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46
#1645.
움직이다 (5)
“홍왕이 움직였다고?”
[그렇습니다.]평소의 혈마라면 이현수의 질문에는 반말로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존댓말이 나온다는 건, 지금 혈마가 그만큼이나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잘도 살아남았군.”
[천운이었습니다.]“그래서 홍왕은 어디로 갔지?”
[그들의 대화대로라면, 우한으로 움직였을 겁니다.]“우한, 우한이라…….”
이현수가 휴대폰으로 중국 지도를 켰다. 우한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그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북상합니다.”
“음…….”
반드시 이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이걸로 전면전은 확실하다.
“다른 정보는?”
[추적합니까?]“아니.”
강진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홍왕은 너를 두 번 놓아주지 않을거다. 복귀해.”
[예. 그럼 정보원들에게 최대한 접근을 자제한 채 정보를 수집하라 지시하고 저는 복귀하겠습니다.]“그래.”
전화가 끊어지자 모인 이들이 심각한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올 게 왔군요.”
“음.”
위긴스의 말에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홍왕이 움직였다는 소식을 들으니 몸이 절로 들썩이는 느낌이다.
“전쟁인가.”
차가운 공기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전운이 감돈다는 것은 아마 이런 분위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정보를…….”
“의미가 없다.”
강진호가 이현수의 말을 끊어버렸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홍왕은 전격적으로 모든 걸 쓸어버리려고 할 거다. 정보원들이 따라갈 수 있는 속도가 아냐. 기껏해야 휩쓸린 잔해만 보겠지.”
“음…….”
위긴스가 다소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미국과 연계해 보죠.”
강진호가 눈에 이채를 띠고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미국도 심각하게 여길 만한 사건입니다. 한국에 주둔해 있는 차관을 통한다면 군사위성 몇 개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차라리 군사위성으로 홍왕의 종적을 뒤쫓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괜찮군.”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쪽으로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확실히 위긴스는 이럴 때마다 강진호를 놀라게 만들었다.
“가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써먹어야겠지. 그런 상황이니까.”
군사위성으로 홍왕을 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위성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 홍왕은 마음만 먹으면 눈 깜짝할 새에 위성의 촬영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
위성으로 홍왕의 종적을 쫓으려면 사람을 분별할 수 있는 거리까지 좁혀 촬영해야 하는데, 그러면 홍왕의 이동 범위를 모두 담는 게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강진호가 턱을 매만졌다.
“회주님.”
“음.”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총회 전체에 비상령을 내리겠습니다. 상황을 주시하다가 기회가 된다면 바로 중국으로 돌입하겠습니다.”
“음.”
방진훈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중국으로 들어갈 때는 수송 수단이 필요합니다. 최대한 많은 이들을 동원하려면 육해공 가리지 않고 실어 날라야 하는데, 육지는 절대 무리고…….”
북한이 있는 이상 육로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는 건 배와 비행기뿐이다.
“문제는 저 정부 새끼들이 어떻게 나오냐는 건데…….”
방진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금 총회와 정부군은 명목상이나마 동맹을 맺은 상태다. 그들이 허가를 내준다면 뭐든 쓸 수 있겠지만, 만약 그들이 입장을 뒤바꾼다면 해로와 항공로가 동시에 봉쇄될 수도 있다.
“게이트는?”
“물량에 한계가 있습니다.”
위긴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정예 병력을 밀어넣는 정도는 어떻게 해보겠습니다만…… 모든 인원을 게이트로 나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모두 이동하는데 최소 열흘 이상 걸릴 겁니다.”
“열흘이라…….”
기회가 오면 전격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다. 열흘이나 끌었다가는 쌀이 익어 밥이 되는 게 아니라 아주 타버릴 공산이 높았다.
강진호가 이현수를 돌아보았다.
“저쪽에서는 어떻게 나올 것 같나?”
“무조건 저희를 중국 땅으로 끌어오려고 할 겁니다.”
“그래?”
“예.”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홍왕계와 창왕계가 결판을 내버리면 남는 건 외길뿐입니다. 그들 중 승자와 흑왕계가 싸워 이긴 쪽이 중국을 먹겠죠. 그럼 정부군은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 영토에 폭격을 가할 각오가 없다면 말이지요.”
위긴스가 이현수의 말을 거들었다.
“무인은 군인을 이기지 못합니다. 아, 물론 로드처럼 괴상한 경우도 있지만, 그건 특이 케이스니까 논외로 치고.”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둘의 성향은 정반대입니다. 무인은 아무리 무리를 짓고 수를 늘려도 화기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지휘부를 이루는 소수의 강자를 제외하고는 화기에 모두 쓸려 나갈 겁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총회에서도 마염정도면 정예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마염이 미국의 기갑사단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어찌어찌 근접만 할 수 있다면 사거리를 이용해 쓸어버릴 수 있겠지만, 냉정하게 보면 접근도 하기 전에 반수 이상이 쓸려 나갈 것이고, 막상 접근해도 기갑사단과 조합된 보병의 총알로 몸무게를 불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그들도 무인계의 강자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무인과 군인이 진짜 전쟁을 벌이면 대다수의 무인이 죽는 대신에 군인들의 지휘부와 권력자들이 모조리 목이 잘려 나가겠죠.”
위긴스가 고소를 머금었다.
“그럼 이건 내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국가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릴 이들이 얼마나 되느냐의 싸움이 되는데…….”
“절대 그럴 일은 없겠네요.”
“목숨은 소중한 법이니까.”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한다.
사실 이건 권력자들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제 목숨이 소중하지 않은 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신의 목숨마저 초개처럼 버려가며 뜻을 이루려는 이들이 대단한 것이지, 목숨을 아까워한다고 비난할 이유는 없다.
“쿡쿡쿡.”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토르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왜?”
강진호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바토르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듣고 있다 보니 재미있어서. 보통은 거기까지 가기 전에 자국의 영토에 폭격을 한다는 것부터 무리 아닌가?”
“중국이면 할 것 같아서.”
“할 것 같습니다.”
“수틀리면 하지 않겠습니까?”
“…….”
바토르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려고?”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권력자들은 절대 권력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중국뿐 아니라 자국 영토에 폭격을 하는 정도로 지배권을 지킬 수 있다면 시행할 국가가 세계적으로 절반은 넘을 겁니다.”
“……미친 소리군.”
“좀 오버했네요. 30% 정도라고 하죠. 아프리카와 중동만 해도 그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바토르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그쪽 독재자들은 정말 폭격을 하고도 남을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중국이 그 수준까지는…….”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겁니다.”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쨌거나 넘어가시죠. 사실 이 논의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건 중국의 권력층들이 절대 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오길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건 그렇겠군.”
바토르가 깔끔하게 수긍했다.
“그러니 협조할 겁니다. 우리가 그들을 막아줄 거란 기대는 안 하겠지만, 적어도 전력을 깎아줄 거라 생각할 테니까요.”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우리에게 협조했다는 사실 때문에 나중에 곤욕을 치를까 봐 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건 아닙니다. 왜냐면 삼왕계도 저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인이지, 정치인이 아닙니다. 함부로 저들을 숙청했다가는 나라가 뒤집어지거나 망합니다. 그건 무인계에서도 절대 바라지 않는 일 아닙니까.”
적대적 공생 관계.
무인계와 정부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딱 적절한 말이었다.
강진호가 상황을 정리했다.
“우리끼리 결론을 내린다고 달라질 게 없어. 이현수.”
“예, 회주님!”
“중국 정부 측에 협조 요청해.”
“예, 알겠습니다!”
“결과를 받아보면 알겠지.”
“함정일 경우는?”
“그래도 강행한다. 함정에 빠지더라도 돌파하는 게 나아.”
“알겠습니다.”
이현수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호가 위긴스를 돌아보았다.
“위긴스.”
“예, 로드.”
“미국 측에 위성 감시 요청하고, 중국이 협조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항공기나 선박을 지원해 줄 수 있는지 확인해 봐.”
위긴스가 턱을 쓰다듬었다.
“미군이라, 미군……. 과격하긴 하지만 방법이 될 수 있겠군요. 하지만 까딱했다가는 국제 문제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그건 저쪽이 결정할 문제겠지.”
“확실히. 알겠습니다, 로드.”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방진훈을 바라봤다.
“방 이사는 내부 준비를 마쳐 줘. 내일이라도 당장 돌입할 수 있게.”
“걱정 마십시오, 회주님. 제가 완벽하게 끝내놓겠습니다.”
강진호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바토르.”
“음!”
“미군 쪽은?”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두겠다. 고수 간의 대결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겠지만, 평범한 무인들을 잡아내는 건 어쩌면 총회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일단 이들은 기본적으로 전술에 익숙하고 지시를 따르는 것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사시에는 적당히 화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군.”
“화기?”
“유사시다, 유사시.”
화기라는 말에 눈을 찌푸린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화기고 뭐고 가릴 때가 아냐.’
지금은 가용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할 때다. 여기서 밀리면 지금까지 그들이 지켜온 것 모두가 무너질 테니까.
“원하는 대로. 그리고 혹시 몽골…….”
“걱정 마라, 주인.”
바토르가 가슴을 강하게 쳤다.
“초원의 전사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주인을 따른다. 그거면 충분하다.”
“좋아.”
바토르와의 대화가 끝나자 지금까지 가만히 회의를 듣고만 있던 장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존이시여.”
“음?”
“이만한 전투가 벌어진다면 민간인들이라고 상황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중국은 그 상황 자체를 틀어막을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도 그렇고.”
“중국에 남아 있는 마교도들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해 보겠습니다. 홍왕의 종적까지는 몰라도 저들의 이동 경로나 위치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혈마 쪽의 정보원들과 연동하도록.”
“예. 그러겠습니다.”
장민도 평소와는 다른 무거운 어투였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 모두 지금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전쟁으로 모두의 운명이 갈린다.
중압감에 어깨가 내려앉을 지경이었다.
“모두…….”
강진호가 낮게 입을 열었다.
“긴장되는 건 알고 있다.”
다들 강진호를 주목했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강진호가 말을 이어갔다.
“어찌 보면 그동안 우리가 해온 모든 것들은 지금 이 한순간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걸 수 있는 건 모두 걸어라. 반드시 승리하고 살아남는다.”
“물론이다, 주인!”
“예, 로드!”
강진호의 눈이 섬뜩하게 일렁였다.
‘전투라…….’
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온다.
그의 모든 것을 풀어놓아야 할 전쟁이…….
지금 그에게 닥쳐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