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38
#1537.
재고하다 (2)
“뭐, 그리 대단한 건 없습니다.”
이현수는 느긋하게 정명철과 함께 걸었다.
“중요한 건 하나죠. 입조심을 해야 한다.”
이현수가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대고 빙그레 웃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겠습니까?”
정명철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러다 목이 부러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이현수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이해가 빨라서 좋군요.”
이현수가 손을 뻗어 나란히 걷는 정명철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런데 정말 이해하셨습니까?”
“……예?”
정명철의 눈가가 떨리기 시작한다.
그가 겁먹은 얼굴로 이현수를 바라봤다.
강진호?
물론 무서웠다. 하지만 정명철의 입장에서는 이 사내에게서 느끼는 공포가 강진호에게서 느끼는 공포보다 훨씬 더 컸다.
그의 본능이 그를 해하려는 자와 해하지 않으려는 자를 구분해 내고 있었다.
“정명철 씨.”
이현수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는 당신이 무척 싫습니다.”
“…….”
“아마 당신은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이현수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당신은 회주…… 아니, 강진호 씨를 무척 고깝게 여기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분께 감사드리는 게 좋을 겁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당신이 제 발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절대 없었을 테니까요.”
정명철은 알 수 있었다.
이건 절대 협박 같은 게 아니다.
이현수는 이리 멀쩡하게 돌려보내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자꾸만 아쉬운 눈으로 정명철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정명철은 자신이 금붕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어항 밖, 고양이의 시선을 느끼는 금붕어.
강진호라는 어항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미 그는 고양이의 노리갯감이 되어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이다.
“이걸 단순한 협박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이현수가 묘한 눈으로 정명철을 바라보았다.
“그럼 그때부터는 정말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정명철이 떨리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에 말이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듣고는 있지만 뭘 듣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가 이해한 것은 단어가 아니라 분위기와 그가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건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입은 화를 부르는 창구고, 만악의 근원이죠. 저는 당신이 쥐 죽은 듯이 살기를 바라지만, 회주님께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으니 어떤 행동을 하고 살든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이곳에서 당신이 나가는 순간, 저는 당신을 기억에서 지울 겁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예.”
“하지만 만약 제 귀에 당신이 우리를 언급했다는 말이 다시 들려온다면…….”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장담하건대, 그때 당신은 이곳으로 오지 못할 겁니다.”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제 말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기억력이라는 건 그리 대단하지 않아서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당신은 오늘 들은 말을 모두 기억해야 합니다.”
“…….”
“자, 그럼 좋은 경험이 되셨기를.”
현관으로 나온 정명철의 눈에 대기하고 있는 커다란 세단이 보였다. 그러더니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정명철에게 다가와 그의 눈에 안대를 씌웠다.
눈이 가려지자 정명철이 움찔하고 뒤로 물러났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저 길을 좀 숨기고 싶은 것뿐이니까요. 생각하시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럴 거라면 굳이 이리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잖겠습니까?”
그제야 정명철이 진정했다.
“이쪽으로.”
이현수가 눈을 가린 정명철을 잡아끌었다. 정명철이 힘없이 그의 손에 끌려 계단을 내려갔다.
차 문을 연 이현수가 정명철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차 문을 닫아버렸다.
안으로 밀려 들어간 정명철이 손을 더듬어 시트를 확인하고는 몸을 돌려 앉았다.
엉덩이에 차 시트가 닿는 순간,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간다. 며칠 만에 느끼는, 익숙한 현대 문물의 감각이 정명철을 위안해 주고 있었다.
“아니, 아니. 아직 긴장 푸시면 안 되죠.”
이현수의 능글능글한 목소리에 정명철의 몸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긴장을 푸셔도 됩니다. 하지만 긴장을 푸시면 안 됩니다. 이 말을 이해하십시오.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셔도 문제는 없지만,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을 다시 즐기면서 사실 수 있을 테니까요.”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의 귀로 파고들었다.
정명철이 이를 악물자, 이현수가 됐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그런 태도만 유지할 수 있다면 별문제가 없을 겁니다.”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일주일간의 경험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경고하는데…… 헛수작 부리지 마십시오. 파멸은 욕심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건 욕심이지, 이성이 아닙니다. 잊지 마십시오.”
이현수가 차문을 두어 번 두드리자 차창이 위로 올라갔다.
“잘 가세요, 정명철 씨. 다시 뵐 때까지.”
정명철을 태운 세단이 부드럽게 출발했다. 이현수가 그 광경을 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보냈습니다.”
“수고했다.”
회주실로 돌아온 이현수를 보며 강진호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무척 아쉬워 보이는데?”
“아쉽긴 합니다만…….”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단이 내려간 도로 쪽을 바라보던 이현수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다시 보게 될 것 같으니까요.”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또?”
“제가 살면서 얻은 진리 중 한 가지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음.”
“사람은 안 변합니다, 회주님.”
“…….”
이현수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거라면 교도소는 지금쯤 빈방에 쌓이는 먼지를 치우느라 바쁘겠죠.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교도소는 계속 새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 대다수가 재범들이죠.”
“음.”
“사람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뀌는 사람도 있잖아?”
“저처럼요?”
이현수가 피식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회주님. 이건 바뀐 게 아닙니다. 눌린 거죠.”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다.
“제가 예전처럼 살지 않는 이유는 회주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회주님이 사라지고 제 위에 김석일이 다시 돌아온다면, 제가 과연 지금처럼 살겠습니까?”
“음…….”
“사람이란 그런 겁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압박을 받고 살죠. 누군가에게는 그 압박이 사람이고, 누구에게는 법이며, 누구에게는 도덕이죠. 돈일 수도 있고, 애정일 수도 있죠.”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제게는 그게 회주님일 뿐입니다. 바뀐 게 아니라는 거죠. 새로운 압박에 적응한 겁니다.”
강진호가 살짝 미간을 좁히자, 이현수가 손을 내저었다.
“아, 물론 제가 회주님의 압박에 힘겨워한다…… 뭐, 이런 건 아닙니다. 이건 근원적인 이야기죠. 회주님이 없다면 저는 또 다른 압박을 버텨내야겠죠. 달라지는 것뿐입니다.”
“흐음.”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총회에서 받은 압박이 그놈을 사람답게 만들겠죠. 그런데 그 압박은 지금 끝났습니다.”
“…….”
“교도소에서 나간 사람은 대부분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사회로 돌아가죠. 교도소 생활이 그만큼 끔찍하니까요.”
“끔찍?”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회주님이야 마음만 먹으면 벽 부수고 나올 수 있으니까 별것 아니겠죠. 위긴스 이사님이 콜라 셔틀도 해드렸고.”
“…….”
“보통 사람에게 교도소는 끔찍한 곳입니다. 하지만 죄를 지으면 그 끔찍한 곳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이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죠.”
“압박이 줄었기 때문에?”
“네. 피부에 와닿을 때와 막연한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때는 다를 수밖에 없죠. 정명철도 마찬가집니다. 한동안은 별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이곳에서 한 고생이 어느 정도 미화가 되기 시작하면?”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시 저지르겠죠.”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바라는 것 같은데?”
“반쯤은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저런 놈을 무척 혐오하거든요. 저런 인간도 좋은 집안에 태어나면 잘 먹고 잘산다는 게 세상의 아이러니죠. 생각 같아서는 죽창으로 배때기를 찔러 버리고 싶지만…….”
어, 그렇게나?
“여하튼 지금은 기다려야죠, 저놈이 어떻게 나오나.”
강진호가 미묘한 얼굴을 했다.
이현수의 말이 웬만큼 들어맞는다는 건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저 말에 동의해 버리면 어쩐지 지금까지의 강진호의 변화를 부정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아, 변하지 않는다는 건 아닙니다. 물론 변하죠.”
이현수가 엄지와 검지의 사이를 살짝 띄웠다.
“이만큼요.”
“…….”
“자기가 보기에는 어마어마하게, 남들이 보기에는 이만큼.”
거, 사람 신랄하네.
“특히나 저런 놈은 변화의 폭이 적습니다. 그렇게 쉽게 변할 놈이었으면 지금까지 저리 살지도 않았겠죠. 내기해도 좋습니다. 저놈은 반드시 또 사고를 칠 겁니다.”
“…….”
“그리고 그때는…… 저 말리지 마십시오. 진짜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음…….”
“약속하신 겁니다?”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마치 내가 저놈을 보호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하는군.”
“실제로 그러고 계시잖습니까.”
“민간인이라 그런 것뿐이야.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이리 겪고도 달리 나온다면, 그때는 그 말로는 감형을 받을 수 없겠지.”
이현수가 씩 웃었다.
“그렇게 말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강진호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기야, 이제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여하튼 정명철 건은 마무리를 지었고, 매출도 회복했다.
정명철이 다시 무슨 사고를 친다고 해도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될 일이다.
그전에…….
‘저저…… 눈빛 봐, 저거.’
먹이를 노리는 독사같은 눈을 하고 있는 이현수를 보니 조금 남아 있던 걱정까지 싹 날아가 버렸다.
아마 이현수라면 정명철 주변에 감시를 붙여놓고 뭔가 낌새만 보이면 바로 납치해 뼈와 살을 분리해 버릴 것이다.
사방에다 덫을 깔아놓고 방생해 준 느낌이랄까.
강진호는 부디 정명철이 이현수의 덫에 걸리지 않기를 바랐다. 이현수에게 걸려드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니까.
“그건 그렇고…….”
“예.”
“미국 쪽에서는 연락이 없나?”
“아,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보고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음?”
“오늘 아침에 국정원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마 2주 내에 시찰단이 방문할 예정인 모양입니다. 한 번 자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받은 게 있으니 할 건 해야겠지.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미국이라…….’
한국에 미국의 무인들이 들어오면 삼왕계는 어떻게 반응할까?
‘재미있어지는군.’
강진호가 고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