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28
#1727.
거침없다 (2)
“그래서…….”
“…….”
“숙취로 회의실에서 아침까지 뻗어 계셨다?”
“…….”
방진훈이 명백한 비웃음을 담고 이현수를 바라봤다.
“아주 자~알하는 짓입니다? 예? 실장님?”
“…….”
이현수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변명의 여지가 있을 리 없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맥주 캔의 산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되었고…….
아니, 뭐…….
그런 걸 다 접어두고라도 출근한 방진훈이 문을 열어 소파에 뻗어 있는 이현수를 발견한 순간에 게임은 끝난 거지, 뭐.
“애들이라도 들어왔으면 어쩌려고 그러셨습니까? 아주 좋은 본보기가 되셨겠네요? 예?”
“죄, 죄송합니다.”
방진훈이 묘한 눈으로 맥주 캔의 탑을 바라봤다.
“아주 많이도 드셨네. 누가 보면 하마가 마신 줄 알겠어. 이게 사람이 마실 양이냐, 이 미친놈아?”
“……그 부분에 관해서는 억울한 면이 좀 있는데.”
“뭐?”
“……아닙니다.”
그걸 제가 다 마셨겠습니까?
하마는 따로 있는데, 왜 지나가던 악어한테 화를 내십니까.
물론 하마는 안 뻗고 악어는 뻗었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그 하마는 술이 아니라 마취제를 저만큼 마셔도 안 뻗는단 말입니다!
“빨리 치워, 새끼야. 애들 불러 치울 생각 하지 말고.”
“……넵.”
방진훈이 이현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술 먹고 뻗을 정신이 있던 걸 보면, 아직 정신머리는 붙어 있는 모양이네.”
“……보통 그건 정신머리가 나갔다고 하지 않습니까?”
맥주를 사 온 커다란 봉투에 맥주 캔을 쑤셔 박던 이현수가 슬쩍 딴지를 걸었다.
“진짜 몰린 사람을 술 먹을 생각도 못해.”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현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맥주 캔을 봉투에 던져 넣었다. 막상 치우다 보니 정말 과격하게 많이 먹었다 싶었다.
“이걸 다 어떻게 사 왔냐?”
“원래는 이만큼이 아니었는데…… 먹다 보니 부족해서 두어 번 더 나르다 보니.”
“뭐? 편의점까지 갔다 왔어? 그게 거리가 얼만데? 너, 설마 차 몰았냐? 이 새끼가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음주운전을 해?”
“……회주님이 차로 가면 느리다고, 뛰어갔다 오셨는데요.”
“…….”
방진훈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니, 뭐…….
그렇긴 하지. 그 양반이면 뛰어갔다 오는 게 차 몰고 다녀오는 것보다 빠르겠지. 단거리면 더더욱 그렇고…….
“그리고 뭐, 심심하면 주먹질로 사람 골로 보내는 양반들이 음주운전 따지는 게 웃기지 않습니까?”
“지킬 건 지켜야지, 새끼야. 그건 직업이잖아. 직업 이외의 부분은 합법적으로 살아야 할 것 아냐!”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말은 맞는 말인데, 뭔가 우습다.
“그래서 너랑 같이 술 푸신 양반은 어디 가셨냐?”
“옷에서 술 냄새 난다고 샤워실 가셨어요. 씻고 옷 갈아입고 온다고.”
“……참나.”
방진훈이 헛웃음을 흘렸다.
“야, 이현수.”
“예.”
“회주님 보고 있으면 좀 웃기지 않냐?”
“……어떤 부분이 말입니까?”
“어떤 부분이긴. 예전에는 정말 인간미라고는 하나 없던 양반인데, 이제는 아침까지 술 푸고 사우나 갔다가 출근하네. 누가 보면 어디 회사 부장님쯤 되는 줄 알겠어.”
그 말에 이현수도 웃고 말았다.
듣고 보니 딱 그 짝이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내가 살다 살다 저 양반이 술 푸고 회사 바로 출근하는 꼴을 볼 줄이야.”
“인간미 있고 좋죠.”
“야야, 그런 것도 하던 사람이 해야 인간미가 있는 거야.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고.”
말을 하던 방진훈이 자기가 생각해도 웃기다는 듯이 피식피식 웃어 댔다.
알고 있다.
그가 이현수에 대해 올린 보고에 대한 강진호 나름의 대처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기분은 좀 풀렸냐?”
“머리가 아파 뒈지겠습니다.”
“이 새끼가 그래도 무인이라는 놈이 술 좀 먹었다고!”
“제가 어디 그럴 수준이 됩니까? 수준이 안 되니까 뻗었지.”
이현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방진훈이 고개를 내저었다.
‘효과는 있던 모양이네.’
확실히 부드러워졌다.
얼마 전까지의 이현수는 실이 팽팽하게 당겨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과도하게 당겨진 긴장이 언제라도 끊어질 것 같은 느낌. 지켜보는 사람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의 이현수의 느낌이 난다.
‘한 번 느슨하게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는 거로군.’
여기까지 계산하고 한 건지, 아니면 대책 없이 한잔 때리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과는 좋았다는 거겠지.
“그래서 회주님도 숙취…….”
벌컥.
그때, 강진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왔어?”
“…….”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강진호를 보며 방진훈의 얼굴이 뚱해졌다.
‘얼씨구?’
이현수는 숙취로 초췌해진 얼굴이건만, 강진호의 얼굴은 되레 반질반질하다. 금방이라도 개기름이 좔좔 흘러내릴 것 같지 않은가.
“……맥주에 비타민이라도 타 드셨습니까?”
“뭔 소리야?”
“상태가 너무 좋아 보이셔서.”
“아침이라 그런 거겠지.”
강진호가 소파에 걸터앉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팔자도 좋으십니다. 이런 상황에 술이 넘어가십니까?”
“방 이사.”
“예.”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잔소리가 많아진다더라고.”
“그럼 회주님은 하루 종일 잔소리를 해도 부족하겠네요! 나이는 제일 많으시니까.”
“…….”
괜히 입을 뗐다가 본전도 못 찾은 강진호가 시무룩한 얼굴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찰칵.
담배 연기를 살짝 뿜어낸 강진호가 이현수를 바라봤다.
“일할 수 있어? 아니면 집에 가서 좀 쉬지.”
“괜찮습니다. 그래도 저도 무인인데, 술 좀 먹은 걸로 일에 지장을 주겠습니까?”
방진훈이 코웃음을 쳤다.
“아니, 저 새끼는 무슨 지 편할 때는 무인 했다가 지 불리할 때는 일반인 했다가.”
“반반인 거죠, 반반.”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여하튼 일에는 지장을 주지 않을 겁니다. 안 그래도 오늘부터는 조금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까요.”
“바쁘게?”
“예.”
이현수가 눈을 빛냈다.
“방향이 정해졌으니, 친절하신 동맹분들을 구슬려 봐야죠.”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났다.
* * *
“정말 감사했습니다.”
“허허허, 왜 이러십니까, 실장님. 저희가 한 게 없는데.”
고한봉이 이현수의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아닙니다. 총리님이 정보를 조금만 늦게 주셨더라면 저는 아마 여기에 없었을 겁니다.”
“어이쿠, 설마 그랬겠습니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고한봉이 고개를 숙이는 이현수를 보며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그동안 폐만 끼치는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도움이 되었다니 참 다행입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말을 꺼낸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지옥문까지 갔다 왔거든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 예. 좀 번거롭지만…… 이게 제가 지시한 게 아니라서, 이해 좀 해주십시오.”
이현수가 입맛을 다셨다.
지금 그들이 만난 곳은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교외의 고급 요정이다. 여기까지는 과거와 다를 게 없지만…….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야.”
“…….”
“야, 안 들리냐? 야!”
문 안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무인들이 이현수에게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좀 나가, 새끼들아! 뭔 놈의 경호를 방 안에서 처 하고 지랄이야!”
“……이사님이 1미터 이상 떨어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씨발, 잘 때는 내 침대에서 처 자게?”
이현수가 손에 든 술잔을 무인에게 던졌다. 하지만 그가 전력을 다해 던져 봐야 위협이나 되겠는가. 아무렇지도 않게 술잔을 받아 든 이가 저벅저벅 걸어와 테이블 위에 술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어쨌든 저는 명령받은 대로 해야 합니다.”
“하…….”
이현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방진훈이 무슨 말을 해뒀는지, 그를 경호하는 인원이 무려 백 명으로 늘어났다. 지금 이 요정의 주변은 경호를 하는 이들로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거기까진 이해한다.
그래, 그건 이해해야지.
“화장실도 따라올 거냐, 이 새끼야?”
“문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현수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니.
이 양반들은 정도라는 걸 모르나, 진짜?
“알겠다. 알겠는데…… 지금 내가 총리님을 뵙잖아. 어? 총리님이 네 앞에서 감시받으면서 대화를 해야겠냐? 어?”
“…….”
“나가.”
“그게…….”
“야, 이 새끼야! 건물 주변 다 포위해 놓고 이 안으로 다른 놈 들여보내면 그게 잘못된 거 아냐?! 차라리 밖을 좀 제대로 지키라고!”
무인이 잠시 갈등하는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문 앞에는 한 놈 세워둘 겁니다.”
“……니 꼴리는 대로 하세요.”
“예, 그럼.”
무인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현수가 그 광경을 보며 한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뒈지겠네, 진짜.’
고한봉이야 그렇다 치자. 어쨌거나 고한봉도 총회와 반쯤은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 요정에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조폭도 울고 갈 만한 인상을 가진 놈들이 꼴에 경호원이랍시고 시커먼 슈트를 입고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데,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살이 떨리겠는가.
“죄송합니다.”
고한봉에게 사과를 건네자 고한봉이 빙그레 웃었다.
“회주님께서 실장님을 많이 아끼시는 모양입니다, 경호를 이렇게나 붙이시고. 이건 저도 못 받아본 수준의 경혼데…….”
“……회주님이 아니라 이사님들이 유난 떠시는 거죠.”
“오, 이사님들이?”
“제가 없으면 자기들이 대신 일해야 하거든요. ‘앗, 뜨거라’ 한 거죠.”
“…….”
보통 이런 말은 농담으로 받아야 하는데, 너무 진실 같아서 받아칠 수가 없는 고한봉이었다.
“여하튼.”
이현수가 헛기침을 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바쁘신 분 모셔다 놓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했네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이현수가 가만히 고한봉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저희가 중국으로 한 번 넘어가 보려고 합니다.”
“저번처럼 말입니까? 그 루트는 저쪽에서도…….”
“아니요.”
이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소수만 넘어가는 게 아닙니다. 총회를 모두 이끌고 중국으로 쳐들어갈 겁니다.”
순간, 고한봉이 두 눈을 부릅떴다.
웬만해서는 얼굴로 감정을 표하지 않는 그이지만, 이 말을 듣고도 평정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농담?”
“아닙니다.”
“……총회가 모두 중국으로 넘어간다고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이러는 건 아니시겠죠?”
이현수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쟁입니다.”
“자, 잠시만요, 실장님. 지금 뭔가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아니요.”
이현수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착각도 아니고, 농담도 아닙니다. 그리고…… 총리님도 현실을 조금 더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
고한봉이 멍한 얼굴로 바라보자, 이현수가 고한봉과 시선을 마주쳤다.
“이건 우리가 시작한 전쟁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현수의 눈이 차게 빛났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이건 우리의 힘으로는 멈출 수 없습니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겠죠.”
고한봉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