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00
#1599.
훈련하다 (4)
파아아앙!
검이 휘둘러진다.
‘느려.’
파아아아아앙!
검이 더욱 빨리 휘둘러진다.
‘느려.’
강진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스파아아앗!
검이 그가 마음에 그린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
정확한 궤도,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궤적이다.
하지만 그 궤적을 따라가는 검의 속도는 강진호의 마음만큼 완벽하지 않았다.
우뚝.
강진호의 검이 허공에 그대로 멈췄다.
천천히 검을 내린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지만, 짙은 피로가 그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어렵군.’
모든 걸 뒤집어 다시 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강진호는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무의 완성.
무의 완성이라는 것은 뭘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 무학을 배울 때 그는 그저 강해지는 것만을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무의 완성이라는 것은 강해짐을 쌓는다고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건 끝이 없는 길이지만, 이건 끝이 있는 길이니까.
그럼 강진호가 생각하는 무의 완성이란 무엇일까.
사유와 사유의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완성이란 완벽.
그래, 완벽함이다.
세상을 부수는 강함도 필요없다. 마기를 극한으로 끌어 올려 지금까지 마인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초자 완성은 아니다.
완성이란 더할 것이 없는 것.
그건 다시 말해 완벽한 한 번의 검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으니 이제 노력만 하면 되는데…….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어렵군.’
이건 정말 어렵다.
무학에 관해서는 우는소리를 하지 않는 강진호지만, 이건 정말 답이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완벽함이란 대체 뭔가.
그리고 완벽한 한 번의 검이라는 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머릿속으로 그리고 또 그려도 도무지 잡히지 않는다. 무학을 익히면서 이렇게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 같은 느낌은 처음이었다.
“후우우…….”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마음속에서 가장 완벽한 하나의 궤적을 그렸다.
직선.
아니.
곡선?
그것도 아니다.
그런 정해져 있는 형태를 그려서는 도달할 수 없다.
‘결국은 나다.’
완벽이라는 하나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고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이것 역시 무학이라니까.
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 가지의 완벽함이 있다. 아니, 그 이상의 완벽함이 존재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처음 강진호가 익히기 시작한 무학부터, 그가 지금까지 이룩해 온 모든 것을 다시 되돌아봐야 한다.
그 깊고 깊은 관조가 끝났을 때, 강진호의 마음속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하나의 선이 그어질 것이다.
“그걸 따라 할 수 있느냐는 또 별개의 문제지만.”
강진호가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육체의 혹사가 아니라, 끊임없는 정신의 혹사가 육체에까지 영향을 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느새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소매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을 본 강진호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땀이라…….’
이게 얼마 만이지?
최근 들어서는 처음 무학을 익히던 때로 돌아온 느낌마저 난다. 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발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하나하나 고민하던 그때로 말이다.
‘돌고 돌아 근본이라…….’
재미있는 일이다.
강진호는 무학의 수많은 단계를 몸으로 겪으며 나아갔다. 그런데 나아가고 나아간 끝에 도달한 곳은 다시 처음 그가 시작한 곳이었다.
순환?
그게 아니면 기본?
글쎄.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지만,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어렵다.
지난하다.
하지만 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확연한 느낌이 있었다. 어떻게든 이 모호한 줄을 놓지 않고 잡아갈 수 있다면 그가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느낌이 말이다.
우우우우웅.
아공간이 열리며 적루와 청루를 집어삼켰다.
검을 역소환한 강진호가 짧게 호흡을 끊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음, 우선은…….”
그가 땀에 절어 축축해진 옷을 보며 피식 웃었다.
“좀 씻어야겠군.”
쏴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총회에서 샤워를 하는 건 엄청 오랜만인데.’
총회에는 당연히 공용 사워실이 있다. 육체 단련을 기본으로 하는 총회에 샤워실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총회의 샤워실은 시설 결벽증에 걸려 있는 이현수와, 사내새끼들끼리 쓰는 곳은 무조건 더럽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이현주 덕분에 호텔급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증축과 리모델링, 재리모델링을 몇 번이나 반복한 덕분에 신축한 고급 골프장 샤워실 이상의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총회의 샤워실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
강진호는 도무지 두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샤워실이란 말 그대로 몸을 씻는 곳.
그냥 물이나 잘 나오고 더럽지만 않으면 되지.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이랬지.’
돌이켜 보면 이게 기본이었다. 그는 언제나 이현수나 이현주가 하는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그들이 그보다는 현대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군말 없이 승인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잖은가.
“후.”
몸에 떨어지는 차가운 물의 감촉에 강진호가 짧게 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아오, 오늘도 진짜 뒈질 뻔했네.”
“요즘 방 이사님 너무 과격하지 않냐?”
“가서 직접 말해보지?”
“미쳤어? 대가리 처박은 자세로 연무장 두 바퀴는 돌라고 하실 텐데.”
“벌이 무서운 거냐, 머리 빠질까 봐 무서운 거냐?”
“둘 다, 새끼야! 둘 다!”
강진호가 살짝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샤워장으로 일련의 무리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족히 백 명은 넘게 동시에 씻을 수 있는 샤워장이 순식간에 가득 찼다.
샤워장이 이곳 한 군데만이 아닌데 여기로 이 많은 이들이 온 걸 보면, 지금 막 수련이 끝난 모양이었다. 다른 곳도 들어차고 있겠지.
살짝 불편함을 느낀 강진호가 빠져나갈 각을 봤다.
그가 불편한 게 아니라, 여기에 그가 있으면 다른 이들이 불편할 것이다. 그러니 눈치채기 전에 슬슬…….
“그런데 회주님도 좀 너무하지 않냐?”
응?
빠져나갈 각을 보던 강진호가 슬그머니 몸을 돌리며 앞쪽으로 붙었다.
유리 칸막이가 그의 모습을 가려주었다.
“이제는 미군 기지까지 가서 양키 놈들 가르치신다며?”
“글로벌하시지, 아주 글로벌하셔. 예전에는 상상이나 했던 일이냐?”
“이제 총회가 예전의 총회가 아니잖아. 크으, 나는 자랑스럽다. 우리 회주님이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분이다, 이거지.”
처음 말을 꺼낸 이가 코웃음을 쳤다.
“야, 좋아하면 뭐 하냐? 그게 우리한테 좋은 건 뭐가 있는데?”
“뭔 소리야? 회주님의 위상이 올라가면 총회의 위상이 올라가는 거고, 총회의 위상이 올라가면 우리도 좋은 거지.”
“뭐가 좋은데?”
“그야…….”
마땅한 대답이 이어지지 않았다.
“새꺄, 현실적으로 봐라. 회주님이 바빠지면서 우리한테 주는 관심이 줄어든 것뿐이잖아. 너, 최근에 회주님 얼굴이나 제대로 본 적 있냐?”
“…….”
“예전에는 그래도 간간이 들러서 조언도 해주고, 수련도 시켜주시더니, 이제는 방 이사님한테 맡기고 나 몰라라 하시잖아.”
“그야 회주님은 마염들 가르치느라 바쁘시니까.”
“걔들 요즘 장로님한테 수련받는다던데?”
“그래?”
“그래. 회주님은 이리저리 바쁘니까, 자꾸 밑으로 미뤄지는 거지.”
한 사람이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데 그게 회주님 잘못은 아니잖아.”
“아니, 이 새끼, 사람 몰아가는 것 봐. 내가 언제 회주님이 뭘 잘못했다고 했냐? 다만, 요즘 관심을 너무 안 주신다는 거지.”
“그야 회주님은 할 일이 많으시니까.”
“알지, 알아, 새끼야. 그런데 나는 속이 좁아서 좀 섭섭한 걸 어쩔 수가 없다.”
“애도 아니고…….”
“근데 이게 아까부터. 한판 할래?”
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입장 곤란하네.’
차라리 처음부터 있는 티를 냈으면 잘 풀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리되니 나가기가 곤란해졌다.
차라리 모두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근데 쟤 누구냐?”
“응?”
강진호가 앞쪽으로 조금 더 바짝 붙었다.
“우리 오기 전부터 저기 있던데, 쟤는 뭔 샤워를 저렇게 오래해? 아니, 잠깐만……. 우리가 수련 끝나고 제일 먼저 뛰어왔는데 먼저 씻는 놈이 있다고? 저거, 농땡이 친 거 아냐?”
“냅 둬.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긴! 다들 지금 죽어라고 수련을 하는데, 어디서 농땡이를 까? 대가리 깨버릴라.”
어…….
그 자세는 정말 좋다. 정말 좋은데…….
좀 넘어가 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야! 너 누구…… 와! 이 새끼 근육 봐!”
“응?”
“뭔 등에 선을 그어놨다. 뭔 놈의 등근육이 저렇게 갈라지지? 뭔 말이냐? 야생마여?”
“…….”
“야, 너 누구야? 내가 너 같은 놈을 본 적이 없는데. 야, 돌아봐.”
“…….”
“돌아보라고. 강제로 돌려줘?”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야, 너 좀 잘생…… 생…….”
말을 하던 이가 입을 다물었다.
작던 동공이 천천히 확대되는 모습이 강진호의 눈에 정확하게 들어왔다.
“회, 회…… 회주, 어…… 여기 계시면 안 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죄송합니다!”
“회주님이 계신지 몰랐습니다.”
“제가 말을 함부로 했습니다. 죽여주십쇼!”
샤워실에 있던 회원들이 일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강진호가 그 광경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무릎은 왜…….”
“죄송합니다! 정말 저희가 아무 생각 없이!”
“보, 본심은 아니었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본심이니 아니니,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
“…….”
“일단은 너희가 섭섭해한다는 건 잘 알았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먼저 사과한다.”
“아닙니다, 회주님!”
“저 새끼가 복에 겨워서 아가리를 함부로 놀린 겁니다!”
“저희가 알아서 죽이겠습니다!”
마지막은 뭐지?
순간, 칼날 같은 눈빛이 쏟아졌다.
섭섭하다는 말을 꺼낸 이는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강진호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누굴 탓할 일은 아니고, 여하튼 그런 부분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여기서는 좀 곤란하고. 일단 샤워를 마저 하고…….”
강진호가 입을 다물었다.
알몸으로 무릎을 꿇고 모인 회원들의 시선이 정확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를 생각해 본 강진호가 조금 떨떠름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뭘 보나?”
“아…….”
가장 앞에 있던 이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었다. 슬쩍슬쩍 강진호의 눈치를 보던 이가 살짝 겸연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워낙 인상적(?)이라서.”
“…….”
“회주님은 회주님이시네요.”
“…….”
뒤쪽에 앉아 있던 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존경합니다.”
“…….”
강진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다 패버릴까?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