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35
#1534.
대비하다 (4)
“거, 뭐 얼마나 돌았다고 이 난리야? 빨리빨리 안 뛰어?”
방진훈이 그리 높지 않은 목소리로 일갈했다. 하지만 듣는 이들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저저…… 저거 뒤처지는 것 보소? 이 새끼들이 빠져 가지고!”
“끄으으으…….”
천태훈의 뒤에서 헐떡이며 달리던 이가 다 넘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 저 양반 갑자기 왜 저러는 겁니까?”
“……닥치고 달리기나 해.”
“끄으응.”
천태훈이 손을 들어 얼굴에 줄줄 흐른 땀을 닦았다.
‘나라고 알겠냐고!’
조직 생활을 해본 이는 알 것이다.
아니, 군대에만 갔다 와도 대부분은 알 수밖에 없다.
상사의 기분이 급락하는 데는 딱히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윗대가리란 것들은 오묘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라서, 아무 이유 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도 갑자기 기분이 돌아버려서 사람을 괴롭혀 대기 마련이다.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 방진훈이 돌아버렸다는 게 그들의 불행이었다.
“이 새끼들이 빠져 가지고! 무인이란 새끼들이 뜀박질 좀 한다고 헥헥거려? 니들이 그동안 얼마나 수련을 제대로 안 했으면 이 꼴이냐? 다 게을러 터져 가지고!”
이사님.
이 속도로 계속 달리면 사람이 죽습니다.
저희가 그나마 그동안 열심히 수련을 해서 이걸 버티는 거지, 아니었으면…….
“끄르르르륵.”
천태훈의 앞에서 덜리던 이가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갔다.
털썩!
‘저리됩니다.’
천태훈이 쓰러진 이를 뛰어 넘어 계속 달렸다. 어설프게 저놈을 도우려고 했다가는 방진훈의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어쭈? 쓰러져?”
방진훈이 눈일 살짝 뒤집으며 쓰러진 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쓰러진 이의 멱살을 움켜잡고 질질 끌어 구석으로 갔다.
홱!
쓰러진 이를 구석으로 집어 던지자,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그의 상태를 살피고 명단을 작성한다.
“낙오한 새끼들 명단 제대로 써놔라.”
“예!”
“여하튼 이 새끼들이 빠져 가지고.”
방진훈이 눈을 부라렸다.
물론 욕을 듣는 이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들은 100m 달리기 선수들이 혀를 내두를 속도로 마라토너만큼 뛰고 있었으니까.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벌써 심장마비가 왔을 것이다.
“이 새끼들아, 니들이 내공을 쓴다고 체력을 무시해도 될 것 같아? 마지막에 도움이 되는 건 내공 같은 게 아니라 체력이야. 니들 요즘 걸을 때도 내공 쓰더라? 배때기를 다 뜯어버려야 정신 차리지?”
“…….”
“어디 한 번 낙오해 봐. 저기 누워 있는 애들이 편해 보이면, 니들도 한 번 누워봐. 내가 친히 예뻐해 줄 테니까!”
그 말을 듣고 낙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이가 있겠는가.
천태훈이 이를 악물고 달렸다.
‘이 동네 윗대가리들은 왜 하나같이 이 모양이야!’
사람이 좀 쉬는 게 그렇게 눈꼴시리…….
그때였다.
“뭐 하는 거지?”
모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회주님!”
“아아아! 회주님!”
“오셨군요!”
모두의 눈에 강진호가 들어왔다.
천천히 연무장을 향해 다가오는 강진호를 보는 이들의 눈에 희망이 차올랐다.
총회의 복지천사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연무장을 둘러봤다.
그 모습을 본 방진훈이 강진호를 향해 달려왔다.
“오셨습니까?”
강진호가 살짝 가라앉은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수련?”
“예. 요즘 애들이 체력이 영 빠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흐음…….”
강진호가 슬쩍 옆을 돌아본다. 연무장을 가득 채운 이들이 차마 멈추지도 못한 채 그에게 간절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멈춰.”
강진호가 한마디를 하자마자 모두가 그 자리에 멈춰서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으아…… 죽는다. 진짜…….”
거침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을 멈춰 세운 강진호가 불만 어린 눈으로 방진훈을 돌아본다.
“이런 식의 수련이 도움이 되나?”
방진훈이 뒷머리를 긁었다.
“물론, 음…… 무인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수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체력이 부족하면 배운 것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니까요. 회주님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만하겠습니다만.”
모두가 화색을 띠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역시 회주님!’
‘꼰대가 아니야! 저 양반은 꼰대가 아니라고!’
‘살려주십쇼!’
수련에는 불만이 없다. 더 강해지는 건 총회에 몸을 담은 모든 이들의 바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수련은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강해지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비효율적인 수련 말고 효율적이고 도움이 되는 수련으로 땀을 흘리고 싶은 게 그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방진훈을 막아줄 사람은 강진호밖에 없다. 총회에 방진훈보다 나이가 많고 더 강한 이사들이 몇이나 있지만, 그들도 방진훈의 수련 방식에는 딴지를 걸지 못한다.
우선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는 의미도 있지만, 총회의 기본 수련생들은 애초에 방진훈의 담당이라는 합의가 있는 것이다.
그 합의에서 벗어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지금 그들의 앞에 나섰다.
열광적인 시선을 받으며 말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들의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예?”
방진훈이 고개를 갸웃하자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이런 평지에서 달릴 일이 뭐가 있지?”
“…….”
강진호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해야 할 수련은 많아. 그렇다면 같은 수련을 하더라도 효율적으로 해야지. 이건 단순히 체력 단련 이상의 의미는 없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기동훈련도 같이 해야지.”
강진호가 손가락을 펴 옆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방진훈도 강진호가 뭘 가리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저 손끝이 가리키는 곳이라고 해봐야…….
“사, 산이요?”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야전은 저런 데서 벌어지지. 이왕 체력 훈련 하는 거,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않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회원들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심지어 방진훈마저도 당황했다.
“어……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산에는 길이 없어서 이만한 이들이 달릴 일이…….”
“길에서 싸우나?”
“…….”
강진호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 내가 옛날에 해봤는데, 대충 삼 일 정도만 돌리면 없던 길이 만들어져.”
……그렇겠지.
이만한 인원이 하루 종일 달리면 풀은 다 죽고 땅은 다져지고, 나무는 뽑혀 나갈 테니까. 당연히 길이 만들어지겠지, 당연히.
“그냥 그렇다는 거야.”
강진호가 방진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고생해.”
“예.”
“그리고…….”
“……예?”
강진호가 턱짓으로 회원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스물두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
“…….”
“내공 쓰더라.”
“…….”
“방 이사도 눈썰미가 좀 줄었어. 옛날 같았으면 바로 알았을 텐데. 본인 수련도 좀 신경 쓰고.”
“……주의하겠습니다.”
“그래.”
강진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본관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방진훈이 강진호가 본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도끼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살기에 회원들이 움찔했다.
“방금 지적받은 새끼.”
딱히 더 말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스물두 번째 줄에서 한 사람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열외.”
“……예.”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한 이가 줄 밖으로 벗어나자 방진훈이 혀를 찼다.
“니들, 회주님 오신다고 좋아했지?”
“…….”
“나는 너희 같은 멍청이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단장이 오면 중대장이나 대대장이 하는 미친 짓을 해결해 줄 거라고 믿는 놈들 말이야.”
방진훈이 한심하다는 듯 회원들을 바라봤다.
“걔들이 왜 사단장이겠냐. 니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병사들을 생각하는 사람이면 사단장까지 올라갔겠냐? 거꾸로 말하면, 그 양반들은 일선 지휘관으로 있을 때는 더 미친놈들이었다는 뜻이야.”
방진훈이 턱짓으로 본관을 가리켰다.
“저기에 있는 양반들은 뭐 사람이 좋아서 저기 앉아 있는 줄 아냐? 아서라. 나는 저 양반들에 비하면 천사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회주님이 직접 너희 굴렸으면 너희는 반도 못 버티고 다 도망갔다.”
“…….”
“뭐, 여하튼.”
방진훈이 자신도 살짝 질린다는 얼굴로 산을 바라보았다.
“들었지?”
“…….”
“나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뭐 어쩌겠냐? 까라면 까야지. 사단장도 아니고, 참모총장이 오셔서…… 아니, 대통령이 오셔서 저리 말하고 가는데, 내가 뭔 수가 있겠냐. 일어나라.”
“…….”
“일어나.”
주저앉아 있던 회원들이 좀비처럼 몸을 일으켰다.
“천태훈이.”
“……예.”
“코스 대충 잡아서 산 타. 한 바퀴 도는 데 십 분쯤으로 잡고. 보자, 대충 한 스무 바퀴만 돌고 시작하자.”
“……이사님, 십 분씩 스무 바퀴면 이백 분이고, 이백 분이면 세 시간이 넘는데요?”
“어. 알아.”
왜 압니까?
알면 안 되죠. 계산이 틀렸다고 말씀하셔야죠! 그걸 아시면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야, 회주님이 지시한 건데 한 두어 바퀴 돌고 내려오면 회주님이 내가 반항한다고 생각하실 거 아냐. 나는 여기 한 두어 바퀴 더 돌고 끝내려고 했어. 그런데 뭘 어쩌겠냐?”
“…….”
“그러니까 니들이 병신이라는 거야. 회주님 보면 젖 먹던 힘까지 빼서 달렸어야지. 지금 진짜 죽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보였어야지. 거기서 속도 늦추고 초롱초롱하게 돌아보면 저 양반이 ‘아이고, 우리 새끼들 고생한다’ 할 것 같았냐?”
“…….”
“가.”
“……눼.”
천태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선두로 나섰다.
“출발하자.”
다들 넋이 나간 얼굴로 천태훈을 바라본다. 하지만 천태훈은 그들의 시선을 등으로 받으며 전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빌어먹을!”
“차라리 죽이지! 진짜 돌아버리겠네!”
뒤따르는 이들이 쌍욕을 내뱉으면서도 착실하게 천태훈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방진훈이 그 광경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낙오하는 새끼들은 돌려보내.”
“예!”
우르르 산으로 달려 올라가는 회원들을 보며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그러게 왜 거길 돌아보나. 눈도 마주치지 말았어야지.
요새 강진호가 워낙 복지 쪽에 신경을 쓰다 보니 이미지가 뒤섞인 모양인데, 원래 강진호는 수련에 있어서는 가차 없는 사람이다.
“빠져 가지고는.”
방진훈이 고소를 머금고 몸을 돌렸다.
그가 그냥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니다. 일본의 침략 이후로 총회는 전투다운 전투를 겪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그때 바짝 독이 올랐던 놈들이 슬슬 헤이해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적절히 조여주지 않으면 수련과 발전에 지장을 주게 된다.
‘내가 악역을 하면 되는데, 회주님도 참.’
강진호도 이런 방진훈의 생각을 알고 끼어든 게 분명하다.
“그럼 나도 밥값을 해야지.”
방진훈이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이들이 새파래진 얼굴로 방진훈을 바라봤다.
“아이고, 열외하셨어요?”
“…….”
“괜찮아, 괜찮아. 나는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냐. 사실 체력은 반쯤은 천성적으로 타고나는 거잖아. 개중에 체력이 약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 걱정하지 마.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그, 그렇…….”
“다만.”
방진훈이 씨익 웃었다.
“그렇다고 계속 약할 수는 없잖아? 자, 지금부터 나하고 같이 체력 한 번 키워보자.”
“…….”
“에이, 걱정하지 말라니까. 늘 수 있어. 늘 수 있어. 뒈지기 싫으면 늘겠지.”
“…….”
방진훈이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어나.”
“…….”
총회가 참혹한 비명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