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0
#159.
여행가다 (4)
여행 당일.
“조심해서 다녀오거라.”
“전화하고.”
“네.”
강진호는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될 수 있으면 어딜 가든 금동이를 이용하고 싶었지만, 그가 생각해도 인천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은 좀 과했다. 게다가 짐도 있지 않은가.
“음…….”
택시를 타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조규민의 안정적인 운전에 젖어버린 강진호는 이제 택시를 꺼려하는 몸이 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강진호는 차고로 향했다. 오늘 같은 날에는 차 모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로 한 강진호였다.
우릉! 우르르릉!
“쯧.”
이 차는 정숙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고작 시동을 걸었을 뿐인데 엔진이 비명을 토해내고 있었다. 고음이 아니라 낮은 저음이지만, 그래도 귀에 거슬리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기름도 엄청 먹고.”
풀로 기름을 채운 채 한 번 운행했을 뿐인데, 기름통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 정도면 기름을 태우며 달리는 게 아니라 바닥에 뿌리고 달리는 수준이다.
시끄럽고, 연비 안 좋고, 사람 시선까지 끄는 이런 차를 사람들은 왜 좋다며 몰고 다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강진호였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은…….
우우우웅!
엑셀에 발을 올리자마자 튀어나가는 이 반응속도였다.
운전 교습소의 반응 느린 차를 탈 때는 답답한 마음이 많이 들었는데, 이 차는 그런 점이 없어서 좋았다.
강진호는 천천히 엑셀을 밟아 차를 몰면서 폰을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네, 강진호 씨. 준비는 되셨나요?]“지금 가는 중입니다.”
[저도 지금 출발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시간이 걸려요?”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마지막 아침 교습까지 받았는데, 누가 제 차 앞쪽에 차를 대놔서 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택시를 타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학원이세요?”
[예.]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아마 제대로 마음이 간 모양이었다. 출국 전날까지 아침 교습이라니.
조규민은 자신만 믿으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그만 믿고 있을 수 없던 강진호는 다른 비슷한 학원을 찾아서 나름 공부를 한 뒤였다.
그러니 조규민이 그리 열심히 할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럼 기다리세요. 근처니까 제가 픽업할게요.”
[아, 그러시겠습니까?]“네, 지금 갑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강진호는 차를 몰아서 조규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잊고 있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했다.
강진호의 차를 본 순간 조규민은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지만, 혹시나 비행기 시간을 놓칠까 봐 바로 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게 실수였다.
강진호가 엑셀을 밟는 순간 조규민은 자신이 무엇을 잊었었는지를 바로 기억해 냈지만, 이미 차에 오르고 벨트를 맨 이상 되돌릴 길은 없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악!”
급가속을 하던 차가 바로 앞의 차와 스치듯이 차선을 변경하며 앞으로 치고 나간다.
끼익! 끼익!
순간적으로 밟아지는 브레이크가 비명을 지르며 차체가 요동을 친다.
“아니! 뭐가 그리! 급하셔서! 으아아아아!”
조규민이 비명을 질렀지만, 강진호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강진호 씨! 왜 차를! 으아아, 방어 운전! 방어 운전 모르십니까?”
“방어 운전 하고 있는데요.”
이게?
야, 이 미친놈아! 이게 방어 운전이냐? 방어처럼 차가 펄떡펄떡 뛰고 있는데!
직장이고 뭐고 당장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그 욕을 막아낸 것은 조규민의 의지가 아니라 강진호의 급커브였다.
끼이이이익!
공도에서 차를 타면서 타이어가 마찰하는 소리를 실시간으로 계속 듣는 것도 진귀한 경험이었다. ‘저 타이어도 비싼 건데, 남아날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조규민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미쳤지.’
강진호가 모는 차를 타다니.
과거에 경험한 것들을 잊었느냐, 조규민!
조규민은 눈물을 뿌리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강진호가 운전을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잘했다.
그냥 운전 실력으로만 본다면 운전을 잘하는 수준을 넘어서 눈 돌아가게 잘한다.
지금도 보라.
앞차와 옆 차 사이를 기가 막히게 라인을 잡으며 빠져나가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야, 이 씨!”
등 뒤에서 아련하게 욕설이 들려온다.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보통 욕을 먹으면 이쪽에서도 욕이 나가는 것이 정상이건만, 조규민은 욕을 쏟아내는 운전자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눈 돌아가게 잘하는 건 맞는데, 이런 건 트랙에서나 해야 하는 운전이지 공도에서 할 운전이 아니었다.
급가속과 급브레이크가 반복되며 눈앞에 있는 차를 모조리 제치며 강진호의 람보르기니가 인천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제, 제발…….’
차라도 좀 막혀주지.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막히는 길을 뚫고 갈 수는 없으니 차라도 막혔으면 좋겠다고 비는 조규민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사고 난다구요!”
이 속도로 사고가 나면 즉사라고, 이 미친놈아!
“걱정이 많으시네요.”
“하지 마세요오오오!”
조규민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 * *
이미혜는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한 채 퍼스트 클래스로 향했다.
“오늘 VIP 탔다고 하니까, 절대 실수하면 안 돼!”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브리핑 시간에 사무장으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국대 5대그룹의 이사진이 타더라도 따로 VIP가 탔다는 언질을 들은 적이 없던 그녀다. 그럼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탔기에 이런 말이 따로 나오는 것일까.
‘실수하면 죽음이다.’
괜히 실수라도 해서 눈 밖에 나는 짓을 했다가는 VIP가 아니라 사무장이 그를 죽일 것이다.
이미혜는 뻣뻣한 동작으로 퍼스트 클래스로 들어섰다.
‘으응?’
열두 석의 퍼스트 클래스에 딱 두 명이 타고 있었다.
‘누가 VIP지?’
최소한 돈을 지불하고 이곳에 탄 이상 같은 급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한 일이었다. 상대의 신분에 따라 다른 서비스를 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도 사람인지라 누가 VIP인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
하지만 지금 상황만으로는 누가 VIP인지 알 수가 없었다. 기내에 탑승한 사람은 딱 두 명. 그중 하나는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양복을 쫙 빼입고 있기는 하지만 반쯤 질린 얼굴로 넋이 나가 있었다.
“소, 손님, 괜찮으세요?”
보통은 이런 식으로 첫 대면을 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것부터 물어야 했다.
“…물 한 잔 주실래요?”
“네! 지금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냉수를 마신 사내는 겨우 정신을 차린 얼굴로 앞쪽 좌석을 도끼눈으로 바라보았다.
‘누가 있는 거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앞을 살피자 아직 젊어 보이는 청년이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저쪽이다.’
이미혜는 누가 VIP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별로 비싸 보이지 않는 옷과 돈과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스타일.
그리고 어린 나이.
누가 봐도 퍼스트 클래스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니 이쪽이 VIP지.’
퍼스트 클래스에 타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사무장님이 굳이 언질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쪽이 진짜 VIP라고 할 수 있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손님. 저는…….”
한창 브리핑을 하는 동안에도 VIP는 듣는 둥 마는 둥하더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르겠다고 하고는 누워서 눈을 감아버렸다.
‘이제부터 긴장해야지.’
진짜 전쟁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부터다. 안전벨트가 풀리고 기내 서비스가 시작되는 순간이 그녀가 나설 순간이니까. 이미혜는 승무원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매고는 심호흡을 했다.
서비스란 과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응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반드시 그 서비스의 기본을 이뤄내겠다고 이미혜는 굳게 다짐했다.
그랬는데…….
이미혜는 뚱한 얼굴로 기내를 바라보았다.
보통, 그러니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퍼스트 클래스에 타게 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려고 한다. 흔한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모든 서비스는 다 누리려고 하기 마련이었다.
더구나 요즘은 일등석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서비스는 모조리 다 받아보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일등석의 승객 수대로 라면을 끓여야 한다거나 와인을 열 종류씩 테이스팅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일등석에 왜 탄 거지?’
물론 돈이 있으니까 탔겠지.
그런데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 만한 거금을 주고 일등석에 탔으면 최소한의 서비스는 누려야 할 것 아닌가.
광저우로 향하는 네 시간의 비행 동안 일등석에 탄 두 남자는 단 한 번도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너무도 불안하고 초조해서 그녀가 먼저 찾아가서 뭔가 필요한 것은 없으신지를 물어도 그들은 손을 내저으며 필요한 게 있다면 따로 부른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기내식이라도 먹는 시간대에 타든가.’
하필이면 시간대가 절묘해서 기내식도 먹지 않는 시간이다. 덕분에 그녀는 네 시간 동안 도끼눈을 뜬 채 그냥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차라리 부려 먹으라고!’
이건 이거대로 고문이었다.
사사건건 모든 일을 다 시키는 손님도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인간들을 보니 그분들은 차라리 고마운 손님들이었다.
한시도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네 시간을 부동자세로 이동하는 게 이리 힘든 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저희 비행기는 지금 광저우. 광저우 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기내 방송을 들은 그녀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물 한 모금 먹은 게 다네.’
이럴 거면 차라리 이코노미를 타지.
겨우 물 한 잔 얻어먹으려고 퍼스트 클래스를 타다니, 그건 이코노미에서도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준단 말이다!
비행기가 하강하고 안전벨트를 푼 손님들이 내리면서 하는 말이 그녀를 더 폭발하게 만들었다.
“아, 빨리 왔다.”
“자리가 넓으니 좋네요.”
둘은 그 말을 남기고 유유히 비행기에서 내렸다.
“…신개념 진상인가?”
이미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입국 심사장을 거쳐 공항으로 나온 강진호와 조규민이 흡연 구역으로 가서 담배를 물었다.
“네 시간이라고 해서 금방 올 줄 알았는데, 막상 타보니 네 시간도 길기는 기네요.”
“예.”
“그런데 우린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이제 말씀 좀 해주시죠.”
강진호는 휴대폰을 켜 지도를 열었다.
“네?”
강진호가 가리킨 곳을 본 조규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요?”
“예.”
“아니, 여기는 대체?”
조규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광저우로 간다기에 근처에 마카오도 있고 홍콩도 있으니 근처로 이동할 줄로 알았건만, 강진호가 가리킨 것은 난닝과 광저우 사이에 있는 거대한 산맥 줄기였다.
“…여기는 뭐라고 부르는 겁니까?”
“음…….”
강진호가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보통은 십만대산이라고 하죠.”
“십만대산요?”
“다른 말로는…….”
강진호는 조금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천산이라고 합니다.”
마교가 있던 곳. 그곳의 이름이 천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