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7
#156.
여행가다 (1)
“진호야?”
강유환은 소파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 강진호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내미가 전역했다기에 당연히 가게로 찾아올 줄 알았는데, 저녁까지 소식이 없어 가게 문도 일찍 닫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왜 저렇게 되어 있다는 말인가.
“배는 왜 그러니?”
“…….”
불룩 튀어나온 강진호의 배를 본 강유환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들이 군대에 가더니 웬 똥배가 생겨 있었다.
원래 강진호의 몸은 완벽에 가까웠다. 커다란 대흉근 아래에 자리 잡은 완벽한 식스 팩을 보고 있자면, 자식이지만 한없이 부러운 느낌이 절로 들 정도가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강진호의 배는 말년 병장의 나태함을 말해주듯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강유환이 고개를 돌려 백현정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뭘 얼마나 먹인 거야?”
“제가 먹였나요? 지가 먹었지.”
“하…….”
강유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화제 먹었니?”
“예.”
“…그래, 조금 있으면 나아지겠지.”
하지만 백현정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진호야, 저녁은 안 먹었지?”
“그만 좀 먹여! 자식을 소로 만들 생각이야?”
“그거 먹었다고 소 되나요.”
소만 되겠는가!
더 이상 그의 아들의 몸에 군살이 붙어가는 것을 좌시할 수 없던 강유환이 한마디를 더 하려는 찰나에 문이 벌컥 열렸다.
“오라비이이이이이!”
강은영이 안으로 후다닥 뛰어오더니, 폴짝 뛰어 강진호를 덮쳤다.
“우우웁!”
배 속에 든 것이 몽땅 밀려 올라오는 느낌에 강진호가 입을 틀어막았다.
“오라비! 보고 싶었어!”
“비, 비켜봐.”
“응?”
“…역대 최악의 오누이 상봉이 되기 전에 빨리 비켜봐.”
“응.”
강은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옆으로 비켜서자 강진호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오라비 왜 저래?”
강유환이 고개를 저었다.
“뭐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지. 그게 음식이든 애정이든.”
영문을 모르는 강은영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장실을 바라보았다.
조촐한 전역 축하 자리가 열렸다.
강유환은 자식의 전역이 기분 좋은지 양주까지 꺼내왔다. 백현정이 잔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좋은 날이라 생각했는지 크게 말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복학은 어쩔 생각이니?”
강유환이 강진호의 잔에 술을 따라 주면서 물었다.
“일단은 고민 중입니다. 아직 시간도 있으니까요.”
“음, 그렇지.”
아직 4월이니 복학까지는 5개월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
“지금이 4월이니 마음만 먹는다면 바로 복학도 할 수 있지 않겠니? 내가 알기로는 4월까지는 복학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리 급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 요즘은 졸업이 빨라진다고 좋은 것도 없다고 하더구나. 네 생각대로 하거라. 그런데 생각해 둔 것은 있고?”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딱히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다만?”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좀 다녀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어디?”
“중국이요.”
강은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발언을 허가한다.”
“나도! 나도 여행 가고 싶어! 나는 유럽으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아들내미 발언하시지요.”
“아빠! 나도 딸인데 관심 좀 줘!”
“너는 소속사랑 이야기해! 내가 보내주고 싶다고 보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시무룩.”
강은영의 반란을 순식간에 제압한 강유환이 다시 강진호에게 물었다.
“중국에는 무슨 일로?”
“찾아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짧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구나. 얼마나 걸리겠니?”
“짧으면 일주일, 길면…….”
강진호가 고민을 하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길면 한 달 이상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백현정이 기겁을 했다.
“중국에 한 달이나? 거기 치안도 안 좋은데,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이니?”
“요즘 중국은 옛날 중국이 아니잖아. 치안도 나름 괜찮은 편이지.”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쉽게 해요!”
백현정이 눈에서 불을 뿜자 강유환이 찔끔했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예로부터 바른말하는 사람은 단명하는 거 몰라요?”
“…잘못했소.”
백현정이 강유환을 한 번 쏘아보고는 강진호를 향해 말했다.
“진호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길지 않니? 여행을 가고 싶은 거면 다른 곳도 좋은 데 많잖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백현정은 마뜩찮은 얼굴이지만, 강진호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았는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조심하거라.”
“예.”
“여권 만들고 비자 발급 받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구나. 그전에는 뭘 하려고?”
“당장은 하려고 하는 게 없습니다. 일단은 좀 빈둥대야죠.”
“그래, 쉬어야지.”
강유환이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그래도 큰 사고 없이 전역하게 돼서 다행이다.”
“예.”
큰 사고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족들은 모르는 일이니 굳이 말을 꺼낼 필요는 없었다.
“그래, 피곤하지? 이제 쉬어야지.”
“네.”
그 이후로 양주를 노리는 강은영과 백현정의 신경전이 이어진 것을 빼면 그리 특징 없는 대화가 오갔다. 강진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먼저 들어가서 쉬겠습니다.”
“그래, 얼른 자거라.”
“예.”
강진호가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이상하게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런 탓에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자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쉽사리 잠은 오지 않았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강진호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접촉을 해오지 않은 이유는 뭘까?’
당장에라도 접촉을 해올 것 같던 그들이 잠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그들이 여러 부류로 나뉘어 있고, 강진호가 있던 군대는 처음 그가 접촉한 이들과는 다른 귀환자들의 영역권이라는 가정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군에서 나온 이상, 그들은 강진호에게 접근해 올 것이다.
강진호는 가볍게 웃었다.
저들이 딱히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나올 이유는 없겠지만, 만약 그리 나온다면 강진호도 선택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 여행은 그것을 위한 준비였다.
개인적인 호기심이기도 하고 말이다.
강진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그만둬?”
강진호의 눈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응.”
“왜?”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고생을 해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을 했는데, 하는 말이 프로게이머를 그만뒀다는 소리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박유민은 조금 민망한 듯 말했다.
“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응.”
“내가 뭐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둔 건 아니고…….”
강진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하기야 공백이 있었으니까.
단 하루만 쉬어도 실력이 눈에 띌 만큼 떨어진 게 확연하게 느껴진다는 프로게이머의 세계에서 그만한 공백기가 있었는데 제 실력을 회복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지난한 일이었다.
그래도 박유민이니까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강진호가 과한 기대를 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응. 뭐, 별수 없잖아.”
“실망하지 마라. 공백이 있었으니 실력이 떨어지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아니, 그게 아니고…….”
박유민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손을 내저었다.
“실력 때문에 그런 게 아냐.”
“…그럼?”
실력 때문이 아니라면 왜 그만둔단 말인가.
“리그가 없어졌어.”
“…응?”
“리그가 없어졌다고.”
“응?”
“…….”
“에, 그러니까…….”
강진호는 아메리카노를 입에 머금고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했다.
“이상할 것도 없지. 사실 갤럭시 같은 경우는 벌써 10년은 다 된 게임인데.”
“확실히.”
아무리 인기가 있다고 해도 결국은 게임. 축구나 야구 같은 클래식이 되어버린 스포츠와 같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래픽은 구려지고 새로 나온 게임에게 그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 E스포츠의 운명이었다.
“오래한 거지, 뭐. 그래도 덕분에 우승도 두어 번 더 했고.”
“음, 들었다.”
그러고 보니 TV로 중계가 잘 안 된다 싶더니, 인기가 많이 죽긴 한 모양이었다.
군대 내에서 박유민이 대회에 나갔다는 말을 듣고 찾아보려고 했는데 결국은 못 본 기억이 났다.
“그래서 정리는 잘했냐?”
“응. 일단 게임단도 해체된 거라서 내가 딱히 할 일은 없었어. 그냥 다들 바이바이하는 분위기라 떠밀려서 나온 거지.”
“음…….”
“다른 애들은 숙소 생활하다가 나오는 거라서 방 구하고 한다고 정신없는 것 같던데, 나 같은 경우는 보육원에 방이 남는 게 있어서 일단 들어갔어.”
“으음.”
강진호의 안색이 조금 무거워졌다.
“학교는 다니고 있냐?”
“휴학 중인데, 슬슬 복학 준비해야지. 네 말 듣기를 잘했지. 그냥 프로게이머에 올인했으면 정말 암담할 뻔했다.”
강진호는 아쉬움에 한숨을 쉬었다.
박유민의 실력이라면 예전처럼 대회가 한창 있을 시절에 데뷔했다면 돈을 갈퀴로 쓸어 담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짧은 수명의 프로게이머 생활인데, 박유민의 경력이 끝나기도 전에 게임의 수명이 끝나 버릴 줄이야.
“걱정이 많겠구나.”
“사실 의외로 별로 그렇지는 않아.”
“그래?”
“처음 프로게이머 생활 시작할 때부터 이게 오래가지 않을 거란 건 생각하고 있었어. 그때 이미 쇠락세였어.”
강진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밖에서 보는 강진호보다는 그 세계에 직접 몸을 담은 박유민이 정보나 분위기에 더 밝을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짐작하고 있었다면 그만한 대비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뭐하려고? 졸업하고 취업?”
“그것도 한 방법인데 말이야.”
“다른 생각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음…….”
박유민이 볼을 긁더니 강진호에게 손짓을 했다.
“따라와 볼래?”
“응?”
가까운 피시방으로 강진호를 데리고 간 박유민이 컴퓨터를 켜고 어딘가로 접속을 하기 시작했다.
“뭐하려고?”
“세상에는 대세라는 게 있거든.”
“응?”
“이게 요즘 잘나가는 게임이야.”
“…….”
강진호가 화면에 보이는 게임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보기에는 이전에 그와 박유민이 하던 갤럭시와는 완전히 다른 게임 같았다. 일단 여러 유닛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캐릭터를 움직인다는 측면이 가장 다른 면이었다.
“잠재력이 뛰어나 벌써 리그도 열리고 있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거든. 재미있는 게임에는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지. 벌써 1위야.”
“흐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네가 아무리 프로게이머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게임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냐?”
“사실 내가 우승자 출신이기는 하지만 갤럭시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없었거든.”
강진호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박유민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도 랭킹 10위 안에는 들어가 있고.”
“흐음…….”
강진호가 박유민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나와봐.”
“응?”
“아무래도 직접 해봐야 알지.”
“…으응?”
박유민이 미묘한 표정으로 비켜서자 강진호가 게임에 접속을 하기 시작했다. 박유민의 계정으로 큐를 돌리는 강진호를 보며 박유민의 볼이 떨리기 시작했다.
“지, 진호야, 이 게임은…….”
하지만 이미 게임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참사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