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5
#154.
전역하다 (4)
남태식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흐으윽.”
강제당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강진호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이 절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분은…….
그분은 이런 능력을 보일 수 있을까?
‘잘못 판단했어.’
능력뿐만이 아니다.
성정에 대한 판단도 잘못됐다.
이자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한 자였다.
강진호가 남태식의 얼굴에서 손을 떼더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잘 들었지만, 저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이야기 같습니다. 오늘 찾아왔다는 것은 군부대가 아니면 저와 접촉하기가 힘들다는 말이겠죠?”
원래는 인정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남태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강진호의 말투가 어느새 존대로 돌아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남태식이 멍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자, 이번에는 강진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남태식의 입에 물려주었다.
“소령님.”
“예? 아, 예!”
남태식이 화들짝 놀라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가 가만히 웃고는 말을 이었다.
“겁먹으실 것 없습니다. 제게 있어 당신은 짓밟아야 할 존재가 아니니까요.”
강진호의 말에 남태식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지금만큼 자신이 귀환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할 수가 없었다.
온화한 말이지만, 거꾸로 뒤집어보면 만약 그가 귀환자거나 귀환자에게 무공을 배운 자였다면 지금 무사하지 못했을 거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저는 당신들의 게임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 역시 그쪽을 적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씀드리죠.”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네?”
강진호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김학철과 노수봉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자세히는 모릅니다.”
“알고 싶다면 나를 건드려 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전하세요.”
차마 ‘예’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등에서 흘러내린 땀이 옷을 다 적시다 못해 시트까지 적시고 있는 것 같다.
단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남태식은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느라 많은 심력을 소모해야 했다.
“후우…….”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꽁초를 차 안의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시트에 등을 기댔다.
“가시죠.”
“예!”
남태식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는 그런 남태식을 보며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가 거칠게 출발했다.
아마 남태식은 강진호와 이 차 안에서 둘이 있는 상황을 더는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위병소를 빠르게 통과한 차가 생활관 현관 앞에 멈춰 섰다.
강진호는 차에서 내리고는 차 안으로 경례를 붙였다.
“필승!”
경례를 받는 둥 마는 둥하며 차량이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자 행정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포대장이 뛰어나와 물었다.
“진호야, 저 양반 왜 왔다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뭘 묻던데?”
“감사 차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사적인 걸 묻던데 말입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포대장이 한숨을 쉬었다. 자살 시도자가 세 명이나 나온 포대다 보니 기무사에서 누가 나왔다고만 하면 심장이 멎을 것 같다.
“근데 진호야.”
“예.”
“너 내일 전역이잖아.”
“예.”
포대장이 음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너… 사회 나가면 형이 챙겨준 거 안 잊을 거지?”
“…….”
“저, 저번에는 농담이었는데, 지금 내 상황이 농담이 농담이 아니게 됐다. 형 전역하면 뭐해서 먹고 사냐?”
“…고생하십시오.”
“진호야? 진호야?”
강진호가 생활관으로 들어가 버리자 혼자 남은 포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 씨. 좀 진작부터 말해놓을걸.”
군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밤.
강진호는 침낭을 덮고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년 동안 매일 같이 봐오던 광경이다.
하지만 이 광경도 내일이면 더 볼 수 없을 것이다.
“강진호 병장님.”
“응?”
“아니, 진호야. 수고했다.”
“음…….”
옆에 누운 장재환이 빙긋 웃었다.
“그동안 간부고 선임이고 싸워가며 애들 챙겨준 거 다들 알고 있고, 다들 고마워하고 있다.”
“딱히 챙기려고 한 건 아냐.”
“알아. 그래도 우리는 덕분에 편하게 군 생활을 했으니까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너야 사회 나가도 알아서 잘하겠지만, 잘 지내라. 연락 꼭 하고. 나도 곧 나갈게.”
“음.”
장재환은 후임이지만 강진호보다 나이가 한 살 많았다.
“안다. 네가 이런 공치사 안 좋아한다는 거.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음?”
강진호가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더니 주영기가 안으로 들어왔다.
“지노! 지노!”
“…왜?”
“빨리 와. 애들 자기 전에 인사해야지.”
“안 하면 안 되냐?”
“할 건 해야지!”
강진호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따라 할 일을 찾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자신의 어깨를 잡아끄는 주영기에게 이끌려 강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머리를 긁으며 1생활관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영기가 불을 켰다.
“아, 뭐야!”
“아저씨, 그냥 가세요. 사람 열 받게 하지 마시고.”
“아, 쉰내. 쉰내 좀 안 풍기고 가시면 안 됩니까?”
비난이 쏟아졌다.
강진호는 한숨을 쉬었다. 왜 굳이 이렇게 욕을 먹으려고 돌아다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주영기가 너스레를 떨며 먼저 인사를 하자 강진호도 자리에서 일어난 장병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했다, 진호야.”
“너 새꺄, 깔끔 좀 그만 떨어라.”
눈에 띄게 슬퍼하는 이들도 있었다.
“…강진호 병장님!”
거의 통곡 진전까지 간 녀석을 보며 강진호가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이 뭘 했다고 이런 반응이 나온단 말이냐.
“그렇게 아쉽냐?”
“예. 진짜 죽을 것 같습니다.”
“왜?”
울먹거리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강진호 병장님이 전역하시면, 이제 포대에 세아 씨 안 오시잖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그 낙으로 살았는데…….”
강진호는 아무 대답 없이 이제는 분대장이 된 이상엽을 돌아보았다.
이상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게 처리해 놓겠습니다.”
이상엽이 엄지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강진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놈은 지옥을 맛보아야 한다.
다른 생활관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뭐 자랑해 먹겠다고 남들 자는 데 기어 들어와서 인사질이야? 얼른 안 꺼져?”
“고생하셨습니다, 강진호 병장님.”
“나가는 길에 구르면 다시 입실해야 하는 거 알고 있지? 내가 기름칠 잘해놨어.”
“…누가 수송 아니랄까 봐.”
어찌 보면 빤한 이야기들이었다. 한 명, 한 명 악수를 하면서 덕담 한마디를 주고받는 것. 그게 전부였다.
겨우 100명이서 독립되어 살아야 하는 찰리의 전통이었다. 마지막으로 5생활관을 돌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강진호는 주영기와 흡연 구역으로 가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야, 진호야.”
“어.”
“뭔가 좀 짠하다.”
강진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주영기를 놀릴 수는 없었다.
강진호는 자신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저 그동안 알고 지내던 이들과 악수를 한 것뿐인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은 강진호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끝났구나.’
이제 정말 이 길고 길던 군 생활이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아니, 오늘 밤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진호는 이 포대를 나설 것이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딱히 군 생활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빌 만큼 나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한 가지 단계를 넘어섰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좀 걱정도 되긴 한다. 시원섭섭하다고 해야 할까?”
“너는 군대가 안 어울려.”
“…그건 인정하는 바지만.”
주영기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큰일을 겪은 만큼 강진호보다는 주영기가 더 생각이 많을 것이다. 군대에서만 죽을 위기를 두 번 넘긴 주영기가 아닌가.
“진호야.”
“그래.”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진짜 남자가 된다고 하잖아?”
“개소리야.”
“…그래?”
“어.”
“그래도 군대를 다녀오면 뭔가 남는다고 하잖아.”
강진호는 대답 없이 주영기의 말을 기다렸다.
“우린 뭔가 남겼을까?”
“글쎄.”
강진호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겨우 군대에서 생활한 정도로 뭔가 느끼기에는 강진호가 겪어온 세파가 너무 많았다.
“잘 모르겠다.”
“…나도 잘 모르겠네.”
주영기가 담배 연기를 천천히 뿜어내고는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들어가자. 자는데 부스럭거려서 깨운다고 또 맞을라.”
넌 좀 맞아도 돼.
강진호는 피식 웃고는 주영기를 따라 생활관으로 향했다.
“필승!”
“그래, 다들 고생했다. 몸조심하고.”
“예.”
당직사관에게 보고를 마친 강진호와 주영기가 현관을 향해 걸었다.
“…근데 너는 옷이 그게 뭐냐?”
“왜?”
“A급은 다 어쩌고 폐급을 입고 왔어?”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밖에 나가면 군복 입을 일이 뭐가 있어? 좋은 건 애들 주고 오면 되지.”
주영기가 황당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진호의 생각은 확고했다. 바리바리 좋은 옷을 챙기고 군용 물품까지 싸서 나가는 선임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던 강진호다.
좋은 것이 있다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 써야 하지 않겠는가.
“예비군은?”
“…….”
“와, 몇 백 명이 반짝거리는 A급 입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폐급 입고 있겠다고? 시선 집중 쩔겠는데?”
“…….”
순간, 길을 되돌아갈까 심각하게 고민한 강진호지만, 결국 발을 돌릴 수는 없었다. 이미 어젯밤에 다 뿌렸다. 지금 와서 돌려달라고 한다면 욕만 먹을 것이다.
위병소로 내려가자 초소에서 장재환이 밖으로 나왔다.
“어?”
주영기가 어이없다는 듯 장재환을 바라보았다.
분대장인 장재환이 왜 위병을 선단 말인가. 당직하사로 행정실에 있으면 몰라도.
“너 이 새끼, 니가 왜 여깄어?”
장재환이 씨익 웃었다.
“새끼? 마, 내가 형이야.”
“…재환이 형, 여기 왜 계십니까?”
주영기에 너스레에 장재환이 웃음을 터뜨렸다.
“보나마나 아침 인사도 안 하고 새벽같이 빠져나갈 줄 알았지. 우리 선임 가는 길인데, 그래도 내가 배웅해 줘야지. 애들이야 자게 놔둬야겠지만 우리야 뭐 잠 좀 덜 잔다고 별거 있겠어?”
“우리?”
“그렇지 말입니다.”
부사수 초소에서 이상엽이 나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쭈? 단체로 맛이 갔는데?”
주영기가 악담을 해 댔지만, 기분은 좋은 듯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다고 누가 감동할 것 같냐?”
“하, 저 인간은 끝까지 진짜.”
이상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됐다, 보내주자. 아저씨들, 얼른 가서 사람 몰골 좀 되세요. 우리도 곧 따라갈게요.”
“하, 새끼들 진짜.”
주영기는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다는 얼굴이었고, 강진호마저 미미한 웃음기를 내보이고 있었다.
“자, 차렷.”
장재환과 이상엽이 자세를 잡았다.
“경례.”
“필승!”
장재환과 이상엽이 경례를 하자 강진호와 주영기도 마주 경례를 했다.
“이제 꺼져!”
“저 새끼…….”
“새끼?”
“저 형이!”
네 사람이 서로를 한 번 부둥켜안았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감동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위병조장이 밖으로 나와서는 죽을상을 했다.
“아, 좀 가십시오. 포대 원투쓰리포가 다 여기 모여서 뭐하시는 겁니까? 사람 쉬지도 못하게.”
“새끼가 빠져 가지고.”
주영기가 너스레를 떨고는 아쉬운 눈으로 포대를 돌아보았다.
한참 동안 주영기는 포대를 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가자.”
“으응.”
주영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위병소 밖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뗐다.
“…진짜 끝이네.”
“그래.”
“내가 다시는 이쪽으로는 오줌도 안 쌀 거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주영기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후임들의 전송을 받으며 강진호와 주영기는 터덜터덜 발을 옮겼다.
끝.
길고 길던 군 생활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