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21
#1720.
씁쓸하다 (5)
“열어.”
문을 막고 있는 이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이사님, 안에…….”
“알았으니 열어.”
“그, 아무도 들이지 마시라고…….”
“이 새끼가?”
방진훈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경비가 찔끔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
“누가 명령을 했다고?”
“……실장님께서.”
“언제부터 총회의 실장 따위가 이사보다 직위가 높았어? 누가 누굴 막아?”
“……죄송합니다.”
방진훈이 달아오른 얼굴로 경비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 네 입장 곤란한 건 알고 있어. 그런데 설마 내가 너희한테 피해 가게 하겠냐. 알아서 잘 처리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열어.”
“……예.”
경비가 옆으로 물러서서 문을 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방진훈의 입매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개판이네.’
결과적으로는 잘 해결됐지만, 저놈의 태도를 보면 그보다 이현수의 명을 더 우선시하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저 녀석이 딱히 이현수의 직속이 아닌 이상, 총회 전체의 성향도 비슷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현수는 슬슬 명목상이 아닌, 실질적인 총회의 이인자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미묘하게 기분 나쁘네, 이거.’
이현수가 그의 위로 평가받는다는 게 기분 나쁜 게 아니다. 그런 건 애저녁에 버렸다. 아무리 이현수가 영남회 출신의 귀화 용병 같은 놈이라고는 해도, 총회가 더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이도 받아들여야 하니까.
방진훈은 그리 속이 좁은 이가 아니다.
지금 그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것은 총회의 지위 체계가 뒤틀려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정리를 한 번 하긴 해야겠어.’
이것도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다.
방진훈이 거침없는 발길로 아래층으로 향했다. 가장 아래층까지 걸음을 옮긴 방진훈이 복도를 서성이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뭐 해, 이 새끼들아.”
“이, 이사님.”
방진훈을 발견한 이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문 앞을 지켜야 할 놈들이 왜 여기서 얼쩡대고 있어?”
“그게…….”
두 사람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아악!”
문 안에서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처절한 비명 소리가 쩌렁쩌렁 터져 나왔다.
방진훈이 눈을 확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바로 앞에서 듣고 있기가 너무…….”
“씨발.”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개중 하나는 턱이 덜덜 떨리는 것이, 겁을 제대로 집어먹은 모양이다.
‘별…….’
무인이다.
사람의 죽음 정도야 수도 없이 보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런 곳을 지키는 놈들을 담 약한 이로 배치할 리가 있겠는가.
‘얼마나 끔찍했으면 애들이 이렇게 질려 있어?’
방진훈이 한숨을 내쉬고는 손짓했다.
“나가봐.”
“……그래도 되겠습니까?”
“니들 둘이 지키는 게 나 혼자 있는 것보다 나을 자신 있으면 여기 있고.”
“올라가겠습니다.”
“가.”
두 사람이 재빨리 허리를 한 번 접고는 계단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방진훈이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짜증 어린 얼굴로 문을 향해 다가갔다.
문 앞에 선 방진훈이 다짜고짜 문을 열어젖혔다.
화악.
방진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욱하게 풍기는 피 냄새가 코끝을 미칠 듯이 찔러 들어왔다.
“미친 새끼.”
그의 눈에 방 안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완전히 피범벅이 되어버린 실내에서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 상처가 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이가 헐떡이고 있고, 이현수는 그 옆에서 짧은 단도를 든 채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다.
“다시 말해봐.”
“……여, 여섯 번째.”
거의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현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알아, 알아. 여섯 번째가 아니라 일곱 번째지. 그러니까 다시 말해보라잖아. 앞에 한 말이랑 다른 게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하니까. 다시 말해.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다른 부분이 있으면 벌을 준다. 그리고 추가된 내용이 없어도 벌을 줄 거야.”
벌이라는 말에 붉게 물든 혈인의 전신에서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차마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던 방진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 새끼야!”
“……응?”
그제야 방진훈의 존재를 알아챈 이현수가 고개를 홱 돌렸다.
“아이고.”
이현수가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단도를 품 안으로 밀어 넣고는 어색한 얼굴로 일어나 뒷머리를 긁었다.
“오셨습니까?”
“…….”
방진훈이 질린다는 얼굴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이현수가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그에게 꺼지라고 했다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현수는 평소의 그와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마치 밥을 먹다 일어나 인사를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사실이 방진훈을 질리게 만들었다.
“뭔 사람을 씨발……. 여기가 대공분실이냐, 이 새끼야?”
“……못 볼 걸 보여 드렸네요. 그러게 말이라도 하고 들어오시지. 그럼 청소라도 좀 했을 텐데.”
“이게 씨발, 청소를 논할 상황이냐, 이 또라이 새끼야?”
방진훈이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왕옌홍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도 무인계에 몸을 담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가 이사의 직위로 이중걸과 대항하던 것만 기억하지만, 그가 그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 어떠한 일을 해왔는지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 이중걸의 견제를 이겨내고 총회의 가장 젊은 이사가 되기 위해 그는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런 방진훈에게도 지금 눈앞의 광경은 참아내기 어려울 만큼 역겨웠다. 대체 이현수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말이다.
새삼스레 기억이 난다.
왜 이현수가 영남회의 악마라 불렸는지.
강진호가 나타나기 이전에 이 업계에서 가장 지독하고 끔찍한 자가 누구였는지 말이다.
그의 귀에 왕옌홍이 중국어로 뭔가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중간 중간 들려오는 ‘죄송합니다’라는 의미만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살려 달라잖아.”
“아, 아닙니다. 저 새끼는 지금 어, 그러니까…….”
이현수가 겸연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 말할 테니까 그만 죽여 달라고 하는 중인데요?”
“…….”
방진훈이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두어 번 뻐끔대다가 결국은 그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적당히 좀 해라.”
방진훈이 이현수를 똑바로 보며 말한다.
“네 방식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리고 나도 그렇게 깨끗하게 살아왔다고는 말 못하겠지. 그런데 씨발, 세상에는 정도라는 게 있는 거잖아.”
“정도는 저 새끼들이 먼저 어겼죠.”
“그렇다고 같은 놈이 되어버리면 뭐가 달라?”
방진훈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어 버렸다.
“더 뽑아낼 게 있어?”
“확인하는 중입니다. 정보는 정확성이 중요하니까요.”
“……저게 제정신으로 보이냐? 자기가 뭔 말을 하는지도 모를 것 같은데?”
“그러니 더 정확할 수 있죠.”
방진훈이 담배를 꺼냈다. 웬만해서는 그의 손으로 담배를 꺼내 피우는 일은 흔치 않지만, 지금은 담배가 당겨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자.”
“저는 괜찮습…….”
“피워, 새끼야!”
“네. 그러죠.”
이현수가 방진훈이 내민 담배를 받아 들고는 입에 물었다. 방진훈이 손수 이현수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이현수가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방진훈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막말로 저 새끼가 무슨 꼴을 당하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런데 씨발, 적어도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하든가. 윗대가리가 하는 건 아랫놈이 보고 배우기 마련이야. 애들 빤히 밖에 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상황 아닙니다.”
“적당히 좀 해라.”
방진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안다. 내가 이런 소리 늘어놓는 게 너한테는 그냥 속 편한 개소리로밖에 안 들린다는 거. 당장 창왕 새끼들이랑 붙어서 깨지면 다 뒈질 판인데, 수단이고 방법이고 가릴 게 뭐가 있겠어.”
“…….”
“그런데 그렇게 살아남아서 뭘 어쩔 건데? 나는 씨발, 짐승처럼 살아남았으니 이제 정승처럼 살겠다, 그럴 거냐? 때로는 수단이 결과를 부정하기도 하는 거야.”
방진훈이 벽에 등을 기대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살다 살다 내가 남한테 이런 소리를 다 하네. 보통은 남이 나를 말렸는데.”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거죠.”
“개소리하지 마. 네가 나보다 몇 배는 미친놈이라 그런 거겠지.”
방진훈이 턱짓으로 왕옌홍을 가리켰다.
“그만하고 치료해 주든 죽여주든 둘 중 하나만 해.”
“……아직 좀 남았는데요.”
“둘 중 하나만 하라고.”
방진훈이 살짝 열이 받은 얼굴로 이현수를 노려봤다.
그러자 이현수가 생각보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치료해 주죠.”
“……안 죽여?”
“저 새끼가 죽여 달라잖습니까. 그럼 죽이면 안 되죠. 누구 좋으라고.”
“…….”
방진훈이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라는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현수는 그런 방진훈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이현수.”
“네?”
“……너무 극단적으로 가지는 마라. 괴물을 잡자고 네가 괴물이 되어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난 그렇게 괴물이 된 놈을 몇이나 봤다.”
“명심하겠습니다.”
너무도 간단하게 돌아온 대답에 방진훈이 고개를 내저었다.
‘소귀에 경을 읽지.’
대답은 좋다, 개 같은 놈.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은 지금 이현수의 머리에는 하나도 들어가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만 정리해. 말했다.”
“걱정 마십쇼. 제가 설마 하신 말씀을 어기겠습니까?”
“하아…….”
방진훈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현수를 내보내고 그가 직접 정리를 할까 잠깐 고민해 본 방진훈이 결국은 먼저 발을 뗐다.
“올라오면 내 사무실로 와.”
“샤워 좀 하고요.”
“네 맘대로 하시고.”
방진훈이 방을 빠져나가자 이현수가 입에 문 담배를 깊게 빨며 왕옌홍을 바라봤다.
“나는 이래서 무인이 좋다니까.”
이현수가 싱긋 웃는다.
“평범한 사람이면 골백번은 죽었을 텐데, 아직 쌩쌩하잖아. 그렇지?”
이현수가 왕옌홍의 바로 앞으로 가 쪼그려 앉았다.
“이사님 말씀이 맞지. 내가 실수했네. 까딱하면 죽일 뻔했잖아.”
그가 손가락으로 왕옌홍의 볼을 톡톡, 두드렸다.
“걱정하지 마. 내가 치료해 줄게. 치료가 끝나고 네가 다시 맑은 정신으로 돌아오면, 그때 다시 시작하자고. 그때가 여덟 번째니까 잘 기억해 두고.”
왕옌홍의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피로 완전히 젖어버린 그의 눈가에서 피와 뒤섞인 눈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이 천 년보다 길게 느껴진 시간 동안 그는 단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창왕의 능력이 이현수보다 백배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창왕이라고 해도 이 악마 같은 놈보다 잔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치료 잘 받으라고. 걱정하지 마. 총회의 의료진은 실력이 좋거든. 말끔하게 고쳐 줄게.”
희게 웃은 이현수가 몸을 일으켰다.
“세탁비는 청구하지 않을 테니 안심해. 내가 이런 쪽으로는 또 깔끔한 사람이라…….”
찰박.
바닥에 고인 피 웅덩이를 밟으며 이현수가 방을 나섰다. 무표정한 얼굴이 된 이현수가 손을 들어 얼굴에 묻은 피를 손으로 훔쳐 냈다.
‘괴물이 되지 말라고?’
재미있는 소리다. 정말 재미있는 소리.
“그건 적어도 일 년은 전에 했어야 할 말입니다, 이사님.”
너무 늦었죠.
너무도 말입니다.
이현수가 신경질적으로 다시 한번 얼굴을 훔쳐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