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08
#1607.
추진하다 (2)
“말씀하신 대로 성심 보육원에 있는 분들을 책임 보육자로 각 보육원에 보내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번갯불에 콩 볶아 먹나?
말 나온 지 이틀 됐는데 뭘 벌써 추진을 하나?
“그 추진이라는 게…….”
“보육 교사들과 협상을 하는 중입니다. 더 좋은 페이와 더 높은 직위를 약속했지만, 다들 고민이 많은 모양입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조규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직장을 옮긴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앞으로 옮겨야 하는 보육원들은 지금 사는 곳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잖습니까? 당연히 이사를 가야 합니다.”
“음…….”
“강진호 씨께서 이해하실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생활권은 바꾼다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성심 보육원의 보육 교사들은 거의 결혼을 하신 분들이라 남편 직장 문제도 있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고려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대부분이 성심 보육원을 떠나기 싫어한다는 점도 큰 문제입니다.”
“어째서?”
“……보육 교사분들은 딱히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일을 하시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을 돌볼 노력으로 다른 일을 하면 돈을 더 벌 수도 있을 겁니다.”
“음.”
“물론 성심이야 회장님께서 워낙 월급을 많이 주고 있어서 박봉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서 일하시는 분들이 더 많죠. 그런 아이들을 떠나야 한다는 게 탐탁지 않은 모양입니다.”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되레 좋았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성심 보육원이 좋은 곳이 될 수 있었다.
“일단 주거 문제는 이쪽에서 해결한다고 해.”
“예?”
“보육원 주변에 관사를 짓거나 아파트를 매입해. 거기에 살 수 있게 해준다고 해.”
“……좋은 방법이네요. 다만, 돈이 많이 들 텐데?”
“사놓으면 언젠가는 다시 팔 수 있겠지. 그럼 벌잖아?”
“투자 개념이라……. 지금 여유 자금이 넘쳐서 관사를 만들거나 아파트를 매입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그걸로 돈 벌 생각은 안 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다 외곽 쪽이라 집값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상관없겠지.”
“예. 그럼 그런 쪽으로 추진해 보겠습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오는 분들이니, 최대한 고려하여 전세 자금 정도는 지원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죠.”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중요한 일이야.”
“예. 단순히 보육원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최대한 성심과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쉽지는 않겠지.”
이게 그저 바람일 뿐이라는 건 강진호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라는 것은 조성한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원생들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지.”
“명심하겠습니다.”
조규민의 말에 강진호가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는?”
“두 배 정도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더 올려도 상관없으니, 최대한 같이 갈 수 있도록 해줘.”
“다른 보육 교사들과의 차이도 고려해야 합니다. 연봉 차이가 너무 심해지면 위화감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전체를 다 올려 버리면 안 되나?”
“좋은 해결법이죠. 굳이 이사까지 간 분들의 메리트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 점만 제외하면요.”
“끄응.”
어려운 문제였다.
조규민이 곤란스러워하는 강진호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사업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파고들기 시작하면 문제가 끝이 없죠. 그걸 적당한 수준에서 조율해 나가야 합니다.”
말을 끝낸 조규민이 아차했다.
“아! 이거, 회장님께 제가 건방진 말씀을.”
“그러지 마.”
강진호가 한숨을 쉬었다.
“다시 존대하고 싶어지니까.”
“참아주십시오.”
강진호가 쓰게 웃었다.
예전의 그는 조규민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많은 것을 함께 의논했다. 이러고 있으니 옛 기억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다른 문제는 없고?”
“인수는 문제가 좀 되고 있습니다.”
“응?”
“최대한 좋지 않은 곳을 인수하려고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시설도 개판이고, 애들 영양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공무원들이 가만히 있나?”
“어차피 공무원도 월급쟁이입니다. 복지 쪽으로 들어간 공무원 중에 내가 이 나라의 복지를 지탱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간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처음에는 어떻게든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다가도 악성 민원인 몇 만나고, 집에 가는 길에 어깨들 두엇 보고 나면 고개를 돌려 버릴 수밖에 없죠.”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조규민이 되레 황당하다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헬조선을 너무 얕보시는 거 아닙니까?”
“…….”
강진호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조규민이 피식 웃었다.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저는 이 단어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한국만큼 살기 좋은 곳도 흔치 않죠. 다만…… 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이런 일은 벌어집니다. 발전하지 못한 건 한국이 아니라 사람이죠.”
“음…….”
하기야.
냉정하게 말해서 강진호도 어떻게든 대화로 일을 풀어보려다가 수틀리면 모가지를 쳐버리는 인간 아니던가.
‘내가 놀랄 일은 아니군.’
“여하튼 상황이 그렇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의외로 공무원의 수가 부족한 나라라서 일일이 보육원을 찾아다니며 점검하기도 어렵습니다. 환영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렇게 자리를 비우면 논다고 민원 들어옵니다.”
“…….”
도무지 강진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하튼 공무원에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스템하에서는 절대 처리 못합니다. 차라리 시사 고발 프로들이 관심 가져 주면 훨씬 빨리 처리될 겁니다. 그래봐야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강진호가 미묘한 표정으로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아, 원래 이랬지.’
그러고 보면 이 양반도 굉장히 시니컬한 사람이었다. 이현수는 장난기 어린 시니컬함이 있는 사람이라 뿅망치로 때리는 느낌이라면, 이 양반은 정말 칼로 찌른다.
“여하튼 그래서?”
“네. 제일 상태가 좋지 않은 놈들 몇몇한테 접근을 해봤는데…… 말이 안 통합니다. 일단 주먹질부터 하려 들더군요.”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이쪽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소리군.”
“네. 그전에…….”
조규민이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소파 밑에 있는 서류 가방에서 몇 장의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제 개인적으로 드리는 서류들입니다.”
“뭔데?”
“원생들에게 손을 대는 놈들입니다.”
“…….”
강진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손을 댄다는 말이 내가 생각하는 그 뜻이 맞는 건가?”
“예. 제 조사로는 확실합니다. 증거가 필요하시면…….”
“됐어.”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증거는 이쪽에서 찾으면 돼. 며칠 붙여놓으면 확인할 수 있겠지.”
강진호가 손에 든 서류를 보지도 않고 다시 조규민에게 내밀었다.
“이 실장한테 보내줘.”
“아, 이미 보내놨습니다.”
“그럼 이야기가 쉽겠네.”
강진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후우.”
짧게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오해였으면 다시 잘 이야기해 봐야지.”
“오해가 아니면요?”
강진호가 슬쩍 서류의 앞면을 확인했다. 사진과 나이를 확인한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살 만큼 산 것 같은데?”
“……죽이지는 마십시오. 죽어도 싼 놈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럼 경찰 쪽으로 넘기지.”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조규민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권력, 권력 하는 거지.’
저놈들의 죄가 문제가 된 게 이번뿐이겠는가. 이미 몇 번 투서가 들어가고, 몇 번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들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지방의 유지들은 경찰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그들이 지은 죄 따위는 늦은 밤 오가는 비싼 양주와 하얀 봉투 앞에서 깔끔하게 없던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불행한 일이겠지만, 권력은 더 강한 권력 앞에서는 촛불보다 무력하다.
강진호가 경찰 쪽에 말 한마디를 넣는 순간, 아마 경찰서가 뒤집히는 건 물론이고, 좀 더 상급 조직에서 수사관들이 내려갈 확률이 높았다.
그럼 깨끗해지겠지.
“그런데…….”
“예?”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건 원래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죠?”
“우리가 굳이 이렇게 손을 쓰는데, 수고비는 받아야지.”
“…….”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리 하나 정도는 없어도 교도소 생활 하는 데 별 지장이 없지 않을까?”
“…….”
조규민이 멍하게 강진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큰 문제야 있겠습니까.”
“그렇지?”
강진호가 그제야 마음이 풀린다는 듯 표정을 바꿨다.
딱히 남의 범죄에 민감하지는 않다. 강진호는 타인의 범죄를 비난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어린아이들을 건드리는 건 별개의 문제다.
이건 정의관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이 멀쩡히 사회에서 살아 숨 쉰다는 걸 개인적으로 용납할 수가 없다.
“성질 같아서는…….”
“절대 직접 나서지 마십시오, 절대로!”
“알았어.”
강진호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여하튼 이번에 조사를 하고 있다 보니 장난 아닙니다. 이 새끼들, 진짜 많이도 해 처먹습니다.”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보육원들이 전체적으로 상태가 안 좋다는 건가?”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그건 아닙니다. 대부분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물론 미미하게 횡령을 저지르거나 살짝 불법과 합법을 오가는 부분이야 있지만, 그 정도는 익스큐즈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뭐, 경찰도 아니고요.”
“그렇지.”
“소수, 10%도 안 되는 것들이 문젭니다. 이 새끼들은 정말 무슨 생각으로 보육원을 운영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원생이 너무 많아서 다 처리할 수도 없고.”
조규민이 슬쩍 강진호의 눈치를 살폈다.
그 표정을 보며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결론은?”
“그냥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말해봐.”
“보육원 수를 좀 늘릴 수 있겠습니까? 새 원장 찾기도 힘들고, 빨아봐야 걸레일 것도 같고.”
강진호가 웃어버렸다.
“시작은 소규모로 해야 한다고 바로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그게 참…… 무리라는 건 아는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강진호가 웃으며 맛있게 담배를 빨았다.
그랬지.
이래서 조규민이 좋았지.
겉은 차가운 사람이 속은 따뜻했거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늘려봐.”
“알겠습니다. 그럼 자금은 얼마 정도?”
“아니.”
“……예?”
조규민이 고개를 갸웃하자 강진호가 담담히 말한다.
“조 실장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늘려보라고. 자금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돼. 어차피 돈 쓸데도 없으니까.”
“MK에서 공식 지원을 하는 겁니까?”
강진호가 말없이 휴대폰을 열었다. 거기서 은행 어플을 연 강진호가 휴대폰을 조규민에게 내밀었다.
“어…… 우와?”
조규민이 놀라며 강진호와 화면을 번갈아 본다.
“이현주 실장이 월급이랑 배당, 그전에 있던 재산을 처분한 지분을 입금해 주더군. 안 그래도 쓸데가 없었는데…… 이 정도면?”
“은행 어플도 쓰십니까?”
“…….”
“세상에…….”
아…….
놀란 포인트가 그거였구나.
하하…….
곧 죽어도 이현수가 설치해 준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 강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