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28
#1627.
침략하다 (2)
부르르르릉.
붕붕이가 거친 엔진음을 토해내자 강진호는 살살 달래듯 차를 몰았다.
커다란 입구를 통과해 구석에 차를 댄 강진호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자 그의 차를 보고 달려온 이가 크게 경례를 붙였다.
“충성! 근무 중 이상 무!”
“…….”
강진호의 얼굴이 떨떠름해진다.
“군대야?”
“아, 아닙니다.”
“편히 해, 편히.”
“제가 어떻게 회주님께!”
“…….”
강진호가 살짝 서글픈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래서 총회 출신은 채용하기 싫었는데.’
그가 지금 방문한 곳은 이번에 성심 재단에서 새로 연 보육원 중 한 곳이다.
원래는 보육원에 따로 경비를 둘 계획은 전혀 없었지만…….
“시대가 어떤 시댄데! 거기 강도라도 들면 누가 책임져요? 강진호씨가 지키고 있을 거야?”
……라는 최연하의 일갈에 계획에도 없던 경비가 배치되었다. 물론 그 경비라는 게 참 뭐랄까…….
“할 만해?”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애들 보는 것도 좋고, 월급도 두둑하고!”
“……입바른 말 하지 말고 솔직하게.”
“정말 만족하고 있습니다.”
“…….”
총회 출신 무인이라는 게 조금 문제지만 말이다.
닭 잡는 칼을 소 잡는 데 쓴다는 말이 이보다 더 적절할 수가 없다.
아무리 총회에서 버티지 못하고 평범한 삶을 선택한 이들이라고는 하나 평생 동안 익혀온 가락이 있지 않은가. 굳이 내공을 쓰지 않아도 웬만한 격투기 선수는 한 팔로 때려잡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을 경비로 쓰고 있다.
‘이게 적절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강진호가 떨떠름한 눈으로 경비를 바라보았다.
“일은 어때?”
“신경 쓸 게 많습니다.”
“그래?”
“예. 단순히 여기를 지키는 건 별일이 아닌데…… 어디 그것만 해서 되겠습니까?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저학년 애들은 혼자 학교 보내기가 뭐하죠. 그래서 통학차도 운전하고, 일 있으면 겸사겸사 대신 처리도 해주고.”
경비가 가볍게 뒷머리를 긁었다.
“딱히 대단할 건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요즘에는 이게 사람 사는 거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강진호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행이고.”
강진호는 총회를 나간 이들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일이 MK를 통한 프렌차이즈 설립이다.
하지만 사람의 성향이란 다 다른 법이고, 개중에는 자신이 사장이 되어 가게를 운영하는 것에 부담을 가지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이들에게 이렇게라도 직업을 만들어주어서 조금은 안심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응?”
“제가 정말 이만큼 받아도 됩니까? 경비치고는 월급이 좀 많은 것 같은데.”
“그냥 경비도 아니잖아.”
한국 최강의 경비들이지……. 아니, 어쩌면 세계 최강의 경비들일지도 모르고.
“하는 일은 별로 없는데 돈을 과하게 받는 것 같아서 좀 죄송하기도 하고…….”
경비가 머리를 긁었다.
“회주님께는 항상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총회의 낙오자나 다름없는데, 낙오자에게 이리 신경을 써주시니.”
“나도 낙오자였어.”
“……예?”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지금 내가 남보다 뒤처진다고 해서 앞으로도 뒤처지는 건 아니야.”
“아…….”
“그리고 넌 지금 뒤처져 있지도 않고. 사람마다 지향점은 다른 모양이지. 무인으로서 살 때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러운 것 아냐?”
“그건 확실합니다.”
강진호가 빙그레 웃었다.
자꾸 웃음이 나온다.
“그래, 그거면 됐어.”
“성심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은 좀 어때?”
“아직은 좀 낯설어하는 것 같습니다. 제게 잘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생긴 것 때문은 아니고?”
“…….”
경비가 상처받았다는 듯 가슴을 움켜잡았다.
아니, 그런 리액션을 할 거면 그 반팔 소매 아래로 내려오는 팔뚝이나 어떻게 좀 하든가.
통나무도 그렇게 굵지는 않겠다.
“뭐랄까, 병아리 보는 것 같아서요.”
“응?”
경비가 어색하게 웃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 병아리를 팔곤 하잖습니까. 한 마리 사서 집에 오면 어쩔 줄을 몰라 하죠. 잘못 건드리면 어디 하나 부러질 것 같고, 어설프게 다루면 픽 죽어버릴까 봐.”
“……그렇지.”
“애들 보는 심정이 딱 그렇습니다. 제가 워낙 험한 곳에서 살지 않았습니까? 그런 놈들이랑 같이 지내다가 애들을 보고 있으니 건드리면 터질 것 같고,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아서 정말 신줏단지 모시듯 하게 되더라고요.”
강진호가 웃고 말았다.
이 기분은 예전의 강진호도 느껴본 적이 있다.
“그런 와중에 애들이 쪼르르 와서 꾸벅 인사할 때 보면…….”
경비가 뭐라 말할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저는 천상 무인으로는 틀렸던 놈이다 싶습니다. 경지를 뚫고 더 강해졌을 때보다 애들이 웃는 걸 보는 게 더 좋네요.”
강진호가 손을 뻗어 경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된 거야.”
“……죄송합니다, 회주님.”
“그런 말은 됐다.”
사람에게는 적성이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다.
굳이 맞지 않는 이들이 억지로 무인이 될 필요는 없다.
“애들 잘 돌봐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 못하게 지키겠습니다.”
“그래.”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경비가 슬쩍 강진호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어, 이건 이 실장이 한 말인데…….”
“응?”
“적당한 시점이 되면 애들한테 싸우는 법을 좀 가르치라던데, 괜찮으십니까?”
“…….”
진짜 할 생각이었나?
새삼 이현수의 추진력에 당황하게 되는 강진호였다.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내공을 가르칠 것도 아니고, 간단한 호신술 정도야 익힌다고 별문제가 있겠습니까? 애들끼리 기 싸움하는 건 그렇다 치고, 세상이 이리 흉흉한데 자기 몸 지킬 능력 정도는 있어야죠.”
“으음.”
따로 무인들을 보내 호신술을 가르치는 걸 반대했더니, 이걸 이런 식으로 해결해 버리네.
‘보육원마다 경비들이 붙어 있으니까.’
중간 중간 짬을 내 호신술 정도 가르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현수와 상의해서 프로그램 한 번 짜봐. 이왕 하는 것,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말고 제대로 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경비가 어깨를 다시 두드려 준 강진호가 보육원 쪽으로 걸어갔다.
“충성!”
……아니, 군대 아니라고.
문을 열고 들어간 강진호가 계단 쪽으로 향했다. 일층은 강당과 식당으로 이뤄져 있고, 아이들이 지내는 곳은 위층이다.
너른 계단을 걸어 위로 올라간 강진호가 아이들의 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어?”
아이들이 강진호를 발견하고는 살짝 굳었다.
겁을 먹은 것은 아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한다는 쪽에 가까웠다.
“아, 안녕하…….”
“안녕?”
강진호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얼굴을 푼 아이들이 꾸벅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강진호가 미간을 살짝 좁히다가 재빨리 표정을 풀었다.
‘이사장님’이라는 단어에서 은근한 두려움이 묻어난다. 강진호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이전의 이사장에게서 받은 두려움이 강진호에게도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쉽게 끝내는 게 아니었는데…….’
나름 정당한 대가를 줬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움찔거리는 걸 볼 때마다 뱃속에서부터 뭔가가 치솟아 오르는 느낌이다.
이건 이현수를 통해 한 번 다시 말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가장 앞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살짝 움찔하던 아이가 이내 편안한 표정이 되었다.
“지내는 데 불편…… 아니, 아니다.”
이제 대여섯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이에게 물어볼 만한 일은 아니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아직 살이 통통(?)하게 오르지 않은 점은 영 불만스럽지만, 깨끗한 옷을 입고 잘 씻겨 놓으니 인상이 확 달라 보였다.
이쯤 되면 살짝 마른 성심 보육원의 아이들 같지 않은가. 성심 애들도 박유민의 그 빌어먹을 카레만 아니었어도 몇 배는 더 통통했을 텐데.
아, 그건 애들이 싫어하려나?
“얘들아, 어디…… 헐? 이사장님?”
안쪽에서 나온 원장이 강진호를 보고는 움찔했다.
“오셨어요?”
“아, 네. 시간이 좀 남아서.”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김미영 쌤! 여기 애들 좀 봐줘요. 이사장님 오셨어요.”
“아, 아니…….”
강진호가 원장의 말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사장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선생들이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군기가 바짝 들어가 인사를 하는 보육 교사들을 보며 강진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싫다.’
이런 분위기는 영 익숙하지 않다.
성심 보육원에서 강진호는 말 그대로 NPC나 다름없었다.
그때도 이사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기는 했지만, 그건 거의 명목상이었을 뿐이다. 강진호가 보육 교사들을 터치하지 않으니, 보육 교사들도 강진호를 터치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얼굴 정도만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하지만 여기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성심의 분위기를 알지 못하는 보육 교사들은 이사장이라는 말에 일단 혼이 달아난 얼굴이었다.
‘부대에 뜬 사단장을 본 간부들 같네.’
어떻게든 저들을 좀 편히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응접실로 가시겠어요?”
“……그러죠.”
그럴 생각으로 온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자리를 조금 비켜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떻게 연락도 없이 오셨어요?”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네요.”
“아니에요. 죄송하실 게 뭐가 있어요. 보육원에 이사장님이 들르는 건 당연한 거죠.”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원장이라고는 하지만 이 사람도 얼마 전까지는 성심 보육원의 보육 교사였던 사람이다.
그중 나이가 있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원장 삼아 각 보육원에 배치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얼굴은 꽤 익숙한 사이였다.
응접실로 들어간 강진호가 자리에 앉자 원장이 냉장고를 열어 주스를 내왔다.
“죄송해요. 커피를 즐겨 드신다는 건 아는데, 여기는 커피가 없어서.”
“괜찮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게 쓸데없는 오지랖이라는 건 알지만, 애들은 뭐든 따라 하려 들거든요. 커피 먹는 모습을 자꾸 보이면 애들도 커피를 먹고 싶어 해서 보육원 안에서는 커피를 못 먹게 하다 보니…….”
“아…….”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그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이분들도 나름의 교육 철학을 가지고 보유원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 방향성은 존중해 주어야 한다.
건너편에 앉은 원장이 미소를 지으며 강진호를 바라봤다.
“그래서 무슨 일로?”
“딱히 큰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별문제가 없나 싶어서요. 전화나 서면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눈으로 직접 보고 싶으셔서?”
“예.”
원장이 미소를 지었다.
“예전부터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바쁜 시간 쪼개서 일일이 그리 다니시기가 쉽지 않으실 텐데.”
“별말씀을요.”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을 했다.
이런 칭찬을 받는 건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음, 어디부터 말씀드려야 할까…….”
살짝 고민하던 원장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애들 이야기부터 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