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01
#1700.
추궁하다 (5)
우드드득!
“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바닥에 쓰러진 이가 이를 악물고 바닥을 움켜잡더니, 핏발이 선 눈으로 위를 올려다본다.
“이 개새끼야!”
“……미안하다.”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팔을 꺾어버린 이명환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씨발.”
팔이 꺾인 이가 어깨를 움켜잡는다. 옆에서 수련을 하던 이들이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확인했다.
“완전히 돌아가지는 않았네.”
“이 새끼, 엄살이 왜 이리 심해?”
“엄살? 네가 꺾여볼래?”
흉흉한 기세가 좌우로 뻗어 나갔지만, 주위의 마염들은 딱히 그 기세에 반응해 주지 않았다.
다만, 조금 겸연쩍은 눈으로 이명환을 바라보는 건 잊지 않았다.
“왜 그랬냐, 인마?”
“이 새끼가 뭔 욕구불만도 아니고, 왜 이렇게 과격해!”
이명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길.’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마구 쓸어내린 이명환이 몸을 돌려 수련장을 빠져나갔다.
“저 새끼, 저거…….”
“냅 둬.”
발끈한 이들이 이명환을 쫓으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만류했다.
“속이 말이 아니겠지.”
“쯧.”
쏴아아아아아.
수도꼭지에 머리를 들이민 이명환이 차가운 물의 감각을 느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난 뭘 하는 거지?’
스스로가 더없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속에서 울화가 차오른다고 해서 동료를 다치게 하는 행동이 허락될 리 없다. 특히나 다른 마염들이면 몰라도 이명환은 더더욱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쏴아아아아아.
차가운 물로 머리를 식히니 정신이 조금은 드는 느낌이었다.
머리를 뒤흔들어 물기를 털어낸 이명환이 조금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머리를 확 들었다.
“깜짝아!”
그러고는 기겁을 하듯 뒤로 물러났다.
“……회주님.”
“…….”
뭐 씹은 듯한 표정을 한 강진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이명환을 바라봤다.
“절 찾아오신 겁니까?”
“아니. 그냥 지나가던 길인데?”
“아…….”
그럼 저 표정이 이해가 가지. 그냥 잘 가고 있던 사람을 보고 놀랐으니.
“뭐 해?”
“아, 그게…….”
이명환이 살짝 우물쭈물했다. 그의 표정을 슬쩍 살핀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커피 한잔할까?”
“…….”
살짝 고민한 이명환이 결국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쪼르르르.
이명환은 강진호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물론 사람의 취미라는 것은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취향 존중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분야가 바로 취미 아니던가.
하지만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강진호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은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특히나 저 능숙한 손놀림으로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리는 모습은 더더욱.
쪼르르르.
커피를 잔에 따른 강진호가 잔을 이명환에게 내밀었다.
“자.”
“감사합니다.”
이명환이 두 손으로 강진호가 내민 잔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황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마셔.”
“예.”
이명환이 조심스레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한 모금 커피를 마신 이명환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괜찮아?”
“……쓴데요.”
“…….”
“설탕…… 혹은 시럽이라든가.”
강진호가 말없이 각설탕을 찾아 이명환에게 건네주었다. 각설탕 세 개를 잔에 던져 넣은 이명환이 한 모금 맛을 보고는 그제야 먹을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강진호로서는 묘한 불만이 생길 만한 상황이지만, 사람의 입맛이란 다 제각각인 법이니까.
“커피 내리는 법은 따로 배우신 겁니까?”
“아버지가 카페를 한다.”
“아…… 그랬죠.”
강진호가 슬쩍 이명환을 바라보았다.
강진호가 아버지의 가게를 바탕으로 카페 프렌차이즈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총회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명환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 많이 바빴던 모양이군.”
“아닙니다. 임무니까요.”
이명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근질근질한 모양이로군.”
“…….”
“이번에 중국에 같이 가지 못한 게 섭섭했나?”
이명환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회주님.”
“말해봐.”
“……그건 ‘섭섭하다’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럼?”
이명환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의 임무는 회주님을 지키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저희는 회주님의 주변에 머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
“심지어 회주님이 위험한 곳으로 향할 때도 저희는 이곳에서 수련만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럴 거라면 저희는 왜 수련을 하는 겁니까?”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결국은 근질근질하다는 거잖아.”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만.”
이명환이 말을 얼버무렸다.
그들도 귀가 있으니 중국에서 강진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를 수가 없다.
총회는 그런 정보를 숨기는 곳이 아니다.
어차피 이들은 결국 창왕계를 상대해야 한다. 싸워야 할 상대에 대한 정보는 하나라도 많이 알수록 좋은 법 아니겠는가.
“이번에도 회주님이 굉장히 위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실장의 말은 다르던데요.”
“…….”
여하튼 이현수!
하여간 입이 싸다, 입이!
이명환이 눈에 불을 켜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물론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압니다. 최대한 소수가 가야 했다는 것도 압니다. 다만…… 회주님, 마염들이라고 해서 한번에 모두가 임무를 맡아야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이런 경우에는 두엇 정도의 호위는 데려가셨어야 합니다.”
이명환의 눈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간다.
그 기세에 천하의 강진호마저 움찔할 정도였다.
“아니, 나는…….”
“회주님.”
“응?”
“저희의 임무는 회주님을 지키는 겁니다. 저희는 회주님의 수족이자 회주님의 호위입니다. 그런데 회주님이 혼자 그렇게 가셔서 변이라도 당하시면, 저희가 해온 건 다 뭐가 됩니까?”
“…….”
“이제는 제발 그러지 말아주십시오.”
“아, 알았어.”
“약속하신 겁니다?”
“알았다니까.”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날이 가면 갈수록 나한테 뭘 바라는 사람이 많아지나.’
예전에 그가 마교의 교주였을 때는 무엇이든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무엇을 하든 말리거나 딴지를 거는 이가 없었다. 유일하게 그에게 간언을 하는 사람은 청마뿐이고, 그 청마조차 강진호의 행동을 제약하려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총회에서는 어딜 가도 강진호를 구박하는 사람들뿐이다.
다만…….
그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진정으로 그를 위한다는 사살이 피부로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뭐, 그렇게 안달복달할 건 없어.”
“……예?”
“이제부터는 질리도록 싸우게 될 테니까.”
이명환이 굳은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나는 처음부터 너희를 내 수족으로 굴릴 생각이었다. 다만, 내 생각보다 일이 더 빨리, 그리고 더 과격하게 벌어졌을 뿐이야.”
적어도 오 년 이상의 수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상은 마염들에게 느긋하게 수련할 만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장민이 속성으로 마염들의 실력을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들을 완전히 믿고 맡기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차피 창왕계를 이기지 못한다면 모두가 끝이다.’
마염은 총회 최고의 전력이다. 이번 전쟁에서 이들이 활약해 주지 않는다면, 총회의 승리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너희는 내 호위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주변에서 나를 지키라는 의미는 아니야. 최고의 수비가 공격이듯이, 최고의 호위는 적의 존재를 박멸하는 거지.”
이명환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그 역할을 위해 지금까지 수련해 왔습니다.”
강진호가 미소를 짓는다.
마염들이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가는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총회를 통틀어 이들보다 자신을 몰아붙인 무인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반드시 날뛰게 해줄 테니까.”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명환이 단호한 눈으로 말했다.
“저희는 활약하지 못해서 아쉬운 게 아닙니다. 저희가 없는 곳에서 회주님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참아낼 수 없는 겁니다.”
“…….”
“회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회주님의 칼이 되기 위해서 수련해 왔습니다. 그런데 칼을 휘둘러 줄 사람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쯤 되면 잔소리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그럴 의도는 아닙니다만.”
이명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하튼 알겠습니다. 이제 저도 이해했습니다.”
“……뭘?”
“아무리 말해봐야 바뀌는 게 없다는걸요.”
“…….”
그게 왜 결론이 그렇게 나지?
이명환이 강진호를 보며 말한다.
“사람의 천성이라는 건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죠. 지금이야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회주님은 또 위험한 일이 생기면 다른 이들을 모두 뒤로 밀어버리고 앞으로 나서서 싸울 겁니다. 가장 위험한 곳에서 말입니다.”
“……꼭 그렇지는 않은데.”
“아니, 그러실 겁니다.”
이명환이 눈을 찌푸린다.
“그럼 저희가 회주님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저희가 회주님에게 보호받는 꼴이 또 만들어지겠죠. 이건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되어 있던 겁니다.”
“…….”
뭔가 미묘하게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다음에 또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강진호는 이들을 자신의 앞에 세우고 뒤에서 지켜볼 수 있을까?
‘무리지.’
강진호도 자신을 잘 알았다. 이건 그에게는 불가능한 미션이다.
“중국과는 언제 다시 전쟁에 들어갑니까?”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이명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동안 저희를 조금 더 단련시켜 주십시오.”
“응?”
“수련 시간에 나와주십시오. 저희는 더 강해져야 합니다. 이제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았거든요.”
“……너희가 할 일이 뭔데?”
“아까 말씀하셨잖습니까. 최고의 호위는 적을 섬멸하는 거라고.”
“…….”
이명환이 이를 뿌득, 갈았다.
“회주님께 적대하는 놈들을 모조리 잡아 쳐 죽여 버리면 호위를 할 필요도 없겠죠. 그럼 저희 임무를 달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명환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아…….
얘들도 마인이지.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수련에 나오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꼭!”
“……알았어.”
이게 부탁인지 협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마염들은 좀 더 단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건 나보다 나은 적임자가 있는 것 같군.”
“예?”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부터 너희가 싸워야 할 이는 마인이 아닌데, 마인들과 상대하는 버릇이 들어 좋을 건 없지. 지금 딱 좋은 놈이 하나 있거든. 마인이 아니면서 너희 전부를 상대할 수 있는.”
“바토르 님…… 아니, 혹시?”
“그래.”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밥도 많이 처먹던데, 밥값이나 하라고 해야지. 그래서…… 홍왕을 상대할 자신은 있고?”
이명환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죽여도 됩니까?”
그 말을 들은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죽지나 마라.”
그렇게 홍왕의 임무가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