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87
#1686.
복귀하다 (1)
자주포의 장갑이 두부처럼 썰려 나간다.
기본적으로 자주포의 장갑은 전차포를 완전히 막아내기 위해 설계된 것은 아니지만, 웬만한 화력으로는 그 두터운 장갑을 뚫어낼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상식은 이곳에서 의미가 없었다.
파아아아앙!
검이 쇠를 가르고, 자주포의 포탑을 통째로 날려 버린다.
‘히익!’
그 뒤를 따라 질주하는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 섞인 탄성을 내질렀다.
그, 아니, 강진호의 앞은 자주포와 전차가 빽빽하게 포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마치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은 속도로 질주하는 중이었다.
걷어차인 전차의 옆면이 움푹 파이더니, 날려진 팽이처럼 회전하며 튕겨 나갔다.
콰아아아앙!
그러더니 거대한 폭발이 일며 전차 내부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미쳤네!’
전신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의 속도감이 이현수를 뒤덮었다.
‘이거, 진짜 장난 아니네.’
생각해 보면 그가 강진호와 함께 싸운 적…… 아니, 강진호가 싸우는 곳에 함께 있던 적이야 수도 없이 많지만, 이렇듯 달려 나가는 강진호에 뒤에 따라붙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새삼 실감이 난다.
이 인간이 얼마나 무자비한 파괴 병기인지 말이다.
바토르와 같은 거대한 힘은 없다. 장민처럼 기괴하지도 않다. 그리고 위긴스처럼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셋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효율로 말 그대로 최단거리를 최속으로 뚫어냈다. 뒤에서 보고 있으면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포인트는 길을 뚫어내는 동시에 저들이 등 뒤에서 사격을 하지 못할 정도로 전투 불능을 만들어내는 것.
강진호는 그 과제를 가장 완벽하게 수행했다.
“쏴라!”
하지만 저들 역시 만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강진호를 향해 화망이 구성된다. 전차 부대를 호위하던 보병 부대들이 들고 있는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사실 이쪽이 오히려 전차나 자주포보다 상대하기가 어렵다. 둔중한 포신을 돌려 강진호를 조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쓰는 총은 어떻게든 강진호의 종적을 따라온다. 한 번 놓쳐 버리면 재조준이 거의 불가능한 포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다만, 조준할 수 있는 것과 타격을 입힐 수 있는가는 분명 별개의 문제였다.
타타타타타타타탕!
콩을 볶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날아들던 탄환들이 강진호가 뿜어낸 마기를 뚫지 못하고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히이이이이이익!”
자신의 얼굴 바로 옆으로 탄이 스쳐 지나가는 감각을 느낀 이현수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저는 저거 맞으면 죽습니다, 회주님! 좀 더 신경 써서 쳐내주십시오!”
“…….”
순간, 강진호의 고개가 움찔하는 것 같았지만, 이현수는 굳이 그 반응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단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
콰아아아아아앙!
옆쪽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사방으로 전차를 날려 버린 바토르가 일직선으로 뛰어와 강진호와 합류했다.
“크흐, 주인!”
바토르의 눈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다.
그 모습을 본 이현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가슴이 급하게 오르내린다. 지금까지 바토르가 저렇게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전투의 여파가 있겠지.’
창왕계와 싸우느라 이미 힘을 거의 소진했다. 그러고 나서 소진한 힘을 재충전할 시간도 없이 미친 듯이 달려 댔다. 웬만한 고수라도 탈진해 쓰러질 정도로 과격하기 짝이 없는 전투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바토르는 일행을 보호하기 위해 자주포의 세례를 몸으로 감당했고, 이어지는 미사일의 폭발에도 충격을 입었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일 것이다.
“죽어라아아아아앗!”
총을 갈겨 대는 보병 부대 한가운데로 뛰어든 장민은 길게 자라난 조강을 사방으로 휘둘렀다.
이현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수도 없이 봐온 광경이지만, 저 모습만은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화기가 뿜어내는 소음과 사람이 질러 대는 비명이 합쳐져 끔찍한 소음의 고막을 뚫고 들어왔다.
“마존이시여! 전방에 밀집된 부대가 있습니다!”
“음!”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어느새 합류한 위긴스가 헐떡거리며 소리쳤다.
“생각 이상으로 이들이 국경에 근접해 있습니다! 뚫어낼 수만 있다면 바로 국경을 넘어 몽골로 진입합니다!”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진입이라…….’
일차적인 목표는 거기까지다.
“머리 비워!”
강진호가 단호하게 소리쳤다.
“일단은 뚫는 것만 생각한…….”
콰아아아아아앙!
말을 하던 강진호의 바로 옆에서 폭발이 일었다.
순간적으로 이현수를 감싼 강진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전차와 자주포로 자신들을 막아내겠다는 건 무모한 발상일지도 모른다. 일단 다른 건 다 접어두더라도 상성이 맞지 않다. 인간을 초월한 무인들에게 육중한 장갑은 의미가 없고, 그들의 느린 속도는 무인을 쫓을 수 없다.
그건 이미 강진호가 네바다에서 증명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일전의 강진호에게는 무한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 그럴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목적은 괴멸이 아닌 돌파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목적이 괴멸이라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하나하나 완전히 무너뜨리며 전진할 수 있겠지만, 목적이 돌파가 되는 순간 필연적으로 그들의 등 뒤에 병력이 남게 된다.
강진호들이 되돌아가 싸우지 않는 이상, 돌파하면 돌파할수록 더는 공격받을 염려가 없이 오로지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는 병력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들이 포격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아군의 전차가 있음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군을 직격하여 사망자를 만들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강진호들을 죽이겠다는 심산이다.
그리고 이 전차로 따지면, 초근접이라고 할 수 있는 거리에서 쏘아지는 포탄은 강진호들에게도 확실한 위협이었다.
“오오오오오오!”
자신의 역할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지, 어느새 일행의 후미로 달려간 바토르가 날아드는 포탄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거걱! 거거거걱!
포탄이 바토르의 주먹과 충돌하여 찌부러지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텅!
“이 새끼들, 철갑탄이야!”
고폭탄류로는 강진호들을 잡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대전차용 철갑탄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었다.
“위치 바꾼다!”
강진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바토르!”
“말하라, 주인!”
“선두로 가라! 뚫는다!”
“알겠다!”
바토르가 두말 이 선두로 몸을 날렸다. 지금은 이유와 효율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설사 틀린 지시라고 해도 일사불란하게 따를 필요가 있었다.
“장민! 바토르를 도와라!”
“예! 마존이시여!”
“방진훈! 중앙에서 이현수와 차이커창을 지켜!”
“이미 와 있습니다!”
강진호가 바닥을 박차고 뒤쪽으로 날아들었다. 저 포탄의 세례를 막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 그 역할을 가장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진호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홍왕!”
“내게 명령하지 마라, 마왕! 알고 있다!”
홍왕이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른다.
그의 몸에서 황금빛의 서기가 태양처럼 뿜어져 나왔다.
“오오오오오오오!”
허공에서 몸을 뒤튼 홍왕이 앞쪽을 향해 정권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주변에 머물러 있던 황금빛의 기운들이 마치 호우를 맞이한 급류처럼 강진호들의 머리를 넘어 앞쪽에 병력들을 직격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쓸려 나간다.
그저 보이는 것만이 아니었다. 기운으로 만들어진 급류는 불어난 계곡처럼 앞을 채우고 있던 모든 것들을 말 그대로 휩쓸어 버렸다.
“기가 막히는군.”
바토르가 이를 악물었다.
강함?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바토르도 시간만 준다면 저들 모두를 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홍왕은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밀어내고 있었다.
완벽한 힘의 배분.
과한 힘이란 결국 과한 내력을 소모하게 되는 법.
위력을 죽인 대신 범위를 넓혀 ‘길을 뚫는다’는 목적 하나만을 완벽하게 달성한다.
이것이 바로 홍왕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이 만들어낸 광경은 모두의 눈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열렸다!”
바토르가 고함을 내질렀다. 홍해처럼 좌우로 밀려난 전차들 사이로 너른 초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만들어졌다. 본능적으로 저 초원이 몽골의 영역임을 감지한 바토르가 지체할 것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비켜라, 이 쓰레기 같은 것들아!”
콰아아아아앙!
바토르가 내지른 정권이 미쳐 다 밀려 나가지 못한 전차를 튕겨냈다.
“저기까지만 가면 된다! 저기까지!”
하지만 적들 역시 그걸 두고만 보지는 않았다.
콰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등 뒤에서 전차와 자주포의 포격이 비처럼 쏟아졌다.
“회주님!”
강진호가 날아드는 포탄을 적루와 청루를 휘둘러 일일이 베어내고 걷어찼다.
초음속에 가까운 포탄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가공할 만한 동체 시력.
그리고 그 속도로 날아드는 포탄을 정확하게 베어내는 운동 능력.
그 어느 것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신관을 정확하게 잘라내지 못한 포탄들이 중간 중간 터져 나갔다. 철갑탄 사이에 뒤섞인 고폭탄들이 가공할 압력을 만들어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굳이 파편을 맞을 것도 없이 저 압력만으로 사지가 찢겨 나갔다.
게다가…….
“뭐지?”
강진호의 목소리에 위긴스가 고개를 홱 돌렸다.
“배, 백린! 로드, 백린탄입니다!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강진호의 검이 불붙은 옷자락을 잘라냈다. 그에 그치지 않고 타고 있는 피부마저 미련 없이 썰어냈다.
시간이 더 있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달려! 이러다 로드께서 먼저 쓰러지신다! 빌어먹을 새끼들아, 죽어라 달리란 말이다!”
위긴스의 입에서 욕지기가 터져 나왔다.
다른 이도 아닌 위긴스의 입에서 이런 과격한 말이 나왔다는 게 지금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오오오오오오!”
바토르의 발이 대지를 박찬다. 그의 눈에 밀려 나간 전차들이 일제히 포신을 돌리는 광경이 들어왔다.
‘설마?’
바토르가 두 눈을 부릅떴다.
아니겠지?
하지만 언제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 법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고막이 터져 나가는 듯한 폭음과 함께 좌우로 밀려 나간 전차들이 일제히 포를 발사했다.
이런 근거리에서 건너편에 있는 전차를 피해 사격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의 사격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모두가 죽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강진호들을 사살하겠다는 악의가 진득하게 묻어나 있었다.
서로를 향해 쏘아댄 포격이 서로에게 명중한다. 터져 나간 전차들이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일부는 이차로 폭발을 일으켰다.
“쿨럭!”
대부분의 사격은 그들을 비껴 나갔지만, 그 일부만으로 충분했다.
장민과 위긴스가 전신에서 피를 뿜어내며 휘청였다. 차이커창과 이현수는 이미 의식을 잃었는지 축 처져 있고, 그런 그들을 방진훈이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달리라고, 이 한심한 것들아!”
바토르가 한 팔로 장민과 위긴스를 움켜잡고는, 다른 한 팔로는 방진훈을 비롯한 셋을 끌어안았다.
“홍왕, 괜찮겠지?”
“감히 누구에게 지껄이는 거냐?”
“빌어먹을 주둥이는 살았군!”
바토르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한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마치 불의 벽이 쳐진 것 같다.
날아드는 포탄들은 강진호의 검을 뚫지 못하고 허공에서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포탄을 받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주인, 내버려 두고 달려라! 끝이다!”
“음!”
강진호가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눈앞에 광활한 대지가 들어왔다.
“몽골이다!”
물론 국경을 넘었다고 해서 포격이 멈추지는 않겠지만, 저들은 더 이상 전진할 수 없…….
그때, 바토르의 눈이 뒤흔들렸다.
그의 눈에 저 멀리, 초원 너머에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대규모의 병력들이 보였다.
“저거…….”
그 모습을 본 홍왕이 이죽였다.
“하나 놓친 것 같군. 분명 무인들은 네 편이겠지. 하지만 몽골의 군인들도 네 편일까? 그들은 너보다는 중국이 무서웠던 것 같은데?”
몽골의 초원을 가득 메우며 몰려오는 전차들을 본 바토르의 눈이 암담함으로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