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13
#1712.
응전하다 (2)
불꽃이 춤을 춘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가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도로 위에서 짙은 음영이 진 얼굴의 왕옌홍이 싸늘한 시선으로 타오르는 차를 바라보았다.
“보좌님.”
왕옌홍이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렸다.
“잡은 겁니까?”
“그럴 리가.”
왕옌홍의 눈이 차갑게 운전석을 응시했다. 불꽃에 뒤덮인 운전석에는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창왕께서 따로 지시를 내릴 만한 거물이다. 이 정도에 당할 리는 없지.”
“이현수의 무력은 보잘것없는 수준이 아닙니까?”
“리우제.”
“예!”
“오만은 언제나 사람을 갉아먹기 마련이지. 네 그 오만이 일을 그르친다면, 너는 창왕을 뵙기 전에 나를 따로 만나야 할 것이다.”
리우제라 불린 이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흠.”
왕옌홍이 굳은 얼굴로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쫓아라. 멀리 가지는 못하겠지. 이곳은 섬. 사방을 둘러봐도 달아날 곳 따위는 없다. 토끼를 모는 것처럼 천천히 몰아넣으면 된다.”
“예!”
추가적으로 지시를 내릴 것도 없었다. 대답이 나오기가 무섭게 도로 주변에 대기하고 있는 창왕의 무인들이 빛살 같은 속도로 왕옌홍이 가리킨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왕옌홍이 그들과 불타오르는 차를 번갈아 응시하다가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실패는 없다.’
혹여 그들이 이곳에서 모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현수의 목을 딴다.
왕옌홍이 얼음장 같은 얼굴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이현수가 이를 악물며 발을 뗐다.
“끄으…….”
강제로 내디딘 발목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치밀어 오른다. 조금 전, 차를 날려 버린 도기가 그의 종아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하필이면 다리를.’
이럴 바에는 차라리 팔 하나가 잘리는 쪽이 나았다. 그럼 더 가벼운 몸으로 달아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그가 부상을 입은 부위는 종아리고, 이 망할 부상은 그의 속도를 끔찍할 정도로 늦추고 있는 중이었다.
“업혀요!”
그를 부축하던 이현주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의 앞에 등을 내밀었다.
“빨리!”
“……꼴이 말이 아니군.”
이현수가 인상을 쓰면서도 순순히 이현주의 등에 업혔다. 남자의 자존심이 어쩌고를 따질 상황이 아니다. 죽고 나면 자존심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이현수를 업은 이현주가 전력으로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되죠?”
“……기다려 봐. 지금 확인해 볼 테니까.”
이현수가 이현주의 등에 업힌 채로 휴대폰을 켰다.
“불빛!”
“어쩔 수가 없잖아!”
이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개 같은 새끼들.’
적이 누군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창왕계겠지. 이 한국으로 잠입해서 그의 목숨을 노릴 만한 이는 창왕밖에 없으니까.
‘안일했어.’
총회가 보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대상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강진호다. 그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이는 최연하고, 세 번째는 강진호의 가족들이다.
그 외에는 딱히 경호라는 게 필요한 대상이 없었다. 그동안 총회를 상대해 오던 이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진호를 노렸으니까.
‘그건 당연한 거지.’
강진호가 총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이유가 없다. 강진호가 죽는 순간, 총회는 걷잡을 수 없이 붕괴한다. 강진호는 총회를 휘두르는 손이자 총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니까.
거기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강진호는 총회의 가장 큰 약점이지만, 동시에 총회의 가장 큰 강점이다. 강진호를 죽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전력을 동원해야 하지만,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뛰어난 나라이고, 강진호가 머무르는 한국은 완전한 총회의 세력권이다.
총회를 적대하는 자라면 누구라도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지만, 결코 노려서는 안 되는 자.
그가 바로 강진호다.
‘창왕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지.’
한국에 은밀히 보낼 수 있는 전력으로 강진호를 상대한다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원탁도, 일본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가 전력만 낭비했다. 그런 안일한 짓을 창왕이 저지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 놓친 건…….
“제일 끔찍한 적이 나를 이리 높이 평가해 주는 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네.”
“알았으니 좀 조용히 해봐요!”
이현주가 이를 악물었다.
안다.
이현수도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상황에서 긴장을 풀기 위해 과도하게 뭔가를 말해 대고 있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현주는 이현수만큼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따라잡히면 답이 없어.’
상대의 역량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다. 이현주가 이현수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이현주는 총회를 기준으로 봐도 평범한 무인에 불과하다.
총회의 무인들은 급속도로 강해지고 있지만, 이현주는 거기에서 벗어나 있다.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재무직으로 전환해 버린 이현주에게 창왕계의 정예들은 감히 상대할 엄두도 나지 않는 강자였다.
혼자 싸운다고 해도 몸을 빼낼 자신이 없다. 그런데 이현수를 지키며 싸운다?
‘절대 못 버텨.’
그러니 따라잡히기 전에 어떻게든 몸을 빼야 한다.
“어디로 가요?”
“앞으로. 일단 앞으로 직진해!”
“네?”
“공항으로 가야 돼!”
“미쳤어요? 거기 민간인들이 얼마나…….”
말을 하다 말고 이현주가 입을 닫았다.
무인들과의 교전에서 민간인들이 있는 곳을 피해야 한다는 건 절대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지금 민간인들을 피해 달아나다가는 결국은 따라잡혀 목이 잘려 나갈 것이다.
“시간을 벌어야 돼!”
“총회는?”
“이미 연락은 보냈어. 비상 문자 보냈으니까 최대한 빨리 지원을 와줄 거야. 하지만…….”
이현수는 굳이 뒷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늦어.’
아무리 빠르게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제주도로 넘어와 이현수가 있는 곳을 찾아내는 데만 한참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면 저들이 이현수와 이현주를 요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생각해라. 어떻게든 생각해라, 이현수.’
이현수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의 장기는 몸이 아닌 머리다. 그러니 지금도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면…….
그때였다.
쇄애애애액!
귀를 찢는 파공음과 함께 등 뒤에서 뭔가 가공할 만한 것이 날아오는 느낌이 났다. 순식간에 전신에 털이 곤두선다.
“현주야!”
“이!”
이현주가 바닥을 박차며 몸을 굴렸다.
콰드드드득!
날아온 단검이 바닥을 파고든다. 사람의 몸으로 저런 위력의 대검을 맞았다면, 단순히 몸이 꿰뚫리는 정도에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쇄애애애액!
쇄애애애애액!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닌지, 연이어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이현주가 한 손으로 이현수를 움켜잡은 채 바닥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콰득! 콰드드득!
단검이 손잡이까지 바닥에 틀어박혔다.
겨우겨우 몸을 돌린 이현주가 황망한 얼굴로 뒤를 바라보았다.
“쥐새끼들이 잘도 달아나는구나.”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창왕의 무인들이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전력으로 뛰었는데…….’
아무리 이현수를 업고 뛰었다지만, 처음에 벌려놓은 거리가 있으니 웬만큼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리 순식간에 따라잡혔다는 건, 저들의 무위가 이현주의 예상보다 더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휴…….”
이현주가 깊이 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한국 놈들은 자존심이란 게 없는 모양이지? 나라면 여자 등에 업혀서 도망가는 건 상상도 못할 텐데 말이야.”
“니들도 어릴 때는 다 엄마 등에 업혀서 살았어, 등신 새끼들아.”
“그럼 저 여자가 네 엄마인 모양이군.”
“엄마보다 더 무섭지.”
이현수가 깊게 베여 뼈가 다 드러나 보이는 종아리를 움켜잡고는 몸을 일으켰다.
“하…… 인생.”
이현수가 고개를 내젓는다.
이 바닥에서 사는 이상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딱히 억울할 것도 없다. 그가 지금껏 죽인 이들을 생각하면 이현수는 천 번을 죽는다고 해도 억울함을 논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내가 뒈질 날이 언젠가는 올 거라 생각했지만, 설마 너희 같은 조무래기들한테 당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쪽에서는 영광으로 생각해 줄 테니까. 총회의 이인자를 죽일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영광스러운 일이지.”
이현수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기왕이면…….”
“거기까지.”
선두에 선 사내가 손을 내밀어 이현수의 말을 막았다.
“시간을 끈다고 뭐가 오지는 않겠지만, 여기서 우리가 네놈과 태연히 놀고 있으면 화를 낼 분이 있어서 말이다. 그만 죽어줘야겠다.”
이현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려 했지만, 확실히 창왕의 수하들이라 그런지 녹록하지 않다. 이쪽의 페이스에 순순히 말려주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가요.”
“……뭐?”
“내가 어떻게든 막아볼 테니까 가라고.”
이현수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이현주를 바라봤다.
“……네가 뭘 어떻게 막아? 딱 봐도…….”
“알아요, 내가 상대가 안 된다는 거. 그런데 여기에 둘이 있으면 둘 다 죽을 거 아냐!”
“…….”
“가! 시간 끌지 말고!”
이현주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니, 보통 이럴 때는…….”
“개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세 살 먹은 어린애도 누가 살아야 하는지 알 테니까!”
이현수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사람 만만하게 보지 마요. 나는 이중걸의 손녀니까. 저딴 새끼들한테는 안 죽어.”
이현주가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자세를 잡았다.
“가요.”
“현주야!”
“가라고, 이 등신아!”
이현주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는 대체할 사람이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역할은 누군가가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현수는 아니다. 총회에 그를 대체할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다.
총회를 위해서, 그리고 모두를 위해서 이현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이것참.”
선두에 선 창왕의 무인이 입가에 비웃음을 담았다.
“보기 꼴사나운 건 둘째 치고, 우리가 너무 우습게 보인 모양이군. 네가 우릴 막는다고?”
더는 시간 끌 것 없다는 듯 창왕의 무인이 턱짓으로 둘을 가리켰다.
“죽여라, 보좌께서 오시기 전에.”
“예!”
그 말과 동시에 창왕의 무인들이 좌우로 쫙 퍼져 둘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뭐 해! 가라니까!”
“……아니, 현주야. 현실적으로 네가 저 열 명을 무슨 수로 막아?”
“내가 어떻게든…….”
“그 말이 아니라 네가 다섯쯤은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도 어차피 다섯은 나를 쫓아온다니까. 그럼 등 돌리는 순간 죽는 거야.”
“…….”
이현수가 쓴웃음을 입에 담았다.
다리라도 다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요행이라도 바라보겠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차라리 싸우면서 시간을 끄는 게 나아.”
이현주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그의 눈을 보는 순간, 이현주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진짜 대책없는 인간이야.’
하지만 눈은 죽지 않았다.
자포자기가 아니라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거겠지.
비록 그 가능성은 절망적인 수준이라도 말이다.
“……달아나기 싫어서는 아니고?”
“그렇다고 해두자고.”
“……내가 어쩌자고 이런 걸.”
이현주가 고개를 내젓고는 두 주먹을 말아쥔다.
‘어떻게든 버텨야 돼.’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든, 손이 잘리면 이로 물어서라도 이현수를 살려야 한다. 이기는 건 바라지 않는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반드시 강진호가 올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순간, 그들을 포위한 창왕의 무인들이 기합성 하나 없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하아압!”
이현주가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이들을 맞아 나갔다.
날아드는 도가 그녀의 주먹과 맞부딪쳤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손에 두른 경기가 날아드는 도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유리처럼 산산조각 났다.
‘아!’
이현주가 두 눈을 부릅떴다.
서걱!
도가 주먹을 반쯤 가르며 틀어박혔다.
전신의 모공이 곤두서는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이현주는 되레 이를 악물고 날아드는 이를 걷어차 냈다.
쾅!
달려들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내가 튕겨 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밀어낸 이는 단 하나!
남은 아홉 개의 도가 일시에 이현주의 전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현주야!”
이현수의 처절한 비명성이 터져 나온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이현주의 몸을 당장에라도 꿰뚫어 버릴 것 같던 아홉 개의 도가 동시에 튕겨 나갔다.
“아아악!”
그 거대한 힘의 충돌을 감당하지 못한 이현주가 바닥을 굴렀다.
거의 처박히듯 바닥으로 날아간 이현주가 겨우겨우 몸을 멈췄다. 그러고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고개부터 번쩍 들어 상황을 확인했다.
‘누구?’
그녀의 눈에 커다란 등이 들어왔다.
‘회주…… 아, 아니야.’
이현주의 앞을 막아선 남자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사부님이 보았다면 한탄을 하셨겠군.”
“너……?”
이현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 하지만 이제는 너무도 낯설어진 목소리.
“이, 이성휘?”
이중걸의 제자, 그리고 그녀의 사형.
강진호를 적대해 총회를 떠난 이성휘가 이 자리에서 나타나 그녀를 돕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창왕을 조심하라고 경고까지 해줬건만, 예전의 총명함은 어디에 팔아먹었나?”
짙은 음영이 퀭하게 자리한 얼굴로 이성휘가 양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의 시선이 농밀한 살기를 뿜어내는 창왕계의 무인들에게로 향했다.
“중국 새끼들이 잘도 한국 땅에서 설치는군. 와봐라, 목에 바람구멍을 뚫어줄 테니.”
창왕계의 무인들이 일제히 이성휘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