷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주영기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도 김학철과 노수봉에 관한 일일 것이다.
그는 주영기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영기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주영기도 이미 짐작은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포대 내에서 강진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주영기일 테니까.
“이제 전역인가.”
군 생활이 딱히 힘들다거나 크게 감명 깊던 것은 아니지만, 전역이라는 것이 이상하게도 사람의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차분히 전역에 대한 생각을 하던 강진호는 뜻밖의 방문객을 맞아야 했다.
“아저씨.”
“응?”
“포대장실로 와보라는데?”
강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부르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부른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테니 가보면 그만이다.
포대장실에 도착한 강진호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강진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강진호가 안에 있는 사람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에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딱히 그를 찾아올 인연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필승.”
강진호가 경례를 붙이자 안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봐요.”
“예, 그럼.”
포대장이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앉아 있던 이가 미묘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앉으십시오.”
‘존대?’
강진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 사람이 자신을 찾아온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자신에게 존대를 하는 것은 더 이상했다.
아무리 전역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지만 그는 여전히 병장의 신분이고,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소령이었기 때문이다.
“뜻밖입니까?”
“조금은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다시 뵐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태식 소령님.”
자리에 앉아 있던 이는 남태식 소령이었다.
과거 주영기의 일이 벌어졌을 때 강진호를 따로 불러 주영기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던 이다.
그만큼 구린 사건이 터졌는데 아무도 잘못한 것이 없을 리가 없다고 사정하던 그의 얼굴은 아직 강진호에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적어도 그는 지금까지 강진호가 지켜본 이들 중 유일하게 진심으로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선 이였다.
그러니 나름 좋은 인상은 가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는 말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태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나가실까요?”
“…….”
강진호는 이해할 수 없는 남태식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의 말에 딱히 거부를 표하지는 않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이전에 그가 봤던 사람과 동일인이라면, 지금의 행동에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은 하자는 대로 따라주면 된다. 의문이 조금 생겼다고 그 자리에서 캐묻는 것은 강진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남태식이 몰고 온 레토나가 현관에 세워져 있었다. 남태식이 포대장을 불러 뭔가 대화를 하더니, 포대장이 강진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예.”
강진호는 두말없이 레토나에 올랐다.
그러자 남태식이 지체 없이 차를 몰아 강진호를 포대 밖으로 데리고 갔다.
포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강진호를 데리고 간 남태식이 차를 세웠다.
남태식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강진호는 가만히 그의 담배를 받아 들어 입에 물었다.
찰칵.
라이터를 켜 강진호의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붙여준 남태식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이제 전역을 하신다고 하더군요.”
“예.”
“그럼 앞으로는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강진호는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담배를 빨아들이고는 천천히 연기를 뿜어냈다.
“사회로 나가시면 하실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강진호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먼저 제게 왜 그런 것을 물으시는지와 아까부터 왜 계속 존대를 하시는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사병과 간부의 사이에 이런 식의 존칭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남태식이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당연한 겁니다.”
“…….”
강진호는 순간적으로 황정후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이제 곧 전역을 할 그이니 황정후와 연관이 되어 있는 만큼 사회적인 대접을 해주겠다는 것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남태식의 말은 강진호의 생각을 완전히 깨놓았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대답이 남태식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살아온 세월로만 따지면 강진호 씨는 충분히 존칭을 받을 자격이 있으시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귀환자시여?”
강진호의 눈이 남태식의 웃고 있는 얼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