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25
#1724.
선공하다 (4)
“쉽지 않을 거다.”
“빤한 소리.”
차이커창이 입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심드렁한 놈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새삼스럽게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오래 살고 볼 일이지.’
설마 그와 이현수가 함께 회의를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세상이란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신기할 게 없는 곳이라지만, 이건 차이커창의 상상력을 깔끔하게 넘어섰다.
“반발도 만만치 않을 거고.”
“결국은 이해하게 될 거야.”
“음?”
이현수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뭔가 골똘히 생각을 했다. 그러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고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회주님이 승인한 이상 반발은 거의 존재하지 않아.”
“지배 체계가 공고하다는 건가?”
“아니. 그 양반은 그렇게 안 보이지만, 의외로 굉장히 신중한 분이거든.”
“…….”
“그리고 계산도 빠르지. 회주님이 승인했다는 건 이 이상의 길이 없다는 판단이 섰다는 뜻이다. 이사님들도 그걸 알고 있는 거지.”
순간, 차이커창의 표정이 묘해졌다.
‘지배 체계가 아니라 신뢰 관계라는 건가.’
모르겠다.
한 번씩 총회가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이 조직은 대체 어떤 것을 기반으로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 조직에는 말도 안 되는 엄정함과 그의 기준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해이함이 공존한다.
다만 한 가지.
‘나는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차이커창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홍왕계와 총회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차이커창은 이현수처럼 중국으로 쳐들어가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하다.
전략적으로 그 방향이 옳다는 게 확연하다 해도, 현실적으로 수하들이 그의 전략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현수는 결국 자신의 의견대로 총회가 움직일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각 조직에 대한 지배력으로 따진다면 차이커창의 지배력은 이현수에게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경력이나 일해온 기간을 봐도 차이커창은 확실히 이현수 이상의 커리어를 쌓았다. 그럼에도 조직 내에서는 차이커창을 무시하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하지만 이현수는 적대 포지션에 있다가 총회로 넘어왔다는 어마어마한 핸디캡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 이상의 경력을 가진 이들이 되레 그의 말을 따라주고 있지 않은가.
‘짜증 날 정도로 부럽다니까.’
이런 차이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차이커창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샘이 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추진할 자신이 있다는 거냐?”
“자신 같은 걸 입에 올릴 상황이 아니야. 이건 어떻게든 추진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현수의 얼굴에 서릿발 같은 차가움이 내려앉았다.
“아니면 미래가 없어.”
“흐음.”
차이커창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겠지?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은 결국 너와 내가 모자라서다.”
“……모를 리가 있나.”
차이커창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창왕계가 가진 전력은 홍왕계보다 우위다. 하지만 차이커창이 창왕의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런 참담한 패배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전력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이겨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지.”
“잘 아는군.”
이현수가 차가운 눈으로 말을 이었다.
“적당히 발을 빼가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진흙 바닥에 구르고 거름 더미 속에 뛰어들 각오가 없으면 결과는 어차피 빤해.”
차이커창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추진이 결정된다고 해도 뭐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이건 칼날 위를 걷는 전략이야. 한 번만 삐끗해도 모조리 다 죽는다.”
“하지만 한 번만 제대로 먹히면 저 개새끼의 목을 따버릴 수 있지.”
차이커창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손끝이 조여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때로는 살기 위해 호랑이 굴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지만, 도박의 대가는 대부분은 패가망신이 아니던가.
“성공률은?”
“흐음…….”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좋게 봐주면 일 할 정도 아닐까?”
“……겨우 일 할이라고?”
차이커창의 계산으로는 적어도 삼 할 이상의 성공률이 있었다. 그런데 일 할?
“그것도 좋게 봐줬을 때지. 일단 기본적으로 우리의 움직임 중 절반 정도는 저쪽에 알려진다고 봐야 할 테니까.”
“간자를 제거하지 못했나?”
“그건 집 안에 쌓이는 먼지 같은 거야. 아무리 처리하고 또 처리해도 생겨나기 마련이지. 더구나…….”
이현수가 깊게 담배를 빨았다.
“후우.”
거칠게 담배 연기를 뱉어낸 이현수가 눈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이번 시도가 도박에 가깝다는 걸 모를 사람이 있겠냐고. 한번 회유를 받고 깔끔하게 거절한 이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거지. 우리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순간, 저들이 처리하는 정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다.”
“…….”
차이커창이 멍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봤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듣고 보면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저건 같은 아군이 적에게 정보를 누설할 거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말이 아닌가.
다른 사람도 아닌 차이커창의 앞에서 저런 말을 태연하게 한다고?
‘이 새끼는 진짜 뇌가 어떻게 되어 있는 거지?’
솔직히 자신이 이현수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해 온 차이커창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는 일하는 방식의 문제일 뿐이다. 이현수의 사고방식은 천하의 차이커창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조직 관리의 문제 아닌가?”
“한다고 되겠어?”
이현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인간이라는 건 애초에 관리가 불가능하다고. 역사상 인간의 관리에 완벽히 성공한 조직은 존재한 적이 없어. 위험한 건 관리를 못할 때가 아니라 내가 완벽히 조직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어버릴 때지.”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난 병신은 아니거든.”
차이커창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걸 감안하면 일 할 정도라는 건가?”
“그래.”
“그래서 그 일 할의 가능성을 믿고 돌진하겠다고?”
“그래.”
“사과하지.”
“응?”
차이커창이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빼 물고는 불을 붙였다.
“그동안 너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해 왔다만, 사과해야 할 것 같다. 넌 내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야.”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너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엿 같군.”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일 할짜리 계획을 추진해야 할 이유는?”
“뭔 병신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이현수가 으르렁대듯 말했다.
“그 일 할 이상의 가능성을 가진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
“…….”
차이커창이 한숨을 내쉬었다.
몰라서 물은 게 아니다. 그저 한 번 더 들어두기 위해서였다.
“정말 개 같은 상황이군.”
“쫄 것 없어.”
이현수가 이를 드러냈다.
“확률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확률일 뿐이야. 사소한 변수 하나로 뒤흔들리는 게 확률이지. 지금부터 우리가 그 확률을 높여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변수를 미친 듯이 깔아놔야 한다는 거로군.”
“정답.”
차이커창이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한 손으로 이마를 꾹 눌렀다.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어떻게든 너부터 죽였을 거다.”
“그럼 지금쯤 너도 죽었겠지.”
“자라 새끼.”
차이커창이 짜증 난다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차이커창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엿 같은 소리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어차피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절망하게 된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다.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시간을 끌어 대고, 볼품사납게 꽁무니를 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해 대고 있으면서도 차이커창은 도무지 창왕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치 안개 속에 갇힌 채 몰려오는 적을 기다리는 느낌이다. 얼마나 되는 수의 적이 어떤 방식으로 쳐들어올지 모른 채 그저 기다리는 느낌.
‘이건 최악이다.’
이 상황에서 승리를 따낼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이현수의 계획은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너무도 미약하고 희미하지만, 모노톤으로 변해 버린 세상에서는 그 약한 빛조차 너무도 눈부시다.
“그럼 시간 끌지 말고 바로 시작해라. 이러고 있는 시간도 아까우니까.”
“그래야지. 그런데 그전에…….”
“……뭐?”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게 있는데 말이야, 차이커창.”
이현수가 빙글빙글 웃으며 차이커창을 바라봤다.
차이커창은 웃고 있는 이현수의 눈이 사실을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말했을 텐데, 시간 끌지 말라고.”
“물론 바로 물어볼 거야.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서 묻는 건데…….”
“뭐냐?”
“얼마까지 감당할 수 있지?”
“……응?”
영문을 알 수 없는 질문에 차이커창이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나 감당할 수 있냐니?
“홍왕계 말이다.”
“…….”
이현수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어느 정도의 희생까지 받아들일 수 있지?”
침묵이 내려앉는다.
“……너.”
“오해하지 말라고. 수를 줄이겠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
“하지만 이건 살아남기만 하면 남는 장사다. 설사 홍왕계가 완전히 박살이 나는 한이 있어도 상대가 전멸한다면, 너희는 무주공산이 된 중국에 군림할 수 있겠지. 소득 하나 없이 돌아와야 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말이야.”
“……빤한 소리는 됐다.”
차이커창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속이 불타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현수의 말에는 틀린 게 없다. 희생을 담보하지 않고는 절대로 창왕계를 상대로 승리할 수 없다.
하지만 어정쩡하게 각오를 굳히는 것과 그 수를 정하는 것은 명백히 다른 문제였다.
‘어설픈 각오로 주둥아리 놀리지 말라는 건가?’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냐고?
몇 천을 죽일지, 몇 만을 죽일지 선택하라는 건가?
차이커창은 이현수의 말속에 숨어 있는 악의에 입술을 깨물었다.
“절반. 그 이상은 안 돼.”
“약하군.”
“빌어먹을 새끼. 네놈이 내 말을 따라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그리고 착각하지 마. 나는 너라는 놈을 신뢰하지 않아. 홍왕계만이 약해진다면 너는 언제든 우리를 몰살시키고 중국을 먹으려 들겠지. 그 강진호가 반대하든 말든.”
“하하, 정확하게 보는군. 하지만…… 한 가지는 완전히 틀렸어.”
“……그게 뭐지?”
“나는 회주님이 반대하는 일은 안 해.”
“…….”
“정확하게는 할 수 없다고 해야지. 차이커창, 너야말로 착각하지 마라. 이곳에 와 나름 평화로운 분위기에 젖어버린 모양인데, 내 머리의 일 할 정도는 언제나 회주님이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는 데 할애되고 있지. 그 양반…… 네 생각처럼 순진한 사람이 아니야.”
차이커창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절반. 거기까지는 감수하겠다.”
“노력은 해보지. 하지만 내 계획으로는 무리야.”
“그럼? 너는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지?”
“구 할.”
“……뭐라고?”
“홍왕계의 구 할은 죽어 나갈 거다.”
차이커창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켰다.
“그래야 이길 확률이 조금 생기는 정도지. 그 이하로는 무리야.”
“이 미친 새끼가!”
차이커창이 이현수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이대로 힘을 조금만 줘도 이현수의 목을 부러져 나갈 것이다.
하지만 목을 틀어 잡힌 이현수의 눈은 미동조차 없었다.
“이해를 못하겠군. 그래도 일 할이라도 살아남는 쪽이 나은 것 아닌가? 아니면 창왕의 손에 전멸할 텐데?”
“이…….”
“놔라, 차이커창. 너는 어차피 나를 못 죽여. 내가 없으면 넌 창왕을 감당하지 못하니까.”
그 차가운 목소리에 차이커창의 몸이 작게 떨렸다.
“너…… 대체 뭘 하려는 거냐?”
“별것 아니야.”
이현수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결과를 만드는 거야. 저쪽의 변수를 늘리고, 우리의 변수를 줄이는 거지. 그렇게 하나하나 줄이다 보면, 아주 깔끔해지지 않겠어? 하하하핫!”
차이커창이 이현수의 목을 놓고 물러났다.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이현수를 보고 있으려니 전신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쩌면…….’
잡지 말아야 할 이의 손을 잡아버린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