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81
#1580.
파악하다 (5)
콰당!
김명찬이 고한봉을 짓눌러 바닥으로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고한봉의 얼굴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선배님, 왜 이러십니까! 선배님!”
“으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뭘 알아! 네 까짓 게 뭘 알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실핏줄이 터져 시뻘겋게 물들어 버린 눈이 고한봉을 노려본다. 입가에 흘러내리는 침과 파들파들 떨리는 그 손이 김명찬이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고한봉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프지 않다.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구 내려치는 손이 얼굴을 가격하는데도 유치원생에게 맞고 있는 기분이다.
“으…….”
설움과 서글픔이 꾸역꾸역 목구멍을 넘어 올라오는 기분이다.
“총리님! 문! 문 열어, 당장!”
“들어오지 마, 이 개새끼들아!”
고한봉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초, 총리님?”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어떤 새끼가 제멋대로 거기까지 왔어! 너희, 다 뒈지고 싶어? 내 말이 우스워?”
“아, 아닙니다, 총리님. 자리로 복귀하겠습니다.”
“꺼져!”
“예!”
교도관들이 부리나케 물러나자 김명찬이 낄낄대며 웃었다.
“낄낄낄낄, 그 쥐꼬리만 한 권력도 권력이라도 잘도 써먹는군.”
“……선배님.”
김명찬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천천히 걸어가 다시 벽에 등을 기댔다.
“거봐, 자네도 똑같지 않은가. 사람은 당하면서 배우는 법이지. 이보게, 우리는 알고 있단 말이지. 이미 충분히 배웠으니까. 어떤 방식으로 말을 해야 사람이 가장 겁을 먹는지, 어떤 식으로 괴롭혀야 사람을 가장 괴롭게 만들 수 있는지. 알잖아. 너무 잘 않잖은가.”
고한봉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우리는 그들의 대적자인 동시에 그들의 적자지. 그들의 방식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우리니까. 그러니 나도 모르게 써먹게 되더군. 지금 자네처럼.”
김명찬이 낄낄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걸세. 김명찬이란 건 세상에 없었어. 김명찬이라는 이름을 한 포장지만 있었을 뿐이지. 그 포장지를 벗겨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늙은 몸뚱아리만 남을 뿐이지. 초라하고, 비열하고, 무가치한.”
자조.
너무 깊어 차마 위로조차 시도할 수 없는 자조였다.
“이보게.”
“예…… 선배님.”
“내가 미친 것 같나?”
고한봉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선배님은 미치지 않았습니다. 보니 알겠군요.”
“그래. 차라리 미칠 수라도 있었으면 남은 생은 편했겠지. 하지만…… 하지만 나는 미칠 수도 없어. 이게 내 죄악의 대가일세. 분에 넘치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호랑이인 척하던 여우는 진짜 호랑이가 나타나면 갈기갈기 찢겨 죽는 법이지.”
김명찬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우리는 민주화투사가 아니야.”
“…….”
“우리는 반동분자지. 자네와 내가 지금 태어났다면, 지금의 정권에 저항했을 걸세. 북한에 태어났다면 사상범이 되었을 거고, 미국에 태어났다면 정치범이 되었겠지.”
고한봉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오해하지 말게.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게 아니야. 그때 우리와 함께 싸운 동료들은 정말 눈이 부셨지. 나라를 위한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그 모든 것을 감당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야. 자네도 아니지. 우리는 그저 반동분자일 뿐이네. 내가 아닌 누군가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쫌생이일 뿐이란 걸세.”
“저는…….”
고한봉이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 닫았다.
부정할 수 있는가?
있다.
하지만 지금 김명찬의 앞에서 이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 투명한 눈이 그를 꿰뚫고 있으니까.
“저항하지 말게. 사건을 만들지도 말고, 절대 그를 자극할 생각 하지 말란 말이네.”
“그게 되겠습니까?”
“자네가 이미 답을 내지 않았던가. 자네는 일본의 총리에게 질투를 느끼는가?”
“……예?”
“본디 내 것이 아닌 땅, 내 것이 아닌 나라에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지. 자네가 지금 강진호를 격렬하게 증오하는 이유는 그가 자네가 원래 가져야 했던 것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제가 가져야 할 것이…….”
“대한민국.”
“…….”
“뭐든 좋겠지. 땅덩어리일 수도 있고, 재력일 수도 있고, 그리고 개념일 수도 있겠지. 뭐라고 딱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무언가가 맞겠지. 여하튼 그게 거슬리는 것 아닌가?”
김명찬이 몸을 슬쩍 앞으로 당겼다.
“멍청한 짓거리 하지 말게.”
고한봉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건 처음부터 자네의 것이 아니었어. 그건 이 나라의 것도 아닐세. 처음부터 그들의 것, 아니, 그의 것이지. 그는 다른 것에는 욕심을 내지 않네. 하지만 자신의 것을 건드리는 순간 돌변하지. 굳이 온화한 이를 건드려 악마로 만들지 말란 말일세. 이해하는가?”
고한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자와 한 집에서 같이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네. 사자가 배가 부르게 만드는 거지. 나같이 늙고 질긴 고기에는 관심도 주지 않을 정도로 배를 불려 버리면 돼. 그럼 장난처럼 뻗은 앞발질에 뼈가 부러질 수는 있겠지만, 잡아먹히는 일은 없지.”
“…….”
“그는 사자네.”
김명찬의 눈이 멍해졌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 초점이 풀려갔다.
“아니, 사자라기보다는 악마에 가깝겠지. 그는 정말 무서운 사람일세.”
“알고 있습니다.”
“아니, 자네는 몰라.”
김명찬의 목소리가 갈수록 낮아졌다.
“심연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법이지. 겉으로 보아서는 다를 게 없으니까. 오로지 그 끝을 확인하겠다고 심연 속으로 몸을 던진 이만이 심연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지.”
김명찬이 처연하게 웃었다.
“나는 아직도 떨어지고 있네.”
“…….”
“그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말이야. 추락하고, 추락하고, 또 츠락하고 추락해도…… 아직 끝이 닿지 않아. 아직, 아직 닿지 않아……. 아직도! 아직도!”
떨림처럼 시작한 목소리는 괴성이 되어야 끝났다.
그 광기 어린 목소리에 고한봉은 영혼이 빨려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여기로 오지 마…….”
“선배님!”
“오지 말게. 여기로는 오지 말게. 나를 함께 죽어가는 이를 보며 위안을 삼는 이로 만들지 마. 차라리 자네라도 이 지옥에 같이 빠져 나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 말게. 나를 더 하찮게 만들지 말아주게. 제발…….”
미쳐야 했다.
차라리 이 사람은 미치거나 죽어야 했다.
살아 있기에 이 사람은 모든 것을 잃는 중이다.
그를 지탱해 온 업적도, 자부심도……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이라고는 영혼마저 빼앗겨 버린 껍데기뿐.
그 처참한 몰골이 고한봉의 심장을 찢어놓는 것 같다.
차라리 울고 싶다.
목놓아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있겠는가.
멀쩡히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을 가엽게 여겨 울어주는 것이 저 사람에게 위로가 되겠느냐, 이 말이다.
김명찬에게 그건 조롱이고 괴롭힘이다. 싸구려 동정은 이곳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제 돌아가.”
“…….”
“다시는 이곳에 찾아오지 말게. 자네가 알던 김명찬이라는 사람은 이미 없네. 아니, 그런 건 원래 없었어. 그저 우리는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었을 뿐이야. 스스로 이리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은 거지.”
김명찬이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돌아가게.”
“선배님…….”
“제발.”
김명찬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볼 수가 없어. 자네를 보면 옛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어. 나는 이제 보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아. 죽어서 벗어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죽었을 걸세. 그러니…… 이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돌아가게. 제발.”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는 김명찬의 모습을 지켜보던 고한봉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의 아랫입술이 터지며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대항하지 마. 제발, 그와 맞서지 마……. 그는 안 되네. 그만은 안 돼. 제발 내 전철을 밟지 말게. 차라리 그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란 말이야! 이 멍청한 새끼야! 군사정권 때는 잘도 참고 버티더니, 그 인내심은 어디다 팔아먹었어! 돈 좀 생기고, 총리님 총리님 해주니까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
고한봉이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아닙니다, 선배님!”
“……버티게, 끝까지. 강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더 강했다는 걸 증명하면 되는 거야.”
김명찬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못했지만, 자네는 해내게.”
“예. 그러겠습니다.”
“그만 돌아가게. 만나서 반가웠네. 다시는 여기에 오지 말게나.”
자리에서 일어난 고한봉이 김명찬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던 고한봉이 몸을 홱 돌려 문을 열고 나왔다.
카앙!
쇠문이 닫히는 날카로운 소리를 들은 고한봉이 문에 기대 얼굴을 감쌌다.
“초, 총리님, 괜찮으십니까?”
그의 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오는 교도소장의 모습이 보인다. 김명찬과 대조적으로 툭 튀어나온 배가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이리로.”
“예?”
“이리로.”
고한봉이 교도소장의 어깨를 잡아 김명찬의 독방에서 멀리 떨어졌다. 소리가 들리지 않을 곳까지 멀어진 고한봉이 그대로 교도소장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악! 아아아악!”
“교도소 청소 상태가 왜 이 꼴이야, 이 무능한 새끼야! 전 총리님이 계시는 독방이 왜 저렇게 더러워! 죽고 싶어?”
“초, 총리님, 기본적으로 수형실의 청소는 수감인이…….”
“뭐?”
“아, 아닙니다. 관리하겠습니다. 제가 게을렀습니다.”
“이런!”
고한봉이 다시 교도소장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교도소장이 정강이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자 그제야 분이 풀린다는 듯 손을 털었다.
“무지렁이 같은 것들이.”
고한봉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교도소장에게 화를 낼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분을 풀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다.
‘강진호.’
고한봉이 깊게 심호흡을 했다.
원한?
그런게 있을 리가.
그는 그저 보고 들었을 뿐이다. 김명찬이 어떻게 되고,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래야 그의 방향도 정할 수 있을 테니까.
“후우우우우우.”
깊게 숨을 토해낸 고한봉이 쇠창살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도움이 됐어.’
찾아오길 잘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도 김명찬의 옆 수형실에 갇히는 꼴이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그건 차라리 죽는 게 나은 형벌이었다.
“나는…….”
뭔가 결심을 한 듯 입가를 뒤틀던 고한봉이 고개를 내렸다.
주머니에 꽂힌 휴대폰을 꺼낸 고한봉이 조금 의아한 눈으로 휴대폰 액정에 뜬 번호를 바라보았다.
‘누구지?’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이 몇 없을 텐데?
고한봉이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바꿨습니다.”
혹시 잘못 걸려온 전화일까 봐 이쪽의 신분은 노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한봉은 곧 그런 생각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전화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총리님. 저는 총회에 이현수 실장이라고 하는데, 혹 들어보셨는지요?]고한봉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