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90
#1689.
복귀하다 (4)
“진입합니다!”
레이놀드가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에 보이는 전투기들을 바라보았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군.’
따져 보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주한미군이든 주일미군이든 미군은 미군. 주둔지가 다를 뿐, 그 국적이 다르지는 않다. 훈련을 위해서라든가, 여러 가지 이유로 주일미군의 전투기가 주한미군의 활주로에 착륙한 일은 몇 번이고 있어왔다.
그러니 딱히 이상하다고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저 전투기 위에 사람이 매달려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고오오오오오오오!
전투기가 활주로에 착륙을 시작한다.
그쯤 되자 레이놀드의 눈에도 전투기 위에 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확실하게 들어왔다.
“촬영이라도 해두고 싶군.”
“모든 카메라를 끄도록 지시받았습니다.”
“농담으로 하는 소리야.”
레이놀드가 고개를 휘휘 젓고는 활주로에 멈춰 선 전투기들을 향해 다가갔다. 전투기 위에서 뛰어내린 이들이 레이놀드를 발견하고는 이쪽으로 걸왔다.
“참 재밌는 경험…… 괜찮으십니까?”
태연하게 농담을 건네려던 레이놀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에게 다가오는 이들의 몰골이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도…… 아니,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게 맞구만.’
“당장 앰뷸런스를 부르겠습니다!”
“호들갑 떨 것 없어.”
강진호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고는 눈을 찌푸렸다. 비어버린 담뱃갑을 구겨 던진 강진호가 레이놀드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담배 있나?”
“…….”
쪼르르륵.
잔에 커피를 따르면서도 레이놀드는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그의 눈앞에 젖은 머리를 한 강진호가 보인다.
굳이 냉정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상식이 박힌 사람이라면 우선은 병원으로 가야 한다. 지금 강진호는 몸뚱아리에서 성한 곳을 찾는 게 성하지 않은 곳을 찾는 것보다 더 쉬운 수준이니까.
하지만 저 무식한 인간은 부대의 샤워실을 빌려 샤워를 하고는 태연한 얼굴로 그의 앞에 앉아 있다.
“……커피가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몸으로 커피를 먹을 수나 있겠냐는 완곡한 표현이다.
“향은 별로군.”
아니, 진짜 커피 맛을 평가하라는 뜻이 아니고.
그런 레이놀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진호가 태연하게 커피를 홀짝이다가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입에 안 맞으십니까?”
“음.”
맛을 따지는 걸 보면 생각보다 여유가 있다는 뜻이겠지.
레이놀드는 이 사람을 상식에 맞춰 판단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미친 걸로 따지면 이 인간이 좀 더하지.’
그의 눈이 강진호의 옆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이현수에게로 향했다.
그가 알기로 이현수는 강진호와 같은 초인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야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현수는 반편짜리 무인에 불과하다.
그런 이가 지독하기 짝이 없는 전장을 겪고,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전투기의 위에 매달려 돌아왔는데도 저리 태연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고 있지 않은가.
‘여하튼 제정신은 아니야.’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이현수가 레이놀드에게 손짓을 했다.
“음?”
“담배는요?”
“…….”
레이놀드가 썩은 얼굴로 담배를 꺼내 이현수에게 던졌다. 그러자 이현수가 담배를 까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담배를 받아 든 강진호가 세상 걱정 없는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였다.
“후우우우.”
막사 안으로 담배 연기가 퍼져 나간다.
“우선…….”
레이놀드가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무사히 귀환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음.”
강진호가 느긋하게 담배를 뿜어냈다.
“생각지도 못한 지원이었어.”
“말도 마십시오. 누가 악을, 악을 써 댄 덕분에.”
강진호가 슬쩍 이현수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현수는 더없이 당당한 얼굴로 턱을 치켜들었다.
“이 정도 지원은 당연한 겁니다. 어디 우리가 우리만 좋자고 목숨 걸고 중국에 들어갔습니까? 뒤에서 응원만 할 거면 동맹은 뭐 하러 맺고, 협상은 미쳤다고 합니까.”
강진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말이야 다 바른말이지. 그걸 당사자가 있는 앞에서 브레이크 없이 들이대 버린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끄응.”
레이놀드가 고개를 내저었다.
말이야 쉽지, 중국과 몽골의 국경으로 전투기를 보내 사람을 태워 돌아온다는 게 어디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생각인가.
이미 중국으로 들어갈 때 러시아 전투기로 진입을 한 적이 있지만, 자국의 영공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중국으로 러시아 국적기가 진입하는 것과 한창 대립하고 있는 미국의 전투기가 중국의 국경에 접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 한 번의 히치하이킹을 성공시키기 위해 레이놀드는 군부를 통해 러시아와 몽골의 정부와 직접 협상을 해야 했다.
‘결과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삐끗하면 전면전은 몰라도 국지전 정도는 확정인 상황이었다. 아마 그랬으면 수많은 이들의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지만, 이번 일은 정말 무모했습니다.”
“무모했지.”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담배를 물었다.
“까딱했으면 정말 죽었어.”
“아오,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이현수가 진저리를 쳤다.
농담이 아니라 이번엔 정말 위험했다. 전투기가 날아오는 게 조금만 늦어 창왕이 먼저 도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면, 지금쯤 강진호와 이현수는 나란히 염라대왕 앞에 앉아 누구의 실수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토론하고 있었을 것이다.
“크흠, 뭐, 그런 이야기는 이 정도면 됐을 것 같고…….”
이현수가 본론을 꺼냈다.
“굳이 이곳에 남아 차관님을 만나 뵌 이유는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혹여 공식적인 채널로 미국 쪽에 항의가 들어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까?”
“그건 무리입니다.”
레이놀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행히 별문제없이 이탈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죠. 그곳은 엄밀히 말해 몽골의 영공입니다. 미군의 국적기가 몽골의 영공을 통과하는데 중국의 항의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 상황을 항의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왜 자신들이 몽골의 영토에 군대를 밀어 넣고 있었는지부터 해명해야 합니다.”
“그게 해명이 될 리가 없고요?”
“예. 그럼 묻히는 거죠.”
레이놀드가 미소를 지었다.
세상 사람들은 잘 알 수 없는 이야기지만, 이런 일은 생각 외로 빈번하다. 군사적 작전은 잡아뗄 수 없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기 전까지는 없던 일이 될 뿐이다.
“중국이 다른 채널로라도 발작할 확률은요?”
“있을 겁니다. 하지만 딱히 신경을 써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건 말 그대로 발작에 불과할 테니까요.”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에게 있어서 중국이 미국에 어떻게 항의하는가는 고려의 요소도 아니었다. 그가 이런 말을 묻는 이유는 혹시나 그 과정에서 한국에 피해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그렇다 치고, 총회까지 귀찮아질 수 있으니까.’
레이놀드가 말하는 투를 보면 그런 문제는 미국 측에서 막아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그 부분은 일단 접어두고.
“그래서, 아까 그 덩치 큰 사내가 그 홍왕입니까?”
“예.”
“결국은…….”
레이놀드가 턱을 쓸어내렸다.
저 홍왕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건 생각 이상으로 큰 파장을 낳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어찌하실 셈입니까?”
“글쎄요.”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 일은 딱히 계획을 정해두고 시작한 일은 아니라서요. 우선은 어떻게든 홍왕을 구해내는 게 중요했고, 그 목적을 달성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어찌할 건지는 이제 고민해 봐야죠.”
“대책 없는 말로 들리지만, 틀린 건 아니군요.”
그때,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놀드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왜, 왜 이러십니까, 회주님?”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레이놀드가 정말 당황한 얼굴을 했다. 강진호로부터 이런 감사의 인사를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동맹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우리는 미군과 동맹을 맺은 적이 없지. 우리가 맺은 동맹은 한국에 파견되어 있는 이들과 맺은 동맹일 뿐이다.”
“…….”
“주일미군의 전투기까지 활용하며 도울 만한 일은 아니었겠지.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고, 많은 노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총회의 대표로 감사를 표한다.”
레이놀드가 빙그레 웃었다.
“감사는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호의에서 나온 일은 아닙니다. 회주님은 저희 쪽에서도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최중요 전력이니까요.”
“그 가치가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지.”
강진호가 손에 든 커피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대신 커피 타는 법은 좀 더 배워야겠어.”
“……노력해 보겠습니다.”
강진호가 다시 자리에 앉자, 이현수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길게 대화할 상황은 아닌 것 같으니, 요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창왕계의 병력들은 중국의 북방에 모두 모여 있는 상태입니다. 저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감시해 주십시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알고 계시겠죠?”
“쉬운 일이면 저희가 했을 겁니다. 하지만 미군에게는 어려운 일일지언정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 말도 맞습니다.”
레이놀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에서 얻은 정보는 모두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 쪽에서 얻은 정보도 숨기지 마십시오. 창왕은…… 창왕은 생각 이상으로 위험합니다.”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말하자, 레이놀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해 들은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심지어 미군 측의 전술가들조차 사태가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총회와 창왕계, 그리고 미군과 창왕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홍왕계가 지리멸렬하고 총회와 원한을 쌓은 이상 창왕은 절대 과거처럼 다시 숨죽이지 않을 겁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얻은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겠죠.”
“으음.”
“저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하나라도 더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보다 더욱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해했습니다.”
레이놀드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빠질 겁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감수해야죠.”
강진호가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레이놀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레이놀드가 미소를 지으며 강진호의 손을 맞잡았다.
“무엇보다 저희가 회주님의 신뢰를 얻은 것 같아 즐겁군요.”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 얼마든지.”
“그 전투기 조종사들에게는 대체 뭘 어떻게 설명한 거지?”
“아, 그거 말입니까?”
레이놀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닙니다. 앞으로 그 조종사들은 저희 부대로 전출되어 소속될 겁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한 2년 정도는 휴가가 없겠죠.”
“아…….”
미국 놈이나 한국 놈이나.
군인치고 제정신 박힌 놈은 없는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