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98
#1697.
추궁하다 (2)
“그러니까…….”
“…….”
“네가 꼬신 거네?”
“…….”
강은영이 움찔하여 강진호를 바라봤다.
“아, 아니, 뭐,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오라비, 그래도 동생한테 꼬셨다고는…….”
“그래서?”
“……맞습니다.”
강진호의 눈가가 좀 더 일그러졌다.
그 표정을 본 강은영이 찔끔하여 고개를 돌렸다.
“……집에서 놀지 말고 활동할 준비나 제대로 하라고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열심히 일하는 애를 꼬셔서 방해를 해?”
“바, 방해가 아니지. 오빠도 내가 있어서 힘이 난다고 했다니까? 그치, 오빠?”
“…….”
“대답해.”
“그, 그럼.”
박유민이 혼이 빠진 얼굴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꼴을 보고 있던 강진호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건 꿈이야.’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걸 당사자의 입으로 들으니 또 새롭다.
“왜 하필…….”
박유민이 굉장한 어색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뒷머리를 긁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어. 여하튼…… 먼저 말 안해서 미안하다, 진호야. 원래는 바로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 건데, 이상하게 뭔가 거리끼는 게 많아서.”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
“……응?”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저 말뼈다귀 같은 게…….”
“동생더러 말뼈다귀라니!”
“시끄럽다.”
“네.”
소심하게 반항을 시도한 강은영이 즉시 제압되어 얌전해졌다.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고 담배를 더듬다가 손을 내렸다. 여기는 흡연이 안 된다.
“……가서 한 대 피우고 와.”
“됐어.”
강진호가 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사람 인연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라지만…… 솔직히 진짜 상상도 못했다.”
“어, 그건 나도.”
“나도.”
깔끔하게 동의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려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 어…….”
강진호가 박유민을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유민아.”
“응?”
“괜찮겠니?”
“…….”
그 생전 본 적도 없는 강진호의 간절한 표정에 박유민이 당황하고 말았다.
“뭐가?”
“잘 생각해 봐. 아직 안 늦었어. 지금이라면 돌이킬 수 있다. 지금 너 속고 있는 거야.”
“……지, 진호야.”
“쟤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애가 아냐. 네가 쟤랑 딱 일주일만 같이 살아보면…….”
“가서 담배 피우라고, 망할 오라비야!”
“너는 가만히 있어!”
“아니, 왜 남의 청춘 사업을 방해하고 난리야! 남들은 동생 시집 못 보내서 안달이라는데!”
“시집이라니!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내 친구 인생 말아먹을 일 있어?”
“……내가 저걸 오라비라고.”
강은영이 해탈한 듯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강은영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간절한 얼굴로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만 생각해 봐라, 유민아. 이건…….”
“괜찮아.”
“응?”
박유민이 그런 강진호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다시 생각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야.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시작도 안 했겠지.”
“…….”
“솔직히 진호, 너한테는 조금 미안하긴 해. 내가 정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으면 벌써 너한테 이야기를 했겠지. 그런데 망설이다가 이런 모양새를 만든 건 정말 미안하다.”
박유민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은영이를 만나는 게, 그렇게 쉽게 한 결정은 아니야. 나도 많이 고민하고, 많이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야. 그러니까 내가 뭘 몰라서 그런다는 투로 말하지는 말아줘. 그건 은영이한테도 실례니까.”
강진호가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게 아니라고, 이 답답아!
니가 저년이 씻지도 않고 사흘 밤낮을 드러누워서 과자를 철근같이 씹어 먹다가 부스러기 다 묻히고 소파에서 자는 꼴을 봤어야 하는 건데!
어디 그거뿐이랴.
말로 하자면 끝도 없다.
“……전기밥솥에 밥도 못 앉힌다고.”
“어…….”
박유민의 시선이 강은영에게로 돌아갔다. 그러자 강은영이 살짝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배, 배우면 되지.”
“……그걸 배울 거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겠냐?”
강은영이 발끈하여 소리쳤다.
“오라비는 대체 누구 편이야?”
“확실한 건, 네 편은 아냐.”
아…….
그런 것 같더니만…….
강은영이 빡이 친다는 얼굴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저건 옛날에는 말도 잘 못하더니, 이제는 뭔 청산유수가 따로 없다. 문제는 그 트인 입을 그녀의 속을 뒤집어놓는 데다 쓴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박유민은 그런 강진호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누구나 나쁜 점은 있잖아.”
“…….”
“그런데 내가 그런 걸 일일이 지적할 만큼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모자란 점은 내가 더 많지.”
“네가 뭐 어때서?”
“……근데 너, 진짜 얘 오빠 맞냐?”
강진호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네가 여동생이 없어서 그래, 인마! 어디, 세상 여동생들이 다 성심에 있는 애들 같은 줄 알아?”
“아니, 근데 이 인간이 진짜?”
강은영도 속이 터진다는 듯 발끈했지만, 차마 강진호에게 달려들지는 못했다.
박유민이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여하튼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 내가 잘해볼게. 원래 가족이라고 해도 다 알 수는 없는 거잖아. 내가 본 은영이는 정말 좋은 애야. 나한테는 과분할 만큼.”
“과부우운?”
“일단 착하고, 연예인이기도 하고, 그리고 어…….”
“또?”
“어…….”
박유민이 말을 더듬자 강은영이 박유민의 옆구리를 움켜잡았다.
“생각해라, 뒈지기 싫으면.”
“……어어.”
박유민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여, 여하튼 좋은 애야.”
“…….”
여기 설득력이 없는 설득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유민아.”
“응?”
“솔직히 나는 너의 의견을 존중한다. 항상 그랬듯이.”
“…….”
“솔직히 이 자리도 서로 대화를 하고, 앞으로 너희가 좀 더 편해지라고 만든 거야.”
“그, 그래?”
“그래. 그런데…….”
강진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막상 이렇게 얼굴을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어! 니들, 헤어져라!”
“……미친놈.”
박유민이 더없이 황당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이게 뭔 조선 시대도 아니고, 집안의 반대라니. 이게…….”
“시끄럽고, 나는 허락 못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돼! 니들 헤어져. 은영이, 너는 앞으로 집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갈 줄 알아!”
강진호의 눈에서 시퍼런 빛이 뿜어졌다.
하지만 당황한 박유민과는 다르게 막상 그 눈빛을 받은 강은영의 얼굴은 의외로 태연해 보였다.
“오빠.”
“응?”
“신경 쓰지 말고 냅 둬요.”
“……응?”
“금방 처리될 거야.”
“그게 뭔 소리…….”
그때였다.
카페 문이 벌컥 열리며 박유민에게도 익숙한 실루엣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어?’
박유민이 살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나는 네가 쟤한테 코 꿰는 건 절대 못 본다. 지금 내 말 듣고 있……. 아아아아! 아! 귀귀! 아!”
성큼성큼 다가온 이가 강진호의 귀를 잡고 들어 올렸다.
“최, 최연하 씨, 오랜만이에요.”
“네에, 유민 씨! 그렇게 오랜만은 아닌 것 같은데?”
한 손으로는 강진호의 귀를 잡아 들면서 최연하가 상큼하게 웃었다.
그 갭이 뭔가 사람을 더없이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내가 불렀어요.”
강은영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언니가 안 오면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서.”
최연하가 박유민과 강은영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고는 안색을 일변하여 도끼눈을 뜬 채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이 인간이 또 꼰대짓을 하고 자빠졌네. 내가 냅 두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아니! 쟤가! 유민이를!”
“그럼 니가 유민 씨랑 사귀든가, 이 화상아! 나와!”
“아아! 귀귀! 아…… 귀!”
“안 일어나? 나와!”
강진호가 최연하에게 질질 끌려 나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강진호는 필사적으로 외쳐 댔다.
“유민아! 유민아, 잘 생각해 봐라! 너, 그러다가 내 꼴 난다! 진짜야!”
“조용히 안 해? 내가 챙피해서 못 살아, 진짜!”
카페 밖으로 끌려 나가는 강진호를 보며 박유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뭔가 생각한 것과는 모양새가 좀 달라지긴 했지만, 어쨌든 강진호도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강제로나마 공인을 받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너는 안 저럴 거지?”
“오빠가 우리 오라비처럼 주접만 안 떨면 그럴 일 없죠.”
“…….”
“사람 일이라는 건 참 모르는 거예요, 오빠.”
“그렇지. 너랑 내가…….”
“저 인간이 저렇게 등신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
박유민이 입을 꾹 다물었다.
뭔가 이 말에는 의견을 표할 수가 없다.
‘말도 안 되게 바뀌기는 했지.’
딱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저 강진호가 박유민의 앞에서 ‘내 딸은 못 준……’ 아니, ‘내 친구는 못 준다’를 외치고 귀를 잡혀 끌려 나갈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고등학교 친구들이 보면 기겁하겠네.”
아마 저 사람이 강진호라는 사실을 부정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큰 산 하나 넘었네요.”
“그러게.”
박유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강진호에게 이 사실을 숨긴다는 것에 못내 찝찝한 면이 있었는데, 어쨌거나 다 말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다.
“오빠.”
“응?”
“지금부터 연습 더 열심해 해야 해요.”
“……갑자기 왜?”
“오빠 성적 떨어지면, 보나마나 저 인간이 나 때문이라고 발악할 게 빤하잖아요.”
“아…….”
“전 여친도 아니고, 내가 진짜 속이 터져서.”
“…….”
박유민이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저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최연하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는 강진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양손으로 무릎을 잡은 모양새가 그렇게 처량할 수가 없다.
‘그래도 한 기업의 회장인데…….’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지만.
남들은 지위가 올라가고 명성이 높아지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데, 어찌 된 게 강진호는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주접이 느는 것 같다.
그래도…….
“……보기 좋네.”
“저게?”
“아니, 저게 좋다기보다는…….”
박유민이 더없이 기분이 좋다는 듯 활짝 웃었다.
“진호가 즐거워 보여서.”
“…….”
강은영이 못 볼 걸 봤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여하튼 이 오빠도 좀 이상해.’
어쩌겠는가.
그걸 알고도 좋다고 들이댄 사람이 강은영인데.
“말은 저렇게 하지만, 진호도 좋은 모양이네.”
“……오빠.”
“응?”
“혹시 귀가 좀 이상하다든가?”
“……멀쩡해.”
“아니. 진짜 이상한 것 같은데.”
강은영의 의혹어린 시선을 받으며 박유민이 웃어버렸다.
강진호가 정말 반대할 생각이었다면 이런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대화고 나발이고 판을 뒤엎어 버리는 게 강진호의 스타일이니까.
“그나저나 가족이라…….”
이리된 이상 어쩌면 정말 강진호와 가족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어색한 웃음을 짓는 박유민이었다.
평생 바라온 가족의 존재가 그의 가장 친한 친구로 채워질 수도 있…….
“꼭 좋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