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84
#1583.
대면하다 (3)
“밑밥은 깔아뒀습니다.”
“…….”
이현수의 말에 강진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제 회주님이 마무리하시면 됩니다.”
“엄청 쉽게 말하는데…….”
강진호가 영 불편한 안색을 지우지 못했다.
“뭘 어떻게 마무리하라는 말이지?”
“회주님이 잘하시는 것 있잖습니까. 대충 밟아서 앞으로 하늘이 빨간색이라고 해도 당연히 그렇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게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
강진호가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렇게까지?”
“예. ‘그렇게까지’입니다. 이건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니까요.”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영 골치가 아픈다.
“귀찮으시겠지만, 빨리 정리해 버리는 게 낫습니다. 지금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저놈들 때문에 너무 시간을 빼앗겼어요.”
“알겠다.”
강진호가 깔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문제는?”
“SOB들은 다음 주 즈음에 한국으로 들어올 겁니다.”
“벌써?”
“의욕이 넘쳐 나더군요. 정말 텐트 치고 살 생각인 모양입니다. 확실히 이런 면에 있어서는 미군들이 합리적이에요. 한국이라면 그래도 숙영지 건설이 끝나기 전까지는 이동을 자제할 텐데.”
“한국이면 오히려 텐트에서 살게 할 수도 있지 않나?”
“……어, 어?”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도 말이 되고, 그것도 말이 되네요. 여하튼 한국 군대는 신기한 곳이라니까.”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물론 한국 군대야 전역한 남자들에게는 영원한 까임 거리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하는 꼴을 보니 총회가 한국군 욕할 처지는 아니던데?”
“하, 이 새끼들이 악폐습에 젖어 가지고는…….”
총회나 영남회에 그런 신고식이 있을 거라고는 이현수조차 알지 못했다.
시작부터 간부였던 강진호나 이현수는 알 수가 없던 일이다. 수련을 일일이 따라다니지 않고서야 신입이 무슨 일을 겪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 군대에 있을 때 똥별들이 병사한테 관심 안 가진다고 그렇게 욕했는데, 제가 같은 걸 하고 있었을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군대 다녀왔어?”
“뭔 말씀이십니까, 저 수색대 출신입니다! 회주님이 GP를 아십니까?”
“넌 155㎜ 견인곡사포 들어봤냐?”
“그게 뭐가 힘듭니까? 회주님이 마음만 먹으면 포로 공기놀이도 하겠구만!”
“네가 수색대라 힘들 게 뭐가 있어? 산 열 개를 타도 휘파람 불며 타겠구만!”
바토르와 위긴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자, 방진훈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냅 두십쇼. ‘내 군대가 더 힘들었다’ 놀이는 대한민국 남자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니까요.”
“……한국은 한 번씩 보면 이상한 곳이야.”
“동감입니다.”
방진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귀담아듣지 마십시오. 수색이고 포병이고, 땅개들이 힘들게 뭐가 있습니까. 해병대도 안 나온 양반들이.”
“…….”
“…….”
아, 이 양반도 대한민국 남자지.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쨌든 앞으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이게 참 일본 놈들이 뿌려놓은 잔재가 워낙 많아서…….”
위긴스가 피식 웃고는 이현수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아, 그건 오해일세. 내가 역사를 공부하다 알게 된 건데, 과거 조선의 성균관에서도 새로 들어온 신입들은 연못에 빠뜨리거나 하면서 괴롭혔다더군.”
“…….”
네?
댁이 그걸 어떻게 압니까?
한국인이세요?
“그리고 한국인은 사실 이상한 버릇이 있네.”
“네? 어떤 버릇을 말씀하시는 거죠?”
“다른 나라도 다 있는 일을 꼭 한국에만 있는 특성이라 생각하고 부끄러워하는, 이상한 경향이 있더군.”
“…….”
이현수가 살짝 눈을 부릅떴다.
“네?”
위긴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신입을 괴롭힌다든가, 아니면 특정인을 괴롭힌다든가. 이건 서양이나 타국에도 은연중에 다들 존재하는 일이네. 예전에는 오히려 더 심했지.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건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네. 시스템이 정비되어 그런 일을 하면 막대한 벌을 받기 때문이지.”
“…….”
“한국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대부분은 가해자가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일세. 그런데 한국인은 그걸 자신들의 문화적 경향으로 파악하고 부끄러워하더군. 이해하지 못할 일이지.”
바토르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초원의 전사들에게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하는 놈이 병신인 거지!”
“……그거랑은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그건 그쪽이 이상한 거고, 이 양반아!
이현수가 헛기침을 터뜨렸다.
“혹시나 몽골이라는 나라를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바토르 님의 개인적인 의견을 몽골 무인계의 성향이라 파악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유념하지.”
이현수가 머리를 긁었다.
“뭔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더…… 아, 미군! 여하튼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전역자의 고질병에 잠시 시달린 이현수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여하튼 그쪽에서는 다음 주중에 주둔지를 정하고 주말까지 훈련 준비를 끝마치겠다고 연락을 취해왔습니다. 그럼 이쪽과 스케줄을 조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부지는?”
“총회 근처에 터를 잡았더라고요. 일단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데다가 인적이 드믄 곳이라 큰 잡음은 없던 모양입니다. 환경 단체에서 반발이 좀 있었지만, 그건 정치권에서 알아서 풀 문제겠죠.”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 일정 잡아서 나한테 넘겨줘.”
“예. 제가 최소한으로 맞춰보겠습니다.”
“일본은?”
그 대답은 이현수가 아니라 방진훈에게서 나왔다.
“일본도 다음 주 내로는 마무리가 됩니다. 아무래도 군인인 그쪽과는 다르게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다 보니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입니다.”
“주거지는 잡았고?”
“총회에 남는 게 방인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옛날 회원들이 쓰던 구기숙사에 배정할 생각입니다.”
“음…….”
군대의 형식과 파견의 형식을 동시에 띠고 있어 주둔지가 필요한 미군과 달리, 일본의 무인들이야 그냥 총회 내부에서 훈련을 시켜도 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게 맞겠군.”
“구색을 갖추느라 거추장스러운 일을 만드느니, 제일 편한 방법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이쪽 부담도 줄어들고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임하지.”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보고드리겠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문제 있나?”
“로드, 구입해야 하는 물품들이 좀 있습니다. 이제 조금 실전적으로 키워보고 싶어서 시약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현수 통해서 지원받아.”
“……저놈이 거부하고 있습니다.”
“응?”
강진호가 멍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뭔 백 명도 안 되는 놈들 키우는 데 장비 값이 백억이 넘어간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한 놈당 재료비만 일억이 넘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이현수에게로 향한 강진호의 고개가 다시 위긴스에게로 돌아갔다.
그러자 위긴스가 난처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마법사는 육성에 돈이 드는 클래스입니다. 이것만은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들어도 그렇지! 단기간에 이만한 돈이 들 리가 있습니까! 이게 사부님 개인 연구비가 막대하게 들어가지 않고서야 나올 비용입니까?”
“그게 뭐 잘못됐나?”
“……예?”
“말했잖느냐, 이제 좀 실전적으로 키워보고 싶어서 돈이 많이 필요하다고.”
“그렇죠. 그 말은 하셨죠.”
“나도 나를 육성해야 할 것 아니냐!”
“…….”
“내가 최대 전력인데! 내가 더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 그러니 나도 연구를 해야 하고, 이것저것 해봐야 할 것 아니냐!”
와…….
논리 쩐다.
이현수가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하자,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이현수 대신 결정을 내려주었다.
“지원해 줘.”
“감사합니다, 로드.”
“회주님!”
이현수가 납득 못하겠다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백억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아무리 총회가 돈을 많이 벌고, MK가 펑펑 벌어 대고 있다지만, 이런 식으로 돈을 써 대면 엎어지는 건 금방입니다.”
“헛된 데다 쓰는 것도 아니잖아. 지원해 줘. 상황이 상황인데, 설마 놀자고 그 돈 달라고 하겠어?”
“아니, 물론 그건 아니겠지만…….”
“위긴스.”
“예, 로드.”
강진호가 살짝 가라앉은 눈으로 말했다.
“대신 성과는 내줬으면 좋겠군.”
“물론입니다, 로드. 만족하실 겁니다.”
“수련을 지원하는 입장에서 결과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어. 이런 말을 하게 되어 미안하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를 제가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로지 실전에 특화된 쪽으로 움직여 보겠습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수가 살짝 입맛을 다셨지만, 강진호가 이리 확정해 버린 일을 물고 늘어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 일단 지원은 해드리겠습니다.”
위긴스가 이현수를 보며 윙크를 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이현수가 연신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다시 태광 쪽으로 돌아가서…….”
이현수가 손에 든 보고서를 살짝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무인계는 처리했지만, 아직 일본이 완벽하게 저희의 휘하가 된 건 아닙니다. 무인계와 정권은 함께 가지만, 그래도 분리되어 있지요. 그렇기에 무인계의 영향력만으로 빼 오는 돈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음…….”
“그래서 태광을 통해 기업을 설립하고, 유통권을 장악할 생각입니다. 결국 돈을 버는 건 유통망이죠. 무인계와 야쿠자의 지원을 받아 빠르게 유통망을 장악하고, 여러 가지 루트로 돈을 빨아 올 겁니다.”
“오, 유통망을?”
“머리 잘 굴렸군.”
“음.”
이사들의 호응에 강진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알아듣는 척해야지.’
왜 그럴까.
학교도 경영학과를 갔고, 나름 공부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왜 저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나.
대학 교육이란 대체 무엇…… 아, 나 몇 년 배우지도 않았구나.
“그래서 정홍근이 중요합니다. 이 양반은 정말 온갖 수단으로 골수까지 돈을 빨아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MK와 태광이 명목상 7대 3. 실질 9대 1로 합작을 하여 뽑아낸 돈을 나눠 먹는 형식으로 갈 겁니다.”
“그쪽에도 확실히 이득이 되겠군.”
“네. 그리고 합작의 대가로 태광 주식을 받아올 겁니다. 그러면 그 손실도 보전될 겁니다.”
“…….”
위긴스가 흐뭇하게 웃었다.
“살면서 수도 없는 날강도를 봤지만, 이런 날강도는 또 처음 보는군. 제정신 박힌 사람이 그 조건을 수용하겠는가?”
“할 겁니다. 정홍근은 단기간의 이익 따위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어떻게든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길바닥에 나앉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지요.”
이현수가 슬쩍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원래 우리 회주님이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게 특기 아니겠습니까. 알아서 하시겠지요.”
“하기야 뭐.”
“그럼 걱정할 게 없겠군.”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
강진호가 이사들의 반응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여러분.
저는 때로 여러분의 과한 기대가 부담이 됩니다.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는데…….
이미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 버린 이사들을 보며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