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98
#1597.
훈련하다 (2)
“왔다!”
“오!”
분석관들이 모니터 앞으로 일제히 모여들었다.
“전송 완료?”
“지금 막 들어왔어!”
“좋아, 이제 일을 할 수 있겠군.”
웨인 러셀이 흥분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게 뭔 구시대적인 일이지 모르겠군. 영상이 넘어오는 걸 기다려야 한다니.”
“보안상 라이브는 불가능하다고 하잖아. 지구 반대편의 영상이라는 것도 감안해야지. 위성 쪽도 해킹의 위험이 있어서 쓸 수 없다고 하더군. 전용 핫라인을 쓰는 중이야.”
“불편하군, 불편해.”
분석관이 화면에 차오르는 그래프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20년 전 같은 느낌이로군. 전송을 기다리며 두근두근하는 게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야.”
“그때는 사진이었겠지.”
“아마도 비키니였을 거고.”
“닥쳐, 멍청한 것들아. 내가 받은 것은 논문이었어.”
웨인 러셀이 피식 웃고는 살짝 초조하게 마우스를 흔들었다.
‘동양의 마왕의 훈련법이라…….’
웨인 러셀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이건 정말 끝내주는 정보다. 전 세계 어느 국가도 이런 기밀 정보를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이 무인을 육성하기로 한 이후, 수많은 채널을 통해 유력자들의 수련법을 입수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제대로 된 수련법은 거의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얻는 거라고 해봐야 기초적인 수련법이나 별 효과가 없는 것들.
그런 것들을 참고할 바에야 차라리 독자적인 수련법을 확립하자 싶어서 과학적인 수련법을 접목해 만들어낸 게 바로 SOB였다.
그런데 지금 그들에게 저 마왕의 수련법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다.’
그리고 단언하건대, 누군가를 가르쳐 이끌어 나가는 것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자는 불과 몇 년 만에 동아시아의 완충지대에 불과하던 한국을 폭풍의 핵으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이니까.
웨인 러셀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화면을 바라보다가 전송된 동영상을 더블 클릭했다.
그러자 중앙의 메인 화면에 동영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다들 팝콘이라도 하나 들고 싶은 심정으로 화면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내 화면에 재생되는 영상을 바라보는 분석가들의 얼굴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뭐야?”
“영상 잘못된 거 아냐?”
“……다른 건?”
다발적으로 전송되는 영상이 하나하나 바뀌어 재생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용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이, 이게 마왕의 수련법이라고?”
“농담이지?”
웨인 러셀이 멍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땀과 침이 범벅되어 반쯤 눈이 풀린 군인이 강진호에게 걷어차여 나가떨어지는 광경이 들어왔다.
“…….”
강진호가 쓰러진 군인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멱살을 움켜잡아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연병장의 구석 트랙이라고 할 만한 부분에 도착한 강진호가 군인을 떠밀어 달리고 있는 이들 사이로 밀어 넣었다.
“단순한 달리기?”
“아니. 저걸 단순하다고 할 수는 없지. 세계 신기록급의 속도로 계속 달리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래봐야 단순한 달리기잖아.”
“달리고 있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
분석가들의 눈에도 보였다.
달리고 있는 이들이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모습이 말이다.
마치 1,000㎞ 행군의 마지막 날을 주파하는 이들의 얼굴 같았다.
털썩, 털썩.
달리던 이들 중 몇몇이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지만, 뒤쪽에서 따라오던 이들은 딱히 놀랄 것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그들을 뛰어넘어 계속 달렸다.
그러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뛰어 들어가 쓰러진 이들을 밖으로 끌어냈다.
“라스트 원 스탠딩?”
“모르겠군. 대체 뭐 하는 거지? 저건 단순한 괴롭힘에 불과하잖아?”
“저런 식으로 강해질 수 있나? 몸만 상할 것 같은데?”
“망할, 저 인간이 우리 병사들을 다 망칠 생각인가 보군.”
반응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웨인 러셀은 그 광경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당연한 반응이지.’
미국이라고 해서 근성론이 없던 건 아니다. 과거, 서부 시대에는 용감한 자는 총알도 피해간다는 말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던 곳이 미국이니까.
하지만 그 근성론은 사회가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철저하게 논파되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은 법칙에 따라 흘러간다. 스포츠 선수의 훈련도 과거에는 단순히 과격한 훈련을 얼마나 버텨내는가로 중점이 맞춰지다가,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훈련과 회복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으로 전환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구시대의 유물이 펼쳐지고 있으니 어찌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는가.
“미친! 저거 당장 멈추게 해!”
“진정해. 우린 그럴 권한이 없어.”
“권한? 병사들이 다 망가지고 나서도 권한이 없다고 나불댈 텐가?”
웨인 러셀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일단은 기다려 봐. 내가 위쪽 채널을 활용해서 피드백을 넣어볼 테니까.”
웨인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분석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곤란하군.’
* * *
레지 머서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당장 그만두게 하게.]“말씀을 그렇게 하셔도 제가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애초에 저는 지휘권을 가지고 있을 뿐, 훈련에 관한 부분은 저쪽에 전권을 준 것 아닙니까. 어떤 훈련을 하더라도 사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상은 입을 뗄 수 없습니다.”
[저 구시대의 망령 같은 훈련법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구시대의 망령이요?”
레지가 피식 웃어버렸다.
“그 구시대의 망령에 박살이 나버린 입장에서 그게 할 말입니까? 웃기지도 않는 소리죠.”
수화기 너머에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할 말이 없겠지.
“일단 말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제가 추진한 게 아닙니다. 추진하신 분들이 하루 만에 말을 바꾼다는 소리가 나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잘 아시겠죠.”
[끄응.]레지 머서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제 생각입니다만, 저걸 단순한 구시대의 망령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무인들에 대한 이해도는 저들이 우리보다 비할 바 없이 높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 강진호라는 사람은 단순히 과거의 망령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으음.]“내버려 두십시오. 정말 과하다면 제가 말려 보겠습니다.”
[일단 부탁하겠네. 군단장에게도 말 잘 부탁하네.]“예.”
레지 머서가 전화를 끊고는 혀를 찼다.
“쓸데없이.”
이들이 뭘 걱정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 일은 원래 그런 일이 아닌가.
기존에 하던 방식을 깨고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인다는 건 다 그런 것이다. 반드시 거부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 거부감을 극복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더 나아갈 수 있느냐가 갈리는 것이다.
레지 머서가 휴대폰을 던지듯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텐트 입구에 쳐져 있는 천을 걷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의 눈에 아수라장이 되어 있는 연병장의 모습이 들어온다.
“으으음.”
심하긴 하네.
심하긴.
레지 머서의 눈에 조금 전 이곳에 도열해 있던 병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동안 강병으로 만들어온 그의 15사단이 어린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강인하고 훌륭한 모습이었다. 이 파견 사단의 사단장으로 부임한 것이 절로 뿌듯해질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어…….
“사, 사단…… 사단장님.”
“살려…… 살려주…….”
“죽습니다. 이러다 죽습니다.”
레지 머서가 빙그레 웃었다.
“내가 뭔 힘이 있을 것 같나?”
“…….”
“뛰어.”
“…….”
병사들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레지 머서가 슬쩍 몸을 돌렸다.
사실 정말 그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가 무인의 수련법에 대해서 뭘 안다고 강진호에게 말을 하겠는가.
그의 눈에 연병장 한가운데서 산책하듯 걷고 있는 강진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한 잔 드립니까?”
“…….”
연병장 한쪽 끝에 간이 의자를 가져다 두고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 마시는 이현수의 모습도 들어왔다.
‘이놈은 왜 이렇게 얄밉지?’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저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걸까?
“괜찮소.”
“맛있는데.”
“……그럼 한 잔.”
이현수가 씨익 웃고는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 레지 머서에게 건넸다.
레지가 그 커피를 받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이현수의 옆에 섰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소?”
“얼마든지 물으시죠.”
“……총회에서도 이런 식으로 수련을 합니까?”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에이, 설마요. 총회에서는 이런 수련을 안 합니다.”
“그렇죠?”
“우리 애들은 총회에 들어오기 전에 이 정도는 다 떼고 들어옵니다. 여기 애들 상태가 너무 나빠서 기초 중에 기초를 다시 할 수밖에 없는 거죠.”
“…….”
레지 머서가 눈을 크게 떴다.
“어…… 기초?”
이게?
이현수가 커피를 후루룩 마시더니 피식 웃었다.
“운 좋은 거죠.”
“예?”
“회주님께 기초 수련을 받다니. 총회의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호사를 받고 있네요.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레지 머서가 멍한 눈으로 연병장을 바라보았다.
호사?
저게 호사라고?
다들 뒈지게 생겼는데?
“하지만 이건 너무 구식…….”
“어허, 말조심하세요. 회주님이 들으시면 눈 치켜뜨십니다. 저 분이 기분만 나빠져도 평범한 사람은 심장마비 옵니다.”
“…….”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동양의 수련법이 무조건 구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물론 구식 수련법, 비과학적인 수련법도 아직 있죠. 하지만 그쪽들이 발전하는 것처럼 우리도 발전합니다. 합리적이지 않은 수련은 배제하죠.”
“그럼 저게 합리적인 수련법이라는 거요?”
“무척 합리적이죠. 일단 스포츠 선수만 해도 훈련 전에 가벼운 러닝으로 몸을 풀거나, 체력을 만들잖습니까.”
“가벼운?”
“네. 가벼운.”
이현수가 슬쩍 연병장을 돌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과학적 수련법? 좋죠. 하지만 그 과학은 기본적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중치를 두지 않소?”
“가중치요? 쟤들은 체력이 이 정도니까 일반인에 비해 몇 배 더 과한 훈련을 시키면 된다? 농담하지 마시죠. 무인이 어떤 놈들인지 이해를 못하니까 그런 겁니다. 저 새끼들은 팔다리가 부러져도 다음 날이면 뛰쳐나가 축구 차는 놈들입니다.”
“…….”
“무인의 회복력을 감안하지 않은 수련은 저놈들에게는 스트레칭밖에 안 됩니다. 그 스트레칭을 십 년이 넘도록 해오면서 데이터를 모으고 있던 거죠.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신들이 모은 데이터는 다 쓰레깁니다.”
이현수의 신랄한 말에 레지 머서가 얼굴을 굳혔다.
“음, 말이 좀 심했나요?”
“아니오. 내가 모은 것도 아닌데.”
“…….”
이현수가 슬쩍 고개를 돌려 레지 머서를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요.”
이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이 사람도 좀 이상한 사람 같다.
그가 의자에 기대 뺑뺑이를 돌고 있는 SOB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기대했겠지.”
강해지는 빠른 방법을 찾았다고.
하지만 세상의 진리는 단순하다. 대가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고, 왕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저들은 뼛속까지 그 사실을 실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