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48
#1547.
지켜보다 (2)
우둑.
우두둑.
강진호가 가만히 손을 쥐었다 풀었다.
강해졌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강해졌다.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무학에 대한 개념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라면 당연히 불가능을 외칠 테니까.
문제는 당사자인 강진호조차 자신이 이만한 속도로 강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불과 몇 년.
이 세계로 돌아온 지 불과 몇 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만한 무위를 회복했다는 건 정말 고무적인 일이었다.
다만…….
‘아직 멀었어.’
강진호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경이적인 속도로 강해졌음에도 아직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가 적천마존이었을 때의 자신감과 충족감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우두두둑.
강진호의 손이 뼛소리를 만들어낸다.
‘빌어먹게도 강했네.’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과거의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다니.
강진호가 얼굴을 살짝 문질렀다.
물론 확신은 있다.
지금 강진호가 새로이 걷는 길은 과거보다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는 길이다. 어쩌면 이전 삶에 도달하지 못한, 무학의 완성이라는 지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시간.
‘언젠가는 뛰어넘는다’로는 부족하다.
필요할 때 뛰어넘어 충분한 무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갈 수 있는 길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지금 이 두 발로 딛고 있는 지점이다.
“후우.”
강진호가 깊게 심호흡을 했다.
불안함은 조급함을 부르고, 조금함은 심마(心魔)를 부른다. 강해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는 것과 조급하게 안달복달하는 건 분명 다르다.
알고 있지만…….
“끄으으으으으.”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바토르의 모습이 들어왔다.
붉어진 눈과 아직도 불긋불긋한 피부는 그가 마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는 증거였다.
“……빌어먹을.”
바토르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너무도 태연자약한 강진호의 모습을 보니, 속에서부터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손가락도 제대로 대지 못했다.’
바토르가 치밀어 오르는 노화를 꾹꾹 내리눌렀다.
차이가 벌어졌다.
그것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지?’
바토르는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마공에 숙달된 지금의 자신이라면 과거 한국에 막 도착했을 때의 바토르 정도는 열 명이 동시에 덤벼도 순식간에 피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도 강진호를 어찌하지 못한다.
당시에는 나름 강진호를 쓰러뜨리기 직전까지 갔는데, 이제는 강진호의 몸에 상처 하나 만들어내지 못할 만큼 격의 차이가 난다.
분노.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정신을 아득하게 밀어낸다.
하지만 바토르는 이를 악물고 분노를 내리눌렀다.
지금 당장 강진호에게 달려들어 죽을 만큼 얻어맞아서 그 격차가 조금이라도 좁혀진다면,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토르는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흥분할 게 아니라 냉정해져야 한다.
“……주인.”
강진호가 바토르와 시선을 맞댔다.
“말해다오.”
바토르가 심호흡을 한다.
“어떻게 해야 내가 더 강해질 수 있는가.”
강진호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너는 지금도 빠른 속도로 강해지는 중이다.”
“서로 빤한 말은 집어치우자고!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노기를 억누르는 바토르를 보며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좋지.’
강해지기 위해 영혼이라도 팔 것 같은 모습이다. 강진호는 이런 열망 있는 자들을 좋아했다.
“방법의 문제겠지.”
“방법?”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말하는 강함이라는 건 대체 뭐지?”
“그야…….”
바토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그것도 좋겠지. 어느 정도 선에 오른다면 무리도 분명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니까. 하지만 바토르와는 걸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도라도 닦아야 한다는 건가?”
“마공을 익히고 있는 주제에 잘도 그런 소리를 하는군.”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선문답을 하자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다. 네가 말한 더 강한 너는 뭐지?”
“……이해하기 어렵다.”
“힘이 더 강한 너?”
“…….”
“아니면 근육을 좀 더 키운 너? 속도가 더 빨라진 너? 그게 아니면 마공이 더 숙련된 너? 그게 아니면 본연의 외공을 완성한 너?”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아니겠지.”
“…….”
바토르가 멍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봤다.
“무공을 익히는 이들은 모두가 강해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강함이라는 개념을 무척 모호하게 잡아버리지. 다시 말하자면…….”
강진호가 턱짓으로 바토르를 가리켰다.
“너는 지금 결승점이 어디인지 모르는 마라톤을 하고 있는 것과 같아.”
“……결승점이 어딘지 모른다고?”
“그래.”
바토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주인,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무인에게 있어서 결승점이란 무학의 완성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학의 완성이 어떤 형태인지 아는 이가 누가 있는가.”
“그렇지.”
강진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조금 달랐다.
“문제는 너는 결승점을 모를 뿐 아니라, 중간 지점도 알지 못한다는 거야.”
“…….”
“그저 달릴 뿐이다. 그저 수련을 하고 또 수련을 해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아슬아슬하게 마공을 끌어 올려 적응하고…… 단순한 반복 작업일 뿐이지.”
“그게 수련 아닌가?”
“지금까지는 그걸로 됐을지도 모르지.”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목표점이 어딘지를 알고 움직이는 것과 목표가 어딘지 모르고 그저 뛰기만 하는 게 같을 수는 없어. 너는 지금 네가 원하는 강함이 무언지부터 생각해야 해.”
“강함 말인가?”
“모호하군.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강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우선 내 얼굴에 한 방 먹이기 위해서는 뭐가 더 필요할까?”
“그야…….”
바토르가 살짝 입맛을 다셨다.
“힘은 아니군.”
“그렇지.”
“느리다는 건가?”
바토르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주인. 하지만 나는 평생 동안 이 육체와 힘을 바탕으로 무학을 익혀왔다. 지금에 와서 다른 부분을 채운다고 주인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만?”
“착각하지 마.”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와 네게 속도를 높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어. 네게는 너의 방식이 있겠지. 문제는 너는 지금 그저 빤한 수련을 반복할 뿐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해야 나를 이길 수 있는지 명확한 개념을 잡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저 수련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도달한다는 식이지.”
“…….”
“그 방식으로는 불가능해.”
바토르가 입을 꾹 닫았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인식해. 그리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똑똑히 봐라. 그렇지 않다면 헛수고만 할 뿐이야.”
원론적인 개념이었다.
하지만 지금 바토르는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그 원론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 면상에 주먹 한 방 갈겨줄 수 있는 나를 목표로 잡고 최선의 수련을 고민하라는 건가?”
“비슷하지.”
이 이상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강해지는 방법을 명확하게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세상에 고수가 아닌 사람이 없겠지. 스스로의 성장 속도가 어떤 원리로 가능한 건지도 모르는 강진호가 아닌가.
“일단은 알겠다.”
아마 바토르 역시 이 모호한 개념을 잡고 한참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고민이 끝났을 때, 바토르는 더욱 강해질 수 있는 실마리를 손에 넣을 것이다.
“개념은 그렇고, 현실적으로는 마공의 수련도가 너무 낮아.”
“으음, 아직도?”
“장민에게 도움을 청해봐. 일반적인 마공의 수련법에 대해 그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주인을 두고 굳이 영감에게? 그럴 필요가 있나?”
“장민의 말로는, 나는 사람을 키워내는 데는 끔찍한 수준이라더군.”
“응?”
“슈퍼스타 출신 감독이라던가?”
“……무슨 소린지 알겠군.”
‘나는 이렇게 하면 되던데, 너희는 왜 이걸 못해?’가 나오는 지도자란 의미였다.
“그렇군. 완전하지는 않지만, 답답함이 조금 풀렸다.”
바토르가 슬쩍 고개를 들며 말했다.
“반면에 주인의 얼굴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군. 이 바토르를 찰흙처럼 뭉개 버리고도 개운하지 않은 모양인데? 사람 자존심 상하게 말이야.”
바토르의 눈썹이 꿈틀댄다.
이미 들은 건 다 들었겠다, 다시 달려들기라도 할 기세였다.
“개운하지 않다기보다는…….”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니다. 설명하기 어렵군.”
“자신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고 느끼는 건가?”
“그건 이 세상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항상 느끼고 있다.”
팔다리가 잘려 버린 사람 같다고나 할까.
평범한 사람이 사고를 당해 운동능력이 10%로 줄어버린다면 강진호의 기분을 이해할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5분 만에 갈 수 있는 집 앞 편의점을 한 시간이 걸려야 왕복할 수 있다면?
그 답답함에 이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이제는 웬만큼은 회복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그와는 거리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해하기 어렵군.”
바토르가 눈을 찌푸렸다.
“주인은 지금보다 훨씬 약할 때도 그 홍왕과 동수를 이루지 않았던가. 지금이라면 홍왕조차 주인의 상대가 되지 못할 텐데?”
“그건 내가 진 승부다.”
“아니, 이긴 거지. 조건이 달랐으니까. 그 상황에서는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승리를 자신할 수 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쓰러진 건 홍왕이었겠지.”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건 아무래도 좋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음…….”
“강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아마 홍왕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을 거야. 아니, 이미 강해졌다.”
북경에서 보았을 때 느꼈다.
홍왕이 진일보했다는 것을.
벽을 넘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무인은 벽 앞에 멈춰 선 자동차가 아니다.
둑에 가로막힌 물에 가깝다.
노력한 만큼, 고뇌한 만큼 둑을 채우는 물의 양은 더 많아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 둑을 무너뜨리는 순간이 오면 채워져 있던 물은 일시에 헤일처럼 진격하기 마련이다.
다음 벽을 만날 때까지.
‘홍왕의 다음 벽이 어디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
강진호의 존재는 홍왕을 자극해 더 높은 곳으로 이끌었다. 그러니 바토르의 말처럼 과거에 비슷했으니 이제는 이길 수 있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주인이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강진호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진다는 생각은 없다. 상대가 누구든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홍왕에게 이기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지금의 강진호는 알고 있다.
“다른 왕들도 걸린다.”
“창왕과 흑왕 말인가?”
“그래.”
홍왕을 처음 보았을 때, 강진호는 무시무시한 환희를 느꼈다.
무인들이 나약해진 이 세상에도 그가 전력을 다할 수 있는 무인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창왕과 흑왕은 얼마나 강할까?’
강진호가 눈을 빛냈다.
그 모습을 보며 바토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잘도 참고 살았군.’
이만한 승부욕을 억누르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