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32
#1731.
승부하다 (1)
쿠우웅!
대지가 흔들린다.
쿠우우우웅!
하늘이 요동친다.
한 번, 한 번의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세상을 이루는 기운들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총회의 이사들은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지금 저곳에서 어떤 승부가 벌어지고 있는지 완벽하게 이해하는 이들은 이곳에 없다. 각자의 무위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을 받아들일 뿐이다.
아마추어가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프로의 경기를 본다고 해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동작을 볼 수 없고, 모든 동작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그들 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어마어마하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끄으응, 여기 계셨네요.”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누구 하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지금 저 광경에서 눈을 뗄 수 있다면, 그는 무인이 아니다.
대답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 작은 부분에 쓸 신경조차 모조리 눈에 집중한다.
콰아아아아앙!
황금빛 섬광을 검은 불꽃이 휘감는다. 그 광경은 마치 거대한 빛의 기둥을 타고 검은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장관.
그 말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길이 있겠는가.
사람과 사람이 맞붙어서 이런 광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겠다.
“누가 이깁니까?”
“…….”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이현수에게로 돌아갔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둘의 전투에 빨려 들어가던 이들이지만, 지금 이현수가 던진 질문은 무인이라면 받아내지 않을 수가 없는 질문이다.
“그래도 아직은 홍왕이…….”
바토르가 선공을 하자, 장민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네 눈은 장식으로 처 달아놓고 다니냐? 너무 높은 데 달려 있다 보니 쓸모가 없어진 모양이지? 마존께서 저런 놈에게 질 것 같으냐?”
“영감, 신앙 간증은 교회에 가서 해라. 무력을 논하는데 왜 신앙을 끌고 들어오나?”
“아주 눈까지 근육이 되어버린 모양이로군. 네가 그러니까 아직 그 꼴이지.”
“이 영감이?”
바토르와 장민이 서로 눈을 부라렸다.
“자자, 진정하십시오.”
위긴스가 그런 두 사람을 만류했다.
“그냥 의견일 뿐이잖습니까.”
“그러는 너는 누가 이길 것 같은데?”
위긴스가 훅 들어온 질문에 눈을 찌푸렸다.
“그래도 아직은 홍왕이…….”
“이런 빌어 처먹을.”
장민이 짜증이 잔뜩 어린 눈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약해 빠진 놈들이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냐?”
방진훈이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아니, 장로님, 솔직히 우리가 저 상황을 제대로 못 보는 건 사실이지만, 장로님도 저 두 사람이 얼마나 센지는 잘 모르잖습니까?”
“…….”
그게 꽤 아픈 지적이었는지 장민이 움찔했다.
“그럼 너는 누가 이길 것 같은데?”
“저야 모르죠. 제가 아는 건 우리 회주님이 어디서 맞고 다니는 꼴을 본 적이 없다는 것뿐입니다.”
모두의 평가를 들은 이현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냥 그럴 것 같다는 의견이고, 사실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네요.”
“마존께서 이기신다니까!”
“그래도 아직은 홍왕이!”
“거, 맞을 양반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하하하, 어차피 동맹인데, 지면 뭐 어떻습니까.”
이현수가 고개를 내저어 버렸다.
뭣도 모르는 양반들이 자존심만 세서는 어쨌거나 제 말이 맞다고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뭐, 이게 무인의 특징이지.’
평생을 승과 패, 생과 사가 갈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보니 승부에 굉장히 민감하다.
“너는?”
“예?”
네 사람의 시선이 이현수에게 동시에 꽂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제 의견이 의미가 있습니까?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어도 그것보다는 더 정확할 텐데.”
“어차피 여기 다 똑같다! 이 영감도 뭣도 모르면서 그냥 지껄이는 거야.”
“어…….”
다시 말해 저 두 사람과 이들의 차이가 이들과 이현수의 차이만큼 벌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현수는 그저 들은 정보로 이들의 강함을 짐작할 뿐, 눈으로 보고 이들의 무위를 감지하지 못한다.
‘생각 이상으로 차이가 큰 모양이네.’
“그래서 너는 누군데?”
“뭐 빤한 걸 물으십니까. 당연히 회주님이지.”
“쯧, 확실히 빤한 걸…….”
“회주님이 자기가 이긴다고 했거든요.”
“그게 뭔 의미가 있어?”
“예?”
“그 양반은 누구랑 붙어도 지가 이긴다고 하는 양반이잖아.”
“…….”
그 말은 맞다는 듯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를 예측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일단 말을 해놓고 강제로 결과를 만드는 게지.”
“색다른 방향의 예언이야.”
“그건 맞죠.”
이사들이 동시에 말을 토해냈다.
“…….”
이현수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맞는 것 같은데?’
그가 생각해도 그쪽이 더 신빙성이 있었으니까.
저 양반은 저기 산이 있다고 하면, ‘산 없는데?’라고 대답을 하고는 산을 지워 버릴 사람이다.
어쨌든 내가 이긴다고 근거 없이 장담한 뒤에도 그냥 이겨 버려서 결과를 맞춘다.
그런데…….
“근데 그게 더 대단한 거 아닙니까?”
“…….”
“…….”
이사들이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던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터지며 커다란 충격파가 그들이 있는 곳을 덮쳤다.
“큭!”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이현수를 보호한 이사들이 격하게 고개를 돌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기이이이이잉!
홍왕의 우수가 황금빛으로 물든다.
미증유의 거력이 실린 우수가 검은 마기의 불꽃을 향해 내뿜어진다.
콰아아아아아!
폭포가 쏟아지는 것 같은 커다란 굉음과 함께, 황금빛의 섬광이 마기를 헤집는다.
하지만 황금의 섬광에 닿은 검은 불꽃은 처음보다 두 배는 더 크게 타오르며 황금빛의 섬광을 집어삼킨다.
마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무저갱처럼.
빛조차도 저 타르 같은 짙은 어둠에는 그 힘을 잃어버렸다.
“큭!”
홍왕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공격은 강진호의 마기를 뚫지 못한다. 이전에는 공격 일변도의 강진호였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과거와는 다르게 완전함을 손에 넣었다.
‘먹히지 않는다면 그 육체에 직접 때려 박아주지!’
홍왕을 둘러싸고 있던 황금의 기운이 순식간에 응축되더니, 양손을 금색으로 물들였다.
“오오오오오오!”
홍왕의 발이 바닥을 내리밟았다.
콰아아아앙!
단순히 땅을 박찬 것뿐이거늘, 바닥이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움푹 파였다. 그 반동으로 홍왕의 육체가 탄환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마치 육체가 길게 늘어난 것처럼 잔상이 늘어진다.
홍왕을 맞이하는 강진호의 마기도 그 크기를 줄이며 강진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후우!”
두 눈을 붉게 물들인 강진호가 양손을 좌우로 펼쳐 냈다. 그러자 검은 마기가 검은 뱀처럼 청루와 적루를 휘감고 타올랐다.
두 검을 십자로 교차한 강진호가 날아드는 홍왕의 권을 막아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기운과 기운의 충돌.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충격만으로 바닥이 파이고 나무가 뿌리째 뜯겨 날아간다.
“마왕!”
홍왕의 두 눈이 금빛으로 빛났다.
쾅! 콰앙! 쾅!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수십 번의 권격이 강진호를 향해 쏟아진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권격 하나하나가 산을 허물고 바다를 밀어낼 힘을 동반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쏟아지는 권격의 빗속에서도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강 대 강으로 홍왕을 맞받았다.
파아아아앙!
적루가 날아드는 홍왕의 주먹을 후려친다.
손목으로 전해지는 충격.
팔이 뒤흔들리고, 어깨가 터져 나갈 것 같다.
재미있는 일이지.
원초적인 무학은 이렇게 시작한다. 힘과 힘으로 서로를 부수려 들고,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것을 목표로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학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처음의 원시적인 방향에서 탈피하게 된다.
하지만 우습게도 지금 강진호와 홍왕은 무학에 처음 입문한 이들이 겨루는 것처럼 그저 자신의 힘과 속도로 상대를 찍어 누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원점으로의 회귀.
무학이라는 껍질을 탈피하고, 야성과 야성이 서로 맞부딪친다.
“마와아아아아아아앙!”
홍왕의 주먹이 금빛의 서기를 머금고 강진호의 가슴을 부수어간다.
강진호가 교차한 검으로 그 권을 막아낸다.
콰아아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홍왕의 주먹이 강진호의 검에 박혀들었다. 정말 황금처럼 금빛의 질감을 두른 주먹이 베이며 피 보라가 솟구친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손해는 아니었다. 전력으로 질러낸 홍왕의 주먹을 막은 대가로 강진호의 근육은 갈가리 찢겨 나갔으니까.
종아리와 허리, 팔의 근육이 파열되며 끔찍한 고통이 밀려온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고통을 느끼며 되레 비릿하게 웃었다.
“급해 보이는군.”
“…….”
“급할 것 없잖아? 천천히 즐기자고. 시간은 많으니까.”
콰앙!
강진호의 발이 홍왕의 복부를 파고든다.
홍왕의 몸이 거대한 기차에 치이기라도 한 것처럼 어마어마한 속도로 튕겨 나갔다.
“퉤!”
강진호가 목구멍으로 밀려 올라온 피를 뱉어낸다.
저 강력하기 짝이 없는 권력을 막아낸 대가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내부가 진탕되어 피가 역류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분노하기보다는 되레 저릿하기까지 한 쾌감에 전율하는 중이었다.
‘강하다.’
제아무리 최고점에서는 조금 내려왔다 한들 홍왕은 홍왕이 아니던가.
주먹을 맞대는 것만으로 강진호에게 이만한 충족감을 줄 수 있는 이는 세상을 통틀어도 단둘. 아직 맞붙어본 적이 없는 흑왕을 감안해도 셋에 불과하다.
그러니 어떻게 즐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근육에서 밀려오는 고통.
아드레날린이 과하게 쏟아져 나와 한껏 상기된 육체.
그리고 혀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의 맛까지.
너무도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감각.
강진호는 전신을 휘감고 도는 감각을 즐기며 발을 내디뎠다.
“차근차근 부숴놓는 것도 싫어하지 않거든.”
쿵!
강진호의 발이 바닥을 밟으며 커다란 발자국을 만들어낸다. 극한까지 끌어올린 마기는 단순한 걸음마저도 하나의 초식으로 화하게 했다.
그리고…….
“흐음.”
바닥에 쓰러져 있던 홍왕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딱히 충격을 받지는 않은 모양이다.
“요즘은 등이 땅에 닿는 일이 늘어나는군.”
“너무 편히 살아온 거지.”
“그럴지도 모르지.”
홍왕 역시 강진호처럼 웃었다.
그에게도 상대란 너무 간절한 것.
그는 어쩌면 강진호 이상으로 싸울 이를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강진호는 싸울 이를 찾지 못해 외로운 존재였지만, 홍왕은 자신의 상대가 될 이들을 알고 있음에도 싸울 수 없었다.
그 어깨 위에 짊어진 것이 너무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는 살아생전 처음으로 어깨에 올려진 짐을 내려놓고 그저 한 무인으로서 강진호와 맞붙고 있었다.
‘자유롭군.’
홍왕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물론 취할 생각은 없다. 그의 힘은 무게를 견디는 것에서 나오니까. 그가 해야 할 일을 잊고, 그가 이어받은 것을 놓고, 그를 의지하는 이들을 버린다면, 어쩌면 더 자유로운 권을 구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홍왕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 순간만은 자유로울 수 있겠지.”
“지껄이지 말고 덤벼봐.”
“오냐!”
홍왕이 광소를 터뜨리며 강진호에게 달려든다.
더는 무인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시대.
종파와 세력을 초월한 진정한 의미의 비무가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