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94
#1693.
협력하다 (3)
“…….”
“…….”
그것은 기묘한 대치였다.
팔짱을 낀 최연하와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강진호가 2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본다.
강진호는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최연하는 눈빛으로 강진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
슬쩍 최연하의 눈치를 본 강진호가 한 발을 앞으로 슬쩍 내밀었다.
일단은 거리를 좁…….
“동작 그만.”
“…….”
내밀어진 강진호의 발이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리로.”
“네.”
최연하가 손짓하자, 강진호가 얌전히 걸어 최연하의 앞으로 다가갔다.
“더 가까이.”
“네.”
이내 서로가 맞닿을 정도의 거리가 되자, 최연하가 강진호의 얼굴 쪽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강진호가 그 손을 보고는 살짝 겸연쩍은 표정을 했다.
‘보는 사람이 많은데…….’
물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니 굳이 숨길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곳에서 애정 표현은 조금 민망한…….
덥썩.
‘어?’
최연하의 손이 강진호의 멱살 부위를 움켜잡는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멱살을 잡은 것도 아니…….
찌이이이익.
최연하가 강진호의 트레이닝복 지퍼를 쭉 내렸다.
“엇?”
“가만히 있어요. 담가 버리기 전에.”
“…….”
그 살벌한 목소리에 최연하를 말리려던 강진호가 부동자세를 취했다.
어…….
솔직히 좀 무서운데.
지퍼를 완전히 내린 최연하가 강진호의 안쪽 티셔츠를 잡아 홱 올렸다.
“이…….”
그러고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뒤로 돌아.”
“아니, 왜…….”
“돌아요.”
“네.”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느낀 강진호가 입을 다물고 몸을 돌렸다. 뭘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 같다.
강진호가 몸을 돌리자, 최연하가 강진호의 옷을 확 올렸다.
그러고는…….
쫘아아아아아악!
강진호가 등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타격감에 불판 위의 오징어처럼 몸을 뒤틀었다.
“아아아악!”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처에 예상치 못한 타격이 들어오자 천하의 강진호조차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야! 몸뚱아리가 헝겊 인형이야? 어? 어디서 뭔 짓을 하고 왔기에 또 프랑켄슈타인이 되어 왔어! 내가 못살아, 진짜! 이 인간아!”
아…….
그 의사 놈이 여기저기 꿰맨 걸 아직 안 풀었구나.
강진호가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돌렸다.
귀신이 된 최연하가 금방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 아니, 그게…….”
“뭐?”
“……생각보다 심하게는 안 다쳤는데.”
“이게 심한 게 아니면, 심한 놈은 다 부검실에 있냐?”
“…….”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어? 차라리 뒈져! 뒈져라, 이 인간아!”
강진호의 옆 목을 움켜잡은 최연하가 연속으로 등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아! 아아! 등등. 아! 피! 피!”
강진호가 몸을 뒤틀어 최연하의 손을 피했다.
창왕의 소수마공에도 물러서지 않던 강진호가 목을 움츠리며 달아나는 모습은 정말 진귀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저거, 창왕한테 꼭 보여주고 싶네.’
그놈이 무슨 말을 할지가 너무 궁금하지 않은가.
쫘아아악!
쫘아아아아악!
하지만 그저 애정 표현이라 넘기기에는 등짝을 갈기는 소리가 너무 찰지다. 살짝 소름이 돋은 이현수가 슬그머니 창문 뒤로 몸을 감췄다.
지금은 최연하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다.
“어! 무슨 지네 키워? 그것도 한두 마리도 아니고!”
“아, 아니, 그게…….”
“내가 못살아! 이 인간아!”
강진호가 최연하에게 귀를 잡혀 질질 끌려갔다.
주변을 지나던 회원들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지만, 강진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다들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돌렸다.
‘야야, 보지 마. 불벼락 떨어진다.’
‘난 아무것도 못 봤어.’
‘사람이 싸움을 잘하면 뭐 하나, 저 꼴이나 당하는데.’
평생 동안 싸움박질만 갈고닦아 온 총회의 회원들에게 무력은 그저 무력일 뿐, 무력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교훈을 주는 강진호였다.
“한국에 기어 들어왔으면! 나는 그렇다 치고, 일단 집에 전화해서 별일 없이 다녀왔다고 연락부터 해야지! 어디, 집에도 연락 안 하고 여기서 죽치고 있어! 똥양아치 같은 게!”
“아아! 귀! 귀, 귀!”
“진호 씨가 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사춘기 학생이에요? 집에 연락도 안 하고 몸에 줄 긋고 다니게?”
최연하가 입에서 불을 뿜었다.
그 흉흉한 기세에 연무장으로 올라오던 이들이 기겁을 하여 다시 몸을 낮추고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나쁜 새끼들.’
어떻게 돕겠다고 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수가 있는가. 회주가 이렇게 곤욕을 치르는데, 그래도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지!
“여기 앉아봐요.”
“……네.”
최연하가 건물 뒤쪽이 마련되어 있는 벤치를 가리키자, 강진호가 얌전히 벤치에 앉고는 양손을 모아 무릎 위에 올렸다.
그런 강진호를 빤히 바라보던 최연하가 두 눈을 부라렸다.
“사람이 발전이 있어야지!”
“…….”
“그렇게 다녀오면 연락부터 하라고 하는데! 당신, 뭐, 상록수야? 초지일관하기가 위인급이시네?”
“…….”
최연하 씨도 드립이 많이 느셨네요.
요즘 예능 좀 나가시나…….
“사람이 안 변하는 건 참 좋은 일이지!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좀 변하는 맛도 있어야 할 거 아냐! 사람이 안 변하면 평생 애새끼지!”
“아…….”
뭔가 말은 굉장히 과격한데, 한마디, 한마디 틀린 말이 없다. 새삼 최연하의 통찰력에 감탄한 강진호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있어요?”
“……예.”
최연하가 팔짱을 끼고는 강진호를 노려봤다. 찔끔한 강진호가 목을 움츠리자 최연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
지은 죄가 있다 보니 강진호는 단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또 왜 그랬을까?’
매번 욕을 먹다 보니 이번만은 강진호도 중국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돌아오면 가족과 최연하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먹는 건 먹는 거고, 막상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홀랑 까먹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상하기도 하지.
강진호가 머리가 나쁠 리는 없을 텐데, 왜 매번 같은 걸 까먹어서 같은 고통을 자처한단 말인가.
“진짜 이럴 거예요?”
“죄송합니다.”
“하, 진짜.”
최연하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도끼눈을 뜨고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강진호가 찔끔하여 고개를 숙였다.
“와서 연락을 안 할 거면 몸뚱아리라도 성히 돌아오든가!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 형님 하겠네!”
“……많이 나은 건데.”
“뭐?”
“아, 아닙니다.”
강진호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아니, 차라리 지금 본 게 다행이다. 연락을 미리해서 강진호의 상처가 아물기 전에 최연하가 그의 몸을 봤다면, 지금쯤 의식을 잃고 혼절했을지도 모르니까.
거의 아문 상처를 보고도 저렇게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데.
‘몸을 좀 험하게 굴리기는 했지.’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강진호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아서 전투 중에 이성을 잃고 날뛰지 않는다. 그러니 피할 수 있는 공격은 최대한 피하고, 상처를 입는 것도 꺼린다.
하지만 창왕은 그런 식으로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아니었다.
창왕의 강함은 강진호의 예상을 벗어났다. 홍왕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창왕은 저 홍왕보다 최소한 한 수 이상 더 강했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어째서 지금까지 숨을 죽이고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말이다.
‘홍왕만 이긴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겠지.’
그러니…….
“어이.”
아…….
강진호가 화들짝 놀라 최연하를 바라봤다. 최연하가 영 뾰로통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새 딴생각하지?”
“…….”
“이건 집중력이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어이가 없네, 진짜.”
“…….”
최연하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됐고.”
“네.”
“그래도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
최연하가 살짝 물기 젖은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 머쓱해진 강진호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저 말이 이상하지 않네.’
이번에는 정말 까딱했으면 돌아오지 못할 뻔했다.
다들 큰 부상 없이 돌아왔기에 크게 체감하지 못할 뿐이지, 한 번만 어긋나는 경우가 있었다면 지금쯤 강진호를 비롯한 총회의 이사진들은 모조리 땅속에 묻혀 있거나 시체조차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최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강진호 씨는 말을 지키는 사람이니까. 이상한 방향으로 지켜서 그렇지.”
“…….”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대신에 제발 다음부터는 오면 왔다고 연락 좀 해줘요. 그 소식을 다른 사람 통해서 들어야 하는 내 심정 좀 생각해 주고요.”
“다음에는 꼭 그럴게요.”
“말은.”
최연하가 눈을 찌푸렸다.
사실은 알고 있다. 왜 강진호가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부상을 입고 돌아온 몸으로 살아는 왔다고 웃으며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겠지. 하루라도 더 회복을 해서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말이다.
‘진짜 답도 없다니까.’
강진호도 답이 없지만, 그걸 알면서 좋다고 이러고 있는 자신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바빠요?”
“어, 그게…….”
“아뇨. 바빠도 괜찮아요. 일이야 저 창문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이 알아서 하겠지.”
“…….”
강진호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창을 바라봤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작은 헛기침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모양이다.
“가요. 나 배고파.”
“네.”
강진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소 같으면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이 입에서 나왔겠지만, 강진호의 담량으로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차마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틀린 말도 아니야.’
남은 일은 이현수가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강진호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제가 근사한 걸로 쏘죠. 뭐 먹을까요?”
“진호 씨는 뭐 먹고 싶은데요?”
“……김치찌개?”
“…….”
“…….”
최연하가 묘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본다. 그러자 강진호가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낮게 헛기침을 했다.
“해외에 나갔다 왔더니…….”
“아, 근사한 김치찌개?”
“……다른 거 드셔도 돼요.”
“아뇨. 뭐.”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그쪽이 좋으니까. 가요.”
강진호가 걸음을 옮기자, 최연하가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그의 팔뚝을 가만히 움켜잡았다.
“……진호 씨.”
“네?”
“아니에요. 가요.”
최연하가 말없이 입을 닫았다.
하지만 강진호는 최연하가 하려던 말이 뭔지 알고 있었다.
‘이제 위험한 건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겠지.’
예전이었다면 강진호는 그녀와 자신 사이에 그어진 평행선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조금 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언젠가는…….’
돌아오지 못하는 순간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겠지.
그리고…….
그날을 손에 넣기 위해서 강진호는 싸울 것이다.
차에 타는 강진호를 보며 이현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전사에게도 휴식은 필요한 법이지.’
그리고 강진호처럼 쉴 줄 모르는 사람은 강제로라도 쉬게 만들어야 한다.
이현수는 새삼 강진호의 옆에 최연하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최연하가 없었다면 강진호는 며칠이 더 지나도 총회에서 멀어져 쉴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
“쉴 수 있을 때 쉬어두는 게 좋습니다, 회주님.”
이제 곧 쉴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올 테니까.
싱긋 웃은 이현수가 몸을 돌렸다.
그의 눈이 차갑게, 더욱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는 그의 시간이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이현수가 걸음을 옮겨 차이커창이 감금(?)되어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