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67
#1666.
포위되다 (1)
화염은 몸을 달구고, 폭음은 귀를 찢었다.
하지만 이현수는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버텨내고 있었다. 내장이 뒤흔들리고 입안이 터져 피가 줄줄 새어 나오지만, 전처럼 비명을 질러 대지 않았다.
‘버텨!’
이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폭격을 막아내고 있다. 여기서 그가 소리를 질러 대고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또 한 번의 폭격이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 폭발의 여파는 강진호가 뿜어낸 마기를 뚫지 못하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다 미쳤어.’
이현수의 눈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도시의 한가운데에 폭격을 해버리는 저 창왕계 놈들은 분명히 제정신이 아니다. 아무리 극단적인 효율을 추구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선 넘네, 이 미친놈들!’
할 수만 있다면 저 창왕이라는 놈의 머리를 뜯어서 연구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놈이 있을 수 있지?’
쏟아지는 폭격은 더없이 두렵다. 하지만 이현수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은 창왕이라는 놈의 존재, 그 자체였다.
창왕은 더없이 신중한 존재. 패배하지 않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인내하며 시기를 기다릴 줄 아는 이다. 그런 이가 한 번 움직이더니 도시를 폭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신중함과 광기.
그 두 가지가 혼재한 인간을 대체 무슨 수로 상대하라는 말인가.
상대의 유형을 정할 수 있어야 계산이 선다. 하지만 저 창왕이라는 놈은 도무지 계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나 이현수에게 있어서 창왕은 천적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빌어먹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다시 한 번 폭격이 휩쓸고 간다. 사방에서 쏘아댄 자주포의 포격이 도시를 통째로 지워 버리겠다는 듯이 집중되어 쏟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워 버릴 것처럼 솟아올랐다.
그런 후…….
한참 동안 폭격과 포격이 쏟아지고서야 마침내 주변이 고요함을 되찾기 시작했다.
“으…….”
털썩.
바토르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가장 앞에 서서 받은 충격이 적지 않은지, 연신 머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창왕이 이렇게 돌아버린 놈이라는 건 들은 적이 없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장민 역시 굳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사님들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현수가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도시에 폭격을 가해 버리는 인간도 제정신은 아니지만, 맨몸으로 도시를 지워 버리는 폭격을 버텨내는 이들도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웬만한 사단 병력 하나를 지워 버릴 정도의 화력이 집중되었지만, 이곳에 다친 이는 있어도 죽은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찰칵.
강진호가 부러진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가라앉은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깨끗해졌군.”
“…….”
그 말에 이현수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과연.
주변에 밀집해 있던 건물들이 증발에 가까운 수준으로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보이는 건물의 잔해들이 아니라면, 애초에 이곳에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보통 놈이 아닙니다.”
그 광경을 보며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이쪽 말고 뒤쪽 건물은 거의 상하지 않았습니다. 포격이 날아오는 각도를 미리 확인하고 자주포를 배치했다는 이야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여기에 모일 거라는 걸 미리 생각했다는 건가?”
“……그럴 겁니다.”
그 말에 모두가 입을 닫았다.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이현수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창왕.
수도 없이 듣고, 언젠가는 상대해 쓰러뜨릴 거라 다짐했던 적이다. 하지만 겪으면 겪을수록 이현수는 그 창왕이라는 존재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따져 보면 얼굴조차 한 번 마주치지 못해본 이의 존재에 전율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 어려운 일을 창왕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었다.
“후우우우우.”
강진호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고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창백해진 안색의 홍왕과 강진호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미친놈을 상대하고 있었군.”
“……나도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나름 인간미가 있던 놈이었는데.”
“그게 언젠데?”
“삼십 년 전.”
“……아주 냉정한 분석이로군.”
피식 웃어버린 강진호를 보며 이현수가 물어왔다.
“어떻게 합니까, 회주님? 아마 이차 폭격이 올 겁니다. 그전에 빨리 이탈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강진호가 살짝 심드렁한 눈으로 말했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그래줄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예?”
그때였다.
우우우웅.
갑자기 대지가 미약한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진?’
아니, 아니겠지. 이 타이밍에 지진이라니.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 바닥에 폭탄을 미리 설치해 놓고 터뜨리는 게 아니라면, 이 진동의 정체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온다.”
바토르가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먼 도로와 건물의 사이사이로 푸른색의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무인들이 완벽하게 진용을 갖춰 밀려 들어왔다.
“……뭔 해일이 밀려오는 것 같군.”
“이렇게나 많았다고?”
장민과 위긴스조차 질린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사방에 보이는 모든 길과 모든 틈으로 무인들이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모습은 거의 공포 영화 수준이었다.
‘좀비 떼 같네.’
이현수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반경 10㎞ 내에는 아무도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평범한 운동 선수도 그 정도 거리는 30분이면 주파하네. 무인이면 5분이면 충분하지. 포격이 쏟아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동해도 충분했겠지.”
“……개 같은 새끼들.”
이현수가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함정일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현수가 생각한 함정은 빠지는 바닥에 죽창이 꽂혀 있거나, 머리 위에서 바위가 떨어지는 정도였다.
사람 하나를 잡자고 산 하나에 통째로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 버리는 걸 함정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창왕이 하는 짓거리가 딱 그 수준이었다.
겨우 여덟.
열 명도 되지 않는 이를 잡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하고, 수하들을 모조리 끌어모아 공격한다. 이건 모기를 잡자고 집에 폭탄을 설치하고 날려 버리는 수준이다.
“어이, 차이커창.”
“말해라.”
“창왕이라는 놈이 원래 이렇게 스케일이 크냐?”
“……너희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겠지. 영광으로 아는 게 좋아. 삼왕이 아닌 이가 이토록 귀한 대접을 받은 건 처음일 테니까.”
“주둥아리는 살아서. 망할 새끼가.”
이현수가 이를 갈았다.
대륙의 기상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창왕이 벌이는 일의 스케일은 이현수의 상상을 아득하게 벗어났다. 이제는 대체 뭐가 더 준비되어 있을지 기대가 될 지경이었다.
헤일처럼 몰려든 창왕의 무인들이 강진호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는 포위망을 다졌다.
덤벼들지 않는다.
차라리 그 기세 그대로 달려들어 주었다면 혼란을 틈타 탈출을 시도해 보았겠지만, 이들은 총회를 몰아넣는 걸로 충분하다는 듯 촘촘한 포위망을 형성할 뿐이었다.
그 하나하나의 행동이 모두 숨을 조여왔다.
이현수가 거리를 두고 멈춰 선 창왕계의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칼날 같은 눈빛.
‘다르군.’
홍왕계의 무인들이 뭔가 뜨거운 느낌이라면, 이들에게서는 냉정한 차가움이 느껴진다. 홍왕계가 하나의 문파 같은 느낌이라면, 이들은 마치…….
‘군대인가?’
그래, 그쪽에 가깝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많은 무인들을 저리 같은 느낌으로 물들일 수 있는 건가.
총회에 대해서만큼은 역사상 다시없을 지배력을 가진 강진호조차 총회의 회원들을 저리 같은 색으로 물들이지는 못했다. 설사 창왕과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창왕은 홍왕과 흑왕을 견제하는 와중에서도 이런 일을 해낸 것이다. 그 능력의 끝이 어디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현수가 힐끔 홍왕을 바라보았다.
창왕의 존재를 알기 전에는 홍왕이 세상에 다시없을 무인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뭐라고 할까…….
‘힘만 센 곰 같은 건가?’
물론 홍왕이 그리 아둔하다고 불릴 이는 아니지만,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아무리 곰의 힘이 강하다고는 해도 울창한 숲에서 교할하기 짝이 없는 호랑이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면 패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바토르가 몸을 일으켰다.
“뚫어야지! 계획대로!”
“저걸요?”
이현수의 말에 장민이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말고, 내 뒤에나 바짝 붙어 있어라. 마존께서 너를 총애하시니, 네 목숨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참 감사한 말이기는 한데…….
그래도 제정신인 사람이 하나는 남아 있는지 방진훈이 살짝 얼어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걸 뚫자고요? 다 뒈지려고 환장한 것 아닙니까?”
“…….”
“아니, 뭔 애새끼들이 개미 떼보다 많은데, 저걸 뚫자고? 게임 캐릭터도 마나 떨어져서 다굴 맞아 뒈지겠구만!”
이현수가 격하게 동감한다는 얼굴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같이 와서 정말 다행이다.
“다른 수는 있고?”
“……협상이라도 해봅시다. 저 새끼들도 사람이니 말은 통하겠지요.”
아니.
이 사람이 제일 제정신이 아니다.
창왕계와 협상이라니.
“조용.”
그때, 지금껏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강진호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후우우우우.”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일단은 들어보지. 저쪽도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니까.”
“예?”
반사적으로 반문한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앞쪽을 바라봤다.
“…….”
열린다.
푸른 강을 연상시킬 정도로 대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창왕계의 무인들이 좌우로 길을 열고 있다. 그리고 그 열린 길을 따라서 한 사람이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꿀꺽.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알 수밖에 없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굳이 확인시켜 주지 않아도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지금 저 남자가 누구인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린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도 사내의 발걸음 소리가 이현수의 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열려 버린 길을 따라 한 사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깔끔한 흰색의 스니커즈.
몸에 살짝 붙는, 슬림한 느낌의 검은 슈트.
하얀색 와이셔츠 사이로 내려온 푸른색의 넥타이가 미묘하게 시선을 잡아끌고, 그 위로 보이는 날카로운 선의 얼굴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길게 늘어진 장발.
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장발은 난잡하기보다는 오히려 시크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저벅저벅.
사내가 멈춰 섰다.
이현수가 사내를 보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겉으로만 보면 강남 어디선가에서 마주칠 것 같은,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현수는 안다.
저자가 바로 그들을 맞이하러 온 이.
중국을 지배하는 삼왕 중 하나.
창왕이라는 것을 말이다.
차갑게 그들을 응시하던 창왕이 강진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천천히 그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