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07
#1606.
추진하다 (1)
“여기와 여기, 그리고 여기입니다. 그 외에도 뭐…….”
컴퓨터와 연결된 TV 화면에 지도가 켜졌다.
강진호는 가만히 화면을 살피다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저게 뭔데?”
“조규민이가 보내준 보육원 부지입니다.”
“…….”
아니, 재경이랑 MOU라도 체결했나?
거기 일이 왜 총회에서 진행되지?
강진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바라보자, 이현수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안 그래도 바쁘신 분 자꾸 오라 가라 할 수 없어서 여기로 보낸다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
“동방예의지국에 이런 위아래도 없는 놈이 존재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나를 부려 먹을 생각을 하지?”
“다른 건 다 모르겠고, 네가 예의를 따지는 게 참 어색하고 그렇다.”
“에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상에 저만큼 예의 따지는 사람이 또 어딨다고요.”
그 뻔뻔한 말에 강진호가 할 말을 잃었다.
“여하튼 부지는 대충 이 정도로 정할 거랍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까?”
“뭐,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살기만 좋으면 되지.”
이현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 일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
이현수가 강진호의 말을 끊고는 지도를 슬쩍 바라보았다.
“조 실장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보육원이라는 곳은 번화한 곳에 있으면 있는 대로 문제가 생기고, 외진 곳에 있으면 또 그 나름의 문제가 생깁니다. 부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인식이 어떠냐의 문제죠.”
“음…….”
일리가 있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은 두 가지 시선을 동시에 받기 마련이다.
안쓰러움이 어린 동정의 시선, 그리고 자신들의 아이와 어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경계의 시선.
그 어느 쪽도 달가운 것은 아니다.
새로 보육원을 짓기 위해서는 우선 이 인식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다. 이현수가 말하는 게 그런 부분이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응?”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때로는 대범할 필요가 있는 거죠. 부지처럼 사소한 건 그냥 알았다고 하시면 됩니다. 이놈도 쓸데없이 자잘한 것까지 보고하네요.”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뒷말은 그렇다 치고, 때로는 대범할 필요가 있다는 건 공감이 간다.
“부지 선정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어느 학교로 배정이 되느냐의 문제죠. 애들이 좀 거칠다 싶은 학교로 가면 원생들이 고통받습니다.”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 보면 그도 이미 같은 문제를 여러 번 겪었다.
박유민이 그랬고, 한진성이 그랬다.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경우를 겪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문제로군.”
“네. 이게 먼저죠.”
“……학교에 찾아가 봐야 하나?”
이현수가 멍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찾아가서 뭐 하시게요?”
“교장이라도 만나 신경 써달라고…….”
“……농담이시죠?”
이현수가 정색했다.
“그건 절대 좋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애초에 그런 양반들은 굳이 아이들 하나하나를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교장급이 따로 챙긴다는 소문이 돌면 역효과만 날 겁니다.”
“그럼 선생?”
“차라리 홈스쿨링을 시키시죠.”
“…….”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회주님, 솔직히 말해서 이 문제는 답이 없습니다. 선생이나 교장이나 마찬가집니다.”
“…….”
“올챙이 시절 생각해 보십시오. 회주님은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선생님 찾아갔습니까?”
“아니지.”
“왜요?”
“내가 패면 되니까.”
“…….”
어…….
그거 정답이긴 한데…….
꼭 한 가지 질문에 한 가지 정답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며 이현수가 말을 이어갔다.
“애들 문제는 애들이 해결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렇긴 한데…….”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그게 쉽지 않으니까 고민하는 것 아닌가.
강진호가 고민하는 얼굴을 하자, 이현수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꺾었다.
“그런데 대체 뭘 고민하시는 겁니까?”
“……네가 말했잖아, 거친 애들이 있는 곳에 가면 애들이 따돌림당할 수도 있으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응?”
“설마 지금 해결책을 고민하시는 겁니까?”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현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뭐가 웃기지?”
“대한민국에서 그런 문제를 제일 쉽게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 고민한다고 하니까 어이가 없어서요.”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이현수가 그런 강진호를 보며 말을 이었다.
“회주님, 여긴 총횝니다.”
“알아. 그 방법은 이미 써봤어. 그런데 그건 여러 명에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야.”
이미 한진성의 일을 해결할 때, 적당한 총회 회원을 동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보육원이 커지면 아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문제도 잦아질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일일이 회원들을 보내다 보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다.
“아니요. 그 방법 말고요.”
“응?”
“회주님, 생각을 해보십시오. 애들이 왜 괴롭힘을 당합니까?”
“……고아라서?”
“아닙니다.”
“응?”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라니?
그 반응에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회주님이 고아라고 누가 괴롭히려 들겠습니까?”
“…….”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만만해서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를 굉장히 단순화시키는 말이지만, 사실 이게 정답이다. 따돌림이 벌어지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사실 상대가 만만하지 않다면 따돌림이 시작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만만하지 않게 만들면 됩니다.”
“어떻게?”
“간단하죠. 애들 풀어서 하루에 한 시간씩만 체력 단련시키십시오.”
“…….”
체력 단련이라…….
체력 단련…….
“체력만 단련하는 건가?”
“뭐, 그걸로 충분하다면 그러겠지만…… 겸사겸사 상처 안 나게 패는 법, 제일 아프게 패는 법, 동시에 여러 명 상대하는 법, 그리고 혼이 빠지도록 협박하는 법 등등도 배워서 나쁠 건 없겠죠. 그렇잖습니까?”
“…….”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다행히도 여기에는 그런 일에 전문가가 발에 채일 정도로 널려 있지 않습니까. 적당히 보육원마다 한 놈씩 배치시켜서 체육 교사로 삼아놓으면 반년 지나기 전에 인간 병기 만들 수 있습니다.”
“……무인으로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에이, 누가 무학 가르친답니까. 적당히 싸우는 법만 가르치는 거죠.”
이현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장담하는대, 이게 가장 좋은 해결책입니다. 애들 눈에 살기가 들어차는 순간, 어설픈 일진 놈들은 눈만 마주쳐도 오줌 지리는 법이죠.”
“…….”
괜찮을까?
정말 이걸로 괜찮을까?
아이들이 따돌림을 당하지 않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그걸 위해서 굳이 학교를 발아래 두게 할 필요가 있는 걸까?
“생각해 보면 굉장히 좋은 시스템입니다. 보육원 아이들은 학교에서 따돌림이 벌어지지 못하게 만들고, 혹시 그 녀석들이 사고 치는 건 체육 교사가 막을 수 있죠. 모두가 즐거운,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거 아닙니까.”
과연 그게 아름다운 세상인가?
정말?
“회주님, 저는 폭력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네가?”
“…….”
이현수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을 정정했다.
“……나름 선호하긴 하지만, 좋은 해결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음, 그래서?”
“하지만 때로는 폭력으로 해결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그저 임시방편밖에 되지 않습니다. 과감할 때는 과감하셔야 합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끙, 일단은 고려를 해보지.”
“뭐, 지금은 그 정도로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보육원 일이 생각보다 커지는 모양이네요.”
“그래.”
이현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잘됐습니다.”
“잔소리할 줄 알았는데?”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회주님이 그런 일을 하는 걸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기는 편이죠.”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건 전혀 가감 없는 이현수의 본심이었다.
“상황이 그때와는 다르니까.”
이현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바쁘기 때문에,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에 등등……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그 와중에도 지켜야 할 게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
강진호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삼왕계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조금은 마음에 걸렸으니까.
“그보다…….”
살짝 헛기침을 한 강진호가 말을 이었다.
“일본 연수생들의 훈련은 잘되고 있나?”
“잘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이제 시작인데요, 뭐. 다만, 장민 장로님이시니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습니까?”
이런 부분에서 장민은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회주님만 조심하시면 됩니다.”
“나?”
“예. 장민 장로님을 밖에서 만나지 마십시오. 그 난리 치는 모습을 연수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요.”
“…….”
마음만은 격하게 공감한 강진호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현실을 알려주고, 적당히 무르익으면 마공을 전수한다고 들었습니다.”
현실이라…….
강진호가 미묘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마 그 현실이 저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쪽은 알아서 하지. 그럼 미군 쪽에는 지금 누가 가 있지?”
“바토르 님요.”
강진호가 살짝 눈을 감았다.
그를 보낸 건 강진호 자신이지만, 어쩐지 미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잘 설명했나?”
“예. 회주님이 일주일 내로 기본 만들어놓으라 신신당부를 했다고 전했습니다.”
“…….”
내가?
내가 언제?
눈을 동그랗게 뜬 강진호를 보며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그렇게 말해두면 알아서 잘하시겠죠.”
어…….
잘하겠지.
너무 잘할까 봐 걱정이라 그렇지.
“내일쯤 다시 가서 확인하시면 될 겁니다.”
“음.”
그래.
설마 별일이야 있겠는가.
“바토르도 훈련을 처음 시켜보는 것도 아닌데, 사고 치지는 않겠지.”
“에이, 설마요. 짬밥이 얼만데. 적당히 어르고 달래가며 잘하실 겁니다.”
“그렇겠지.”
강진호와 이현수가 마주 웃었다.
이현수의 전화기가 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레지 사단장 같은데요?”
“…….”
액정을 살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이현수가 어떻게 하냐는 듯 강진호를 바라봤다.
“바, 받아봐.”
“……예.”
이현수가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현수 씨!]“네, 맞습니다. 무슨…….”
[사, 살려주십쇼! 저 사람, 완전히 미쳤습니다. 저…… 저기…….] [아아아아아아아아악!]다급하게 외치는 레지 머서의 목소리와 어디선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비명 소리가 섞여 전화기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현수가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전화를 그대로 끊고는 전원을 꺼버렸다.
“잘하고 계신 것 같네요.”
“방금 비명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훈련하다 보면 종종 있는 일이죠. 그보다 커피 한 잔 하시겠습니까?”
“어…….”
강진호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냥 그렇다고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