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11
#1710.
공격받다 (5)
“회주님.”
“……빠른 복귀는 어렵겠습니까?”
강진호는 자신의 앞에서 심각하게 말을 하는 이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며칠이나 됐다고.’
이제 딱 하루다.
이현수가 휴가를 받아 자리를 비운 지 불과 하루.
하지만 그 하루라는 시간 만에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어설퍼.’
이건 조직적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한 사람의 존재의 유무로 흔들리는 조직이라면, 그 조직은 근본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으음?
마교?
‘당연히 잘못되어 있었지.’
그러니 망했잖은가.
마교는 반례가 아니라 완벽한 예시다. 강진호와 청마가 죽자마자 유례없는 속도로 깔끔하게 패망해 버렸으니까.
운 좋게 이 시대까지 잔당(?)이 남기는 했지만, 과거 마교의 위세를 생각하면 이건 패망을 넘어 폭망 수준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안 그래야 하는데…….’
어떻게 사람이 자리를 비운 지 하루 만에 그를 찾아와 불만을 털어놓는 이가 생긴단 말인가.
물론 그만큼 이현수가 많은 일을 해왔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루는 너무했다. 적어도 며칠 정도는 저들끼리 어떻게든 일을 처리해 보려 애써야 하지 않겠는가.
평소의 강진호라면 어쩌면 이 부분에서 호통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웬만해서는 부하 직원들에게 언성을 높이지 않는 강진호지만, 능력의 부족이 아닌 의지의 부족은 용서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강진호가 지금 아무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루면 많이 쉬었잖습니까!”
“…….”
지금 그의 앞에서 눈이 시뻘개져서 항의를 하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위긴스이기 때문이다.
바토르나 방진훈, 혹은 장민 같은 놈들은 저 하나 힘들면 총회에 과부하가 걸리든 말든 불만을 논할 놈들이지만, 위긴스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 않은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눈이 시뻘개진 위긴스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절로 안타까워졌다.
“……과부하가 심해?”
“회주님, 제 생각인데…….”
“음.”
“그놈에게 마법을 가르치니 어쩌니 한 건 제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으응?”
이건 또 뭔 말인가 싶어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에게는 재능이라는 게 있는 거고,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써먹어야 합니다. 그놈을 사무가 아닌 다른 일로 돌리는 건 재능의 낭비고, 인류적 손실입니다.”
“……재능 있다고 가르쳐 본다고 한 게 누구더라?”
“그래서 실수라고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위긴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이야.’
위긴스는 업무 능력으로는 세상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사람이다. 그 평범한 인간은 서류 더미에 깔려 죽기까지 사흘도 걸리지 않는다는 나이트의 자리에서 십 년이 넘게 버텨온 이가 바로 위긴스 아니던가.
아니, 위긴스뿐만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방진훈도 총회의 이사로서 평범한 직장인은 엄두도 내지 못할 업무량을 소화했고, 장민은 그 거대한 마교를 이끌던 이다.
그런데 이현수의 존재는 다른 이사들의 업무량을 신입 직원쯤으로 만들어 버렸다.
“예전에도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놈을 휴가보내신 겁니까?”
“…….”
그냥 뭐.
어…….
그럼 좋겠다 싶었지. 딱히 뭐 대단한 생각이야 있었겠는가.
“피곤해 보여서.”
“저도 피곤합니다.”
위긴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여하튼 지금 최대한 보류할 건 보류하고, 넘길 건 넘기고 있지만, 그놈이 이틀만 더 자리를 비우면 일들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무너질 테니 알고 계십시오.”
“……어, 음.”
강진호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뭔 일을 얼마나 하고 있는 거지?’
새슴스레 이현수의 존재에 학을 떼는 강진호였다.
“다만…….”
위긴스가 턱을 쓰다듬었다.
“할 말 다 해놓고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좀 민망하긴 합니다만, 지금 타이밍에 놈을 쉬게 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음?”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들고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회주님도 뭔가 느끼셔셔 이런 일을 벌인 거겠지만, 최근 이 실장이 좀…….”
“그래.”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당할 수 없는 걸 감당하려 하는 인간은 버티기 힘든 압박감에 스스로 녹아버리는 법이죠.”
무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거치는 일이다.
하지만 이현수는 무인이 아니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적 같은 건 처음 만나보았을 것이다.
“벽이라는 거군.”
“그럴 겁니다.”
위긴스가 가스라니 자라난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동안 머리만 믿고 살아온 만큼, 자신의 머리가 통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면역력이 없겠죠.”
“벽이 되어주지그랬나.”
“무립니다.”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평하기에는 민망하지만, 저는 무력과 지력이라는 양쪽 측면을 고려할 때, 이현수보다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민망할 것 없어.”
“하지만 지력이라는 측면 하나만 두고 보면 저는 그놈을 이기지 못합니다. 제가 가진 실행력과 경험이 미묘한 우위를 만들어낼 뿐, 그 우위를 항상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위긴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그가 이현수의 적이 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둘이 싸운다면 물론 그가 이긴다.
서로 대등한 열 명의 부하를 두고 싸운다면 승률은 80% 정도일까?
하지만 백 명이 되면 반으로 깎이고, 천 명이 되면 승률은 희박해진다.
만 명 단위를 움직이게 되면 천 번을 싸워도 천 번 다 질 것이다.
그의 무력이 유의미함을 잃는 순간, 그는 이현수의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게 이현수와 창왕의 관계에도 적용이 된다는 거지.’
심지어 더 과격하게.
혼자일 때나 만 명을 거느릴 때나 이현수는 창왕을 이길 수 없다. 소수일 때는 무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수일 때는 지력을 감당하지 못한다.
어떤 상황, 어떤 경우를 만들어내더라도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
이건 이현수의 인생에서 거의 처음 겪어보는 공포일 게 분명하다.
“물론 회주님의 경우가 있지만, 그건 결이 조금 다르죠.”
“음?”
“사람은 사자와 맨손으로 싸워 이길 방법을 찾지는 않으니까요.”
이현수에게 있어서 강진호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이다. 논리와 합리성으로 어찌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다. 하지만 창왕은 이현수와 같은 영역에 발을 걸치고, 무심하게 이현수를 짓밟는다.
절망적이기까지 한 격차.
그렇기에 위긴스는 강진호에게 한 가지를 묻고 싶었다.
“극복할 거라고 보십니까?”
“…….”
강진호가 침음을 흘렸다.
“어떤 의미냐에 따라 다르겠지.”
“……둘 다 들을 수 있겠습니까?”
강진호가 가만히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놓인 담배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이현수가 창왕을 이길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니까. 억지로 평가를 해봐야 결국에는 대책 없는 믿음에 불과하겠지.”
“음.”
위긴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현수가 창왕에 대한 압박감을 극복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이현수에게 실례되는 말이 아닐까?”
위긴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말도 안 되는 신뢰 관계라니까.’
때때로 위긴스는 이현수의 강진호에 대한 믿음이 위험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냉철하기 짝이 없는 이현수라는 시스템에 강진호라는 이물질이 끼어드는 순간, 시스템은 오류를 일으킨다. 총회의 무인들을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해 전력화해야 할 이현수가 강진호에 대해서만큼은 종교적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믿음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강진호는 그 말도 안 되는 믿음에 부응했다. 지금까지는 단 한 번의 어긋남도 없이.
‘그리고 회주님도 이현수를 과하게 믿는다는 게 문제지.’
그리고 이현수도 강진호의 믿음에 부응하지 못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위험하다.
절대 깨어지지 않는다고 믿은 것이 깨어지는 순간에 받을 충격은 무엇보다 클 테니까.
“걱정할 것 없어.”
그런 위긴스의 마음을 모르는 강진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알아서 회복해 돌아올 테니까. 겨우 그 정도의 압박감에 짓눌릴 남자는 아니지.”
위긴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튼 이 부분은 그도 동감한다.
“갑자기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버리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요.”
“그래도 무인인데.”
위긴스와 강진호가 서로를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RRRRRR.
강진호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액정을 확인한 강진호가 눈을 찌푸리고는 전화를 받아 들었다.
“강진호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회주님. 오전부터 이현수 씨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휴가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어쩌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이라 연락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강진호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말씀하시죠.”
[정보부 쪽에서 수상한 이들이 한국에 입국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요즘 상황이 상황이라 중국 쪽에서 들어오는 이들의 신원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십여 명 정도의 신원이 계속 걸립니다.]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십여 명이요?”
[예.]“흐음.”
미묘하게 긴장한 강진호의 눈이 부드럽게 풀렸다. 아무리 총회가 중국의 삼왕계와는 비교할 수 없이 소수라고는 하지만, 겨우 십여 명으로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다.
“그 정도 수라면 크게 문제가 없을 텐데요?”
[행보가 이상합니다.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부산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따라붙는 정보부를 모두 따돌리고 행적이 묘연해졌습니다.]“……행적이 묘연하다고요?”
정보부를 따돌렸다면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하다. 평범한 이들은 그들을 따돌리는 게 불가능할 테니까.
결국 저쪽도 고도로 훈련된 요원이거나 무인이라는 의미. 어느쪽이든 달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다시 나타나겠죠.”
그때 처리하면 그만…….
[저희 쪽에서는 아무래도 이들이 배를 타고 제주로 넘어간 게 아닌가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그럴 거면 애초에 제주공항으로 바로…….]“……어디로요?”
강진호의 목소리가 고한봉의 목소리를 잘라 버렸다.
그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도 전해졌는지, 고한봉이 움찔하는 기색이 똑똑히 전해졌다.
[아마도 제주…….]우드드득.
강진호의 손에 들린 휴대폰이 으스러졌다.
전화가 끊겨 버렸지만, 강진호의 머리에 이미 총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위긴스!”
“자, 잠시! 잠시만요! 만일을 대비해 병력을 파견하라는 지시…… 아닙니다, 회주님. 전화로 하겠습니다.”
위긴스는 스스로 정한 당연한 절차를 지키지 못했다.
한마디만 더 끌었다가는 강진호의 손이 그의 목을 잡아 비틀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주로 간다.”
“지금 당장 모시겠습니다.”
위긴스가 식은땀을 흘리며 캐스팅을 시작했다.
‘빌어먹을.’
상황은 명백하다.
위긴스는 제발 저 이현수에게 별일이 없기를 빌었다.
만일 이현수가 저들의 손에 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라고 한다면?
위긴스가 슬쩍 시선을 돌려 강진호를 바라봤다.
‘어쩌면…….’
세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마귀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