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37
#1636.
다시 보다 (1)
“…….”
“…….”
최연하가 살짝 미안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봤다.
“그럼 말을 하지.”
“말할 틈을…….”
“아니, 보통은…….”
최연하가 어색한 얼굴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런 상황에 그런 뒷배경을 떠올리지는 않으니까.”
“…….”
“화났어요?”
“……아뇨.”
“화난 것 같은데?”
“화가 난 게 아니라…….”
강진호가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서웠다.’
무공을 배우지 않은 사람도 저만한 살기를 뿜어낼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이 사람이 옛 중원에서 태어났다면 ‘빙하마녀’라든가, ‘백옥나찰’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어쩌면 전무후무한 여자 무인이 탄생했을지도 모르지.
여하튼.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예요.”
“흐응.”
최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이해는 했는데…….”
최연하가 슬쩍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재미있는 인연이기는 하네요. 나 같아도 연락은 하겠다.”
“…….”
“음, 재미있어. 재미있는…… 표정 좀 풀어요.”
“……인상 쓴 적 없는데요?”
“아, 원래 좀 똥 씹은 얼굴이지. 내가 착각했네.”
이 여자가?
강진호가 살짝 눈을 부라리자, 최연하가 찔끔하여 슬쩍 시선을 돌렸다.
“아프지도 않았으면서.”
“어디서 격투기라도 배운 적 있었어요?”
“아뇨. 그런 적 없는데요?”
“……천부적인 재능이네.”
정말 무공을 가르쳐 볼까?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하튼 그런 거예요.”
“흐응.”
최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하자면, 강진호가 과거 교통사고를 당한 상황에서 이 세계로 돌아왔고, 그때 입원을 하면서 그 꼬맹이인가 뭔가를 만나서 친해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강진호가 병을 치료해 준 걸 아이가 알아버렸다라…….
‘거의 백마 탄 왕자님 수준 아닌가?’
아니, 외계에서 온 왕자님이라고 해야 하나?
최연하가 미간을 좁혔다.
“안 흘리고 다니는 인간이다 싶었는데, 진즉부터 다 흘려놓고 다녔구만.”
“네?”
“쯧.”
최연하가 혀를 찼다.
강진호가 저 아이와 그리 대단한 인연을 맺어온 건 아닌 모양이다.
다만…….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네?”
“그 문은지인가 문풍지인가 하는 애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뭔가 히죽대는데?”
“문지은…….”
“지금 걔 이름이 중요해요?”
“아, 아니죠.”
강진호가 최연하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문지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안은 특별히 신경을 썼는데, 어떻게 그런 기색을 느꼈다는 말인가.
“이것 봐라? 대답 안 하지? 수상한데?”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럼요?”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뭐랄까, 그 애가 죽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봤더니…… 내가 뭔가 해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
무슨 대답이 나오든 쏘아붙일 준비를 하고 있던 최연하가 입을 다물고 살짝 물러났다.
‘으, 이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는데.’
최연하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시도 때도 없이 패악질을 부린다고 생각하겠지만, 최연하는 자신이 부릴 수 있는 패악의 정도를 확연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이건 감정적인 부분이라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 그럴 수 있겠네요.”
최연하가 슬쩍 한발 물러나자, 강진호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요.”
“으음.”
최연하가 가늘게 뜬 눈으로 강진호를 탐색했다.
‘쪼고 싶다.’
하지만 명분을 잃었다. 이 이야기를 다 듣고도 버럭질을 해 대면, 그건 그냥 분풀이밖에 되지 않는…….
“여하튼 이해했어요.”
“네.”
“그렇다고 다 이해한 건 아니고요.”
“네?”
최연하가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말했다.
“꼬맹이고 나발이고 무슨 인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외간 여자랑 함부로 만나고 연락하고 그러는 거 영 별로예요.”
“…….”
“왜, 왜? 뭐, 뭐. 속 좁은 여자라고 생각할 거면 마음대로 하시든가!”
“……딱히 그런 생각은 안 했습니다.”
“해도 돼요. 속 좁은 게 사실이니까!”
“…….”
강진호가 다시 한 번 슬쩍 최연하의 눈치를 보고는 휴대폰을 잡았다.
“그럼 시간이 없어서 못 만난다고 둘러댈까요?”
“그건 안 돼.”
“네?”
“벌써 말한 게 있는데, 그럼 내가 싫어해서 못 만났다는 게 빤히 보이잖아요. 그럼 내가 속 좁아 보이니까 안 돼요.”
어쩌라고?
강진호가 황당한 눈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최연하가 살짝 찔리는 얼굴이 되어 말했다.
“진짜 아무 일 없을 수 있죠?”
“무슨 일요?”
“끙.”
말해 뭐 하겠는가.
‘아니, 옛날 사진 보니까 어릴 때는 그리 잘생기지도 않았더구만, 뭘 이렇게 홀리고 다녔지?’
“에이 씨!”
“…….”
“만나요! 괜찮으니까!”
“안 괜찮아 보이시는데?”
“뭐요? 그럼 내가 강진호 씨가 아무 관계도 없는 다른 여자랑 밥 한 끼 먹는다고 열 받아서 아무거나 잡고 때려 부수는, 그런 상식 없는 여자로 보인다는 말이에요?”
“…….”
통렬한 자기 고백이었다.
“아, 만나라고! 니 맘대로 하라고!”
“안 만나겠습니다.”
“만나라니까!”
……대체 어쩌라는 건가.
강진호가 멘탈이 나가 버린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백 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도무지 여심이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언제 볼 건데?”
“그건 아직…….”
“아직이면 만난다고?”
“…….”
강진호의 머릿속에 옛 기억이 떠올랐다.
‘이거, 군대에서 당해본 것 같은데?’
설마 이걸 사회에서도 당하게 될 줄이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강진호를 보며 최연하가 눈을 부라렸다.
“대신에 헛된 생각 못하게 확실하게 선 그어요! 알겠어요?”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강진호의 말에 최연하가 이마를 짚었다.
야, 이 인간아. 너는 거울도 안 보고 다니냐?
아, 물론 그럴 수 있겠지. 지금은 그런 생각은 안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네가 건너편 테이블에 마주 앉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걔도 눈이 있는데!
“여하튼 약속해요.”
“예. 그럴게요.”
최연하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옛날에 언니들이 남편 관리한다고 버럭버럭댈 때마다 한심하게 생각했는데…….’
잘나가던 톱스타였던 사람들이 결혼을 하더니 남편 휴대폰까지 관리하는 걸 보며 자신은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던 최연하다.
하지만 막상 이런 상황에 처해보니, 그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목줄을 채우든 해야지. 불안해서 원.’
최연하가 한숨을 쉬었다.
박유민과 강은영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 인간!
바로 이 인간이 문제다!
“남의 연애 걱정할 시간에 자기 몸가짐이나 똑바로 해요. 알았어요?”
“넵!”
“여기저기 눈웃음 흘리고 다니지 말고!”
“…….”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습니다.”
“흥!”
최연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목 타!”
정수기를 향해 걸어가는 최연하를 보며 강진호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는 게 쉽지 않다.’
정말 쉽지 않아…….
* * *
“엄마, 나 금방 나갔다 올게!”
가방을 둘러매고 밖으로 나가는 강은영을 보며 백현정이 눈을 찌푸렸다.
“어디를? 너, 요즘 이 시간만 되면 자꾸 어딜 가니?”
“어딜 가긴! 산책 가지.”
“차 타고 나가는 산책도 있어?”
“금방 와, 금방!”
“밥 먹고 올 거야?”
“어! 밥 먹고 와!”
현관문을 닫고 나온 강은영이 스냅 백을 꾹 눌러 썼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한 강은영이 차고로 가 차 문을 열었다.
‘오라비는 아직 안 돌아왔고…….’
강진호의 차 자리가 비어 있다. 강진호가 돌아오기까지 타임 리미트는 네 시간. 그사이에 돌아와야 한다.
차에 오른 강은영이 재빨리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고 화장을 점검했다. 그러고는 다시 마스크를 끼고 선글라스를 썼다.
‘불편해 죽겠네.’
그녀가 집에서 잘 나가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게을러서는 아니다. 맨 얼굴만 보이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난장판이 되니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얼굴에 끼는 선글라스나 마스크가 영 어색했다.
그러다 보니 나갈 일이 있어도 조금씩 피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해야 할 일이 있는 법.
자동차에 시동을 건 강은영이 차고를 빠져나가 도로를 달렸다.
한적한 주택가.
천천히 차를 몰아온 강은영이 차를 한쪽 구석에 대고 시동을 껐다. 그러고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나올 때가 됐는데?’
톡을 할까?
아니지, 아니지.
내가 너무 안달 낸다는 기색을 보여줄 필요는 없지. 연애의 기본은 밀당…….
강은영이 휴대폰을 꺼내 톡을 열었다.
강은영 : 도착
톡에서 1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강은영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밀당은 얼어 죽을.’
밀고 당기다가 나가떨어지면 끝나는 게 연애다. 주도권 싸움이야 개나 주라지. 나는 지금 마왕 같은 오라비의 눈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식겁할 지경인데.
처음에는 나름 스릴도 있었지만, 스릴도 어디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스릴감 즐기다가 심장마비가 걸릴 판이었다.
도끼눈을 뜨고 그녀를 노려보는 강진호를 생각하니, 지금도 숨이 턱턱 막횼다.
‘아니, 어쩌가다 그런 게(?) 위에 태어나서는.’
남의 연애 사업에 태클이란 말인가.
그 순간, 강은영의 눈에 현관을 열고 나오는 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여기!”
지체 없이 차창을 연 강은영이 밖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주택가에서 나온 사람이 어색한 얼굴로 차로 다가왔다.
탁.
보조석 문이 열리고 다가온 이가 차에 올랐다.
강은영이 차에 오른 이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오늘 연습 잘했어요?”
“으, 응.”
“다행이다. 컨디션 조절 잘해야지, 내일도 경기 있는데. 그죠?”
“그, 그렇지.”
강은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덜덜대요?”
그 말에 차에 탄 박유민이 고개를 좌우로 홱홱 돌렸다.
“은영아, 그런데…….”
“네?”
“여기 숙소 주변이라 가끔 기자들도 오가고, 애들도 자주 나오거든. 다른 데로 가면 안 될까?”
그 말에 강은영이 피식 웃었다.
“뭐 어때서? 보라지, 뭐.”
“나는 괜찮은데…… 네가 문제가 있을까 봐.”
“괜찮……. 아니지. 그럼 오라비도 보겠지.”
아무리 선글라스와 마스크, 모자로 중무장을 했다지만, 기자는 절대 얕볼 수 없다. 그 변장 하나만 믿었다가 박살이 난 연예인이 얼마나 많은가.
강은영이 핸들을 움켜잡았다.
“그럼 일단 튀어요.”
“으응.”
강은영과 박유민을 태운 차가 천천히 도로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동합니다, 실장님.”
“흐흐흐흐흐.”
강은영의 차가 오기도 전에 도로가에 대어져 있던 검은 밴에서 음흉하고 은밀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추적해.”
“예!”
부르르르릉.
보조석에 앉은 이현수가 양쪽 입꼬리를 귀에 걸고는 웃었다.
“좋지, 좋아. 청춘은 좋은 거지.”
그의 손에 들린 카메라가 이동하는 차의 뒤를 찍었다.
“이걸 회주님께 가져다 드리면 좋아하실까, 아니면 화를 내실까? 뭐든 재미있겠는데? 낄낄낄낄낄!”
운전을 하던 총회의 무인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인간이랑은 절대 척을 지지 말아야지.’
새삼스러운 다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