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1
#160.
여행가다 (5)
조규민은 강진호를 간곡히 설득했다.
“하, 하루만 홍콩이나 마카오로 가서 놀다 가면 안 되겠습니까?”
이미 강진호가 가기로 정한 이상 마음을 돌릴 가능성은 1%도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강진호는 단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홍콩이나 마카오로 갔죠. 걱정 마세요. 일 끝나고 나면 놀 시간은 충분히 드릴 테니까요.”
“…일이 끝나면요?”
“일단 차부터 빌려야 하는데…….”
강진호의 말에 조규민이 헛웃음을 흘렸다.
“강진호 씨, 여긴 외국입니다. 면허가 없다구요.”
“네? 면허가 나라마다 다른 거예요?”
“당연하죠.”
“…그건 생각 못했네요.”
강진호가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자 조규민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상한 데서 맹한 면이 있다는 말이지.’
“픽업 차량을 불러두었습니다. 운전수까지 같이 올 겁니다.”
“그래요?”
강진호가 놀랐다는 듯이 바라보자 조규민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가끔 보면 강진호 씨는 재경을 무슨 구멍가게쯤으로 아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재경은 대한민국 3대그룹 중 하나입니다.”
“남들은 5대라던데?”
“…3대라고 하시죠. 그거 회장님이 들으면 화내십니다.”
“네. 그래서요?”
“3대그룹쯤 되는 회사가 중국에 연줄이 없을 리가 없죠. 그리고 연줄까지 닿기 이전에 중국에도 재경의 지부가 있습니다. 지부 사람이 올 겁니다.”
“그렇군요.”
강진호가 그럼 어디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조규민의 전화가 울리더니, 금세 곧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도착한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곧 커다란 오프로드 차량이 도착하더니, 후덕해 보이는 중년인이 차에서 내려 강진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본사에서 오신 분들이죠? 모시러 왔습니다. 저는 재경 그룹 광저우 지부에서 일하고 있는 남상혁 부장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강진호가 인사를 하고 빠지자 조규민이 남상혁과 뭔가를 쑥덕대기 시작했다. 남상혁의 표정이 여러 차례 변하더니, 다시 강진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강진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남상혁의 인사를 받았다.
“그래서 정확하게 가시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디시죠?”
“이쪽 부근인 것 같습니다.”
“인 것 같다라…….”
남상혁이 강진호가 찍어주는 지도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장족 자치구 주변인 것 같은데, 이 주변에 딱히 건물이랄 게 없습니다만?”
조규민의 얼굴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거, 건물이 없어요?”
“예. 여기는 완전 산지라서 현지인들만 사는 곳입니다. 다큐멘터리 보시면 그런 곳 있잖아요.”
“차마고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거기보다는 좀 울창하죠. 그래도 뭐라고 해야 하나, 좀 산들산들한 곳이죠.”
“산들산들?”
“산이랑 들밖에 없다구요.”
조규민이 강진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진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대체 여기는 왜 가시려고?”
“갈 일이 좀 있습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일단 차에 타시죠. 식사는 하셨습니까?”
조규민이 손을 번쩍 들었다.
“밥부터 먹고 가면 좋겠습니다만?”
“네. 그럼 그렇게 하죠.”
강진호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그럼에도 조규민은 꿋꿋했다. 이미 강진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당연한 조치였다.
강진호가 준비성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인간의 불편함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면이 있었다. 이번에도 보나마나 잘 데 없으면 노숙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왔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오늘이 아니면 제대로 된 밥도 얻어먹기 힘들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조규민은 절대 오늘을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다.
“맛집으로! 맛집으로 가주세요.”
“예. 저야 이 근처는 빠삭하니까요. 그런데 한식으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중식으로 하시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중식이죠. 중국에 와서 한식을 먹으면 어쩝니까.”
“그래요?”
뭔가 남상혁이 슬쩍 웃는 느낌이 났지만, 이때의 조규민은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뭐지?”
조규민은 인류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볶음밥을 시켰더니 기름에 적신 밥이 나왔고, 야채 볶음을 시켰더니 기름에 담은 야채가 나왔다.
국수는 뭔가 화장품 향 같은 것이 나서 숟가락을 가져가기도 싫었다.
그나마 조규민이 입에 댈 수 있는 것은 향신료가 너무 강해서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는 맛이 나는 고기와 속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만두뿐이었다.
“이거 맛이 왜 이렇습니까? 진짜 맛집인가요?”
“안 보이시나요?”
조규민은 주변을 꽉 채우고 있는 손님들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게다가 다들 맛있게 먹고 있지 않은가.
“향이 좀 독특하죠?”
“이게 중식인가요?”
중국에서 파니까 중식이기는 하겠지. 하지만 이것들은 조규민이 생각하는 중식과는 그 맛이 너무 달랐다.
탕수육의 강화판이라든가, 깐풍기의 프리미엄판을 기대한 조규민에게 지금 눈앞에 있는 음식들은 중식의 탈을 쓴 다른 그 무언가였다.
“한국에 있는 중식당들은 보통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것들이죠. 이게 진짜 중식입니다. 한국인이 느끼기에 중식이란 것은… 음, 그러니까…….”
남상혁이 음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통은 간이 엄청 세거나, 아니면 향이 너무 강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기름 폭탄이죠.”
“…욕 같은데.”
“욕은 아닙니다. 먹다 보면 익숙해지거든요. 중식을 먹다 보면 나중에는 한식이 심심하게 느껴지죠. 이 마파두부 같은 경우도 한국에서는 고추나 캡사이신으로 매운맛을 내지만, 본토에서는 이렇게 산초로 맛을 내죠. 먹으면 말 그대로 입안이 얼얼합니다.”
남상혁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수 역시 마찬가집니다.”
“고수요?”
“방금 맡으신 그 화장품 냄새를 풍기는 채소입니다. 처음 적응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먹다 보면 없으면 아쉬운 맛이지요.”
“네? 이게요?”
조규민이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자 남상혁이 빙긋 웃었다.
“음식이나 문화는 상대적인 겁니다. 조규민 비서실장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의 입맛에 맞는 것이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기도 하고, 우리에 입맛에 맞는 게 이들의 입맛에 맞지 않기도 하죠.”
“그래도 이건 좀…….”
“조규민 씨가 지금 보이는 반응 그대로 중국인들은 한국 음식 먹을 때, 깻잎에 기겁을 하죠.”
“네? 깻잎에요?”
“우리에게는 그저 알싸한 향이지만, 중국인들에게는 도저히 맡을 수 없는 향으로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아, 그래요?”
“네.”
남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강한 향이라든가, 아니면 고수의 향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일이 아닙니다. 문화란 상대적인 것이고, 사람이란 건 적응하기 마련이거든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는 문화인데 지내다 보면 왜 그런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
조규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고, 확실히 배울 점이 있는 말이다.
“그러니 다른 나라의 식문화를 평가할 때도 일단은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저 빌어먹을 기름에 샤워한 볶음밥만 빼구요!”
“…결론이 이상한데요?”
“내가 분명히 기름을 적게 넣어달라고 했는데! 이 중동 기름 부자 같은 것들! 대체 기름을 얼마나 처넣어야 만족을 하는 건지! 이게 볶음밥입니까? 기름에 만 밥이지!”
“진정하시죠.”
“진짜 중국 놈들 식성은 이해를 못하겠다니까.”
좋은 말을 해놓고 다 날려 먹고 있는 남상혁이었다.
‘뭐, 문화 상대성이고 뭐고 다 좋기는 한데…….’
문제는 지금 당장 먹을 게 없다는 것이다. 타국의 문화를 이해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그건 천천히 해도 되는 것이고, 지금 당장 배가 고프지 않은가.
“한식과 이거 말고는 선택권이 없는 거군요.”
“다른 외국 프랜차이즈들도 많습니다. 패스트푸드요.”
조규민이 왜 그럼 나를 거기로 데려가지 않았느냐는 듯 바라보자 남상혁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제가 그런 곳으로 가자고 했으면 가셨겠습니까?”
“안 갔겠죠.”
“한 번은 다 직접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드시지요.”
‘뭘 먹어야 하는 거지?’
조규민이 할 수 없이 만두나 씹고 있을 때, 강진호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있었다.
“와…….”
지금까지 강진호의 여러 모습을 보아왔지만, 단언컨대 지금의 모습이 가장 남자답다고 할 수 있었다. 저 고수를 철근같이 씹어 먹는 사나이의 모습을 보라.
“맛있으세요?”
강진호가 빙긋 웃고는 대답했다.
“진짜 맛없네요.”
“…….”
아닌 게 아니라 강진호도 지금 조금 충격을 받고 있었다. 시간이 그만큼 흘렀으니 음식이란 것도 비슷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 강진호가 중원에서 먹은 음식들은 이보다는 훨씬 담백했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시에는 구할 수 있는 기름이 라유밖에는 없고, 돼지기름인 라유는 일반적인 음식점에서는 굉장히 비싼 축에 속하는 재료였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음식이 찌거나 삶아져 나왔다.
그런데 불과 몇 백 년 만에 음식들이 대부분 튀기거나 볶는 식으로 많이 변화한 것이다.
‘예전이 나은 건지, 아니면 내가 입맛이 변한건지 모르겠군.’
차마 못 먹을 음식은 아니었다.
중원에서 쓰레기통도 뒤진 그였다. 맛이 있든 없든 음식을 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름 볶음밥만은 확실히 고역이었다.
“시작부터 뭔가 꺼림칙한데…….”
조규민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때, 등 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려고 하자 남상혁이 만류했다.
“보지 마세요.”
“…예?”
“현지인들이 많이 오는 식당이다 보니 종종 저런 놈들이 들어옵니다. 관광객이 많이 들어오는 곳에는 공산당이 관리를 합니다만, 이곳처럼 현지인이 많이 오는 곳에는 저런 놈들이 자주 오곤 하죠.”
“그 유명한 삼합회 같은 겁니까?”
“삼합회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사실 삼합회라는 명칭도 참 재미있는 것이, 따지고 보면 모두가 삼합회와 연관이 있기는 하거든요.”
“음…….”
“하지만 모두가 연관이 없기도 하죠.”
“여하튼 조폭 같은 거군요?”
“예.”
그때,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앉으세요.”
남상혁이 기겁을 하여 강진호를 막아서려 할 때, 조규민이 손을 뻗어 남상혁을 당겨 앉혔다.
“가만히 계십시오.”
“저들은!”
“아뇨.”
조규민이 침착하게 손가락을 흔들자 남상혁이 의문 어린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가 난동을 피우고 있는 이들을 향해 다가가 뭔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난동을 피우던 불한당들이 자기들끼리 뭔가를 쑥덕대더니 강진호를 노려보다가 슬금슬금 물러나 밖으로 달아났다.
“뭐, 뭐야?”
남상혁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강진호가 태연한 얼굴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 남상혁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물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겁니까?”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냥 별것 아닙니다.”
“뭐라고 하셨는데요?”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 가서 네 윗대가리까지 모조리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네?”
남상혁이 떨리는 눈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서 신문지로 둘둘 만 회칼을 든 장정들이 우르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와, 나 돌겠네.”
남상혁이 입에 거품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