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23
#1622.
발생하다 (2)
“배터리 계획은 적당히 성과가 나왔습니다.”
“…….”
강진호가 떨떠름한 눈으로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누가 들으면 총회가 배터리 사업에 들어간 줄 알겠다.
‘아니, 뭐, 그리 다를 것도 없나?’
위긴스의 계획은 간단했다.
아무리 그가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고 해도 단기간에 전력이 될 만한 마법사들을 양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건 마법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었다. 마법이나 무인이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도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수련 중인 무인은 적당히 무기만 쥐어 주면 어떻게든 전력이 될 수 있는 반면, 수련 중인 마법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러니까 마법사는 전형적인 강제 대기만성형 타입이라는 의미다.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 위긴스는 한 가지에 집중했다.
마법에 입문하는 이는 마나를 모으는 데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특히나 한 번 무인으로서 운기를 통해 기를 모으는 데 익숙해진 이들이다 보니 마나의 용량 자체는 쉽게 쉽게 늘렸다.
문제는 마법적 지식이 거의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박사학위를 딸 정도의 양이 되어야 그 마나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그 점을 배제해 버리고 이들을 대용량 마나 배터리처럼 활용하고 캐스팅을 제가 한다는 겁니다.”
“아니, 그 말은 이해했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게 어떤 원리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대략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억지로나마 이해했다.
“그래서 적당히 성과가 나왔다는 건 어떤 의미지?”
“실행은 성공했지만, 아직 효율이 좋지 못합니다. 기본적으로 마법사들도 각자 고유의 파장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반발을 일으키지 않도록 파장을 합치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러다 보니 마력의 전달이 영 부드럽지 못합니다. 그래서 손실되는…….”
“그만.”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여하튼 성공했다, 이 말이지?”
“예. 이제는 효율을 높이는 과정만 남았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현수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저번에 일본 놈들 상대할 때 썼던 것처럼 대규모의 마법을 구현할 수 있게 되는 겁니까?”
“그 이상이겠지.”
“차이는 뭐죠?”
“간단하다. 이전에는 그만한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 먼저 마법진을 준비하고 동조화 작업을 거쳐야 했지. 하지만 이제는 마력 자체를 내게 빨리 옮길 수 있으니 굳이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거지.”
위긴스가 씨익 웃었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대규모의 마법을 쓰기 위해 적을 내가 원하는 곳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지. 그리고 그 자리에 미리 준비를 해둬야 했지. 하지만 이제는 이동 중에도 얼마든지 대규모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지. 이런 경지에 오른 마법사는 세상에 나뿐일 걸세.”
위긴스가 슬쩍 어깨에 힘을 주려 하자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엘더 나이트는?”
“……그건 반칙입니다.”
엘더 나이트라는 말이 나오자 위긴스의 어깨에 들어간 힘이 쭉 빠졌다.
“못 이긴다는 건가?”
“으음, 사실 마나 배터리와 검술을 동시에 활용한다면 엘더 나이트 중 하나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그들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냐고 묻는다면…… 흐음…….”
위긴스가 고민에 빠졌다.
“거, 그 이전에 사람을 마나 배터리로 부르는 건 그만둬 주십시오. 이건 인성의 문제 아닙니까?”
“용도가 명칭을 대체하는 건 드문 일도 아니지.”
아니, 그러니까 사람의 용도를 그런 식으로 한정시키지 말라고요!
배터리에게도 인권이 있단 말입니다, 인권이!
“여하튼.”
위긴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 체제가 완성된 이상, 대규모 전투에는 확실히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한 발, 한 발의 위력 자체는 떨어져도 막대한 마나를 바탕으로 한 대규모 공격에는 제가 엘더 나이트보다 나을 겁니다.”
강진호가 자못 심각한 얼굴을 했다.
‘강렬했지.’
엘더 나이트의 마법은 천하의 강진호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강했다. 그만한 위력이 광범위하게 펼쳐질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전장을 휩쓸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고생했어.”
“예, 로드.”
뭔가 하나하나 착착 준비되는 느낌이다.
바토르는 바토르대로 미군 훈련장에 자신의 제자들을 데려가 착실히 굴리고 있다. 웬만한 이들이라면 위축이 되고도 남을 지경이겠지만, 공영길을 비롯한 바토르의 제자들은 워낙 마이 페이스들이라 나름 미군들의 조교 역할을 하며 수련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이었다.
방진훈은 완성된 조화공의 전수를 시작했고, 장민은 마염들을 단련시키는 동시에 마교의 실전 훈련을 강도 높게 시행하고 있다.
‘이제 뭐가 남았지?’
총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일본인들의 훈련은?”
“이제 마교 쪽에서 실전 마공을 전수하기 시작했습니다.”
“흠.”
이미 결정한 일이지만, 살짝 마음에 걸린다. 조화공이 완성된 타이밍이다 보니 총회와 같은 무학을 가르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아무래도 당장 써먹기에는 마공이 나아.’
굳이 강진호가 일본 무인계의 미래까지 생각해 줄 필요는 없겠지. 그건 괜한 오지랖이다.
강진호가 이현수를 돌아보았다.
“다른 문제는 없나?”
“아무래도 일본 쪽에서 저희가 일본에 사업적으로 진출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양입니다. 외교 루트를 통해 온갖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는군요.”
“그래? 정보가 어디서 샜지?”
“……애초에 숨긴 적도 없었는데요?”
“…….”
“…….”
강진호와 이현수가 멍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되나?”
“애초에 사업체 만드는 걸 무슨 수로 숨기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아무래도 이만한 크기로 일을 벌이다 보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쪽의 문제는 빤히 알아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거겠죠. 기업이 진출하는 걸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그런데 왜 압박을 하는 거지?”
“조금이라도 늦추고 대응할 시간을 벌겠다는 수작이겠죠. 뭐, 정부 쪽은 들은 척도 안 하는 모양입니다. 어차피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굳이 고려할 필요도 없겠죠.”
사실은 들은 척을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MK더러 일본에 진출해 싹 빨아먹으라며 길을 열고 아스팔트 포장까지 해주는 수준이었다.
중요한 점은 이 일이 총회가 아니라 MK가 진행하는 일이라는 것. 합법의 영역에서 외화를 벌어들이겠다는데 막을 이유가 없다.
괜스레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하니 어쩌니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다가 MK가 아닌 총회가 나서게 되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럼 그대로 진행하면 되나?”
“이미 저 정도 대응은 예상했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수가 이리 확정적으로 말한다면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럼 다른 문제는 없고?”
“사실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응?”
강진호가 의아한 듯 돌아보자, 이현수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중국 정부 쪽에서 전달되던 정보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완전히 정보를 차단한 건 아닌데, 한창 들어오던 때에 비하면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혈마 쪽은?”
“그 새끼, 아니, 그놈은…….”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강진호는 혈마를 중국으로 보내 정보를 수집하게 하고 있다. 혈마는 강진호의 호위를 자청했지만, ‘도대체 내가 호위가 왜 필요하지? 일이 터지면 네가 나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내가 너를 보호해야 할 판인데?’라는 강진호의 말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정보가 안 들어오는 건 아닌데…… 이거, 워낙 제멋대로 보내는 터라…….”
“활용은 되고?”
“회주님 이름을 들먹이면 마지못해 하긴 합니다만……. 하, 진짜 내가 무공에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개처럼 패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서라.
너는 다시 태어나도 걔 못 이겨.
사람은 각자 타고나는 재능이 따로 있는 법이지. 병아리가 수련한다고 호랑이를 이기겠냐.
“여하튼 이게 좋지 않은 징조입니다.”
“흐음.”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지?”
살짝 고민하는 듯하던 위긴스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중국의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그들 역시 정보를 모으기 어려워진 것 아니겠습니까?”
“급박해지면 되레 정보량이 많아지는 것 아닌가?”
“실제 전쟁이 터지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쟁 직전에는 다들 내부 단속을 하면서 정보의 유출을 차단하기 마련입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삼왕계가 전쟁 전에 정부군 쪽부터 정리하고 있을 확률은 없습니까? 저는 그것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그건 아닐 거다. 그렇다면 그쪽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중국인들의 일은 중국인끼리 해결한다는 마인드였다면 겉치레나마 우리와 동맹을 맺지도 않았겠지.”
“그러겠네요.”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하자면…….”
“예.”
강진호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쪽에서 정보를 얻기 힘들 정도로 삼왕계들이 내부 단속을 하고 있고, 설사 얻은 정보가 있어도 이쪽으로 보내기 힘든 상황이다?”
“예. 또 다른 가능성은 슬슬 우리를 손절하고 그쪽에 붙을 만한 타이밍을 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 쪽에 좋은 뉴스는 아닙니다.”
“흐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슬슬 때가 오고 있다는 거겠지.”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때였다.
“아니,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돌린다. 방 안 한구석의 그림자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환상처럼 스르륵 나타났다.
“너, 너, 이 새끼!”
이현수가 그 사내를 보며 이를 갈았다.
혈마.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새끼가 소식도 없다가 마음대로 한국에 들어와? 너, 진짜 뒈지고 싶냐?”
“한동안 안 본 사이에 겁대가리를 많이 잃은 모양이군. 5분이면 충만하게 채워줄 수 있는데 말이야.”
혈마가 입술을 핥으며 이현수를 위협하자,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혈마.”
“예.”
“한 번만 더 그딴 식으로 이현수를 대하면 네 목을 뽑아버리겠다.”
혈마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용서하십시오, 마존이시여.”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보고드릴 것이 있어 직접 왔습니다. 아무래도 전화로는 전달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
“말해봐.”
“홍왕계와 창왕계가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강진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짜증 난다는 얼굴로 혈마를 바라보던 이현수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뭐?”
“말 그대로 전투가 시작됐다. 아직은 국지전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확연하게 다르다.”
“그러다 마는 게 아니고?”
혈마가 고개를 내저었다.
“창왕이 움직였다는 소문이 있다. 지금까지는 확전을 피하던 창왕계가 오히려 더 달려들고 있다는군.”
“……창왕.”
“창왕은 간사한 뱀. 그 작은 변화도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작은 전투지만, 곧 전면전이 되겠지.”
위긴스와 이현수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들 모두 소환해.”
“예!”
벌떡 일어나 뛰쳐나가는 이현수를 보며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