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99
#1698.
추궁하다 (3)
“큰 문제는 없습니다.”
확신에 차 있는 목소리는 그 내용이 어떠하든 간에 사람에게 신뢰감을 주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현주는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믿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순조롭다는 말이 좀 더 어울리겠죠. 물론 언제나 변수는 존재하니 낙관할 수는 없습니다.”
강진호가 안경을 치켜올리는 이현주를 보며 미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잘 어울리는군.’
처음 만났을 때와 비하면 상전벽해다.
당시의 이현주도 확실히 이런 면모가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과격한 느낌이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마련이라던가.
그때보다 조금 딱딱해진 이현주의 모습이 오히려 더 편안해 보였다.
“정 회장은?”
“정홍근 회장 쪽도 열의를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나이를 감안한다면 조금 자제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
그러다 죽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강진호는 정홍근 같은 타입을 잘 알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정홍근이 무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을 결코 할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한계선을 넘지 않도록 잘 조절하고 있을 것이다.
“정계 쪽의 움직임은?”
“견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현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의외의 부분에서 일이 좀 쉬워졌습니다.”
“응?”
“최근에 회주님께서 주일미군 쪽을 움직이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
정확하게 말하면 강진호가 움직인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리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 일이 결정타가 된 모양입니다. 안 그래도 회주님께서 미국과 커넥션이 있다는 소문이 일본 쪽에서 돌고 있어서 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는데, 이번 일로 확신을 가진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드러내지 않으며 가해오던 압력도 거의 해소가 되었습니다.”
아…….
“그게 그렇게 되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현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현존하는 최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국가는 없으니까요. 한국에서도 한국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과도하게 본다는 비판이 있지 않습니까?”
“……난 정치는 잘 몰라서.”
“……있습니다.”
“어.”
이현주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을 대하는 태도는 일본 정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본은 극단적인 친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가니까요.”
“으음.”
“그러다 보니 미국 정부와 함께 일을 하는 회주님, 그리고 회주님의 회사인 MK를 압박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설사 그 압박의 결과로 미국이 움직일 리는 없다는 확신이 있다 해도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강진호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잘 풀렸다는 의미겠지.
“그럼 이제 일본 쪽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건가?”
“이제가 아니라 예전부터 그랬습니다.”
이현주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니면 제가 그 정도로 신뢰가 없는 건가요?”
강진호가 낮게 헛기침을 했다.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뭔가 목소리가 무서운 느낌이다.
“그럴 리가 있나.”
“네. 그럼 다행입니다.”
이현주가 브리핑을 이어갔다.
“매출은 생각 이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내는 매출은 추월한 지 오래입니다.”
“벌써?”
“……회장님, 저희는 한국에서 내는 매출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나름 프렌차이즈도 있고…….”
“그게 그렇게 수익이 나는 사업은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매출에 비해 수익이 좋지 않은 사업이라고 해야겠죠. 처음부터 큰 마진을 얻으려 시작한 사업은 아니니까요.”
“……그렇지.”
프렌차이즈 카페 같은 경우는 총회를 나간 이들의 자활을 위해서 시작한 사업이다. 회사에서 큰돈을 남길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다른 사업을 했겠지.
“점유율 자체는 아직 그리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이현주가 미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애초에 일본 유통 시장을 단번에 장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해 나가야겠죠. 지금 벌고 있는 돈만해도 지금껏 총회가 벌어들이던 수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수준이니까요.”
“MK가 아니라 총회를 기준으로도?”
“네. 예전에 해오던 불법적인 사업들에서 나오던 수익까지 모두 감안한다면 아직은 부족하지만, 앞으로를 생각한다면 그 이상의 수익을 벌 수 있을 겁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는 이런 영역을 잘 모른다. 이현주가 쉽게 풀어 말해주고는 있지만, 말은 이해해도 감각의 영역은 여전히 모호하다.
무학에 관련된 일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 미묘한 감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알 수 있지만, 사업에 관한 일은 아무리 눈으로 봐도 수치를 외울 뿐,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아마 이게 타고난 천성이라는 거겠지.
하지만 상관 없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굳이 내가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그에게는 그런 일을 대신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지금 그의 바로 앞에도 있지 않은가.
“솔직히 말하면…….”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
이현주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정 회장이 열심히 해주고 있는 덕에 사업은 순조롭게 발전할 것이고, 처음 저희가 예상한 것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이야기네.”
그 정도로 좋다.
“다만 회주님.”
강진호의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회장님이 아닌 회주님이라는 호칭이 나왔다는 건, 그의 전공과목이 나온다는 뜻이었다.
“이 모든 일은 저희가 일본의 뒷세계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음…….”
“확고한 지배력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얼마나 오래 그곳을 지배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고, 얼마나 일본에서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가가 달라집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단호한 눈으로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
“내가 알아서 하지.”
이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과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것 같다. 이현주는 강진호의 이런 면 때문에 아무런 의심 없이 그를 믿을 수 있었다.
‘여하튼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사업들은 강진호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 아래 시작된 것들이다. 조금이라도 강진호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심이 있다면 그 무엇 하나도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음?”
“아, 아닙니다.”
이현주가 고개를 저었다.
“뭔데?”
“이건 조금 더 확실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흐음.”
이현주를 슬쩍 바라본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해.”
“예.”
이현주의 눈이 작은 호선을 그렸다.
‘이건 굳이 지금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녀의 남자 친구이자 총회의 실장인 이현수는 지금 일본에서 시행하고 있는 모델을 중국에도 도입할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일본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 좀 더 과격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회주님은 그럴 생각이 없으신 것 같지만, 나는 그 중국 새끼들을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 없어.”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이현주도 찬성이다.
만약 그들이 홍왕과 함께 중국을 평정한다면, 그 땅을 온전히 홍왕에게 내줄 수는 없다. 지배권을 얻어오는 건 무리라고 해도 실리는 온전히 챙겨야 한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아내야 하는 것도 있는 게 세상의 도리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건 나중 일이지.’
굳이 미리 말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그 외에는 문제가 없나?”
“네. 대단한 건 없습니다. 다만, 조금 사소한 문제가 있는데…….”
“사소한 문제?”
“네. 엔터 쪽을 좀 봐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과 미국을 오가느라 이사님을 죽어 나가시고 있거든요.”
“……팔팔하던데?”
이현주가 눈을 찌푸렸다.
“세상 사람들 체력이 모두 회주님 같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이사님은 남들 앞에서는 태연한 척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는 분이십니다.”
“아니, 정말 팔팔하던데…….”
“거…….”
“……알았어. 일단 살펴볼게.”
“네. 부탁드립니다.”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팔팔했다고.’
아니면 그의 등짝을 후려치는 손이 그렇게 찰질 수가 없다.
이상하지.
물론 예전의 최연하도 성격으로는 어디서 뒤지는 사람이 아니…… 아니, 그런 정도의 표현은 많이 부족하다 생각될 만큼 성격이 더러웠지만, 그래도 나름 남들 앞에서는 체면을 차리던 사람이었는데.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드세지나?”
“네?”
“아니, 요즘 최연하 씨가 좀 과격해진 느낌이라…….”
이현주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게 정말 이사님이 드세지신 건지, 회주님이 옛날에는 안 하던 주접을 떨기 시작하신 건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
강진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과묵해질 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그거, 주변 사람은 속 터지는 일이니까요.”
“…….”
답이 없으니 그냥 욕을 먹으라는 말이다.
강진호가 고개를 내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시게요?”
“그래야지.”
“회장님.”
“응?”
이현주가 살짝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제는 회주님도 이사님과 만나신 지가 좀 오래되셨죠?”
“그렇지.”
“편하기도 하시고요.”
“……원래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는데?”
이현주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일수록 잘해주세요. 사람이라는 건 익숙하면 편해지고, 편하면 신경을 덜 쓰기 마련이거든요. 보통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
“회장님은 안 그러실 거라 생각하지만…… 요즘 저만 보면 일 이야기를 하는 썩을 인간이 하나 있어서.”
“……명심하지.”
눈에서 살기를 뿜는 이현주를 보며 강진호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수는 대체 무슨 배짱이지?’
그러다 싸움이라도 나면 맞아 죽을 텐데?
일반적인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는 남자가 힘으로 제압당할 일은 없지만, 이 둘의 관계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반쪽짜리 무인에 불과한 이현수 따위는 이중걸에게 영재교육을 받은 무인 이현주 앞에서는 한 끼 식사에 불과하다.
“시절이 시절이라 웬만하면 참으려고 하는데, 이 인간이…….”
이현주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그 서슬 퍼런 살기에 강진호가 목을 움츠렸다.
‘내 주변 여자들은 하나같이 왜 이러냐.’
강진호에게 드센 여자들만 끌어모으는 자석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닐진대, 어찌 된 게 하나같이 만만한 사람이 없다.
“미안하군. 내가 괜히 중국에 데리고 가서…….”
“아니요!”
“……응?”
이현주가 눈을 부라렸다.
“물론 저는 성공할 겁니다, 회장님. 지금 자리에서 만족할 생각도 없어요. 언젠가는 회장님을 뒷방으로 밀어내고 MK의 사장 자리도 제가 먹을 거예요.”
“……어,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인간이 노는 꼴을 볼 수는 없죠. 더 확실하게 굴려주세요. 나중에 그 인간이 총회의 회주가 되어도 누구도 반발할 수 없도록요!”
“……그래.”
한 사람은 MK의 사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총회의 회주라…….
그것참 무시무시한 부부가 탄생하겠네.
어쩌면 그 일이 그리 꿈같은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강진호가 더는 필요하지 않아질 때면 그럴 날이 올 것이다.
강진호가 더없이 바라는 그날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