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27
#1626.
침략하다 (1)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딱히 보고받지 않는다는 말을 한 게 무색하게도, 강진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홍근의 방문을 받았다.
물론 총회가 아닌 MK에서 말이다.
강진호가 말없이 바라보자, 정홍근이 재빨리 뒷말을 이어갔다.
“영업 승인도 받았고, 지부도 설립이 끝났습니다. 이제 회장님이 허가만 해주시면 바로 영업을 개시할 수 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별말씀을.”
이현수가 고소를 머금었다.
‘예상은 했지만, 굉장한 반응이로군.’
정홍근의 눈에 이글거리는 열기를 보고 있으려니, 살짝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어떤 기분일까?’
죽창을 들고 관아로 뛰어가는 민초의 기분, 아니면 왕을 끌어내러 단두대로 끌고 가는 시민의 기분?
어느 쪽이든 평범하지는 않겠지.
지금 정홍근은 자신이 평생 매달려 온 일본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다. 물론 그 칼은 철저하게 이득과 실리로 이루어진 칼이지만, 정홍근의 손에 들린 칼이 일본을 겨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우선 일본 내의 반한 감정이 너무 거셉니다. 우리가 한국 기업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흐음.”
“다행인 점은 저희가 제조사가 아니라 유통사를 지향한다는 점이겠죠. 제조사라면 일본인들이 불매를 해버리면 어찌할 방법이 없지만, 유통사는 점포만 매수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영업을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이제는 답을 해주십시오. 촘촘하게 짜여진 일본의 유통망을 파고들 여지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이현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정홍근을 바라보았다.
‘아직 몰랐던 건가?’
강진호나 이현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러니 나름 느긋할 수 있지만, 대책을 모르는 정홍근의 입장에서는 답이 보이지 않는 일에 수천억을 때려 박은 셈 아닌가.
‘회주님의 말 한마디를 그렇게까지 믿는다고?’
기이할 정도의 신뢰도다.
하지만 거꾸로 납득이 간다.
‘친일파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상대가 강하고 이득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저토록 광신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는 이이기에 그 많고 많은 친일파 중에서도 저리 높은 곳까지 올라갔겠지.
“크흠.”
헛기침을 한 이현수가 강진호에게 눈빛으로 허락을 구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현수가 입을 열었다.
“현재 일본의 유통망의 15% 정도를 장악한 곳이 대일통운입니다.”
“예. 업계 3위 정도지요.”
“대일통운에서 도와줄 겁니다.”
“……예?”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대일통운은 야쿠자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야쿠자들의 협조를 구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머리채를 잡고 뒤흔드는 수준이지만, 굳이 정홍근에게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도와준다면 어떻게…….”
“영업 구역을 나눠 받고, 영업권을 인계받을 겁니다. 소화할 수 있는 최대치로.”
정홍근이 눈을 부릅떴다.
“그, 그게 되겠습니까?”
“그쪽에서는 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굳이 이쪽에서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다. 야쿠자들은 일본 무인들에게 장악되어 있고, 일본 무인들은 총회에 완전히 복속된 상태니까.
깨끗하게 살아온 이들은 아무리 총회라고 해도 건드릴 수 없다. 하지만 손에 구정물을 묻힌 이들은 절대 총회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저들이 한 짓을 돌려받는 것뿐이지.’
대일통운이 일본 물류의 1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크게 투자를 해서 사업을 일으킨 건 아니다. 기존에 영업을 하고 있던 이들을 협박하여 내치고, 그들의 영업권을 빼앗다 보니 여기까지 커진 것에 불과하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건 오히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건 무슨 말인가?”
“그 새끼들, 야쿠자라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하거든요. 그런데 이쪽에서 정식으로 사업을 하게 되면 그런 갑질은 못할 테니까요. 소비자들에게는 이득일지도 모르죠.”
물론 그만큼 일본의 돈이 국외로 빠져나가기는 하겠지만…….
“돈을 내는 대신에 감정은 안 상한다? 음,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정홍근이 황당하다는 듯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사고방식이 좀 독특한 것 같은데?”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좀 많이 독특하지.”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이현주가 입을 열었다.
“관련 사항은 제가 준비를 마쳐 두었습니다. 다만, 아직 한 가지 남은 것은 인력 충원뿐입니다. 지금 직접 배송을 할 이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차적으로는 대일통운이 가진 15%의 점유율을 모조리 흡수할 겁니다. 그런 다음 점유율을 모두 넘겨받은 뒤에는 대일통운을 인수하는 형식으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인수 대금은 커야겠죠.”
“그럼 그 돈은?”
“당연히 돌려받을 겁니다. MK가 아니라 회가 받는 쪽으로요.”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완전 날로 먹겠다는 거로군.”
“실장님도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쟤들도 날로 먹은 건데, 우리라고 못할 건 없죠.”
“맞는 말이지.”
이현주가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1차적으로는 거기까지를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1차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유통권에 영향력이 있는 야쿠자들을 이용해 점유율을 높여갈 겁니다. 그리고 다른 분야들도 손을 좀 대볼 생각입니다.”
“어떤 분야?”
“빠칭코 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마도 나쁘지 않겠죠. 쉽게 말해 야쿠자들이 캐시카우로 삼던 곳들을 모조리 흡수해서 양지화해 볼 생각입니다.”
“……그럼 우리가 야쿠자가 되는 것 아닌가?”
이현주가 고개를 저었다.
“일에는 깨끗하고 더러운 게 없습니다. 일을 하는 이들이 깨끗한가, 더러운가가 있을 뿐이죠. 우리가 더럽게 굴지 않으면 환영할 이들도 많을 겁니다.”
강진호가 묘한 눈으로 이현수를 돌아보았다.
“아니, 진짜로 우리가 일본의 쓰레기들을 치워주는 느낌인데?”
“대신 돈 받으면 되는 겁니다.”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그걸 탐탁찮게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텐데?”
“물론입니다. 그래서 지금 열심히 돈을 먹이고 있습니다.”
“……벌써?”
“벌써라뇨. 한참 됐습니다. 이쪽에서 직접 주기 어려우니, 야쿠자 놈들을 시켜서 의원들을 매수하고 있습니다.”
강진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 매수된 정치인들 때문에 개고생을 했는데, 이제는 그들이 일본의 정치인들을 매수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이도 바뀐 것이다.
“야쿠자 쪽 반발은?”
“이미 있었습니다만, 강경파 놈들 인대 몇 개 끊어놨더니 조용해지더군요.”
“…….”
이쯤 되면 누가 야쿠자인지 알 수가 없다.
“걱정 마십시오. 회주님이 민간인 건드리는 걸 싫어하셔서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그건 괜찮아.”
“예?”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야쿠자쯤 되면 민간인이라고 할 수도 없지. 굳이 대우해 줄 필요는 없겠지.”
“그럼 일이 좀 더 편해지겠네요. 안 그래도 껍질 벗겨 버리고 싶은 놈들이 몇 있었는데.”
“……그렇게는 하지 말고.”
“에이, 제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어.
너는 할 것 같아.
이현주가 강진호를 보며 말했다.
“그 외에도 일본 유통망의 허점을 노려서 하고 싶은 일이 좀 있습니다.”
“응?”
“그러기 위해서는 법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만…….”
이현주가 손을 들어 안경을 살짝 들어 올렸다.
“여하튼 회장님.”
강진호가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이 일은 저와 정 회장님께 맡겨주십시오. 회장님이 신경 쓰실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전권을 주신 만큼 완벽한 결과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정홍근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나름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제가 가진 일본의 인맥을 활용한다면 일이 조금 더 쉬워질 겁니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반드시 결과를 내겠습니다.”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젠 이런 말을 듣는 날도 오는군.’
총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진호의 손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이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주도권을 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현수가 씨익 웃고는 입을 열었다.
“예상 매출은?”
“우선은 순이익 기준으로 MK 프렌차이즈 사업부의 세 배 정도를 노려볼 생각입니다.”
“생각보다 많네?”
“내수가 다르니까요. 일본을 굴리는 돈은 아직 한국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예요.”
“음, 그렇지.”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이건 시작일 뿐이지.’
급격하게 뭔가를 해볼 생각은 없다. 급격한 것은 반드시 반발을 낳기 마련이니까. 그리 급하게 할 일이었다면 굳이 태광과 합작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드럽지만 철저하게.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천천히 일본으로 스며든다. 문제가 생기는 부분은 야쿠자들과 매수한 정치인들을 통해 해결해 일본 시장을 잠식한다.
‘계획은 좋지.’
실제로 잘되는가는 저들에게 달려 있다.
“정 회장님께서 많이 신경을 써주셔야 합니다.”
“저는 여기에 모든 걸 다 걸었습니다.”
정홍근의 눈이 차게 빛났다.
“제 심복을 일본 지사에 앉히고, 저도 집처럼 드나들 생각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고, 동원할 수 있는 수는 모두 쓰겠습니다.”
“좋군.”
강진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에 동조하지 않는 정치인들도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할 겁니다. 저희는 일본 구미들이 먹인 뇌물 장부를 모두 확보하고 있으니까요.”
“응? 그런 게 있어?”
“신니치카이 해체시킬 때 제일 먼저 확보했습니다만?”
“……그래?”
이현수가 뭘 당연한 걸 물어보느냐는 듯 강진호를 바라봤다.
‘여하튼 일처리 하나는 귀신같다니까.’
특히나 남 뒤통수치는 건 세계 최고다.
“정부에서도 밀어줄 거고, 그쪽 정부는 함부로 나설 수 없고, 야쿠자들의 힘까지 모두 동원할 수 있는데 성공 못하면 그게 더 문젭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한다면 몇 년 내에 일본 시장에서 단물을 쪽쪽 뽑아낼 수 있겠죠.”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
결과는 알겠는데, 그 과정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뭐, 상관없다. 강진호가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으니까.
“이현주 실장.”
“예, 회장님.”
“믿고 맡기지. 혹여 문제가 있으면 황 사장과 상의하고.”
“언제나 조언을 받고 있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내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어.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해. 보고는 나중에 받아도 상관없으니까.”
“감사합니다.”
강진호가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회 쪽에서 지원해야 할 게 있으면 이 실장이 도와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잔소리 듣기는 싫으니까요.”
강진호가 마지막으로 정홍근을 바라보았다.
“정 회장님.”
“예, 회장님.”
“무덤에 들어갈 때 당당히 내밀 업적 하나는 가져가야겠죠.”
정홍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한참 동안 말없이 눈을 감고 있던 정홍근이 눈을 번쩍 떴다.
“그 말…….”
정홍근의 눈에 단호한 의지가 어렸다.
“명심하겠습니다.”
또 다른 의미의 침략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