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70
#1669.
포위되다 (4)
바토르의 눈에 핏발이 섰다.
무학을 익힌 무인은 더 높은 곳을 추구한다. 더 높이, 더욱더 높이.
그렇기에 언제나 자신보다 더 강한 이와 싸우는 순간을 고대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토르는 그 누구보다 순수한 무인이자 구도자였다.
하지만 한 가지.
바란 적 없던가.
이 육신에 가득 쌓아 올린 힘.
태산도 무너뜨릴 수 있는 이 힘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있는 그대로 방출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없던가.
‘없다면 거짓말이지.’
더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 이상으로 수십, 수백의 적에게 어떠한 주저도 없이 최고의 권력을 발출해 보고 싶다는 욕구는 항상 존재해 왔다.
그건 손에 총을 든 이가 어디에든 한 번쯤을 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평생을 무인으로 살아온 바토르에게도 그런 기회는 쉽사리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순간.
바토르의 눈앞에 끝없는 무인의 바다가 펼쳐졌다.
손속의 사정을 둘 필요도 없고, 상대를 공격하는 데 조금의 죄책감도 느낄 필요 없는, 완전무결한 개념의 ‘적’들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웃음이 터진다.
가슴속에서 환호가 울려 퍼진다.
누군가가 그의 본심을 들었다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바토르는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에 솔직해졌다.
콰앙!
그의 오른발이 강렬한 진각을 내리밟으며 바닥을 부순다.
뿌드드득!
허리를 부러질 듯 뒤틀려 상체가 거의 뒤로 돌아간다.
그런 후.
완벽한 탄성을 가진 그의 육체가 마치 꼬아둔 고무줄이 풀리는 것처럼 팽그르르 회전하며 주먹에 탄성은 온전히 실어냈다.
이어지는 일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의 내력과 마기가 합일(合一)되며, 정면으로 거대한 기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기의 폭풍이 전방에서 돌격하던 창왕계의 무인들을 말 그대로 휩쓸어 버렸다. 회전력을 가득 실은 권은 스치는 것만으로 사람을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처럼 휘날려 버렸다.
“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이라도 내지를 수 있는 이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대부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넝마가 되어 추락했다. 권력을 정면으로 맞은 이들은 그 육체마저 세상에 남기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일권.
바토르는 자신이 만들어낸 참상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머리끝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고양감이 몰려왔다.
부정할 수 있는가.
결국 무학이란 사람을 죽이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더 효율적으로 더 빠른 시간 안에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무인들은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다.
그리고 지금 바토르의 눈앞에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수련의 결과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바토르의 눈이 더더욱 붉게 물들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핫!”
바토르가 광소를 내지르며 다시 주먹을 뻗어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
검붉은 기운을 휘두른 유백색의 권강이 마치 거대한 포탄처럼 쏘아졌다. 그리고 그 날아드는 포탄을 감당하기에 인간의 육체는 너무도 나약했다.
광소를 터뜨리며 연신 권력을 내지르는 바토르를 보며 장민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마기에 물들었군.’
마공을 익힌 자는 힘을 얻는 대신 자신의 이성 일부분을 희생양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건 강진호처럼 완전히 마기를 지배하는 수준에 오르지 않은 이상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법칙이다.
살짝 고민을 하던 장민이 깔끔하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광기를 억제할 때가 아니다. 이성을 잃고 가진 이상의 힘을 쏟아낸 뒤 탈진해 버린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면 전장에서 일정한 광기는 오히려 득이 된다.
게다가…….
‘내가 지금 바토르를 걱정할 상황이 아니지.’
그 역시 아직은 마기의 간섭을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러니!
우우우우우웅!
장민의 손끝이 검붉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보기만 해도 섬뜩한 핏빛의 조강을 1미터가 넘게 뽑아냈다. 각 손가락당 하나씩, 열 개나 되는 강기의 손톱을 만들어낸 장민이 눈을 붉게 물들이며 괴성을 내질렀다.
촤아아아아아아악!
그의 손톱이 달려드는 창왕계의 무인들을 횡으로 베어냈다.
“……엇?”
달려들던 이들이 멍한 눈으로 멈춰 섰다.
자신들에게 벌어진 일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얼굴.
하지만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이해’라는 건 살아 있는 이에게나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무인들의 몸에 가로로 긴 혈선이 생겨난다. 그러고는 금세 갈라진 부분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오더니, 동강 난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번에 처리하는 무인의 수는 바토르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장민이 만들어낸 참상은 달려들던 무인들을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숨을 쉬던 동료가 조각난 육편이 된 광경이 너무도 생생하게 두 눈으로 들어온다.
“창왕의 개들.”
장민이 이를 갈았다.
광기를 억제하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너희는 모른다.”
그가 얼마나 이 순간을 고대해 왔는지.
교가 무너지고, 교도들이 사냥당하고, 한때 중원을 정복한 교의 마인들이 천하디천한 취급을 받는 모습을 피눈물을 흘리며 지켜봐 왔다.
오직 이 한순간만을 바라며 말이다.
얼마나 꿈꾸고 또 꿈꾸었던가.
저 간악하기 짝이 없는 삼왕에게 그의 손톱을 휘두르는 날을.
어쩌면 평생 동안 오지 않을 그 순간을 위해 장민은 피눈물을 흘리며 참아내고 또 참아냈다.
마존의 강림만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마침내 장민에게 그 모든 것을 풀어낼 기회가 왔다.
자제?
억제?
그런 개 같은 단어들은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끼아아아아아아아!”
장민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되레 창왕의 수하들에게 달려들었다.
푸른 무복을 입은 무인들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대되고, 그 눈에 비친 장민의 모습이 순식간에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파아아아앗!
모든 것을 갈라 버릴 것처럼 검붉은 손톱이 인간의 육체를 종횡으로 가른다.
잘려진 몸뚱아리가 허공으로 치솟고, 흩뿌려진 피가 비처럼 내린다. 그 지옥도의 한가운데에서 장민이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잔인하다고?
악마 같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장민은 알고 있다.
지금 그가 죽인 이들의 수백 배가 이들의 손에 죽어 나갔다. 그저 마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죽음에는 어떠한 동정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약하기에 참아내야만 했던 고통.
나약하기에 외면할 수밖에 없던 탄압.
가슴속에 꾹꾹 눌러 피로 꽁꽁 싸매둔 울분이 장민의 가슴속에서 폭발했다.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단 한 놈도!”
장민의 조강이 빛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촤아아아아아악!
비단 폭을 찢어내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장민인 인의장막 위로 뛰어올라 춤을 추듯 손톱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린 밤에 붉은 피 안개가 피어올랐다.
장민을 향해 돌진하던 창왕의 무인들이 그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섰다.
“괴, 괴물 같은…….”
마인(魔人).
이제는 조롱과 같은 이름이 되어버린 말.
하나 이곳에 있는 이들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왜 삼왕계가 그 약하디약한 마인들을 탄압하고 죽여 없애려 했는지 말이다.
“무, 물러서지 마라! 창왕께서 보고 계신다!”
그리고 그 공포감은 창왕이라는 이름이 주는 더 큰 공포에 순식간에 휩쓸려 나갔다.
“으아아아아아아!”
“죽여어어어어어!”
두 눈에 시퍼런 살기를 담은 창왕계의 무인들이 장민을 향해 더 빠른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순식간에 달려든 이들의 몸이 동강 나 바닥을 굴렀지만, 달려들던 이들은 동료의 시체를 짓밟으며 장민에게 달려들고 또 달려들었다.
“와라! 창왕의 개들!”
거품을 물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창왕의 무인들을 보며 장민이 더욱 잔인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눈이 점점 더 광기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흐으음…….”
위긴스가 날뛰는 두 사람을 보며 고소를 머금었다.
‘등 뒤에서 보고만 있어도 섬뜩하군.’
하여간 절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이들이다. 무공의 고하는 둘째 문제였다. 저 적나라한 광기에 비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여긴 내가 나서야 하는 판이란 말이지.”
그의 손이 허공을 천천히 수놓기 시작했다.
마나를 잔뜩 담은 손이 허공에 기괴하고도 복잡한 문양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손끝이 돌고, 다시 돌고, 또 한 번 허공을 돌고나서야 커다란 원형의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타올라라!”
위긴스가 양손을 뻗어 마법진에 가져다 댔다.
우우우우웅!
마법진이 공명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커다란 화염으로 화하며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타올랐다.
“읏차!”
위긴스가 무겁게 손을 뻗어내자 타오르던 불꽃이 화악 뿜어져 나가더니, 이내 그들의 등에 커다란 화염의 벽을 만들어냈다.
위긴스가 고개를 돌려 화염의 벽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불꽃을 적에게 뿜어냈다면 수많은 이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뿐.
마력을 충전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이상, 그가 펼칠 수 있는 대단위 마법은 기껏해야 두 번이 한계였다. 그 귀한 마법을 고작 몇 십 명을 죽이는 데 낭비할 수는 없다.
“이걸로 뒤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럴 바에야 전략적으로 움직여야지.
적이 밀고 들어오는 방향을 반만 줄여내도 세 배는 수월해지는 법이니까.
다만, 저들 역시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몸이 불타더라도 특공을 감행하는 이들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
위긴스가 고개를 돌려 홍왕을 바라보았다.
“부상이 깊으신 것 같으신데…….”
홍왕이 말없이 위긴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슬쩍 의수로 향했다가 다시 위긴스의 얼굴로 향했다.
“어떻습니까? 홍왕께서 뒤쪽을 맡아주신다면 조금은 수월해질 것 같습니다만?”
“뒤를 맡으라?”
“예.”
홍왕이 피식 웃었다.
“서양의 무인이여, 그대의 능력은 분명 뛰어나다. 하지만 그대는 여전히 모르는군.”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홍왕이다.”
홍왕의 목소리가 우렁우렁하게 울려 퍼졌다.
“내 비록 너희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처지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서 자존심마저 버릴 수는 없지.”
그 말을 남긴 홍왕이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 나갔다. 좌와 우로 진로를 잡은 바토르와 장민의 사이. 정중앙으로 걸어 나간 홍왕이 주먹을 쥐고는 눈을 빛냈다.
“와라! 창왕의 개들아!”
그의 몸이 황금빛의 서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너무도 찬란하고, 너무도 숭고해 보이는.
황금빛의 권력이 홍왕의 우수에 모여들었다. 홍왕은 지체 없이 우권을 내질렀다.
우우우우우우웅!
일체의 군더더기 없는 동작과 함께 세상을 환히 밝히는 황금빛의 권강이 푸른색의 바다로 떨어진다.
그러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귀를 찢어낼 것과 같은 폭음과 함께 달려들던 이들이 말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인간을 벗어난 이들의 힘이 창왕계의 무인들에게 쏟아지고 또 쏟아졌다.
피가 죽음을 먹고, 죽음이 인간을 집어삼켰다.
무인의 전장.
상식이 숨을 죽이고, 질서가 그 힘을 잃는 무인의 전장에서 인간을 뛰어넘은 괴물들이 말 그대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