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75
#1674.
농락하다 (4)
‘흠?’
강진호가 동작을 멈췄다.
사방에서 그를 향한 진득한 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살기가 점점 커지더니, 이내 하나의 거대한 압력이 되어 그를 압박해 왔다.
“흐음.”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래야지.’
개를 건드리면 주인이 나오는 법.
주인은 아니더라도 좀 더 강한 이들이 나와야 하는 법이다. 애초에 저들도 평범한 무사들로 강진호를 감당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터.
지금 오는 것들이 창왕이 준비한 진짜다. 그의 심장을 찌르기 위한 비수가 지금 강진호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 온다.
절로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고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병이군.’
마기에 정신을 빼앗기지도 않았는데 그는 앞으로 닥쳐 올 전투에 흥분하고 있다. 이래서야 마기 때문에 그동안 미쳐 날뛰던 거라는 변명도 할 수 없을 판이었다.
“후우.”
짧게 호흡을 뱉어낸 강진호가 자신의 얼굴로 날아드는 긴 장검을 바라보았다.
카앙!
적루가 날아드는 장검을 깔끔하게 베어낸다.
붕대로 칭칭 감긴 얼굴 사이로 드러난 눈에 경악이 가득하다. 내력을 터질 듯 쑤셔 넣은 검을 일격에 갈라 버린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지.
그 빈약한 상상력의 대가는 아주 간단했다.
촤아아아악!
세로로 반으로 갈라진 육체가 피를 뿌리며 좌우로 튕겨 나간다. 주저 없이 하나의 목숨을 끊어버린 강진호가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아무래도…….”
강진호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얕보인 모양인데.”
강진호가 이를 갈았다.
감히 저따위를 보내 그를 막으려 든다?
이건 그에 대한 무시나 다름없다.
그래.
무시받는다면 알려줘야지, 그가 과연 무시받을 수 있는 존재인지 말이다.
쇄애애액!
세 개의 검이 강진호의 머리와 양쪽 허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검. 오로지 검.
검을 잡고 있을 사람의 육체는 그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검과 사람이 하나 된 경지. 무인들은 신검합일(身劍合一)이라 부르는 경지다. 검을 닦는 이들이 꿈에도 바라는 경지. 저만한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 이들이 얼마나 혹독한 수련을 받았을지는 굳이 짐작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이곳에서만큼은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우득.
우드드득!
강진호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마기가 뻗어 나가 날아드는 검을 뒤덮는다. 그건 마치 검은 화염 속에서 악마의 손아귀가 뻗어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우드득!
신검합일에 이른 검은 강철조차 두부처럼 갈라 버린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검이 강철은 가를 수 있을지 몰라도 강진호의 마기를 뚫어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챙!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마기에 붙잡힌 검이 동강나 부러졌다.
“컥!”
“쿨럭!”
부러진 검에서 역류한 기운이 귀검대 무사들의 내부를 헤집어놓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은 틈을 놓칠 강진호가 아니었다.
화르르륵!
불꽃과도 같은 마기를 뒤덮은 적루와 청루가 신음하는 귀검대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마기에 뒤덮인 이들은 세상에 마지막 비명을 남길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육체가 마기에 불타오르며 낸 작은 소음이 그들의 유언을 대신했다.
강진호가 가만히 칼을 내렸다.
‘멍청한.’
사람들은 착각하고는 한다.
그가 마기를 뿜어내기 때문에.
그의 마기가 마치 괴물과도 같은 형상을 띠기에.
그가 바토르와 같은 힘과 막대한 내력으로 사람을 짓눌러 죽이는 스타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명백한 오해였다.
강진호는 검수.
검의 극한을 추구하는 이.
그의 검은 거칠지만 정교하고, 파괴적이지만 쾌속하다. 어설픈 수작으로는 그의 검을 뚫어낼 수 없다.
그걸 모른 채 강진호를 공격한다는 건 씻은 목을 내미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물론 알았다고 해서 달라질 게 그리 많지는 않았겠지만.
“후…….”
짧게 호훕을 내뱉은 강진호가 핏빛의 안광을 흩뿌렸다.
그의 시선에 또다시 날아드는 검들이 보인다.
‘흔들림이 없군.’
바로 앞에서 동료가 오체분시되는 꼴을 똑똑히 보았음에도 검의 끝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지금까지 그가 상대해 온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게 이들은 진정한 무인이라는 의미다.
단순히 공포에 지배되어 등을 떠밀린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강진호의 목숨을 노려오고 있다.
강진호가 적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저들이 무인이라면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주어야 하는 법.
우우우우웅!
단전이 비명을 내지른다. 단전에서 솟구친 내력이 전신을 휘돌며 그의 육체를 검은 마기로 완연하게 물들인다. 그리고 어깨와 팔, 손목을 통해 적루를 향해 밀려 들어갔다.
그으으으응.
적루가 뒤틀리듯 진동하며 검명(劍鳴)을 토해냈다.
이윽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기를 미칠 듯이 집어삼킨 적루가 머리 위에서 아래로 일직선으로 내리그어졌다. 그와 동시에 적루에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검강(劍罡)이 마치 저주받은 하늘에 뜬 검은 초승달처럼 뿜어져 나갔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형태의 검은 초승달이 닿는 모든 것을 부수고, 으깨고, 파괴한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달은 검을 부순다.
달은 사람을 가른다.
달이 세상을 찢어내고, 그 앞에 펼쳐진 사람의 바다조차도 홍해처럼 갈라 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바다를 찢어낸 참격이 건물을 사선으로 베어내고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
침묵.
깊은 침묵이 장자커우로 내려앉았다.
시간이 멎어버린 것 같다.
그 정지된 시간 속에서 사선으로 베어진 건물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우르르르르르릉!
천둥이 치는 것과 같은 파열음이 세상의 시간을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움직이되, 그 세상의 안에 존재하는 인간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를 노리던 귀검대.
이사들의 도움을 막기 위해서 그들을 견제하던 귀검대.
그런 귀검대를 맞아 싸우던 이사들과 정신없이 달아나던 창왕의 무사들도 동작을 멈추고 강진호가 만들어 낸 참상을 바라보았다.
인간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던 장자커우의 커다란 도로 위로 마치 괴물이 할퀴고 지나간 듯한 거대한 균열이 생겨나 있다.
끝이 보이지 않은 균열.
그 검고 어둡기 짝이 없는 균열은 악마의 초승달에 갈려 나간 모든 이들의 남은 흔적조차 저 깊은 어둠 속으로 삼켜 버렸다.
떨리는 눈이 다시금 이동한다.
거기에 있다.
죽음의 주인이.
지옥에서나 볼 것 같은 검은 불꽃을 두르고, 핏빛의 안광을 내뿜는 수라가 양손에 든 검을 늘어뜨린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마왕.’
유치한 이름이다.
하지만 저자를 그 외에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지옥을 주관하는 이를 마왕이라 부른다면 저자를 칭하는 말은 당연히 마왕이 되어야 할 것이고, 죽음을 주관하는 자를 염왕이라 부른다면 저자는 염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깨달아야 한다.
마왕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곧 지옥이고, 염왕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곧 심판대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은 마왕의 손아귀에 올려져 있는 나약한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저벅.
악마가 걸음을 옮긴다.
다음 희생자를 찾듯이.
그리고 그 단 한 걸음이 준 파문은 상상이상으로 어마어마했다.
“아…….”
저항의 의욕을 잃어버린 이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던 이들도 몸을 떨며 물러났다.
이건 무위에 대한 공포가 아니다.
강진호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의 영혼이 울어 젖혔다.
“말하지 않았나?”
악마의 입가가 일렁인다.
“결국 다 죽을 거라고 말이야.”
실수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이들을 모았다. 그런 후 완벽하게 몰아넣었다. 그러니 이제는 몰아붙여 그 피를 탐하고, 육체를 뜯어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의 모두는 이 순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사냥을 하는 건 그들이 아니다.
이곳에서 사냥을 할 권리를 가진 이는 오로지 저 악마뿐이다. 인간이 아무리 몰려들어 봐야 악마에게는 그저 진수성찬이 차려진 식탁이나 다름없는 법이니까.
마지막까지 버텨내던 마음이 무너지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강진호의 바로 앞으로 백색의 장력이 떨어진다.
강진호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의 앞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파여 있다. 강진호가 만들어낸 균열보다 깊지는 않지만, 그 범위는 오히려 더 넓다.
“조금 실망스럽군.”
그리고 그 장력의 주인이 낮게 속삭이는 듯한 말과 함께 천천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창왕.
마침내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강진호는 그를 향해 걸어오는 창왕을 보며 살짝 눈을 찌푸렸다.
‘적절하군.’
일격만 더.
아니,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났다면, 이곳에 있는 이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창왕은 확실히 녹록치 않았다.
흐려져 가던 눈에 빛이 돌아온다.
어쨌거나 창왕. 중원을 지배하는 존재.
그 존재를 다시 떠올린 창왕의 무인들이 이를 악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너지려는 정신을 어떻게든 다잡고 버텨내기 시작한 것이다.
창왕이 차가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수하라는 놈들이 이리 나약했을 줄이야.”
그의 눈빛을 받은 이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면…….”
창왕의 시선이 강진호에게 고정된다.
“네가 강한 걸까?”
강진호가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글쎄.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지.”
“……뭐지?”
“그 많은 수하들이 죽어 나갈 때 뒷짐이나 지고 있다가 이제 기어 나온 놈이 지껄일 말은 아니라는 것?”
“…….”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네가 머리가 좋다더군.”
“너희가 멍청한 거겠지.”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여하튼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지금도 계산 중이겠지. 네가 나를 상대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러려면 뭐가 더 필요한지, 내 힘을 얼마나 더 빼놔야 할지.”
강진호가 마기를 회수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칵.
라이터를 켜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어디, 해봐.”
“…….”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 그러면 알게 될 테니까.”
강진호가 굶주린 짐승처럼 이를 드러냈다.
“너는 나를 재단할 수 없어. 너처럼 머리로 움직이는 이는 절대 알지 못하지. 그래서 네가 아무리 강해도 내 상대가 될 수 없는 거야.”
창왕이 비릿한 미소를 입에 담았다.
“유언으로 적절한 말은 아닌 것 같군.”
“지껄여 봐.”
강진호가 턱짓으로 창왕을 가리켰다.
“네 유언은 내가 들어줄 테니까.”
“하하…… 하.”
창왕이 고개를 내저었다.
“강진호, 강진호. 그래, 알겠군. 너와 나는 평행선이다. 다가갈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지.”
“잘 아는군.”
“하지만 그건 내가 너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지.”
창왕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서 오싹한 한기가 흘러나왔다.
“머리로?”
창왕의 양손이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건 너다, 강진호. 무인들은 두뇌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저들이 굴복하는 건 오로지 강대한 힘 앞이지.”
살을 엘 듯한 살기.
그리고 피부를 저며오는 한기.
“홍왕의 몸에 바람구멍을 뚫은 게 누구라고 생각하지?”
창왕이 싸늘하게 웃었다.
강진호의 무심한 시선과 창왕의 한기 어린 시선이 허공에서 서로 얽혀들기 시작했다.
“보여주마, 강진호. 내가 어떻게 창왕이라는 이름을 손에 넣었는지.”
창왕의 주변 바닥이 일시에 부서져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중원을 지배하는 세 명의 왕.
푸른 왕이라는 이명을 가진 창왕이 마침내 자신의 실력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