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49
#1548.
지켜보다 (3)
“아직도 부족해.”
강진호가 낮은 어조로 말했다.
“홍왕을 이기는 걸로는 답이 나오지 않아. 홍왕계와 총회를 비교하면 승부는 빤하니까. 아마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할 거다.”
“이젠 그 정도는 아니지. 해외의 지원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그건 시간이 있을 때의 이야기겠지. 지금 이순간 홍왕계가 전격적으로 쳐들어온다면, 지원군이 도달하기 전에 승부는 난다.”
“음.”
그도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원탁이 포탈을 통해 지원한다고 해도 병력을 끌어모으는 데만 며칠은 소모할 것이다. 그리고 지난 일본과의 전쟁에서 겪었듯, 전면전이 벌어지면 승부가 나는 데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는다.
원탁은 개입할 시간도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 필요할 때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
“그렇지.”
바토르가 씨익 웃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는가. 굳이 새삼 심각해할 필요는 없지.”
“그래. 그 말도 맞겠지.”
“초조해하지 마라, 주인.”
“…….”
“주인은 강하다. 그리고 지금도 강해지고 있지.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하루하루가 더 지날수록 우리가 승리할 확률도 올라가겠지.”
“그래.”
“시간은 위긴스가 벌어줄 거다. 우린 그저 수련에만 전념하면 되지 않겠나?”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세상 일이 그리 순조롭게만 풀린다면 다행이겠지만…….’
바토르가 단순하게 생각하여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강진호의 초조함을 풀어주려는 의도다.
그 의도를 알기에 강진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바토르가 슬쩍 주먹을 쥐어 보였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몸을 한 번 더 푸는 것도 나쁘지 않지.”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사양하겠어. 몸 푸는 수준도 안 되니까.”
바토르의 눈에 핏발이 섰다.
“내가 반드시 그 몸을 나긋하게 풀어주지.”
“마사지라도 배워왔나 보지?”
으드드득.
이를 갈아붙이는 바토르를 보면 강진호가 씨익 웃었다.
“그럼 덤벼봐.”
바토르가 기합성도 없이 강진호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 * *
“거, 몸 생각도 하셔야지. 그러다 죽습니다.”
위긴스의 말에 바토르가 끄응, 신음성을 내며 몸을 뒤집는다.
“빌어먹을, 기절까지 한 건가?”
“그만큼 얻어맞고 어디 하나 부러진 게 없는 걸 다행으로 아십시오.”
“으…….”
“하기야 로드도 대단하긴 합니다. 설마 바토르 님이 얻어맞아 기절하는 일이 벌어질 줄이야.”
“얻어맞았다는 말은 빼.”
“그럼 처 맞았다?”
“…….”
바토르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말은 다 맞는 말이라 변명도 할 수 없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강함입니다.”
“괴물이지.”
바토르가 얼굴을 찡그렸다.
터진 입안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좀 더 작정하고 달려들었음에도 강진호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했다.
“언젠가는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바토르 님의 그 진취성은 무척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무모함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아셔야겠지요.”
“끄응.”
바토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저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 게 서글프다.
“바토르 님이 약한 게 아니니 실망하실 필요는 없잖습니까. 바토르 님은 충분히 강해지셨습니다. 다만, 로드의 성장세가 바토르 님보다 빠른 것뿐이죠.”
“전혀 위로가 안 되는데.”
“딱히 위로를 한 건 아닙니다만?”
“…….”
“…….”
바토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매번 강진호만 잡고 늘어질 게 아니라 이 얌생이 같은 놈을 언제 한 번 늘씬하게…….
“저는 죽어도 바토르 님과는 대련하지 않을 테니, 그런 눈 하지 마십시오.”
“쯧, 아쉽게.”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바토르 님이 그렇게 실망하시면 저 같은 놈은 어떻게 삽니까. 저는 바토르 님의 성장세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데요.”
“온갖 것에 다 신경을 쓰니 그렇겠지.”
“…….”
바토르가 이죽였다.
“잡다한 업무를 젖혀놓고, 마법인지 뭔지를 연구할 시간에 검을 좀 더 수련했으면 너는 나와 대등했을 거다.”
“……천성적으로 그게 잘 안 됩니다.”
“그렇겠지. 그럼 그 수준에 평생…….”
바토르가 머리를 움켜잡았다.
“끄으으으으응.”
“왜 그러십니까?”
바토르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까 내가 평생 이렇게 힘만 수련했는데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냐고 물었을 때, 주인이 이런 기분이었겠군.”
“어떤 기분이신데요?”
“상병신을 보는 기분.”
“…….”
바토르가 허탈함과 멍함이 섞인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빤히 강해질 수 있는 길이 눈에 보이는데, 그냥 하던 대로 하겠다고 한 거잖아. 잘도 그런 병신 같은 소리를 지껄였군. 주둥아리로 나불댄다고 다 말이 아닌데.”
“……지금 저 까시는 거죠?”
“아니, 아니. 날 욕하는 거다.”
“……옆에서 같이 얻어맞는 기분인데.”
위긴스가 영 찝찝하다는 투로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여하튼 몸 생각해서 적당히 하십시오. 대련도 좋지만 몸이 상해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적당한 수준으로 꾸준히 하는 것만 못합니다.”
“내 육체는 그리 나약하지 않다.”
“그건 몸뚱아리 입장도 들어봐야…….”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바토르가 손을 내저었다.
“그보다 어떻게 생각 하나?”
“뭘 말입니까?”
“이번 전쟁.”
“…….”
“삼왕계 중 하나가 살아남는다면, 우리가 상대할 수 있나?”
홍왕계의 힘을 아는 바토르로서는 물어볼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한 곳이라면 적당히 상대할 만합니다.”
“한 곳?”
“네. 하지만 두 곳이 연합해 들어오면 손도 쓰지 못합니다.”
바토르가 미간을 좁혔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가능합니다.”
“뭐?”
“생각해 보십시오. 저들이 셋일 때는 협력할 수가 없습니다. 두 곳이 협력해도 다른 한 곳이 이득을 보니까요. 하지만 두 곳만 남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선 우리부터 제거하고 승부를 보는 쪽으로 협의할 수도 있습니다.”
“…….”
그런 상황에 대해서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바토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렇게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이건 매우 희박한 확률이니까요.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수준입니다.”
“음.”
“최악의 상황은 그게 아닙니다.”
“으음?”
바토르가 눈을 크게 떴다.
최악?
“최악의 상황은 한 곳이 중원을 일통하고, 거기서 그냥 죽쳐 버리는 겁니다.”
“그게 왜 최악이지?”
“그럼 지금까지 총회가 가지고 있던 이점이 모조리 저쪽으로 넘어갑니다. 시간이 저들의 편이 되어버리죠.”
바토르가 깊게 숨을 뱉었다.
‘그렇겠군.’
중국과 한국은 땅덩어리의 크기부터 비교할 수가 없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서로를 단련하는 시간이 돌아온다면, 중원을 일통한 삼왕계는 그 거대한 중원에서 뿜어지는 무인들을 모조리 통제하고 훈련시킬 것이다.
그걸 총회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바토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럼 우리가 중국으로 쳐들어가야 한다는 건가?”
“최악의 상황이지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요.”
바토르가 암담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중국으로 쳐들어간다고?’
그 넓은 땅과 그 땅에 바글바글 거릴 무인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갑갑해져 오는 느낌이다.
그동안 총회가 연전연승을 하며 힘을 비축할 수 있던 이유?
그건 대부분의 중요한 전투가 한국 땅 안에서 벌어지거나, 타국의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소유라고 할 수 없는 원탁이라든가, 법의 힘이 닿지 않는 공해상이라든가.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그들이 중국을 침공하는 순간, 일본의 침공을 받은 한국 정부가 그랬듯이 무인계에 대한 지원이 쏟아질 게 분명하다.
그 힘마저 감당하며 삼왕계와 싸운다?
‘지옥이지.’
상황을 모두 따져 본 바토르가 위긴스를 보며 물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생각보다 녹록하지 않군.”
“위기감이 사라진 거죠. 이기기만 했으니까. 적은 더없이 강대한데 말입니다. 물론 사기를 잃고 비실대는 것보단 훨씬 낫지만.”
바토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지?”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별거 있겠습니까? 바토르 님은 지금 하는 것처럼 열심히 수련을 해주시면 됩니다.”
“그걸로 충분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한 곳에 집중하는 성향이 되지 못한다고. 그러니 이런 일은 제가 맡는 겁니다.”
위긴스의 눈이 차게 빛났다.
“저도 제가 중국의 강자들을 상대할 주요 전력이 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바토르 님과 장민 장로님. 두 분과 저의 간격이 얼마나 큰지 제가 모르겠습니까?”
“…….”
“그러니 제가 해야지요. 단,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짐을 떠맡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건 어쩌면 바토르 님이 전쟁에서 해야 할 역할보다 더 큰 역할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그렇지.”
“그러니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제가 실패해도 죽으면 그만 아닙니까?”
“농담이 늘었군.”
“……농담 아닙니다만?”
“…….”
“…….”
바토르가 위긴스를 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쥐새끼 같던 놈이.’
과거, 위긴스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놈과 이리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만 해도 위긴스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던 바토르니까.
“사과한다.”
“갑자기 무슨?”
“내가 처음에 너를 좀 잘못 봤다. 나는 네게 총회를 이용해 먹을 의도를 가지고 총회에 접근했다고 생각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지켜보니 너는 그런 놈이 아니더군. 그냥 성격이 꼬여있고, 뱃속이 시커멓고, 어떻게든 이득을 빨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놈일 뿐이었던 거지.”
“……제대로 사과하십시오, 정중하게.”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피식 웃는다.
“어차피 바토르 님이나 저나 총회를 어찌해 보겠다고 이곳에 온 사람들이 아니잖습니까. 흘러 들어와 어쩌다 보니 로드께 홀린 것뿐이지요.”
“그렇지.”
“저는 저 사람에게 운명을 걸었습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바토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알고 있다.
그가 최고가 되지 못한다는 걸 말이다.
‘내 한계는 분명하다.’
지금도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타고난 것이 다르다. 바토르는 죽는 그 순간까지 무인계의 정점에 설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의 손으로 정점을 만들어라도 봐야지.
“나는 주인을 무인계의 지배자로 만든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이인자라도 될 수 있겠지.”
“어…… 장민 장로님이 그걸 허락하시겠습니까?”
“그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늙은이가 해 먹어봐야 얼마나 해 먹겠…….”
콰아아아앙!
그 순간, 문이 터져 나갔다.
바토르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눈에 문 안으로 들어오는 장민의 귀신같은 형상이 보였다.
“……왜?”
“마존께서 가보라시더군. 네가 마공에 대해 물을 거라시며.”
“…….”
아!
그 양반, 참 쓸데없이 친절하네.
정말 쓸데없이.
장민이 목을 좌우로 두어 번 꺾었다.
“걱정하지 마라. 충분히 알려주지. 단!”
장민의 손끝에서 시커먼 강기의 손톱이 뽑아져 나왔다.
“이건 말로 하는 것보다 몸으로 느끼는 게 빠르다.”
“…….”
“충분히! 뼛속깊이! 느끼게 해주마!”
거…….
하, 진짜…….
타이밍 한 번 뭐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