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23
#1722.
선공하다 (2)
“……이놈은 또 언제 왔어?”
방진훈의 말에 차이커창이 눈을 찌푸렸다.
“예의를 좀 더 갖춰라. 나는 적어도 이곳에서는 홍왕계의 이인자니까.”
“그래서 뭐?”
“…….”
차이커창이 할 말이 없는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현수가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도 한 번 당해봐라.’
여기가 어떤 동네인지.
“내가 불렀다.”
“……아, 그러슈?”
홍왕의 말에 방진훈이 조금 캥긴다는 얼굴로 한 발을 뺐다. 아무리 그라고는 해도 홍왕에게 딴지를 거는 건 좀 껄끄러웠다.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중국에서 소환했다.”
“빨리도 왔다 가네. 이야기는 오늘 나왔는데.”
“……나는 이틀 전에 들었다만?”
“엥?”
방진훈이 고개를 홱 돌려 이현수를 바라봤다. 휘파람을 불며 자료를 뒤적이는 이현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황당함을 넘어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럼 이틀 전에 벌써?’
저 새끼…… 웃긴 새끼네, 저거.
고문해서 정보를 얻기도 전에 대충 판을 다 짜놨다는 뜻 아닌가.
“야, 너…….”
“아아…….”
방진훈이 무슨 말을 할 건지 안다는 듯, 이현수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정보가 나오면 나온 대로 회의는 필요하고, 정보가 없으면 없는 대로 회의는 필요한 겁니다. 이상하게 몰아가지 마십시오.”
“……아가리는 청산유수야, 아주.”
방진훈이 고개를 내저었다.
“됐으니 잡담은 삼가게. 회주님이 있는 자리니까.”
“저 양반은 이제는 저런 말도 할 줄 아네. 누가 보면 한국인인줄 알겠어.”
“……알았으니 그만하라고.”
위긴스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덮었다.
이 새끼들은 이게 얼마나 중요한 회의인지 몰라서 이러는 건가?
이게 총회의 기본적인 분위기이긴 하지만, 때로는 다 미친놈들처럼 느껴지는 게 문제다.
“우선…….”
하지만 그 정돈 안 된 분위기는 강진호가 입을 연 순간 급격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실장이 할 말이 있다는군.”
강진호가 턱짓으로 가리키자, 모두가 이현수를 주목했다.
“보고를 드리기 전에 먼저 하나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차이커창.”
차이커창이 대답없이 이현수와 시선을 교환했다.
“중국의 상황은?”
“창왕의 추격이 시작됐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이쪽도 웬만큼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피해가 큰가?”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르지. 홍왕께서 무사하시다는 정보를 퍼뜨린 덕분에 원래 받아야 할 것보다 피해를 줄이기는 했지만, 무시할 정도는 아니야.”
“별것 아니라는 의미군.”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창왕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창왕에게도 플랜이 완전히 섰다는 걸 의미합니다.”
“뭘 빤한 소리를 하고 있어.”
방진훈의 말에 이현수가 입꼬리를 뒤틀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이 부분이 아닙니다. 바로 창왕의 추격이 한동안 멈췄다는 거죠.”
“……응?”
이현수가 눈을 빛냈다.
“이걸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창왕이 멈춘 이유가 새로운 뭔가를 하기 위해서인가, 아닌가.”
다들 이현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했다. 이현수도 자신의 설명이 부족했다 느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중국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이후, 창왕, 그리고 창왕계는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주살할 수 있는 홍왕계가 그들의 권역을 빠져나가 다시 뭉치고 있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래서?”
“만약 이번에 창왕이 홍왕계를 노리는 걸 포기하고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면, 이 멈춤에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들은 이미 해야 했던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하냐면…….”
차이커창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코드를 다시 짠 건가?”
“그렇지.”
이현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상황을 보며 강진호가 흐뭇하게 웃었다.
“이현수.”
“예, 회주님.”
“……둘만 알아 처먹게 말하지 말고, 남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홍왕도 지금 천장 보잖아.”
“크, 크흠.”
홍왕이 크게 헛기침을 한다. 그의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쉽게 말하자면, 이놈은 컴퓨터의 프로그램 같은 겁니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그에 관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변수와 상황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완벽할 정도의 대응을 수립한 다음에 움직이기 시작하는 타입이라는 거죠.”
“……그게 가능한가?”
“가능한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보여줬으니까요.”
이현수가 눈을 빛냈다.
“그리고 여기서도 중요한 건 가능한가가 아닙니다. 바로 그 멈춤이죠.”
“응?”
“창왕은 일단 계획을 수립하면 모든 상황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둡니다. 가능한 변수를 최대한 계산하여 온갖 경우의 수를 모조리 지배하려 들죠. 그런데…… 이렇게 완벽히 계산해 둔 경우의 수를 벗어나는 일이 벌어지면?”
“……에러가 난다는 건가?”
“정확합니다.”
위긴스의 말에 이현수가 박수를 쳤다. 마치 교사가 정답을 맞춘 학생을 칭찬하듯 말이다.
“그래서 그 멈춤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사실 여기서는 멈출 이유가 없습니다. 어쨌든 부하들이라도 먼저 움직여 달아나는 홍왕계를 잡아 죽였어야 하죠. 반격을 당할 위험은 최소고, 쫓아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최대인데, 망설일 이유가 없죠. 하지만 창왕은 멈췄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이현수가 이를 갈 듯 말했다.
“이 새끼는 자신이 계산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는 걸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이건 거의 결벽증 같은 정신질환의 영역이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죠.”
“…….”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그걸 그렇게까지 과잉 해석할 수 있나?”
“아, 아니.”
“응?”
차이커창이 짜증이 확 어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건 그렇게밖에 해석이 안 된다. 저 빌어먹을 놈의 말에 동의하는 건 끔찍하게 싫은 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말이 맞다.”
이현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창왕과 싸워온 차이커창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현수의 편을 들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이해할 수 없는 멈춤이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말이 되는군. 분명 뭔가 말도 안 되는 변수가 생긴 거겠지.”
“몇 번이나?”
“삼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몇 번이 많아 보이나?”
“……기간을 고려하지 못했군.”
위긴스가 그럼 할 말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창왕의 머릿속에서는 계산이 끝났다는 거로군?”
“예.”
“아니, 잠깐. 그럼…….”
“예. 제가 살아 있을 경우도 계산을 끝냈을 겁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이 새끼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한다고요.”
위긴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이건 놀라운 걸 넘어 허탈할 지경이다.
물론 세세한 모든 것을 챙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변수 천지인 전쟁의 양상을 대략적이나마 계산하고 그 모든 경우를 상정한다는 건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알면 알수록 삼왕이란 것들은 인간이 아니군.’
위긴스가 슬쩍 홍왕을 바라봤다.
저자도 최근 창왕과 강진호의 존재 때문에 그 포스가 좀 죽었을 뿐이지, 강진호가 없는 곳에서 대면한다면 그 압박감만으로도 위긴스를 심장마비로 죽일 수 있는 인간이다.
“그래서…… 이제는 엿됐다는 건가?”
바토르가 살짝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창왕이 계산을 끝냈으니까?”
“그렇기도 합니다만, 아니기도 합니다.”
“뭔 소리야?”
대답은 이현수가 아니라 차이커창에게서 나왔다.
“다시 말하자면, 저들의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이 우리가 저놈의 의표를 찔렀다는 게 확인되는 순간이라는 의미지. 우리가 저놈을 정말 당황시키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그게 뭐?”
차이커창이 바토르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뇌까지 근육이 처박혀 있는 건 변하지 않았군. 빌어먹을, 너는 교육이라는 걸 좀 받아야 해.”
“니 예의를 다시 가르쳐 줄 수는 있다, 차이커창.”
바토르와 입씨름을 해봐야 얻는 게 있을 리 없다.
“창왕의 의표를 찔러야 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당면 과제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너무 위험하다는 거지. 쉽게 말해 우리가 창왕의 의표를 찔러 들어가려던 수가 이미 창왕에게 읽히고 있다면?”
“……함정으로 바로 빨려 들어가겠지.”
“그렇지. 의표를 찌른다는 건 기습적인 수라는 뜻이다. 그런데 기습적인 수는 뒤를 볼 수 없어. 잘못되면 전멸 외에는 다른 결과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저놈의 반응을 보면서 그 완급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거다.”
차이커창과 이현수가 격한 눈으로 강진호와 홍왕을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을 받은 강진호와 홍왕이 서로를 마주 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그, 그렇지.”
“음, 이해했다.”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하나도 이해 못한 것 같은데…….’
이현수 하나만 있어도 지랄맞은데, 거기에 차이커창이 붙으니 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난리도 아니다.
“결론적으로는 저들을 공략할 방법이 생겼다는 거로군.”
“정확합니다.”
“그러면서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거고?”
“그렇다.”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미쳐 날뛰는 놈들과 평범한 이사들 사이의 간격을 그가 좁혀주어야 한다.
“그럼 마지막 문제가 남는군.”
“…….”
“그걸 발견했다고 해서 회의를 소집할 필요는 없었겠지. 모두를 끌어모았다는 건 뭔가 결정할 일이 있다는 것 아닌가. 그게 뭔지만 알면 되겠네.”
이현수가 바로 입을 열었다.
“중국을 쳐야 합니다.”
“빤한…….”
“총회 전체를 이끌고 중국으로 갑니다. 거기서 각 방향으로 파상공세를 펼쳐야 합니다.”
“홍왕계는 반대 방향에서 밀고 들어간다. 여기서도 최대한 갈래를 나눠야 해.”
위긴스가 흐뭇하게 웃으며 턱을 긁었다.
‘모르겠다, 이 새끼들.’
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건지.
누가 저 두 놈을 뗴어놔야 할 텐데.
하지만 의외로 그 말을 강진호가 받았다.
“전투가 벌어지는 지점을 극단적으로 늘리고, 보고 체계에 부담을 준 뒤, 창왕이 받아들이는 정보량을 최대치로 만든다?”
“예! 그겁니다.”
“그 와중에 그놈의 의표를 찌를만한 미친 짓을 계속 해 대고?”
“그렇죠! 이해하시는군요.”
강진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삐끗하면 다 죽겠군.”
“전멸이죠! 아시는군요! 하핫!”
재떨이가 하늘을 날았다.
“아악!”
이현수가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게 웃으면서 할 말이냐, 이 미친놈아?”
“죄, 죄송.”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하튼 저것들은 뭔가 해결책을 찾았다 싶으면 뒤가 없이 날뛴다. 예전에 청마도 저러다가 그한테 몇 번 얻어맞았는데.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스스로 평가하기에 말도 안 되는 해결책을 찾아냈다는 의미지.’
그렇지 않다면 저리 흥분할 리가 없으니까.
“어쩌시겠습니까?”
위긴스가 슬그머니 강진호에게 물어왔다.
강진호가 턱을 살짝 쓰다듬다가 홍왕을 바라봤다.
“어떻게 생각하나?”
“내게 물을 것 없다, 마왕. 나는 차이커창의 두뇌를 신뢰한다. 그가 정한 답이 나의 답이다. 설령…….”
홍왕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광망을 뿜어냈다.
“그의 답이 틀렸다면, 내가 내 손으로 그 답을 뒤틀어 정답으로 만들겠다. 그게 위에 선 자의 의무겠지!”
“……영화 찍냐?”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얘는 왜 중원에서 살던 그보다 더 중원인 같은지 모르겠다.
“그게 유일한 답이라면 어쩔 수 없지.”
강진호가 눈을 빛냈다.
“그럼?”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을 친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모두의 근육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